내가 원래 부처다' '부처다' /청화스님

2017. 1. 8. 12:58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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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은 모든 법이,

자신과 주변의 모든 존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와 같이 모든 존재가 있다고 생각하는 한

부처님 참선 공부는 이것저것 다 글러져 버립니다.

모든 존재를 있다고 생각하면 바로 집착이 생기게 되므로,

단체를 꾸며 보나 가정을 꾸며 보나 다

불화와 갈등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됩니다.

그러므로 참선 공부는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주가 오직 한 성품의 진여불성뿐이라고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타성일편이 되어야 합니다.

믿어야 하는데, 처음에는 믿기지 않는단 말입니다.

여태까지 배운 것이나 느낀 것이나 모두가 다 있다고만 배웠으니까,

쉽게 공(空)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구구순숙이란 말이 그토록 중요하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오래오래 두고두고 '다 비었다' '다 비었다' '내가 없다' '내가 없다'

이렇게 되뇌어야 합니다.

자기 암시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의의가 있습니다.

'내가 원래 부처다' '부처다' 이렇게 하다 보면

본래 부처인지라 부처가 되어 버립니다.

염불의 본뜻은 그런 데 있습니다.

본래 부처인지라 자꾸만 부처님 이름을 외우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결국은 부처가 되어 버립니다.

자꾸 내가 나쁘다고 생각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자기도 모르게 참말로 마음이 어둡고 나쁘게 되어 버립니다.

자기 암시라는 것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화두나 주문이나 염불 같은 공부는 모두가 다

원래의 자리, 진여불성 자리, 원래 모든 존재가

하나인 자리를 구하는 것입니다. 본래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 청화스님

 * 새아침에 - 조지훈

 

모든 것이 뒤바뀌어 秩序를 잃을지라도

星辰의 運行만은 변하지 않는 法度를 지니나니

또 삼백예순날이 다 가고 사람 사는 땅 위에

새해 새아침이 열려오누나

처음도 없고 끝도 없는

이 永劫의 둘레를

뉘라서 짐짓 한 토막 짤라

새해 첫날이라 이름지었던가

뜻두고 이루지 못하는 恨은

太初 以來로 있었나부다

다시 한 번 意慾을 불태워

스스로를 채찍질하라고

그 不退轉의 決意를 위하여

새아침은 오는가

낡은 것과 새것을 義와 不義를

삶과 죽음을ㅡ

그것만을 생각하다가 또 삼백예순날은 가리라

굽이치는 山脈 위에 보라빛 하늘이 열리듯이

출렁이는 波濤 위에

이글이글 太陽이 솟듯이

그렇게 열리라 또 그렇게 솟으라

꿈이여!

애절한 노래 20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