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막힌 마음인가/이법산스님

2017. 4. 29. 18:0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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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막힌 마음인가


흔히들 마음이 답답하다고 하거나 마음이 잘 안 통한다고들 한다.
어떤 마음이 막힌 마음이며, 무엇이 마음을 막고 있단 말인가.
마음이 허공과 같은데 막힐 것이 무엇이며,
마음은 밝고 맑다고 하였는데
밝은 태양을 누가 가리고 맑은 물을 무엇이 흐리게 하였는가.
스스로 참구해보기 위해서 고려시대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을
세계 최초로 인쇄 제작한 백운(白雲)선사의 상단법문 한 토막을 상기해보자.
“… 혹은 방망이로 때리고 혹은 호통(?)을 치며,
혹은 손이 되고 주인이 되어 때로는 빼앗고 때로는 놓아주면서
재빠른 기봉이 번개처럼 떨쳤으니,
그 임제(臨濟)와 덕산(德山)은 홀로 뛰어났었소.
그러나 나도 거기 참여하여야 하는가.

―하고는 한참 있다가―

온 대지가 환하게 밝아 터럭 하나도 없는데 어떤 것이 있어서
여러분의 반연이 되고 상대가 되겠는가?
만일 바늘 끝만큼이라도 여러분과 간격이 되고 장애가 되거든
그것을 내게 가져오시오.
어떤 것이 부처이고 어떤 것이 조사이며 어떤 것이 산하대지와 해와 달,
별이고 어떤 것이 사대오온의 육신인가.
내가 지금 말한 것이 앞서 말한 여러 조사의 가풍과 같은가 다른가.
혹은, 허물이 있는가 없는가.
여러분은 말이나 글귀를 따라 알려고 하지 마시오.
그렇게 하면 삼생(三生)과 육십겁(六十劫)을 지나도 꿈에도
그것을 보지 못할 것이오.”

이 법문의 의미를 마음에 담아 잘 생각해 보자.
과연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시비하고 다투며 무엇을 찾으려고
동분서주하며 무엇을 얻겠다고 하겠는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기록한 책이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다.
부처님은 이루어 다 적을 수 없는 많은 말씀을 하시었다.
도대체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으셔서 그처럼 많은 말씀을 하셨을까
의심해 볼만하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열반하실 때는
‘한 말도 한 바가 없다’고 하고 가셨다.

무슨 의미일까. 부처님께서는 그때 그 중생에게 맞는 말씀을 하시고는
홀연히 떠나셨지만 그 말의 효과는 중생으로 하여금 죽고 사는
고통을 면하게 하였으니 그 위력이 참으로 대단하시다.
이렇게 팔만대장경에 새겨진 말씀들이 한자 한 구절도 버릴 것이 없고,
잘못된 것이 없기 때문에 2500여 년을 넘게 세상 사람들이
이를 보존하면서 두고두고 보물로서 전하고 있다.
어느 경전의 어떤 말씀이나 마음에 대한 말씀,
마음을 깨달으라는 말씀 아닌 것이 하나도 없다.
부처님은 마음의 참 진리를 설하셨기 때문에 한 말씀도
마음에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허공은 본래 맑고 밝은 것이다. 허공에 구름이 있다고 하여
허공을 답답하다고 말하겠지만, 그 구름은 실체가 없기 때문에
사라져버리게 되면 허공은 본래 허공일 뿐 무엇이나 담을 수 있고
비울 수 있는 무한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렇듯 우리들의 마음도 비유하자면 허공과 같아서 무엇이나
생각을 담고 생각으로 온갖 일을 꾸미고 조작할 수 있으나,
한 생각 텅∼ 비어버리게 되면 본래의
맑고 맑은 평안한 마음으로 돌아 갈 것이다.

백운스님의 말씀을 다시 상기해 보자.
임제스님의 고함소리, 덕산스님의 방망이 이것 또한
부처님 법문의 표상이다. 고함소리 허공에 남아 있지 않고,
어디에 후려친 방망이 흔적이 허공에 새겨져 있는가.
털끝 하나 허공에 걸릴 것 없듯이 우리 마음 어디에
시비할 때가 끼고, 싸울 무기가 있겠는가.
근심과 걱정은 괜한 장난이고, 시비와 질투는 쓸데없는 망상이다.
가을 하늘을 보라, 하늘이 무엇을 말해 주는가.
물들어 가는 나뭇잎을 보라, 계절의 감각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이렇게 맑고 밝은 허공도 내 마음에 담기고,
밝고 따끈한 태양도 내 마음에 들어오고,
푸른 산도 딱딱한 바위도 흐르는 시냇물, 넓은 바다,
이 세상 어느 것인들 내 마음에 못 담을 것이 무엇이겠는가.

이처럼 큰마음, 넉넉한 마음, 능력 있는 마음을 갖고 있다면
무엇을 더 답답해하고 무엇을 걱정할 것이 있겠는가.
그래도 답답한 마음이 있거든 가을 바람결에 낙엽을 태워
날려 보내버리자. 산더미처럼 쌓인 낙엽을 한 개비의
성냥불로 태워버리게 되면 그 낙엽의 흔적은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을 것이다.
마음을 열고 뜻을 합하여 참다운 창조적 삶을 살아야 한다.

백운스님이 지공(指空)화상에게 올린 시(詩)에,

“송장이 하룻밤의 꿈을 얻어
허수아비에게 이야기한다.
죽었다 다시 살아났으니,
말마다 모두 이 길이었네.”

과연 송장이 무슨 꿈을 꾸고 허수아비가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나 자신이 송장이나 허수아비가 아닌가 하고 생각해보자.
다를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내가 죽는다면, 또 잠을 잘 때를 생각한다면 과연 다르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어 백운스님의 시 한 수를 더 음미해보자.

“벙어리가 묘한 소리로 높은 법을 설하니
귀머거리가 멀리서 작은 그 말을 듣는다.
마음 없는 만물들이 모두 찬탄하면서
허공에 가부(跏趺)하고 앉아 밤에 와서 참석한다.”

참 재미있다. 어찌 이리 재미있을 수 있는지,
과연 벙어리와 귀머거리의 법담이 가능할지가 궁금하지만
현재 이 세상에서는 택도 없는 소리다. 무선전화가 오고
가고 인터넷이 허공에 가득한데 말하고 듣는 것에
무엇이 걸리고 안 통할 것이 있겠는가.
이제 탁 트인 열린 마음으로 살자.
관세음보살.


<이법산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