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그 이후/오진탁 한림대 철학과 교수

2017. 7. 16. 22:30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꿈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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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그 이후


죽음은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누구에든지 반드시 찾아온다.

하지만 죽음이 미리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찾아올지 아직 정해져 있지 않다.

죽음이 바로 그렇기 때문에 누구에게든지,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죽음이

찾아올 수 있다.

그러므로 누구나,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여유 있게 평화롭게 평안하게

웃으면서 죽을 수 있도록 평상시에 철저하게 준비해둬야 한다.

자기 삶과 목숨을 단숨에 종결짓는 종결자인 죽음, 지금까지 죽음을

얼마나 준비해왔는가? 죽음은 나의 일이 아니고 마치 남의 죽음이라도

되는 듯이 아무 준비도 없이 황망하게 죽어도 되는 것일까?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먼저 올 수도 있고 내생이 먼저 올 수도 있다.

내일과 내생 중 어느 것이 먼저 찾아올까? 내일이 먼저 찾아올지

내생이 먼저 찾아올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죽음에 대한 아무 준비도 없이 죽는다면, 얼마나 황망할까?

죽음 준비는 한정되고 제한된 삶의 시간을 보다 의미 있게 영위함으로써

막상 죽음이 닥쳐왔을 때 평화롭고 편안한 마음상태로 죽을 수 있도록 하는 준비다.

죽음 준비는 죽을 준비가 아니라 바로 삶의 준비다.

죽음 준비 없이 사는 사람은 삶을 준비하지 않은 채 사는 것이나 다름없다.

죽음 준비, 우리 삶에서 죽움 준비 이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는가!


이제 다시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죽을 것인지….

 웃으면서, 여유있게, 평화롭게, 평안한 마음상태로 떠날 수 있는지?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이 찾아오더라도, 웃으면서 떠날 수 있도록

죽음에 준비해 두었는지? 육신이 호흡을 멈추고 심장이 박동을 멈추면,

영혼은 3일 반에 걸쳐 육신으로부터 분리된다.

육신이 죽어 영혼과 분리된 이제 나는 누구인지, 나는 어디에 있는지,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사람들은 누구나 할거 없이 나라는 존재가 있음을 당연히 전제하고

살아간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런 나는 누구인가?

과연 나라고 부를만한 것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죽어가는 육신 죽은 시체 화장한 한줌 재가 자기 자신인가?

죽은 육신에서 분리된 영혼이 자기 자신인가?

죽은 이후 죽은 육신에서 영혼이 분리된 이후 나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누구든지 자기 자신의 존재가 있음을 당연히 전제하고 살아가지만,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는가? 과연, 무슨 답을 할 수 있을까?

육신이 바로 자신인가? 죽은 육신을 화장한 뒤에도 육신이 나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라고 부를만한 것이 과연 있다면, 죽은 육신을 화장해 한줌 재로 남은

뒤에도 나라고 부를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것들 모두는 죽음과 함께 사라져버리는 것들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 중에서 죽은 육신을 화장한 다음에도 변함없이

나와 함께 유지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죽은 육신에서 분리된 영혼이 바로 자기 자신인가?

드렇다면 아직 살아있는 지금 그 영혼의 존재를 실감하고 있는가?

영혼의 존재를 실감하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영혼을 자기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자기가 누구인지 대답도 못하면서 우리는 자기 존재가 있음을 전제로 해서

살아간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중생의 몰골인가!

자기가 누구인지 대답도 하지 못하면서 자기 존재가 있음을 전제로 해서

살아가는 인간의 삶, 이보다 더 어리석은 삶이 있을 수 있을까!

자기가 누구인지, 자기가 어디서 왔는지,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이 질문을 풀지 못한다면, 죽음의 관문 역시

평화롭게 여유 있게 웃으면서 평안한 마음으로 통과할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삶을 제대로 영위하지 못하고 삶의 마지막인

죽음의 순간 편안하고 여유 있게 평화롭게 웃으면서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평생을 살다가,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지 못한 채 죽어가기 때문이다.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본래면목(本來面目)’, 부모님이 태어나기 이전에

나는 어디에 있었는가? 내가 부모에게서 태어나기 이전 나의 본래 모습은 무

엇이었는가? 내가 죽어 죽은 육신을 화장한 뒤 나는 어디에 있을까?


나라는 존재가 있다고 여기는 허망한 생각, 망상(妄想)을 전제하고

삶을 살기 때문에 내 삶에 애착을 갖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나라고 부를만이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즉 내가 없다면(나라고 할만한

고정불변하는 독립적인 실체가 없다면, 無我라면)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나라고 부를 것이 없다면, 삶에 애착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

나라고 부를 것이 없다면, 또한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면,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마음의 평화가 흔들릴 이유 또한 없다.

나라는 존재가 있다고 여기는 허망한 생각, 망상이 있으므로,

죽음이 두렵고 더욱 더 삶에 애착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우리 마음에 가득 채워야 할 것, 나라는 존재로 여겨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저 푸른 하늘처럼 텅~빈 허공처럼 그냥 마음을 텅~비워 둘 뿐이다.


오진탁 한림대 철학과 교수 jtoh@hallym.ac.kr


[1398호 / 2017년 7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원래 한 몸이라 / 봉숭아꽃







百千江河萬溪流(백천강하만계류) - 백천강물 만갈래 시내가 흘러

同歸大海一味水(동귀대해일미수) - 바다에 돌아가니 한 물맛이네


森羅萬象各別色(삼라만상각별색) - 삼라만상 온갖가지가지 모양이여 !

還源元來同根生(환원원래동근생) -  근원에 돌아가니 원래로 한 몸이라








千江에서 흘러 들어온 물이 바다에 이르듯

천만경계(千萬境界)가 한 곳으로 돌아가니 만법귀일(萬法歸一)이라 !


'모든 눈송이는 한 곳으로 떨어진다' 했던가요

우리가 육신(肉身)을 벗고 가야 할 곳도 그 곳이 아니던가요


삼라만상이 동체(同體)라

너와 내가 없는 불국토(佛國土) 이거늘 . .


무명중생(無明衆生)은 오늘도

분별(分別) 속에서 시끄럽기만 합니다





가슴 적시는 노래 모음 벌써 일년 비와 당신 페이지원(커피하우스 ost) 술 한잔해요 사랑하면 안되나요 (아이리스 ost) 내일 다시 말해요 사랑이라 쓰고 이별이라 부른다 바보가슴 one Love (Feat.가희) 사랑빛 들을 수 없는 독백 잘못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