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간다는 말은 변해간다는 말이다 / 대행 스님

2017. 9. 17. 10:30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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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는 말은 변해간다는 말이다 / 대행 스님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생각해 보면 참으로 신비합니다.
매일같이 대수롭지 않게 해치우는 일들도
곰곰 생각해 보면
그것이 대수롭지 않은 것만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먹고, 잠자고, 일하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두려워하고, 화내는 등등의 일을 매일같이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여러 가지를 각각 다른 내(我)가 있어서
하나씩 맡아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먹는 내가 따로 있고, 잠자는 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먹을 때의 나도 나요,
잠잘 때의 나도 여전히 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여러 면모를 지닌 것이 사람입니다.
화를 벌컥 냈다가도 얼마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게 되는데,
그 사이에는 어떤 이음새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화를 낼 때의 나는 어떤 나이고,
그 화가 가라앉았을 때의 나는 어떤 나이겠습니까 ?
그 두 개의 내가 정녕 다른 '나' 이겠습니까 ?


한 사람의 남자가 아내와
이야기할 때는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남편이 됩니다.
자녀들과 같이 놀 때에는 아버지가 되고,
부모님 앞에서는 아들이 되며,
직장에 나가면 직장인이 되고,
음식점에 가서는 손님이 되고,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는 승객이 됩니다.

그런데 꼭 그렇게 하려고 의식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말씨만 보더라도
아내에게는 무시로 '여보'라든가 '당신'하며 말을 하는데,
부모님께는 자연히 공대하게 되고,
자녀들 앞에서는 
말 한마디에도 사랑과 권위가 깃들이게 되지요.
이런 것이 살아간다는 것의 신비 중의 하나가 아닐까요?

무정물(無情物)들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사람도 일단 죽게 되면
그런 능력이 없어지는데(적어도 육신으로는)
그러므로 살아있다는 이 사실은 신비스럽고 소중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여러가지 모습과 생각으로 바뀌어 가면서도
일관되게 하나의 인격이 유지됩니다.
세 살 때의 나와 서른 살이 된 지금의 나는
사실 아주 딴사람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그러면서도 세 살 때의 김 아무개와 서른 살이 된
김 아무개 사이에는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아니한
어떤 것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남편 일 때의 나와 아버지일 때의 나,
아들일 때의 나, 승객일 때의 나는 같은 나입니다.
화낼 때의 나도 나요, 기뻐할 때의 나도 나이며,
잠잘 때의 나도 나입니다.
이렇게 여러 모습이면서도 결국은 하나요,
하나이면서도 여러 모습인 이 신비스러움은
쪼개고 쪼개어 보아도 밝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나무를 쪼개어 보아도 그 나무그루 속에서
잎이나 꽃, 열매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무는 쪼개어 지면서 죽어 버립니다.
그렇지만 그 나무에 물을 주고 잘 가꾸게 되면
그 속에서 움이 터 나와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와 같이 살아있는 인간 생명의 신비는
쪼개어질 수도 없고 쪼개어져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내가 분명히 있기는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남편도 되었다가, 아버지도 되었다가,
아들도 되었다가, 조카도 되었다가,
회사원도 되고, 승객도 됩니다.
그러니 어떤 내가 진정한 '나'이겠습니까.
이것인가 싶으면 벌써 마음은 딴 데로 가 버리고,
한 순간을 꼭 붙들려고 해도 붙들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찰나찰나 변해가는 것이 세상이치인가 합니다.
따지고 보면 살아간다는 말은 변해간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변해간다는 것은 일 년 단위로 변하는 것도 아니고,
한 달 단위로 변하는 것도 아니며
하루, 한 시간 단위로 변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야말로 찰나찰나 변해갑니다.
엄밀하게 따지고 보면 지금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세포들은 연방 죽어가기도 하고.
연방 다시 태어나기도 하니까 말입니다.
생물학적으로도 그렇거니와 우리의 마음 또한
쉴 새 없이 옮겨가고 변화해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변화는 비단 나 한 사람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이 다 그러하기 때문에
세상 모두가 찰나찰나 변하고 있다고 밖에는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쉽고 단순하게
일체 모든 안팍의 경계를 다
주인공 그에게 쓱 밀어놓아 버리십시오.
왜 그 수 많은 경계와 싸우느라고 심신이
곤곤해야 한단말입니까.
'나'라는 생각이 나서서 오늘 닥치는 일,
어제 지난간 일,
내일 닥쳐올 일을 일일이 걱정하고,
준비하느라고 하릴없이 괴로운 것이 인생입니다.

나는 워낙 그렇게 살아와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누구에게 칭찬을 듣고 싶지도 않고,
비난을 받는다고 해도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습니다.
누가 수억만금을 갖다 준다고 해도
사람에게 있는 제몫 제가 찾는 것이라고 생각 할 뿐이며,
그것 또한 이내 다른 곳으로 흘러가 버리기 때문에
나는 하나의 일시적인 관리자요,
교통정리를 해 주는 사람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감사한 마음, 대견한 마음
같은 것이 일어날 때는 너무나 진하고 진합니다.
그냥 가볍게 지나치는 그런 마음이 아닙니다.
나는 가끔씩 나 스스로 나에게 감사하기도 하고.
또 나 스스로 내가 대견스러워
빙그레 웃기도 한 일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그 누구보다도 내가 바로 나의 벗이요,
나의 스승이며, 나의 위로자요, 격려자인 것입니다.

여러분들께서도 모두 흔쾌하고,
여유롭게 사시기 바랍니다.
혼자서만이 아니라
주위의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기쁘게 사시기 바랍니다.

불법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함께 보람된 삶을 살수 있는 거대한 가르침이며,
우리들은 그런 가르침을 받들어서 어두운
이 세상을 밝힐 막중한 의무와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