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명상/목탁소리

2018. 1. 1. 10:20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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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명상




'지금 여기서 죽을 수 있겠는가?' 하는 물음 앞에
우리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당연히 우리의 대답은 '그럴 수 없다.'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한 생각 돌이켜 생각해 봅시다.
'도대체 왜 죽지 못하는가' 하고 말입니다.
놓아라놓아라 하고
그래서 이만하면 다 놓았다고 하는 사람이라도
그럼 생사(生死)까지 한번 놓아보라고 하면
머뭇거리게 마련입니다.

이렇듯 '살아있음'이라는 이 마지막 몸뚱이 집착심,
즉 아집(我執)을 놓아버리는 일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동안 놓고 또 놓으며 수행을 하는 이유가
이 몸뚱이 편히 하려는 데에 있기에
행복하고자, 혹은 자유롭고자 하는 이 모두가
결국 '나'를 향해 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도대체 '나'까지 놓으라고 하니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던 그놈까지 놓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하지만
정작 참된 자유와 행복은
그렇게 마지막 '나'를 놓았을 때
밝게 드러나는 법입니다.

'나'에 대한 일체의 집착과 걸림을 놓아버리면
'나'는 일체 어디에도 걸리지 않는
대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집(我執)과 아상(我相)을 놓아버리고 나면
자연스럽게 법집(法執)과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함께 놓아지게 됩니다.

일체제법이 모두 공하고 허망한 줄 알아[凡所有相 皆是虛妄]
나를 비롯한 일체의 모든 상을 놓아버리게 되면[若見諸相非相]
업식으로 물든 인연가합의 거짓 '나'가 비워지고
밝은 '참나'가 드러나게 됩니다.[卽見如來]

나를 비우고 놓아버리고 죽이는 '죽음명상'은
현실 세계에 아웅다웅하며 살아오던 속 좁은 나를 돌이켜
밝고 넓은 참나로 비춰 줄 것입니다.

먼저 종이 한 장과 볼펜을 준비하고 정좌하여 앉습니다.
잠시 명상을 해 보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죽는다면...'
나를 죽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를
하나하나 적어 보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사랑하는 사람이나 부모님, 자식이 될 수도 있고,
그동안 살며 꼭 붙잡아 왔던 일에 대한
열정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10가지 내외 정도로 정해 놓고는
먼저 집착을 끊어내기 쉬운 것부터
하나하나 끊어내는 명상을 해 보는 것 입니다.

명상을 시작하기에 앞서
우선 내 몸뚱이가
이렇게 살아있다고 하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몸뚱이가 살아있게 되면
거기에 의존해 버티고 있는
온갖 집착이며 번뇌들이 날뛰며
명상을 방해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내 몸뚱이 먼저 죽이고 나야
마음이며, 생각, 집착들이 떨어지기 쉽습니다.

인도에서 장례식을 하듯
자신을 죽었다고 생각하고 장례를 치르고는
스스로의 몸이 썩어들고, 문드러지고, 냄새나는 모습들,
그 비참하고 처절한 모습을 관해 보는 것입니다.
화(火)의 기운이 없어져 싸늘해지고 곰팡이가 피고 썩어드는 모습,
풍(風)의 기운이 없어져 굳어지고 썩은 고목처럼 내던져진 모습,
수(水)의 기운이 없어져 마르고 쪼그라드는 모습,
지(地)의 기운이 없어져 서서히 없어져 가는 모습들을 관해 봅니다.

그렇게 제 몸 죽은 모습을 명상하고 나면
이제 본격적으로 하나씩
버리기 쉬운 것부터 버려나가는 것입니다.
관세음보살 염불을 차분히 소리 내며 명상해 나가시면 됩니다.
'까짓 턱 놓을 수 있겠다' 하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끊어보는 것입니다.

한생각 턱 놓고 나면 못 할 일이 없습니다.
끊지 못할 것이 없게 됩니다.
그동안 살아오며 평생을 붙잡고 있던
그 무거운 착심일지라도
한생각 '그래 까짓 거 놓아보자'하고 나면
놓지 못할 일도 아니구나 느끼실 것입니다.

이를테면
애착하던 자식도
제 인연 따라 제 생명으로 살아갈 뿐이지
'나 없으면 못살아' 하는 마음은
부모의 집착이며 무명일 뿐입니다.
오히려 그렇게 '내가 키운다'는 아집이
자식을 망쳐놓고 있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까짓 턱 놓는다고 생각하면
'그래 제 인연 따라 잘 살겠지' 하고 놓을 수 있게 됩니다.

사랑하던 애인도
지금이야 헤어지면 어떻게 될 줄 알지만
오히려 놓고 나면 자유로워집니다.

나는 괜찮은데
'상대가 너무 괴로워 할까봐' 놓지 못한다는 사람이 있지만,
그 또한 어리석은 분별심이며
돌이켜보면 '자기 괴로움'으로 귀결될 뿐입니다.

'나는 안 괴로운데...'하지만
실은 자기 괴로움 때문에 놓지 못하는 것입니다.
상대 때문에 괴로워하는 그 마음이 바로
아집인 것입니다.

아집이 아닌 그를 향한 자비심 때문이라면
이 세상에 힘겨워하는 모든 헤어진 이성들이
다 내 괴로움이 되어야 하지만
그런 동체대비의 마음은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까짓 턱 놓고 나면,
애착을 온전히 놓고 나면
오직 고요해질 뿐입니다.

뿐만 아니라 돈이며 명예, 권력, 지위, 학벌, 직업...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해 왔던 모든 일들에 대한 집착 등,
놓고 나면 난 어떻게 사나 하지만
한 번도 놓아보지 못하고
너무도 꽉 잡고 살았기에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지,
'그래 까짓 그렇게 생각하니 놓지 못할 것도 없지'하고
한 생각 돌이키는 일은
그렇게 어려운 일만은 아닙니다.

어차피 칼로 진짜 죽어 보자는 얘기가 아니라
한 생각으로 나를 얽어매던 착심을
끊어보자는 이야기입니다.
못할 것이 없습니다.

'그래 한번 해봐?' 하고
나와의 치열한 싸움을 벌여 보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나의 내면과 마주할 수 있는
참구의 시간을 갖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온갖 '나'와 '대상'에 대한 착심을 끊고,
온전히 나를 비우고 죽이는 방하착을 실천해 보고 나면,
한결 마음은 텅 비고 자유로워 질 것입니다.
'나'에 대한 집착과 온갖 대상에 대한 집착들을
맑고 고요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크게 한번 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온전히 내가 죽어야 진정 나를 살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텅 비어 일체를 턱 놓은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면
온 세상이 다 내가 됩니다.
사사로운 내가 죽고 나면
밝은 참나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열반경』의 부처님 말씀입니다.
"사람은 한 번 죽지 않으면 안 된다.
빛은 한번 어둠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우주의 가르침이다."

또 『잡아함경(雜阿含經)』「수사념경(隨死念經)」에서는
"만일 비구가 죽음의 생각을 많이 닦아 익히면
반드시 복된 이익을 얻을 것이다"
라고 하고 있습니다.



 * 출처 : 목탁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