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3. 4. 11:50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법륜스님의 '남이다' 화두
법륜스님이 미국 뉴욕 원각사에 계실 때 어떤 할머니를 만났는데..
그 할머니는 성공한 두 아들을 따라 미국으로 왔는데 큰 아들이 의사이고 불째 아들은
교수여서 겉으로 보기에 다소 여유있는 집안의 보살이었다. 원각사에 머문지 1달쯤 법륜은
이 할머니와 친분이 쌓이면서 할머님의 한많은 사연을 듣게 된다.
할머니는 18세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20세에 임신한 상태에서 6,25전쟁이 터져 남편이
군데에 입대하여 전사하고 혼자 온갖 궂은 일을 해가며 아이 둘을 키웠다.
할머니는 부처님을 부르며 힘든 세월을 이겨내셨고 아이들은 모두 서울대를 나와 미국에서
기반을 잡았으며 결국 60이 넘은 할머니도 미국으로 가게 되었다.
미국으로 가면서 할머니는 그동안 힘들게 살아온 인생이 이젠 허리펴고 편하게 살 날만
생각하며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생활은 녹녹치 않았다.
자신이 사람이 아니라 나무토막 같이 여겨지기까지 했다.
큰 아들 집에 가면 그 집에서 가만히 있어야 했고 작은 아들 집에 가도 마찬가지였다.
어딜가도 말이 안통하고 풍속도 달라 하나같이 눈에 거슬리고 도무지 답답해서 견디기가
어려웠다. 그런 처지가 되고 보니 할머니는 당연히 두 아들만 쳐다볼 수 밖에 없었고
그들에게 집착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아들은 그런 할머니가 불편했고 마침내 모자간의 갈등이 심화되었으며 급기야
이집에서 저집으로, 저집에서 이집으로 오가며 곤혹스런 생활을 해야했다.
한평생을 바쳐 자식들에게 봉사했거늘 어미의 마음이나 고민은 조금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할머니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급기야 할머니는 아들에게 한국으로 갈테니 집 살돈과
장사밑천을 대달라고 했다. 하지만 아들은 펄쩍 뛰면서 만류했다.
할머니는 아들이 돈 때문에 그런 것이라 생각하고 비행기 값만이라도 달라고 했지만 허사였다.
견디다 못 해 할머님은 원각사에 와서 하루종일 기도로 마음을 추스렸지만 아들에 대한 원망과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할머니 가슴에 차 있는 분노와 자식에 대한 집착 그리고 집착한 만큼 차오르는 배신과 원망이
너무 커서 그 어떤 위로도 달래지지가 않았다.
할머니의 소원대로 어디서 돈을 빌려 고국으로 모셔다 드리면 당장의 불은 끌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법륜스님은 할머니와 대화를 했다.
"보살님 자업자득이란 말 아시죠.지금 보살님이 그렇소."
"젊은 놈들은 다 똑 같아. 그런 줄 모르고 얘기한 내가 미쳤지."
"보살님, 내 말을 섭섭하게만 여기지 마시고 내 질문에 한번 대답해봐요.
금강경을 그토록 오래 독경하셨으니 '무주상보시'의 의미가 무엇인지 한 번
말슴해 보시지요."
"줘 놓고 줬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이요."
"보살님, 금강경을 만독 하면 뭐하겠소, 무주상보시의 의미도 잘 모르는 처지에 말이오.
보살님같은 분이 불교신자라고 다니니 불교도 안되고 아무것도 안되는 것이오."
"나는 비록 기대하지 않고 키웠다 하더라도 자식은 자식으로서 자기 할 도리가 있지 않느냐?
그런데 이 놈이 자기 도리를 다 안하고 있지 않느냐?"
"보살님, 앞으로는 절에 다니지 마시오. 과거에 부처님을 부를 때는 남이야 어떻게 되든
우리 아들만 잘 되게 해달라고 빌더니,
요새는 거꾸로 우리 아들에게 벌을 내려 달라고 기도하니 왜 쓸데없이 부처님 이름을 부르며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이오.
내일부터 불자라 하지도 말고 부처님도 부르지 마시오."
스님은 다시 말을 이어갔다.
"할머니, 길 가는 낯선 사람을 보고 원망이나 미워합니까?"
"내가 뭣 때문에 낯선 사람을 원망하겠소?"
"바로 그것이오, 내가 애지중지 사랑하며 키운 자식을 원망한다는 것은 계산했다는 것이지,
사랑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오.
그러니 참으로 사랑을 하려면 제대로 하고, 사랑하기 싫으면 차라리 '저 놈의 자식, 남이다'
라고 생각해봐요.
그것이 보살님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오."
매일 시계바늘처럼 맞게 오시던 할머니가 이 날 대화 이후로 절에 나오지 않았다.
법륜스님은 혹시 너무 모질게 얘기해서 충격을 받아 그런 게 아닐까 걱정을 했지만
걱정이나 화제거리가 되던 것도 잠시 모두의 기억 속에서 할머니는 잊혀져 갔다.
사실 할머니는 그동안 절에서 열심히 기도하는 일 외에는 그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해주는 공양에 신세지고 궂은 일도 하신 적이 없었기에
절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관심을 가질 필요성을 못 느꼈던 것이다.
세상살이란 이렇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로움을 주는 사람을 열심히 찾아 다니는 법이다.
이렇게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할머니는 만면에 미소를 띤 채 다시 돌아오셨다.
"아니, 보살님 어찌 된거요? 그동안 부처님 못 뵈서 어찌 사셨소?"
"참 법사님도, 뭐 부처님이 법당에만 계시는가요?"
"한 달간 못 본 사이에 도 튼 소리를 다 하시는군요."
"그래요, 법사님, 나 그새 도가 트였다오."
할머님은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스님과 얘기하고 돌아간 그날 저녁은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고 했다.
창피해서 다시는 절에 나가지도 못 하겠고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분함과 억울함이 교차해서
온통 머리속이 혼란스러웠다는 것이다.
"당신은 불교신자도 아니니 경전도 보지 말라"는 소리까지 들은 터라 스님이 야속하고
한편으로 자신이 잘못했나 하는 생각을 가져보기도 했지만 아들에 대한 분함과
스님에 대한 야속함으로 번뇌는 갈수록 더 쌓여 절에 갈 맘까지 사라진 것이다.
그러다 마침내 할머니는 온 몸이 떨려 솟구친 분노를 주체할 길이 없게 되자
자신도 모르게 '저놈의 자식, 남이다'가 염불처럼 중얼거리게 되었다.
스님과 애기할 때는 건성으로 듣고 넘긴 얘기였는데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되자 관세음보살 대신
'남이다'가 염불이 되었다.
자식에 대한 분노가 치밀 때 마다 자신도 모르게 '남이다, 남이다'를 되뇌이며 눈을 떠보니
생전 처음보는 낯선 사람이 앞에 서 있는 것이다.
그 순간 가슴 속에 얼어 붙은 얼음덩이가 눈 녹듯이 녹아 내리며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눈물이 솟구쳐 올라왔다.
'내 아들'이라며 그토록 집착하던 자식이 완전히 '남'으로 보이자 그때까지 원망과 미움으로
일관된 마음이 씻은 듯 사라졌다.
대신 먹여주고 입혀주며 용돈까지 주어 온 자식에게 참으로 고마움이 밀려오더란다.
세상에 어느 사람이 나에게 이토록 고맙게 해 줄 수있단 말인가?
자식이 완전히 남으로 다가온 순간에 집착이 사라지면서 빈 그 자리에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라는 마음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때부터 할머니는 완전 다른 사람이 되었다.
마치 남의 집에 신세지는 사람처럼 설거지에 청소까지 도맡아 나서고,
자식들이 얘기라도 나누면 방해가 안 되도록 자리를 피해 주었으며
절에서도 예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하루종일 부엌에서 공양일을 도맡아 하셨다.
마음의 벽을 무너뜨리고 나니 밉기만 하던 자식이 가장 고마운 존재가 되었고
잊어버리고 있던 일도 다시 하게 되면서 할머니는 누가봐도 정말 '보살'같은 분이 되셨다.
이후 할머니는 아들네가 서로 모셔가려 하고 원각사 절에서도 매일 나오셔서 같이 일하자며
대환영이었다.
상대에게 도움을 주면 누구나 좋아하는 법이다.
비록 한국에 간 것도 아니고 자식의 태도가 바뀐 것도 아니지만 할머니의 깨달음으로
자신은 물론이고, 주변의 사람들까지 변화시켰다.
이것이 바로 있는 그대로의 무주상보시의 공덕이다.
보살의 사랑은 자신의 욕심을 기준으로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한결같고 상대가 어떻게 나오느냐가 자신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사랑함으로써, 베품으로써 보살은 이미 충분한 기쁨을 누리기에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다.
우리는 보살의 사랑을 배워야 한다. 보살의 사랑이 어렵다면 차라리 남이라고 생각해보라.
매일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는 대신, '저 놈의 자식, 남이다'를 화두삼아
마음을 다짐해보는 쪽이 자신의 마음을 편히 다스리는 길이 될 것이다.
※ 어느 보살님에게서 들은 이야기: 그분도 미국에 아들내외가 있어서 가보니..
며느리가 외출하면서 "어머니, 씨리얼 드세요." 하는데 씨리얼이 뭔지..??
오후에 아들 퇴근, 프라이팬에 볶음밥 해 먹는데 며느리 들어와.. 본체만체 안방으로..
그래도 아들은 아무 소리도 안 하고, 잠시후 안방에서 지들끼리 또 히히덕..
며느리는 하얀 허벅지 다 보이는 핫팬츠 입고 다니고..
온통 눈꼴 사나운 것만 보여서 얼른 돌아와 버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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