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5. 12. 22:27ㆍ일반/생물·과학과생각
<19>연기에 의한 감각경험
- 객관세계 스스로 존재할수 없는 인연의 화합 -
- 감각기능 없다면 어떤 대상도 나타날수 없어 -
얼마전 어느 불교대학의 강의에서 바닷물은 왜 짜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이를 국민학생 수준의 질문이라고 가볍게 넘겨버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이는 매우 의미있는 질문이 될 수 있다. 묻는 사람이나 대답하는 사람에 따라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얼마든지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선 제일 먼저 떠 올릴 수 있는 답변은 중고등학교의 과학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이다. 물이 육지에서 바다로 흘러 들어가면서 여러 가지 무기물이 물 속에 녹아 들게 되는데, 오랜세월 물이 증발하여 농축됨에 따라 바닷물은 높은 농도의 무기물을 포함하게 되고 특히 그중에서도 염화나트륨이라는 성분이 짠 맛을 내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답변은 어떤 화학물이 들어있기만 하면 짠 맛은 저절로 난다는 가정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가정이 그렇게 자명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아주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적어도 같은 사실이 모든 생물에게 보편적일 수는 없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짠 맛을 감지할 수 없는 생물이 존재한다면 (바다에 사는 물고기는 아마 그럴 것 같다). 인간에게는 아주 짠 소금물이라고 할지라도 그 생물은 전혀 짜다고 느끼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위의 대답은 인간의 미각을 전제하여야만 성립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간과 관련하여 예를 하나 더 들어 보자. 무지개는 왜 생기는가? 이는 대학교 수준의 물리학에서 나올 수 있는 질문인데, 굴절과 반사의 법칙, 그리고 서로 다른 파장의 빛은 굴절들이 다르다는 사실을 이용하여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다, 비가 온 후 공기 중에 물방울이 많이 떠 있으면 태양의 반대쪽 방향에 둥글게 무지개가 뜨는 이유를 위의 설명으로 부터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우리의 시각 기능을 전제로 한 답변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결국 무지개가 보이는 이유는 우리가 빨강색에서 부터 보라색에 이르는 빛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빨강색보다 파장이 더 긴 적외선이나 보라색보다 파장이 더 짧은 자외선을 감지할 수 있다면 무지개는 9가지 색이 될 것이다. 빨강색만을 감지할 수 있는 생물에게는 무지개가 빨강색 만으로 만들어진 원호가 될 것이다. 더 극단적인 예로 하늘색만을 감지하는 생물이 있다면, 이 생물은 하늘색과 무지개를 구별하지 못하여 무지개라는 현상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예는 시각과 미각 뿐만 아니라 우리의 다른 모든 감각 기능에서도 찾 을 수 있다. 청각에 있어서도 인간은 특정한 주파수 즉 20에서 20,000싸일클 에 해당되는 음만을 들을 수 있다. 그 한 예가 우리는 초음파를 들을 수 없 다는 것이다. 후각이나 촉각의 경우에도 비슷한 논의가 가능하다. 이와 같이 우리의 감각은 제한적이며 또한 선택적이어서, 인간이 감지하는 생리 한계 내에서 우리의 신체가 그러한 감각을 느낄 수 있도록 대상과 화합되어 있어 야 지각경험이 나타나게 된다.
공중에 떠 있는 물방울만으로 무지개는 생기지 않는다. 적절한 위치에 있는 물방울, 태양, 광학 법칙, 우리의 감지 기능이 모두 화합하여야 한다. 즉 우리 의 감각 기능에 대하여 이 감각 기능에 관련되는 감각을 제공하는 객관이 화 합하는 경우에 한하여, 우리의 지각경험이 나타난다. 그리고 이러한 지각 경 험들이 우리에게 나타남으로써, 이 지각경험을 제공한 대상은 비로소 짜다거 나 무지개라는 명칭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인연에 의해 엮어진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능엄경에서는 이를 “모든 것이 인연이 화합하면 허 망하게 생겨나고, 인연이 별리 하면 허망하게 멸한다”고 하였다, 또한 반야 심경에서는 무색성향미촉법이라고 하였다. 이를 데바보살은 다음과 같이 말 한다.
“색성향미촉법이 없다고 한다면 어디에서 안이비설신의를 얻을 수 있겠는 가? 안이비설신의가 없다고 한다면 색성향미촉법도 또한 얻을 수 없을 것이 다. 이와 같이 그들은 스스로 존재할 수 없고 오직 인연따라 화합되었다. 이 는 곧 생멸법이다” 오늘의 이야기는 이 스스로 존재할 수 없다는 객관 세계 의 성품을 말한 것이다. 이는 객관 세계가 본성을 가지는가 하는 문제와 연 결되며, 이 문제를 이 글에서는 언급만 하고 자세하게 취급하지 못한 ‘우리 의 지각경험에 나타난다’는 문제와 함께 연기론이나 중관 철학과 연관시켜 앞으로 더 다루어보겠다.
이 글과 연관시켜 한 가지 하고싶은 말이있다. 많은 사람이 불교를 어렵다고 한다.그래서인지 불교를 과학과 연관시킬 때에도 현대의 첨단 과학과의 관계 가 많이 논의된다. 물론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는 고전과학으로는 상상도 못 하는 것이었는데 현대과학에 와서 비로소 제대로 조명되는 부분이 많기는 하 지만, 전부 그런 것은 아니다. 첨단 과학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생활과 연 관되는 과학 또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입증해 준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그렇게 먼 곳에 있지 않고, 우리와 함께 숨쉬고 있으 며 또 그래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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