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도 원하지 않는 삶 / 현각스님

2018. 8. 5. 11:02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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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도 원하지 않는 삶  / 현각스님

 

많은 사람들은 내게 “스님생활이 어렵고 힘들지 않느냐. 속세에서 자유롭게 살다가 이것저것 지켜야 할 계율이 많은 스님생활을 계속 할 것이냐”고 묻기도 한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약간 당혹스러워진다. 스님생활이야말로 지금까지 내 삶에서 가장 행복한 경험인데 말이다. 


나는 승려의 길을 선택한 것이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으며, 그런 인연을 가진 것에 대해 아주아주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스님이 되기 전에 많은 일을 할 수 있었고, 많은 것을 가질 수 있었다. 돈을 많이 벌 수도 있었고 예쁜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큰 집에서 살면서 주말이면 차를 몰고 피크닉을 가고 저녁이면 맛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부자 나라에서 말이다. 


사람들은 나에게 그렇게 달콤한 속세의 삶들을 어떻게 버릴 수 있었느냐고 물어보지만 사실 나에게 그것들은 달콤한 것이 아니었다. 좀 심하게 말한다면 ‘꿀’이 아니라 ‘독’이었다고나 할까. 스님이 되기 전에 내 삶은 항상 새로운 무언가를 좇아 방황하는 삶이었다. 명예를 좇고, 지위를 좇고, 욕망을 좇고, 사랑을 좇고, 돈을 좇고, 직장 상사를 좇고, 부모님과 선생님의 생각을 좇고, 친구들의 뜻을 좇고, 기회를 좇고...... 끝없이 좇고 좇고 또 좇는 삶, 방황하는 삶이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아니 잠을 자면서 꿈을 꿀 때조차도 좆는 삶이었으니 말이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마찬가지다. 머리가 좋고 재능이 많은 사람일수록 더욱더 이런 좆는 상황에 내몰리기 쉽다. 그게 세상이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조금도 다를 게 없다.

 

재미있는 것은 사람들이 그렇게 잠자리에서조차 무언가를 얻으려고 그것을 좆아 아등바등하지만 결국 우리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이 사실이다. 설사 원하는 것을 전부 얻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한 순간의 일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고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따문이다. 


하버드와 예일에서 공부할 때 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교수님들로부터 배웠다. 나를 비롯한 내 대학 친구들의 꿈이란 바로 그런 유명한 교수님들처럼 사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들 교수들에게는 사회를 움직이고 사회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힘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교수들의 삶이란 피곤함과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 스물네 시간 온통 일, 일, 일, 일에 휩싸였고 항상 무언가를 좇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견해와 다른 의견을 내놓을까봐 두려워했고 그들의 질투 때문에 괴로워했다. 혹 실수라도 할까봐 두려워했으며 자기잘못이 드러나면 자존심의 상처때문에 견딜 수 없어했다. 


내 대학 친구들 중에는 꿈을 이뤄 교수가 된 친구들이 많다. 교수가 되는 순간 그들은 마치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해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내 일에 둘러싸였고 선배 교수님들로부터 받는 압력, 학생들의 요구에 시달렸으며 참가하기 싫은 학회 모임에 억지로라도 참석해야 했다. 많은 친구들이 그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술과 여자에 의지했다. 말로는 진리를 얘기했지만 정작 그들의 삶은 진리와는 달랐다. 


현대사회는 소비사회다. 소비를 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 사회에서 쓸모없는 인간이다. 왜냐하면 가진게 없기 때문에 그렇다. 현대사회는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뭔가를 얻어야 한다고 광고하고, 뭔가를 사야 한다고 광고하고, 뭔가를 해야 한다고 광고한다. 현대사회의 이런 운영코드는 사람들 머릿속에 입력되어 사람들 역시 계속 뭔가를 해야 하고 뭔가를 얻어야한다고 착각한다. 그렇게 사는 삶이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굳게 믿는다. 


많은 중국 선사(禪師)들은‘무위(無爲)’를 많이 얘기한다. 무위(無爲)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갈망하지 않는 것이 무위(無爲)다. 싸우지 않는 것이 무위(無爲)다. 집착하지 않는 것이 무위다. 무엇도 원하지 않는 것이 무위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의 가지를 보라. 나뭇가지는 움직인다. 뭔가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나무가 고통스러워하는가. 나무는 아무 것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부족한 것이 없다. 흘러가는 물도 마찬가지다 한 방울 물이 바위를 뚫기도 한다. 물의 힘은 무한대다. 이 또한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무위(無爲)다. 무위(無爲)란 바로 텅~빈 행위(empty action)를 말하는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마음과 행동이 분리되어 있다. 따라서 내가 처한 현실과 내가 원하는 마음은 분리되어 있다. 그 분리가 고통을 만들어낸다. 사람들은 대부분 지금 이 순간을 살지 않고 과거나 미래에 산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를 망각하고 지난 일에 대한 후회와 앞으로의 일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 흥분과 기대로 산다. 밥을 먹으면서도 운전을 하면서도 마음은 길들지 않은 야생마처럼 이쪽 저쪽을 뛰어다닌다. 단 한순간도 지금 여기에 만족하는 법이 없다. 


스님생활은 매순간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 삶, 무위의 삶이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있는 그대로 완벽한 삶이 스님생활이다. 진정한 자유인의 삶이 스님생활이다. 나는 집도 없고 옷도 없고 의료보험도 없고 차도 없다. 하지만 너무 행복하다. 매순간순간 매일매일 자유롭고 하루하루를 새롭게 살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내 뺨을 스치는 바람, 귓가에 들려오는 새소리, 코에 닿는 향냄새, 혀로 느끼는 차의 맛,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의 삶이 진리의 삶이다. 


그러나 스님생활이 어찌 스님만의 자유를 위한 삶인가. 그것은 절대 아니다. 내가 먹는 밥, 내가 자는 곳, 내가 입는 옷, 이 모든 것은 어디서 왔는가. 수 많은 사람들이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열심히 일해 나에게 준 것들이다. 자연이 햇?이 공기가 땅이 물이 준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순간순간 빚을 지고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열심히 공부하고 수행하는 삶을 통해 일체 중생들을 제도해 나가는 삶만이 그들에게 진 빚을 갚는 것이다. 또한 내 능력이 모자람에도 불구하고 한국 불교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일이야말로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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