悟道頌 -- 五祖法演 (오도송 -- 오조법연)

2018. 8. 11. 13:5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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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悟道頌 -- 五祖法演 (오도송 -- 오조법연) 

 

 저 산밑에 한 뙈기 묵은 밭
 손맞잡고 노인께 공경히 물었더니 

 몇 번이고 팔았다가 다시 산 것은

송죽에 이는 맑은 바람이 좋아서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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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향해 울어라 / 몽지 심성일님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다.
“선생님, 어떻게 해야 신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스승은 답했다.
“신을 위해서 열렬한 사모의 마음으로 울 수 있겠는가?

인간은 아이들을 위해서, 아내를 위해서, 돈을 위해서 울 수 있다.

그러나 누가 신을 위해서 울겠는가?

아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 동안 엄마는 집안일을 돌본다.

그러나 아기가 장난감을 던져버리고 엄마를 부르며 울면

엄마는 더 이상 부엌에만 있을 수 없다.

엄마는 하던 일을 멈추고 급히 달려와서 아기를 안는다.”

- 라마크리슈나와 어느 제자의 문답

어떻게 하면 신을, 깨달음을, 진리를 얻을 수 있을까요?

오직 신만을, 깨달음만을, 진리만을 원할 때, 오직 그것만을 위해

‘나’를 잊을 때, ‘나’가 사라진 그 자리에 신이, 깨달음이, 진리가 나타납니다.

‘나’가 사라져야만 그것이 드러날 수 있으므로,

‘나’는 결코 그것을 만날 수, 찾을 수, 얻을 수, 경험할 수 없습니다.

‘나’는 그것을 위해 어떤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나아가 ‘나’는 ‘나’조차 어찌할 수 없습니다.

그것에 대한 한없는 갈망, 그리움, 열렬한 사랑에 빠진 ‘나’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는 그저 그것을 향해 목 놓아 우는 것뿐입니다.

어떤 욕망, 어떤 바람도 그것에 대한 애타는 심정에 비할 수 없습니다.

‘나’는 그것에 눈멀었고 귀먹었으며 가슴은 불에 타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이 지독한 ‘나’에 대한 애착마저 놓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향한 뜨거운 사랑 속에서 ‘나’가 용해됩니다.

멈출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려와 모든 것이 타버려 텅 비어버린

가슴에 고입니다. 그를 만나기 전에는, 그것을 맛보기 전에는 결코

먹고 마실 수도, 잠이 들 수도 없습니다. 오호, ‘나’는 미쳐버리고 말 것입니다.

아득한 탄식이 ‘나’의 숨결이며, 메울 수 없는 슬픔이 ‘나’의 양식일 뿐입니다.

‘나’는 산 자도 아니고 죽은 자도 아닙니다. ‘나’에게는 이제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습니다. ‘나’는 매미가 남겨놓고 떠난 껍질과 같습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하나의 소리, 하나의 경계에 문득 그것이 드러납니다.

온 세상이 멈춘 것 같은 가운데 모든 것들이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나’도 없고 ‘세상’도 없이 그것 하나만 가득 차 있습니다.

아아, 그것은 여기, 언제나 여기 있었습니다.

항상 이 가운데 있었으면서도 이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나’ 또한 이것의 또 ?摸? 모습이었음에도 습관적으로 ‘나’ 바깥에서

이것을 찾으려 헛수고를 해왔습니다.

다시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지복과 환희 속에서 영원한 생명의

샘물을 맛봅니다. 이것은 어디서 온 곳이 없으므로 다시 갈 곳이 없습니다.

언제나 지금 여기 이렇게 있었고, 있으며, 있을 것입니다.

근대 인도의 신비가 라마크리슈나(1836~1886)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 앞에서는 이유, 지성, 지식 등은 쓸모가 없다.

거기 벙어리가 말하고, 눈먼 자가 보고, 귀머거리가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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