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1. 10. 14:03ㆍ사상·철학·종교(당신의 덕분입니다)/기독경 재해석
[예수와 붓다가 함께했던 시간들](신간) 中에서
당신이 믿기로 선택한 것을 당신은 실재라고 여기게 되고,
그것을 그런 식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을 이해했던 싯다르타는 세상에 두었던 자신의 믿음을 거둬들였고,
몇 년 동안 연습을 한 덕분에 이제 세상에 아무런 믿음도 두지 않게 되었어요.
대신 싯다르타는 믿음을 두어야 할 마땅한 것, 즉 실재인 브라흐만에 두었답니다.
하지만 싯다르타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가 세상을 실재라고 믿기를 멈춤에 따라
세상이 그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점점 더 약화되었고,
그는 자신의 삶이 진정 꿈과도 같다는 것을 점점 더 실제적으로 경험하기 시작합니다.
싯다르타가 괴로움에서 빠져나오는 길을 아직 완전히 찾아낸 건 아니었지만,
엄청난 성장을 이뤄냈죠.
[예수와 붓다가 함께했던 시간들](신간) 中에서 |
예수와 붓다가 함께했던 시간들
이원론二元論의 단계부터 시작할게요.
여기는 뉴턴 물리학에서 제시한 주체와 객체의 영역이지요.
삼라만상이 우리 바깥에 있는 듯이 보입니다. 바로 여기서 의식이 등장하게 됩니다.
우주는 사실 투사물이지만, 우리는 이를 모르는 상태죠.
의식을 갖기 위해서는 의식의 대상이 되어야 할 다른 무엇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분리죠.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수업이 영을 묘사할 때는 앎(awareness)이라는
별도의 단어를 쓰는 것이고요.
이것은 의식과 다릅니다. 같은 것이 아니에요.
영은 하나임(oneness)입니다.
주체도 객체도 없는 하나의 전체입니다.
다음으로는 반半이원론이 있습니다.
반이원론은 분리의 생각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것을 마음이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상태예요. 반이원론 상태에 있는 종교적인 사람들 중에서
다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신이 사랑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이기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함께 중요한 질문들이 같이 따라오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면, 신이 사랑이라고 할 때, 신이 동시에 증오일 수도 있을까?
성서에서 말하듯이 신이 완벽한 사랑이라면 신이 불완전한 생각을 갖는 것도 가능할까?
이런 질문들이 제기되면서 영성을 공부하는 학생의 마음 안에서
앎이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로 그 사람은 이원성에 빠진
다른 사람들보다 고립감을 덜 느끼게 될 수도 있지요.
그다음으로는 비非이원론이 있습니다.
비이원론은 분리 같은 것은 절대 없으며 분리된 듯 보이는 것은 그 무엇도
실재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투사는 당신 마음속에서 해제되고 당신은
결과의 자리에서 원인의 자리로 이동합니다.
이제 당신은 더 이상 꿈이 아니라 꿈꾸는 자이고,
이 꿈은 나 대신 다른 누가 꾸는 게 아닙니다.
그 밖의 다른 사람이란 결코 없습니다.
비이원성이란 곧 이원성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오직 일원성만 있고, 그것만이 단 하나의 실재입니다.
마지막으로 순수 비이원론으로 넘어갑니다.
이 관점은 신만을 유일한 근원이자 유일한 실재로 인정하기 때문에
‘순수’ 비이원론이라고 칭합니다.
물론 두 개의 세상이, 즉 신의 세상과 인간 세상으로 분리된
두 세상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신의 세상만이 참이고 나머지는 전부 참이 아닙니다.
이를 인정하고 지식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문데,
왜냐하면 그렇게 한다는 것은 몸이든 영혼이든 그 어떤 형태의 개체성도
지금은 물론 영원히 포기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곧 신의 품으로 사라져서 영의 고차원적 삶을 누린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의식을 버리고 완벽한 일체를 자각할 것
정신적으로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사랑하는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다면,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꿈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마침내 당신은 자신을 세상에 묶고 있던 속박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진짜인 것은 위협받을 수 없다.
진짜가 아닌 것은 실재하지 않는다.
여기에 신의 평화가 놓여 있다.”
― <기적수업> 서문 중에서
<기적수업>(A Course in Miracles)은 심리학자였던 헬렌 슈크만이 7년간 들려온
내면의 음성을 받아 적은 책으로, 존재에 관한 놀라운 진실을 알려주고
오늘날의 성경 속에 왜곡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바로잡아주는
불후의 영적 고전으로서 1976년 처음 발간된 이후로
이 시대의 영적 교사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고 참고하는 책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런데 <기적수업>이 더욱 놀라움을 주는 이유는, 전 세계 수백만의 독자들이
1,30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과 난해한 문장에도 불구하고,
게다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자신을 예수라고 선언한 데서 오는 당혹감마저도 극복하고
이 책을 평생의 교과서로 삼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수와 붓다가 함께했던 시간들》은 개리 레너드의 전작 《우주가 사라지다》,
《그대는 불멸의 존재다》, 《사랑은 아무도 잊지 않았으니》와 마찬가지로
이해하기가 까다롭기로 소문난 <기적수업>의 가르침을 쉽고 일목요연하게 소개해주는
훌륭한 입문서이다.
그런데 이 책들 역시 <기적수업> 못지않은 희한한 사연을 품고 있다.
저자가 다른 차원계로부터 방문한 예수의 제자 도마와 다대오를 1992년 말부터
수십 차례 만나오면서 <기적수업>의 이론과 실제를 ‘개인지도’ 받은 과정을
대화체 그대로 받아 적은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예수와 붓다가 여러 생에 걸쳐 서로 알고 지냈고,
그 여정에서 서로의 삶에 도움을 주고받았다면 어때요?
우리가 빠져 있는 이 환상 속에서는 깨달음도 점진적으로 오기 때문에
예수와 붓다조차도 사다리의 맨 아래 단계부터 시작해야 했어요.
하지만 그들에게는 다른 이들에게는 없는 강점이 하나 있었죠.
그들은 다른 이들처럼 이 ‘꿈’을 강하게 믿지 않았어요.
이 꿈에 과연 실체가 있을까 의심을 품었고, 뭔가 빠져 있다는 것을 알아챘지요.”
― 본문 중에서
이 책은 ‘승천한 스승’들이 예수와 붓다가 지상에서의 마지막 삶에 이르기까지
연적으로, 친구로, 부부로, 부모와 자식으로 다양한 시대와 문화 속에서 관계를
맺어왔던 전생들에 대해 들려준 이야기이다.
단순한 호기심으로만 읽어도 더없이 흥미로운 이야기지만,
이 노련한 스승들은 예수와 붓다가 여러 생을 거치면서도 결코 타협하지 않았던
단 한 가지가 과연 무엇이었느냐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독자들을 이끌어간다.
그리고 그 끝에는, 전작들이 그러했듯이,
순수 비이원론의 관점에서 완전히 새롭게 정의된 용서와 사랑이 있다.
ㅡ지은이 개리 R. 레너드
겨울로 가기 위해 사는 밤, 인디음악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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