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사사무애|******@불교의우주론@

2019. 2. 24. 15:24일반/생물·과학과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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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사사무애

- ‘하늘의 달’과‘물에 비친 달’무애관계-
- 하나가 곧 전체이고 전체가 곧 하나-

지난 번에 화엄의 사종법계 중에서 사법계와 이법계, 이사무애법계에 대하여 알아 보았다. 사법계가 현상으로서 나타나는 우주 만유의 차별 세계를 나타냄이요, 이법계가 현상의 배후에 있는 절대 평등의 본체를 나타낸다고 한다면, 이사무애법계는 일체 차별의 사법계가 절대 평등의 이법계와 상즉상입하여 원융무애한 세계를 나타낸다. 그리하여 이를 진공과 묘유에 비추어 본다면 사법계란 묘유로서 공즉시색이요, 이법계란 진공으로서 색즉시공이며, 이사무애법계란 진공즉묘유로서 색즉시공이고 공즉시색이어서 색과 공, 현상과 본체, 용과 체가 원융무애하여 그 구분이 없는 중도의 세계이다.

사사무애법계관이란 현상과 본체가 원융무애할 뿐만 아니라 차별적인 개개의 현상 하나 하나도 서로 무애한 관계임을 본다는 것이다. 앞에서의 비유로 설명하면 북도봉과 남도봉이, 이 파도와 저 파도가, 사과와 달이 서로 원융무애한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만 말하면 조금 부족하다. 큰 물에는 무수히 많은 파도가 있고, 도봉산에는 보는 각도에 따라 무수히 많은 도봉이 있으며, 우주에는 무수한 물체가 놓여 있기 때문이다. 사사무애법계란 하나의 파도, 하나의 도봉, 하나의 사과가 무한한 수의 파도, 무한한 수의 도봉, 무한한 수의 물체와 상즉무애한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치 하나의 달이 뜨면 일체의 물에 그 달이 두루 비치며 일체의 물에 비친 개개의 달은 모두 하늘에 떠 있는 하나의 달에 포섭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즉일체(一卽一切)이고 일체즉일(一切卽一)인 중중무진법계연기의 실상을 보는 것이 곧 사사무애법계관이다 (一卽一切多卽一).

이미 지난 번의 “인타라망”에서 사사무애한 중중무진법계연기에 대하여 만유인력과 아뢰야식의 예를 들어 설명한 바 있다. 지난 번에는 인타라망으로 오늘은 사사무애라는 제목으로 잡았지만, 현수 스님이 사사무애한 만유의 상호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세운 십현문(十玄門) 중의 하나가 “인타라망경계문”이라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둘은 사실 같은 내용일 수 밖에 없다. 다만 오늘은 사사무애의 예를 현대물리학의 양자역학에서 찾아보도록 하자.

양자역학에 대하여 만족스럽지 않게 생각하였던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을 세워 나갔던 보어 등에게 양자역학에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하여 여러 가지 문제를 제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보어 등은 아인슈타인이 제시한 문제를 풀면서 양자역학의 제 개념을 공고히 하였으므로, 아인슈타인의 노력은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양자역학의 기초를 튼튼히 하는 데 일조하였다. 이러한 문제 중의 하나로 유명한 것이 1935년에 발표된 EPR 역설이다. 그리고 벨이라는 이론물리학자는 1964년에 이 EPR 역설을 검증 가능한 형태의 부등식으로 나타내었다. 이 벨의 부등식은 몇 가지 변수에 대한 자명해 보이는 전제와, 집합에 대한 간단한 논의로부터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양자역학이 이 부등식이 만족되지 않는 경우를 예측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양자역학의 예측이 맞고 벨의 부등식이 성립되지 않는 상황이 존재한다는 것이 정교한 실험에 의하여 확인되었다. 이는 그토록 자명한 방식으로 유도된 벨의 부등식에 틀린 곳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벨의 부등식을 유도하는 데 사용되었던 집합에 대한 간단한 논의를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의심가는 곳은 자명해 보이는 부등식에서의 변수에 대한 전제 몇 가지 뿐이다. 이에 대한 다소 복잡한 논의를 거쳐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부등식의 변수에 대하여 상정하는 실재성의 가정에 잘못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고전역학과는 달리 양자역학의 어떤 경우에는 부등식의 변수에 대응하는 물리량의 실재성을 상정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경우가 실재성을 상정할 수 있는 경우를 포함하므로 보편적인 경우이다.) 더구나 이런 경우에는 한 물리량에 대한 관측이 먼 곳에 떨어져 있는 다른 물리량에 대한 관측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사사무애와 관련하여 본다면 이는 결국 미묘하게 성립하는 상호연관의 한 면을 나타내는 것이라 하겠다. 이 모든 것이 다 끝없는 연기의 실상을 보여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