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과학(머리말)|******@불교의우주관@

2019. 3. 24. 09:39일반/생물·과학과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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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로스의 꿈, 박정헌 대장

불과 2~30년전 만 하더라도 종교와 과학은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오히려 역사적으로 중세의 종교의 맹신에서 비롯되는 무지와, 종교의 횡포에서 인간을 구제 시킨 것은 교황이 아니라 목숨까지 내놓은 "과학자"들 이었습니다.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대부분의 과학적 결실과 그 이론들은 수백만년의 인류역사 중에서 고작100년 남짓한 기간동안 이룩된 것입니다.
특히 "상대성 이론" 과 "양자론" 등은 과거의 물질과 정신에 대한 확신들을 단숨에 뒤집어 놓는 전혀 새로운 개념의 이론이고, 이젠 어느 종교를 가진 과학자도 자신의 종교적 가르침과 합치하지 않는다고 그 이론을 부정하여 바보가 되는 과학자는 없습니다.
"진화론"을 기독교의 "창조론"에 도전한다고 여기는 사람이나, 불교의 구사론에서 물질을 <질애質碍>로 단정 지어버린 단견 등은 말 그대로 구 시대적 이분적 사고의 결과입니다.
특히 1960년대부터 시작된 서구의 "신과학운동(New science movement)"은 종교와 과학의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편에서 보면 창조주로서의 "신(神)"이 존재할 자리가 그만큼 좁아져감을 뜻하기도 하는 심각한 상황이 되어버린 것인데, "허블 우주망원경"의 눈에 잡힌 우주의 깊은 곳 100억 여년 전의 모습은 창조론자들의 반론의 의지를 꺽기에 충분한 우주의 "사실적" 모습을 지금 이 시간에도 너무나 생생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행히 아니 당연히 불교는 이 같은 이론과학의 발전을 통해 경전 속에서 말해지던 형이상학적인 논제들이 새로이 해석 되어질 수 있는 절호의 시절인연을 맞이하였습니다.
"공(空)"과 "연기(緣起)"등의 종교적 용어들이 앞에서 언급한 "양자론"과 "상대성 이론"을 통해 일상적 언어로 충분히 풀이되어 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말하자면 반야부에서의 "공(空)", 법화경에서의 "실상(實相)", 화엄경에서의 "법계(法界)"와 "중중무진연기(重重無盡緣起)"등의 언어와 이론을 과학의 그것에 대입시켜도 한치의 오차도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불교의 입장에선 대단히 자랑스런 일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과제를 주기도 합니다.
우선 유감스럽게도 그 공과는 불교인의 몫이 아닙니다. 그것은 대부분 불교에 관심 없는 과학자들의 연구의 결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인은 과학의 발전과 그 의미를 절대 과소평가 해서는 안됩니다.
이론과학의 발전은 부수적으로 물질을 풍요롭게 양산하는데, 이것에 물들어 "물질주의"에 빠지는 것은 인간의 잘못이지 과학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일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을 것 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과학이나 물질적 풍요와는 전혀 거리가 먼 수천년전의 부처님시대에는 인간들이 평화롭고 욕심 덜 부리며 살았을까요?
앞에서 말했듯 지난 100여년 동안 과학에 의해 변화된 우리의 모습이 예측할 수 없었던 것과 같이 앞으로의 과학의 발전은 우리에게 어떤 정신적 물질적 변화를 요구할지 모릅니다.
분명 늦었지만 불교는 그 해석과 수행법, 신도에 대한 교화의 방법 등 모든 방면에서 바뀌지 않으면 안됩니다.
지금도 이와 관련된 많은 논란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논란의 확실한 경계가 필요합니다.
소승은 그 경계를 불교 안으로는 "불국토의 헌법"인 삼법인, 즉 "무상(無常)" 과 "무아(無我)"로 하고 불교 밖에서는 "검증된 과학이론"이어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수행법을 논할 때 "간화선 아니면 안된다" 라는 주장은 헌법인 삼법인에 위배된다는 말이고, 업(業)을 설명할 때 DNA, 유전자, 태교 등을 연상시키는 방법의 "과학불교"를 지향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지구에서 발사한 위성이 화성의 어느 목표지점에 언제 도착할지 초단위까지 정확히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뉴턴의 운동법칙"으로 계산하면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맞아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또 미래 수백년 후 어느 지점에 일식과 월식이 몇 초간 일어난다고 자신있게 발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의심할 수 없는 뉴턴의 이론이 불행하게도 태양계를 벗어난 거시적 우주에서는 "상대성 이론"에, 전자 단위의 미시적 세계에서는 "양자론"에 치어 무용지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우리는 "뉴턴의 운동법칙"을 거슬릴 수 있는 어떤 증거도 만나지 못하고 일생을 마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진리나 깨달음을 추구하는 올바른 종교인이라면 이 함정을 피해 가야만 합니다.
자신의 종교적 결실과 영적인 체험, 깨달음이라는 것까지 가엾은 뉴턴의 경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이미 과학은 종교에게 "이젠 객관적 대접을 해 주시지요"라고, 심지어 "이제는 좀 겸손 해지시지요"라고 말하는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