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성연기(眞性緣起)&업의 그림자

2019. 6. 1. 16:42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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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연기        


< 질문 >

성품을 밝힌다는 것이 어떤 것입니까?


< 답변 >

 그 질문을 지금 누가 한 거요? · · · · · · 이 육신은 허깨비요.

아무 지각이 없는 환화공신(幻化空身)이오.

그런데도 질문이 이루어졌으니 그게 바로 진성연기(眞性緣起)라,

참성품이 인연에 감응하여 나툰 거라 이 말이오.

지금 여러분 모두가 그 참성품 자리에서 생각하는 대로 의증도 내고,

질문도 하고 등등 모든 알음알이를 내고 있는 거요.

정신적 물리적 모든 현상들이 전부 그 참성품이 그때그때 인연에 감응하여

잠시잠깐 나투어지는 것들인데, 그걸 모르고 전부 ‘내’가 그 작용들의

주체인 줄 잘못 알고는, ‘내’가 의증을 내고, ‘내’가 질문을 하고,

‘내’가 알아듣고 등등 그러고 있는 거라 소리요.


이 몸뚱이는 알음알이를 낼 수 있는 주체가 아니오. 지각이 없소.

‘내’가 그 질문을 한 주체가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질문을 한 거요? · · · · · ·

‘나’를 있게끔 한 모든 것들,

그 어디를 찾아봐도 질문을 한 놈을 찾을 수가 없지 않소?

밥이 한 것도 아니고, 국이 한 것도 아니고, 물이 한 것도 아니고,

기가 한 것도 아니고. 도무지 질문이 나온 데가 없지 않소?

그렇게 찾으면 아무 데도 없지만, 그 신령한 성품이 인연만 닿으면

의증도 내게 하고 질문도 하게 하고 알음알이도 내게 하는 거요.

마치 빈 골짜기에 메아리 나듯 그렇게 말이오.

세상 삼라만상이 몽땅 마찬가지요.


전부 참성품이 인연에 감응해 나타나는 것이지 짓는 자가 없는 거요.

성품을 밝히는 게 어떤 거냐고 지금 그렇게 밝히고 있지 않소?
그런 의증을 내게 하고, 그 말아낸 의증을 질문하는 그 모든 과정이

전부 성품의 나툼이라 소리요.

그러니 그 질문은 마치 소 타고 와서 소가 어딨냐고 묻는 꼴이란 말이오.

각자가 이 말을 좀 깊이 구명하시오.

깨닫고 깨닫지 못하는 것은 이제 전부 각자의 몫이오.

더 이상 아무도 도와줄 수 없소.


- 대우거사




  < 질문 >

 만법이 평등하다고 들어 알지만 저는 여전히 편안한 게 좋고 불편한 건 싫습니다.


  < 답변 >

 제대로 공부하는 사람은 드러난 모양 속으로 향하지 않소. 

싫다고 제가 지어놓고 그 싫음 속으로 마냥 좇아 들어가고, 좋다고 지어놓고

그 좋음 속으로 마냥 좇아 들어가는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는다 소리요.


모든 상(相)이 상이 아니라면서도(諸相非相) 전부 상만 좇고 있는 거요.

모든 상은 그림자요. 좋고 싫고, 편안하고 편안하지 않고 하는 것은 내 참마음과는

아무 상관이 없소. 내 참마음은 편안하지도 않고, 편안하지 않지도 않소.

그것은 일체 만법 밖으로 본래 벗어나 있소.


그 마음에 비친 업의 그림자를 다만 편안하다, 편안하지 않다고 지어놓고,

그게 움직임 없는 제 참마음에 비추어진 업의 그림자라는 사실은 까맣게 잊고는,

‘내 마음이 편안하다’, ‘내 마음이 불편하다’ 그러고 있는 거요.


여여부동한 제 본래의 청정한 자성불(自性佛)은 등지고 거기에 비친 업의 그림자만을

보고 울그락불그락 전전긍긍 하고 있는 거요.

 마음 밖에는 진실로 한 법도 없소. 상대할 경계가 본래 없는 거요.

그게 틀림없는 진실인데도 미혹한 중생이 계속 마음 바깥에 뭔가가 실제로 있다고 보고

온통 거기에 코가 꿰여 정신 못 차리고 있는 거요. 그게 도견(倒見)이오.

전혀 뒤바뀌었다 소리요.


마음 바깥의 경계는 전부 자기가 지은 거요.

제가 짓지 않으면 산하대지가 절대 내 마음 속에 들어와 설칠 수가 없소.

산이니, 물이니, 단풍이니 등등, 온 삼라만상이 몽땅 제 마음에 비친 업의 그림자인 줄

모르고 그게 전부 바깥에 실제로 있는 거라고 믿고 있다 소리요.

산하대지 뿐 아니라, 싫고 좋고, 기쁘고 괴롭고 등등의 모든 심리작용 또한 마찬가지요.


우리가 보고 듣고 해서 안 바가 있고 깨달은 바가 있는 것은 전부 자기 업을 제가 지어서

제가 보는 거요.  이 말을 참으로 절절히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지금 앉은 그 자리에서 바로 만법밖으로 벗어날 수 있소.

더 이상 만법이 그 사람의 마음을 얽매는 일은 없소.

그게 소위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旨人心 見性成佛)이오.

곧장 마음을 가리켜 성품을 보면 바로 부처요.


- 현정선원 대우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