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없는 도리

2019. 5. 26. 09:57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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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없는 도리

< 질문 >

 여러 해 법문을 들었지만, 최근에 와서야 ‘나 없는 도리’가 마음에 와 닿습니다.


< 답변 >

조금의 짬도 없이 항상 신령하게 환히 비추는 영성(靈性)은 누구에게나 다 있소.

이것은 새로 노력해서 얻고 이루고 하는 그런 게 아니오. 본래 스스로 온전하오.

거기엔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 하는 법칙, 정의, 당위 그런 따위들이 애당초

없기 때문에 중생들이 생각하는 대로 그저 응해줄 뿐이오.

‘나(我)가 있다’ 그러면 있다고 응해주고, ‘나가 없다’ 그러면 없다고 응해주고.

그러니 ‘나가 있다’ 그래도, ‘나가 없다’ 그래도 그게 전부 그 신령한 영성이

응현해 나툰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

그게 아무리 훌륭하고 오묘한 생각이어도 마찬가지요.

중생의 알음알이를 통해 문자화되고 개념화된 것은 전부 예외 없소.

전부 그림자요. 지금 목전에 펼쳐진 삼라만상을 통틀어 그런 것 아닌 게 있소?

몽땅 그림자요. 이 말을 수도 없이 반복해도, 여전히 이 몸뚱아리를 철썩 같이

 ‘나’로 믿고 아애(我愛), 아집(我執)에 사로잡혀,

그저 이 ‘나’가 어떻게 될까봐서 늘 아랫다리가 후들후들 거리니,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이 대법(大法)을 받아가질 수 있겠소?


 산화인(酸化燐) 실험 얘기를 누차 하지 않았소.

밀폐된 레토르트 안에 전기선과 연결된 고체 상태의 인(燐)을 넣어두고 거기에

전기를 통하여 전부 태워버려 인이 흔적도 없게 됐어도 그 밀폐된 레토르트의

무게는 전혀 증감이 없다는 사실. 그게 무슨 의미겠소?

있을 때와 없을 때가 외양으로 보면 확연히 다르지만, 진실은 전혀 늘고 줄고

하는 일이 없다는 얘기요. 우리가 살아가면서도 늘 경험하는 바 아니오?

눈에 보이면 있고, 눈에 안 보이면 없다고 너무도 당연히 얘기를 하지만,

그게 전혀 진실을 보지 못한 뒤바뀐 소견이란 말이오.

본래의 참된 성품(眞性)은 인간의 지각에 의해 감지되지 않소.

그런데 눈에 안 보인다고 어리석은 중생이 숫제 그런 건 없는 것으로 쳐버린 거요.

하지만 그 진성이 아니면 눈도 깜빡일 수 없소. 코도 씰룩거릴 수 없소.

모든 게 그 진성이 감응해 나투어지는 거라 이 소리요.

드러난 모든 모양,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모든 뜻, 그게 몽땅 그 영성에 의해

비추어진 그림자요. 이름이 있고 모습이 있는 모든 삼라만상이 전부 마찬가지요.

이 말을 바닥까지 철저하게 사무쳐 말로서가 아니라

참으로 그 모든 것을 그림자로 볼 수 있으면 그게 곧 해탈이오.


- 대우거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