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 혼돈의 한가운데로,날마다 좋은 날 / 법상스님

2019. 6. 15. 22:08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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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 혼돈의 한가운데로




삶의 본질(本質)은 불확실성(不確實性)이고 혼돈(混沌)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든 것을 확실하게 해 두고 싶어하고,

깔끔하게 정리해 두고 싶어 하고, 계획을 확실하게 세우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세워 놓은 계획이 100% 확실하고 확정적인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나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없다면 불확실성과 혼돈이

본질인 삶의 한가운데에 그저 있어주면 어떨까요? 

확실하게 모르는 것에 대해 모른다고 정직하게 대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 치 앞도, 1시간 뒤에 일어날 

미래의 일도 결코 확실하게 알 수 없습니다.

오직 '모를 뿐'이 진실입니다. 

그렇다면, 그저 모르면 됩니다.

 

알려고 애쓸 일도 없고, 안다고 말하면서 안다는 그 생각에

고집할 일도 없습니다.

그저 불확실하고 혼돈이 본질인 이 삶이라는 미지(未知)의 세계에

겸손하고 하심으로 내맡겨 버리는 것이지요. 


'안다'는 것은 사람들의 생각일 뿐이고,

생각으로 안다는 것은 100% 확실할 수 없기 때문에 안다는 

그 생각을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모른다' 함은 가장 정직하고, 진실한 생각이 아닐까요? 


본질이 불확실성과 혼돈인 삶을 사는 것은 아주 단순합니다.

그저 모르면 됩니다. 그냥 모를 뿐이니까

그저 지금 여기 있는 나에게 주어지는 삶에 내맡기고 사는 것이지요.

삶에 나를 내맡기고 살면 내가 잘났다고 여겨, 내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큰일 날 줄 아는 오만한 마음을 버리게 됩니다. 


내게 주어지는 삶에 설사 나쁜 일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그 나쁜 일이 진짜 나쁜 일인지 알 수 없습니다. 

나쁜 일인 그 실수, 그 실패로 인해 훗날 훨씬 더 큰 무언가를

더 크게 성공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확실하게 모르는 삶에 대해 안다고 오만함을 부리기 보다는,

삶에 대해 그저 모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모름의 진리에 온전히 내맡겨 보세요.

삶이 단순해지고, 더욱 진리다워질 것입니다.



-법상 스님

너무나 흔하고 평범한 '이것'



공기는 너무 흔해서 공기를 코로 들이마시고 내쉬기 위해 특별한 어떤 노력을

할 필요도 없고, 호흡을 계속 지속시키기 위해 특별히 애쓸 필요도 없다. 

물은 너무 심심해서, 탄산음료나 커피 같은 마실 것들에 비해,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공기나 물 같은, 존재에 가장 핵심적인 것들은 심심하고, 있는 듯 없는 듯 하며,

아무 것도 아닌 것 처럼 느껴진다. 


깨달음, 자성, 불성, 진리, 부처, 본래의 나, 도, 본래면목, 본성이라는 방편(方便)의

말이 가리키는'이것"도 바로 공기나 물과 비슷하다. '이것'은 너무 흔하고 평범하고

당연하고 특별할 것이 전혀 없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더없이 특별한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공기나 물처럼 늘 우리와 함께하고 곁에 있지만, 생겨나거나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좋아지거나 나빠지는 것도 아니다 보니, 전혀 사람들의 관심 밖의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별한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남들에게 없고 나에게만 있는 것,

혹은 너무 귀해서 얻기 힘든 것이라  엄청난 노력을 통해 획득한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그렇게 엄청난 노력을 해야지만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너무 흔하고 평범하고, 누구에게나 우주만물 어느 것에나 두루 똑같이

평등하게 있는 것이며, 얻거나 잃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것'을 얻기 위해 어떤

노력도 할 필요가 없다. 


이런 하찮은 것 같은 진리, '이것'을 과연 사람들 그 누가 좋아하겠는가. 

이 흔해빠지고 평범하고 당연한 물같고 공기같은 '이것', 전혀 특별해 보이지 않는

'이것'을 가리켜 보여 주더라도 사람들은 눈길 조차 주지 않기가  쉽다.

왜 그러냐 하면 그동안 듣고 배워 온  진리의 나라는 방편의 말이 가리키는

'이것'은  매우 특별하고, 얻기 어려운 것이며, 갖은 고행과 수행을 겪은 소수의

엘리트 수행자들만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왔기 때문에 그렇다. 


진리, 도는 본래의 나, '이것'이라는 문자반야, 방편반야가 가리키는'이것'을 깨닫고자

한다면, 평범하고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진리, 본래의 나, '이것'이라는 방편이

가리키는 것에 엄청나게 실망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진리, '이것'이라는 방편의 말이 가리키는 것은 언뜻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오직 이것만이 전부이고, 오로지 이것밖에 없기 때문에

'이것'에 실망할 준비가 필요한 것이다.


-법상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