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불교의 우주관/동양 속의 우주|******@불교의우주관@

2019. 7. 6. 11:49일반/생물·과학과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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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우주관 III.

  • 동양 속의 우주

     

    III. 극락과 지옥

    1. 팔열지옥 팔한지옥

    지옥은 나라카 Naraka의 의역이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구사론 俱舍論>>이라 는 논서에 이에 대한 설명이 있다. 지옥은 지하에 있는 것으로 묘사되며 극악한 죄를 저지른 이들이 고통을 받는 곳이라고 설명된다. 가장 고통받는 곳을 무간 지옥 Avici 이라고 하며, 그 위로 팔열지옥 八熱地獄이 있다.

    ① 등활 等活 지옥 (Samjiva)
    ② 흑승 黑繩 지옥 (Kalasutra)
    ③ 중합 衆合 지옥 (samghata)
    ④ 호규 號叫 지옥 (Raurava)
    ⑤ 대규 大叫 지옥 (Maharaurava)
    ⑥ 염열 炎熱 지옥 (Tapans)
    ⑦ 대열 大熱 지옥 (Pratapans)
    ⑧ 무간 無間 지옥 (Avici)

    이들 지옥에서 당하는 고통의 질에 관해서는 지면 관계상 생략한다. 주로 인간 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잔옥한 방법에 의해 고통을 받는다고 설명된다. 더욱 기막힌 점은 고통의 끝이 결코 죽음이리나는 안식 安息 일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이곳에서는 또다시 태어나고 고통을 받는 일이 무수히 반복된다는 것이다. 또 이들 지옥에 떨어지는 업을 짓는 이들에 대해서도 상세한 언급이 있으나 이 곳에서는 생략한다. [보다 상세한 논급으로는 E.Conze 編, 졸역, <<불교의 성 전>>(고려원,1985)및 대장경 가운데 <<정법념처경 正法念處經>>, 원신 源信의 <<왕생요집 往生要集>>등을 참조할 것.]
    이들 지옥은 모두 여덟이지만, 한 지옥마다 네 개의 별도로 열려진 문을 갖고 있다. 이 하나의 문마다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부 副 지옥이 있기 때문에 결국 여덟 지옥은 128개의 부지옥을 가진다는 말이다.

    ① 당외 唐畏 부지옥
    ② 시분 屍糞 부지옥
    ③ 봉인 鋒刃 부지옥
    ④ 열하 熱河 부지옥

    ① 에서는 뜨거운 재 속을 걷게 되고, ② 에서는 시체와 똥의 수렁에 빠지며 구 더기에게 골수가 빨리게 된다. ③ 에서는 칼날이 무성한 길을 걸으면서 온몸이 찢기우고, ④ 는 끓어오르는 탕 속에 던져진다. 그 다음에 설명되는 지옥이 팔한지옥 八寒地獄 이다.

    ① 아부다 지옥 (Arbuda)
    ② 니라부다 지옥 (Nirabuda)
    ③ 아타타 지옥 (Atata)
    ④ 하하바 지옥 (Hahava)
    ⑤ 후후바 지옥 (Huhuva)
    ⑥ 우팔라 지옥 (Utpala)
    ⑦ 파드마 지옥 (Padma)
    ⑧ 마하파드마 지옥 (Mahapadma)

    위의 팔한지옥은 팔열지옥과 달리 끝없는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리는 지옥을 말 한다. [Atata,Hahava,Huhuva 등은 모두 의성어이다. 즉, 인도어에서 고통받거 나, 괴로움 때문에 내는 비명, 신음 소리를 지옥의 이름으로 설정한 것이다. 첫 번째의 Arbuda는 원래 천연두란 의미이고, 두번째의 Nirabuda는 부스럼이 생겨 서 온 몸이 짓무리는 일종의 문둥병 같은 병을 가리킨다. 이 모든 고통들이 추 위로서 생긴다는 의미에서, 이 팔한지옥은 그대로 병명이나 고통 소리를 명칭으 로 삼고 있다.] 따라서 불교에서 말하는 지오근 팔열지옥과 128개의 부지옥, 그 리고 팔한지옥을 합쳐 도합 144지옥이 된다. 그러나 앞서 말한 <<구사론>>에서 는 이것에 덧붙여서 외로운 지옥 을 말하고 있다. 이 지옥에 관해서는 구체적 인 설명이 없지만, 강,산,들,지하 등에 산재해 있다고 하였다. 짐작건데 다른 이와 함께 겪는 고통이 아니라, 혼자만이 당해야 하는 각종 압박이나 스트레스 등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듯하다. 이것을 합할 경우에는 모두 145개의 지옥이 되 는 셈이다.

    2. 정토의 세계
    불교에서 말하는 이상 세계는 극락 혹은 정토 淨土로 불린다. 가장 기쁜 곳이 라는 의미에서 수카바티 Sukhavati, 즉 극락이라고 한다. 이에 관한 언급으로 << 아미타경 >> 등이 있는데, 대체로 그 세계를 묘사하면 다음과 같다.
    극락에는 일곱 겹의 난간, 구슬로 장식된 그물, 일곱 겹의 가로수가 있다. 그 곳의 중앙에는 연못이 있는데, 금,은,유리,수정이 네 가지 보물로 장식되어 있 다. 하늘에서는 음악 소리가 들려오고, 하루 종일 만다라꽃 Mandarava 이 하늘 거리며 대지에 흩날릴 때면 황금빛 지면에 수북이 쌓인다. 이 정토의 중생들은 매일 아침 옷을 단정하게 입고, 꽃대바구니에 이 꽃들을 담아서 다른 세계의 10 만억 부처님이 계시는 곳으로 가서 공양한다.

    식사는 하루 한 끼인데, 식사 후 에는 산책을 즐긴다. 또 극락에는 아름다운 새들이 무수한데, 그 가운데서도 가 릉빈가 迦陵頻伽/Kalavinka 가 가장 아름답다. 이 새들의 소리는 모두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데, 중생들은 이 소리를 듣고 부처님과 그 가르침을 생각하게 된다. 또 산들바람이 불어오면, 네 가지 보배로 장식된 가로수나 구슬로 장식된 그물들이 기묘한 소리를 내는데, 그것은 차미 아름다운 교향곡과도 같다. 이 나라에는 아미타 Amita 라고 부르는 부처님이 계신다. 그는 한량 없는 목숨 을 지닌 분으로서 언제나 이곳을 염원하는 이들의 지주 支柱가 된다. 또 그는 협시보살로서 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이 계신다. 만약 이 나라에 태어나고자 한 다면 염불만이 첩경이다. 즉, 지심으로 나무아미타불 을 염하게 되면 임종시 에 아미타불이 그를 영접하여 이 정토로 인도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정토왕생의 염불비원 念佛悲願 이라고 한다. 정토사상은 대승불교의 중,후기에 생겨난 사상이다. 즉, 초기의 불교에서는 지옥에 대한 설명은 장황했 지만 내세관은 괄목한 만한 것이 적었다. 대승불교로 넘어오면서 확고한 내세관 이 나타나는 바 그것이 바로 정토사상이다. 정토 신앙은 민중적 보편성과 함께 왕생의 인연이 비교적 단순하다는 면에서 엄청난 호응을 얻는다. 우리 나라의 경우에도 신라의 삼국통일 직후부터 유행하였고, 근자에 이르기까지 가장 폭넓 은 지지를 얻고 있는 사상 형태이다. 그러나 고려 말엽에 선종이 유행하면서 이 정토에 대한 관념은 조금씩 변형된다.

    <<유마경>>의 가름침대로 마음이 맑아야 정토가 맑아진다. 는 대승적 해석이 유행하게 된다. 선가에서는 이 정토를 어떤 실재적이고, 구상적인 세계로 파악하는 일을 거부한다. 심저이 속조혜능은 십 만 팔천 리를 지나야 정토가 있다 는 경전의 가르침을 우리 몸 안에 잇는 십악 팔사 라고까지 설명한다. 즉, 정토에 왕생하려면 염불의 공덕 때문이 아니라 마음을 맑게 갖는 수련 생활이 필요함을 역설하기에 이른다. 따라서 정토사상은 고도의 철학성을 갖춘 자력과 타력의 조화로서 이해되기도 한다. 단순히 서방에 왕생하기를 기원하는 타력 신앙의 자세가 아니라, 내 몸을 닦는 자력 의지가 선 행해야 한다는 논리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이 극락과 지옥에 대한 논의는 거 의 대부분의 불교 사상가들에 의해서 상징과 은유 로 이해되어 왔다. 즉, 민중 들의 도덕성 제고를 위한 시청각적 의미가 강하다고 인식되었던 것이다.

    IV. 남기는 말
    신화의 세계는 상징 symbol'이다. 특히 종교의 우주관에서는 절제된 은유 속에 담긴 의미를 해석해내는 일 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불교는 지금부터 2600여 년 전의 가르침이다. 가학적 지식이나 인지의 발달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격세 지감이 든다. 따라서 불교적 우주관을 절대시하고 권위를 부여하는 일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오히려 그 속에 담긴 상징성에 천착하는 자세가 필요하리라 고 본다. 불교의 우주관은 석가를 중심으로 한 고대 불교인들의 우주의 상상력 이다. 물론 그 가운데는 다소 황당무계한 내용도 있고, 놀랄 만큼 과학적 토대 가 갖추어진 상황 설명도 있다. 그러나 전체를 흐르는 맥락은 업과 윤회라는 등 식이다. 또 이 윤회가 영겁회귀로서 반복된다는 주장이다.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우주를 주재하는 힘 의 근원을 결코 인격적으로 파악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불교적 용어로는 다르마 Dharma 가 바로 그것이다. 섭리, 질서, 원리, 진리 등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다르마야말로 우주를 관통하는 근원적 힘이다. 그 러나 다르마는 비인격적일 뿐 아니라 초인격적이다. 이 궁극적 원천을 불교에서 는 일심,진여, 법계, 여여 등으로 묘사하고 있다. 우주의 기원과 소멸에 대한 불교의 견해는 매우 낙관적이다. 불교에도 종말론 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법, 상법, 말법 등의 시대 구분이 불교적 종말론이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종말을 영원한 파멸로 이해하지 않는다. 종말의 끝은 새로 운 출발 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말법 중생들에 대한 경종의 의미만이 부여될 뿐 위기 의식으로까지 발전할 개연성은 전혀 없는 것이다. 지면 관계상 대승불교의 법계론에 관해서 상세하게 언급하지 못했다. 또 불교 의 우주관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중국 신화, 특히 유가의 관점에 자세하게 서술 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기회 있는 대로 보정 발표할 예정이다.

    계간 과학사상 제 10호 1994년 가을호
    Written by 정병조(동국대 교수,불교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