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과 약/조오현, <벽암록>에서

2019. 9. 28. 18:15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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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과 약
 

문수보살이 젊은 구도자 선재동자에게

이 세상에서 약이 못 되는 것을 찾아오라고 했다.

선재는 온 세상을 뒤졌으나 그런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문수보살에게 이 사실을 고하자 이번에는 약을 찾아오라고 했다.

선재는 풀 한 포기를 뜯어 바쳤는데 보살은 이를 받아들고 이렇게 말했다.
 

"이 약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어째서 그런가.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병이 들어 약을 먹고 쾌차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병이 나았는데도 약의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하자.

이 경우 그는 참으로 병이 나았다고 할 수 없다. 병이 나은 사람은

병이나 약에 대한 집착이 없어야 비로소 병이 나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행도 이와 마찬가지다. 미혹이 있으니까 깨달음이란 약을 찾고,

번뇌의 병이 있으므로 좌선이라는 약을 쓰는 것이다.

그러다가 깨달으면 미혹의 병이 없어지나, 그 대신 깨달음이라는 것이 남는다면

병이 다 나았는데도 계속 약을 먹는 것과 같다.

따라서 미혹과 깨달음을 다 함께 버려야

비로소 병과 약이 다 함께 치료됐다고 할 수 있다.

 

- 조오현, <벽암록>에서 / 몽지릴라밴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