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복 보살님의 마음 공부 경험담Ⅰ

2020. 3. 14. 11:07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728x90



















최순복 보살님의 마음 공부 경험담Ⅰ



올해 봄도 이렇게 지나가고 있네요. 한 도반님의 공부경험담을 올립니다.

저의 공부 이야기를 드립니다. 자랑할 것도 아니지만 선생님들의 도움 없인

안 될 일이었기도 하여 두 분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마음으로 이제야

공부 길의 일화를 적어 봅니다.

이 전의 삶은 적지 않겠습니다. 다들 상황만 다르지 비슷한 무게의 삶을 살아

대충 대동소이하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가난한 촌부의 아내로 살며 내게

현재의 삶은 나와 너무나 맞지 않는다는 욕심을 욕심인 줄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걸 희망이라 포장하며 주어지지 않은 다른 삶을 꿈꾸며 살았습니다.

가슴속에 차곡차곡 쌓이는 감정들과 지식들과 느낌들을 마치 재산처럼 온 몸에

터질 만큼 담고 살았지요. 그것이 나를 지켜내는 방패라고 믿으며 살았습니다.

결국에는 온갖 망상을 병인 줄도 모르고 살다 급기야 언제 죽어야 잘 죽을까를

수 없이 꿈꾸는 지경까지 갔었지요.

그러면서 머리털이 하나도 남지 않는 상황을 맞이했습니다.

 병원에서 스트레스가 원인이라 하며 약을 주었으나 아무리 먹고 발라도 머리는

계속 빠져만 갔습니다. 지금의 현실을 털끝만큼도 나 자신이라고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인정? 인정은커녕 이런 해결책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를 때 이 공부를 우연히 만났지요.

지금 돌아보면 정말 천우신조라고 밖에 다른 표현법을 모르겠습니다.

2011년 겨울 무심선원 한 도반을 우연히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흔적을 따라 알게 된 무심선원, 열심히 법문 듣고 선원 홈페이지를 불티나게

들락거리다, 인생의 축복처럼 한 책을 만났습니다.
“선으로 읽는 금강경”
김태완 선생님의 “선으로 읽는 금강경” 제겐 정말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카로운

첫 키스가 될 줄이야....... 그 책을 만나 제 인생은 그동안 살아 온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채 몇 장을 넘기지도 않았는데 제 머리는 박살이 났습니다. 꽝!! 세상을 살면서

들어본 적이 없는, 머리가 깨지는 소리. 지금 생각해도 온 몸에 전율이 흐릅니다.

이게 뭐지?
내가 뭘 본 거지?
뭘 들은 거지?

그때부터 목이 타는 갈증은 극에 달했고 미친 사람처럼 찾았습니다.

전보다 더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뭔가 얇은 비닐 한 장이 내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비닐을 걷은 세상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 세상은 나를 부르는 것 같았고 너무나

가고 싶었습니다. 요것만 걷으면 세상이 훤할 것 같은데 이 얇은 장막이 벗겨지지 않고

목만 타는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생각했습니다.
내가 미친 건가?
내가 이상한 사이비에 빠졌나?
그동안의 나와는 너무 다르잖아?
그 심정은 지금 생각해도 참 ~~
뭐라 표현키 어려운 갑갑함이 생깁니다.

그래서 내가 잘하는 계산도 해 봤습니다.
이 공부를 하기 전과 지금 나는 뭐가 다르지?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조금 유연해졌습니다. 고슴도치처럼 나를 바짝 세우고 살다가

지금은 그냥 인연에 맡길 때가 더러 있고 누군가에게 느끼는 서운함이나 화를 내는

일이 좀 줄어들었더군요. 집착하던 자식들도 조금은 놨고요.
그리고 이 공부한다고 돈도 별로 들이지 않았습니다. 책 몇 권 산 거랑 법문 몇 개 산 거,

그리고 조금의 성의표시.교회나 절엘 가도 보시, 헌금 등을 내는데 그것에 비하면

그다지 부담되지 않는 지출이었고, 내게 누가 보시를 또는 뭔가를 강요하지도 않았네?

그런데 나는 뭔지 모르지만 내가 좀 더 넓어진 것 같네? 사회적으로 문젯거리도 없고

삶도 좀 너그러워 졌으니 그럼 더 해봐?
다시 시작했지요. 다시 시작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 마음을 비우고 법문을 들어보자. 생각으로 들으면 안 된다고 했지?

생각을 비워보려 했지만 그게 생각처럼 절대 안됐습니다. 아니면 정좌하고 허리를 세우고

경건한 자세로 들어보자. 아니야. 듣기 전에 목욕하고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듣자......... 등등.
어떻게 들어야 이 장막이 사라질지 별별 방법을 다 해도 이 질긴 장막은 내 시야에서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나중엔 포기하고 법문이랑 시디를 다 보따리에 싸서 다락방 구석에다 던져버렸습니다.

다신 안 해! 그 고귀한 선사님들이나 아는 일을 이 촌구석에 밭이나 매고 지지리 복도

없는 내게 가당치 않아!

그러나 그 질긴 놈은 나를 그리 쉽게 놔 주지 않았습니다. 하루를 채 넘기지도 못하고

다시 다락방에 가 보따리를 갖고 왔습니다. 그리곤 또 듣습니다. 허탈한 마음으로,

되지도 않을 일인 걸 알면서도 어떤 손은 벌써 카세트 버튼을 누르고 있었습니다.

김태완 선생님이 말씀하십니다.
이것뿐입니다!
아이고~~~지겨워!

그동안의 삶은 내가 뭔가를 꿈꾸고 계획하고 행동에 옮기고 등등 온갖 것을 머리에 담고

살아야 했지요. 그래서 어딜 가든 내 생각은 다른 걸 꿈꾸느라 지금을 진실하게 산 때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걸 하면서 저걸 생각하고, 저걸 할 땐 이걸 꿈꾸고.........

그러다 이 공부를 만나 첫 경험을 하고......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세상을 더 동경하고

그걸 찾느라 가슴은 더 불타는 듯 했지요. 바라는 세상이 정확히 뭔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 세상을 꿈꾸는 이상한 시간들이 지속되었습니다. 선지식을 만날 형편도 여건도 되지

않아 육지를 나가는 건 꿈도 못 꿀 때였지요.

그러나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을 실감하게 되는 일이 생겼지요.

바로 릴라 선생님이 밴드에 초대를 해주신 거. 일 년여가 지날 때쯤 릴라 선생님이

 밴드에 초대를 해주셨지요. 그게 2014년 삼월쯤이었죠. 밴드에 들어가니 몇몇 아는

도반들도 계시고, 그 당시 많은 도움을 주셨던 무심선원 도반들도 만났습니다.

밴드에 들어가서 보니 이미 밴드가 생긴 지가 약 두 세 달이 지났었습니다.

그래 몽지 선생님께 그동안 못 들은 법문을 메일로 보내 달라 부탁을 했고 선생님은

몇 편의 법문을 메일로 보내 주셨지요.

그 법문을 서너 편쯤 듣던 어느 날 막 컴퓨터를 일어나려는데 머리에서 뭔가 내려왔습니다.

마치 어떤 빛이 나를 스캔해서 내려가는 것처럼 주르륵~~~
단 몇 초 ...........
아~~~!
이거~~~
이거?
내가 다 쓰고 있네?
나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 나온 첫 말…….
그 말은 진정 내 첫 말이었습니다.




최순복 보살님 공부경험담Ⅱ

비로소 만난 나는, 세상은 잘못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모든 게 제 자리에서

제 역할을 다 하고 있었습니다. 비참하고 억울하고 괴롭던 내 인생은 정말 나였습니다.

내가 아닌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난 한 번도 무거운 짐을 진 적이 없었습니다.

짐도 없었는데 그 짐을 내가 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머리카락이 다 빠지도록 스트레스에

몸살을 한 게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습니다.
내가 서 있는 방 안이 온통 반짝반짝 내가 되어 빛나고 있었습니다.
편재~~
편재~~~
나는 전체였습니다.
책상아래 뒹구는 먼지조차도~
거실로 나와도 그건 이름이 거실이고 티비고 의자고, 온갖 이름표를 단 전체였습니다.

금강경의 모든 구절이 찰나에 다 함께 있었습니다.

남편 방을 바라보니 거기 또 다른 내가 있었습니다.
병석에 누워 나를 기다리는 나~~

바로 남편에게 갔습니다.
“여보, 그동안 내가 잘못했어요. 때때로 당신을 귀찮다고 생각하고 짜증내고 소리도

 지르고, 정말 미안해요. 내가 다 잘못했어요. 당신이 나보다 큰 사람이니 나를 용서해

주세요. 그리고 나랑 결혼해 줘서 고마워요. 지금까지 나를 버리지 않고 데리고 살아줘서

고마워요. 당신 덕분에 착하고 예쁜 자식들을 만났고 좋은 이웃과 친지들을 만났어요.

정말 고마워요“
남편이 눈물을 단 나를 보더니 걱정을 했습니다.
무슨 일 있냐고, 아니라고 하고 안도를 시키고 나니 남편이 말했습니다.
“나도 고마워. 당신 만나서.”
비로소 나는 나에게 용서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사과와 용서를 구하는 마음이 어디에선가 나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세상에서 남편이 가장 아름답고 멋지고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옹졸하고 계산적이고 퉁명스러운 사람을 아내로 맞아 오랜 세월 내 짐을 자기

것이라 여기고 다 받아 준 천사였더군요. 그 귀한 사람을 몰라보고 온갖 앙탈을 부렸습니다.
천사에게~
내 가장 훌륭한 스승에게~~.

남편에게 사과하고 방을 나서는데 눈물이 흘렀습니다. 남편에게 사과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이 내게 늦었으나 진짜 당신을 만날 기회를 주느라 그 오랜

세월 병마와 싸우며 나를 기다려 줘서 감사해요. 당신이 진정한 스승이십니다.

젖은 남편 용품들을 빨며 울었습니다.
감사와 기쁨의 눈물을 ~~~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부산, 무심선원 김태완선생님, 몽지 릴라 선생님을 향해 북쪽에다 정성스런 절을 했습니다.

몇 번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싶은 만큼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제야 살았습니다.

그 다음부터 세상이 바뀌었네요. 어제와 같은 하늘은 제자리에 있었으나 내가 보는

하늘은 달랐습니다. 남편 역시 어제와 같은 침대 같은 방에서 여전히 똑같은 말투와

 행동으로 나를 보지만 내가 보는 남편은 그동안 보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남편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 후 몇 년을 남편의 컨디션이 좋은 날은 여행도 다니며 잘 지냈습니다.

한담해변, 북촌바다, 산굼부리, 성산포, 천백고지, 절물휴양림 등등. 행복한 시절을

드디어 만난 거죠.

물론 가끔 싸우기도 하지만 그냥 싸울 뿐이었습니다.

뭔가를 담아 놓지 않는 삶을 살게 되었지요.
세상을 대하는 것도 달라졌습니다. 뭘 계산하지 않고 만나고 헤어지고, 되는 대로

살아도 잘 굴러가더군요. 이것이 나 임을 알기에 뭐 별로 탓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세상일에 꼬치꼬치 따지지 않아도 되니 세상 편했습니다.

전엔 따지고 분별을 잘 해야 내가 유식해 보이고 으쓱해진다고 여겼던 일이 떠올라

얼굴이 붉게 물들기도 했지요. 나를 내세우지 않아도 알 사람은 알고 모를 사람은 모르고~
깃털 같은 나날을 살았습니다. 드디어 머리카락이 다시 나기 시작했습니다.
감사하게도~~~ 다시 나 준 머리카락이 고마워서 저는 지금도 염색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고사리 철이 되어 집 뒤 오름으로 고사리를 꺾으러 갔습니다.
아는 동네 분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는데, 어? 이거 내가 인사를 한 게 아니네?

여기서 하네?

그 생각이 번쩍 드는 순간 나도 모르게 발밑에 낙엽에 숨은 뱀을 피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나? 내가 뱀을 피한 게 아니네? 여기서 피했네? 그럼 내가 하는 건 뭐야?
없네?
와~~~
없어!
진짜였어!
인연에 그대로 항복하는 게 다네?

새벽에 나가야 고사리를 많이 꺾지만 나는 남편 수발을 들다보니 늦게 그것도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오다 보니 많이 꺾지는 못하지만 늘 여기서 내게 필요한 만큼의

고사리를 내어준 게 비로소 감사히 보였습니다.
세상이 다 수용이고 항복이고 감사~~!!!
그것이 다였습니다.

그러나,,,그게 끝은 아니었습니다.
평소 내가 가장 힘들다고 여기던 어떤 것들은 차라리 쉬웠는데 염두에도 없었다고

생각한 어떤 것들이 힘을 발휘하더군요. 생각이 그렇게 간단하게 포기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또 비틀대고, 그럴 때마다 몽지 릴라 선생님께서 길라잡이를

마다 않으시고 잘 도와 주셨습니다.

해마다 여름방학이면 이곳에 오셔서 저를 만나 주셨습니다.

그때는 그게 제게 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 일 년에 한 번 선생님을 만나는 거.

중언부언 말도 많은 제 얘기를 꾹 참고 다 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곤 마지막에 일침을 놓으십니다.
지금도 그러세요?
아니면, 보살님 그것도 생각 아닙니까?
하하하!
번번이 넘어지고 속지요.
그래도 넘어지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그땐 몰랐지만.

지금도 가끔 나에게 속습니다. 그렇지만 이 자리는 언제나 여기서 나를 기다립니다.

참 든든합니다.
밥 먹을 때 밥 먹고, 바람 불면 흔들리고, 음악이 흐르면 그냥 듣고, 태풍이 오면

무섭고, 예쁜 것을 보면 예쁘고, 싫은 것을 보면 싫고, 그냥 삽니다.
인간이 누려야할 모든 감정과 느낌, 다 누립니다.

이 세상 전부가 스승이지만,
몽지 선생님,
릴라 선생님,
저는 감히 말합니다.
몽지릴라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항복합니다.
순복합니다.


- 최순복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