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재단 비리 역사는 무엇이고 비리는 왜 근절 안 되나2017. 8.1~8.4 방송 모음

2021. 4. 4. 16:11일반/금융·경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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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화) -사학재단 비리 역사는 무엇이고 비리는 왜 근절 안 되나

사학 재단의 출발은 일제강점기 혹은 대한제국 시기부터 출발

민족주의적 계몽주의자들이 학교를 만들어

일제강점기 초반 계몽주의자들 학교 눈감아줘

강력한 항일운동가가 아니라 타협주의자 성격

1930년대 지나며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조선인들이 나대는건 압살

일제가 물러난 이후 한국에서 살아남은 사학들은

백발백중 친일파들만 살아남아

학도병, 정신대 혁혁한 선전선동 이게 한국사학의 한축

해방이후 초중고 숫자 엄청나게 늘어

1945년 2800개 1955년 4200개

중고등학교는 165개에서 1500개로

교육열은 높은 사회인데 정부가 학교를 세울 돈이 없어

친일파 지주들한테 토지 몰수 안할테니 학교 만들어라-교육자 소리 듣지 땅도 지킨다

친일 지주자들의 또다른 축

교육을 통해서 사회에 공헌한다 이게 아니고

출발자체가 내 재산을 지키자에서 출발한 것

사업과 재산지키기로 출발

한국사립학교의 명백한 목적 이윤추구입니다

학교를 세운 자체가 이윤 추구위해서

한국의 사학재단은 학교가 아니라 교육기관이 아니라 기업에 가까운 존재로 봐

탐욕적인 자본에 가까워

뿌리도 그렇고 운영방식도 그래

사학재단 소유자들이 개혁소리만 나오면 교육자인데

우리를 비리세력 취급하느냐

원래부터 막대한 기득권자들이었고

언제나 역사적으로 일제, 군사정권유착해온 이윤추구형 자본들이

교육자 행세를 한 것

애초 공적교육의 영역을 이승만과 박정희가 대를 이어 사학에 맡겨

한국 이윤추구형 교육집단 비중 세계에서 제일 높아

대학기준으로 80%가 사학 미국만해도 국공립대 비중이 70%가 넘어

스웨덴 핀란드 독일 다 90%가 넘어

호주는 아예 98%

친일파 재산 지켜주느라 국가가 공공교육의 영역을 포기하는 바람에

80%가 이윤추구형 사학이 차지를 하고 있는 것

이 사람들이 교육자 운운

1986년 조선대 교수 시국 선언

조선대 총장 박철홍-시국선언 방해하려고 7시 교수교직원 운동장집합조회

출석 다 부른 후

운동장 2바퀴씩 뛰게 해

충성서약

30여분동안 훈시-시국이 혼란스러울수록 나서는 놈만 손해야

일제때 독립운동한다고 나대던 놈들 보라고

이 박철웅처럼 잘 된놈이 있어

아부하던 또라이 교수 외침-총장님 우리 운동장 한바퀴 더 돕시다

시대에 남는 엽기적 사건으로 기록

학교자랑한답시고 낸 보고서

“설립자님의 부인이신 정애리시 전 이사장님께서는 의과대학에서 해부학의 교재인 인골을 구하기가 극히 어려울 때에 서울시립 행려병사자 장의사로부터 연락을 받고 서울시 망우리 공동묘지에 직접 가셔서 6·25 때 묻힌 주인없는 묘를 서울특별시 불도저로 밀어서 길을 낼 때에, 그 불도저 앞에서 뼈를 우선 치마에 주워 담아서 푸대에 옮겨 가지고 오신 후 교실에서 표본을 만들게 하셨으며…"

사고방식 자체가 정상적인 애들이 아닌 것

또 하나의 엽기적 사례

상지대 김문기 

1986년 김문기가 강사채용을 하면서 1000만원 요구한 적 있어

강사채용에 1천만원을 요구한 사건으로 학생들의 시위가 이어지자 이번에는 학생들을 용공으로 조작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해 10월14일 밤 상지대 본관 앞에는 “김일성 수령님”, “가자, 북의 낙원으로!” 등등의 내용을 담은 매우 불온한 유인물이 살포되었다. 그런데 이 유인물은 학생들이 뿌린 것이 아니라 김문기의 사위인 기획실장의 주도 아래 교무처 직원들이 살포한 것이다. 학교비리의 진상규명에 대한 학생들의 요구가 거세지자 재단쪽이 공권력을 끌어들여 학생들을 탄압하기 위해 사건을 조작한 것이다.

얼마나 꼴통이었으면 김영삼 유세때 나오지 마라 했을 정도

2005년 노무현 정부 사학법 개정-비리 감사하는 개방이사제 도입하자는 것뿐이었어

교수회, 학부모회 등이 참여 사학구성원단체가 추천하는 간단한 제도

우리나라 온 꼴통보수들이 다 들고 일어나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장외투쟁

사학법 투쟁은 나라를 위한 투쟁이다

영남재단이 박정희가 강탈한 학교 이해당사자

왜 모든 수구 언론 동참 완전 난리?

사학재단비리만의 문제가 아니고

100년을 넘는 뿌리깊은 전통을 가진 친일파 기득권 이윤추구 집단

한국 기득권 세력에 얼마나 깊숙히 침투되어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

사학을 중심으로 한 보수 질기고 강하냐면

2014년 정진우 정의당의원 집계자료

교육부같은 정부 공직자 출신 퇴직후 사학재단 이사에 오른 경우가 262명이나 돼

교육부 출신 191명 장차관 출신 41명 판검사 출신 18명

사학을 중심으로 비리의 고리가 단단

2007년 사실상 개방형 이사제의 기능을 잃어버린 사학법 후퇴

보수세력의 지랄이 극에 달해 제도 후퇴

한국 사학은 한국 기득권 세력의 총체 핵심 같은 곳. 정점에 서있는 곳

언론 권력 장악-방우영 연세대 이사장, 동아일보 고려중앙학원 이사장

보수카르텔의 핵심연결고리

교육이라는 명목아래 세금을 받아먹는 학교기업

뿌리가 친일자본

대한민국 사학만큼 이윤에 천착한 기업은 없다

한국 사학 비정규직 교수 도입역사가 길어

겸임, 전임 이윤추구

박근혜-돈 안되는 학문은 안한다고 이야기해 학문의 기능 포기해

인문학 무시 풍토 주도-사학이 주도하고 있어

교육기관이 아닌 명백한 기업

명백한 기업형 이윤추구 집단에 막대한 세금을 쏟아부어

국가지원 보조금 쏟아부어

교육기관만큼은 순수한 공적 교육

바퀴단 십자가 퍼포먼스

 

 

사립학교가 중·고등학교의 40%, 대학교육의 85%를 담당하는 우리 현실에서 한번도 사립학교를 다니지 않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그런데 사립학교들이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분규가 발생할 정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런 심각한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사립학교법 개정이 도마 위에 올랐다. 헌법재판소 출범 이래 가장 많은 위헌심판이 청구된 법률의 하나이며, 1963년 제정된 이후 무려 38차례나 개정을 거듭한 이 법안의 개정을 둘러싸고 심각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설립자, 정말 설립자인가

사립학교법의 기나긴 개악의 역사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1990년의 개악과 1999년의 개악이다. 사립대학 이사장들의 모임인 한국대학법인협의회의 총력 로비 결과 국회에서 민자당 단독으로 날치기 통과된 1990년의 개악은 대학 설립자 직계 존·비속의 총학장 임명 허용, 총장 권한이던 교수 및 직원 임면권의 이사회 이관 등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1999년의 개악은 비리사학에 파견되는 임시이사 임기를 2년으로 제한하면서 비리관련자의 재단복귀 길을 터주었다. 그 직접적인 결과가 바로 올 상반기의 상문고 사태와 덕성여대의 학원분규이다.

현재 사립학교의 학교 운영비를 보면 중·고등학교의 경우는 재단 부담금이 2%에 불과하고, 사립대학은 6%에 머물고 있다. 사립학교의 운영비가 실질적으로 등록금이나 시민들의 혈세에 의해 조달되고 있다는 사실은 사립학교들이 개인의 소유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 교육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최근의 사립학교법 개정을 둘러싼 논쟁에서 잘 드러나듯이 사학재단 관계자들과 수구세력은 언필칭 시장경제의 원리에 따른 소유권의 절대성을 들먹인다. 그들은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사학재단의 경영권을 빼앗는 전체주의적 발상으로 ‘홍위병에 의한 문화혁명’ 또는 ‘인민위원회의 사학접수’라는 터무니없는 언사를 써가며 반발하고 있다.

설립자가 학교를 세우는 순간 학교는 설립자의 재산이라기보다 공익적인 학교법인의 재산이 된다. 민법 규정에 따르더라도 사학 이사진은 사학의 소유자가 아니라 관리자일 뿐이다. 백보를 양보해서 사학재단을 사유재산으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특히 분규가 발생한 사학의 경우 현재 소유권을 주장하거나 설립자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거액의 사유재산을 출연하여 학교를 설립한 사람들인가 하는 점이다. 대부분의 분규사학에서 원설립자문제, 소유권문제를 둘러싼 심각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분규가 발생한 모든 사학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의 분규사학에서 우리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숭고한 뜻을 갖고 출발하여 공공의 재산으로 출발한 사립학교가 개인의 사유물로 전락하여 온갖 부정과 비리의 온상이 되었다는 점이다.

총장님, 한 바퀴 더 돕시다!- 조선대


사진/ '사학 코미디' 시국선언을 막으려고 교수들을 아침 일찍 출근시켜 교정을 뛰게 했떤 조선대 박철웅씨.(총장님! 한바꾸 더 돕시다)


지역의 교육발전을 위해 뜻있는 인사들의 모금으로 설립되었다가 개인의 소유물로 전락하여 온갖 사학비리의 온상이 되었던 학교로는, 지금은 정상화된 조선대학교를 들 수 있다. 조선대학교가 1947년 9월 미군정청으로부터 학교설립 인가를 받을 때의 설립주체는 조선대학교 설립동지회였다. 동지회에는 머슴에서 지주에 이르기까지 약 7만2천여명의 회원들이 망라돼 있었다. 1988년 <한겨레신문>이 창간될 당시 4천여만명의 국민 중에서 모집한 주주가 6만1천여명이었음을 상기할 때, 전국인구가 1600만명이던 1947년에 호남을 중심으로 7만2천여명이 성금을 내어 도민대학으로 조선대학교를 건립하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은 해방되자 호남에 민립대학을 세우자는 취지에서 작게는 나무 한짐, 쌀 한말, 콩 한말 등에서부터 많게는 수만원의 현금이나 수천평의 토지를 기부하여 학교설립에 필요한 재원과 토지를 마련하였다.

이렇게 해방 이후 민립대학으로 설립된 조선대학교는 박철웅 일가의 사유물로 전락했다. 조선대학교의 설립 당시 지역 원로들이 젊은 사람들이 일선에 나서야 한다고 하여 전라남도 운수과장으로 있던 박철웅이 설립동지회 회장을 맡았다. 그는 학교설립 이후 자신이 학장, 총장에 취임한 이래 자신의 측근으로 이사회를 구성하고, 자신에 비판적인 인사들을 설립동지회 간부와 학교 이사진에서 배제하면서 전횡을 일삼았다. 자유당 국회의원이 된 박철웅은 독재권력의 비호 아래 조선대학교를 자신의 왕국으로 바꾸어갔다. 박철웅은 1960년대 중반부터는 아예 학교의 공식행사에서 학교연혁을 소개할 때 설립동지회에 관한 사항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설립자이며 총장이신 박철웅 선생의 혈루로써 설립되고 운영되어온” 조선대학교라고 강조했다. 이런 식으로 조선대학교의 역사를 심각하게 왜곡해온 박철웅은 그동안 학교에 보관돼온 설립동지회에 관한 자료를 소각하여 자료의 인멸을 꾀했다.

이후 박철웅의 행각은 그야말로 온갖 사학비리의 종합선물세트라고 할 만했다. 부정입학, 교수 해임, 교수 및 학생들에 대한 폭언과 폭행, 공금 횡령 등에서부터 급기야 자신의 처남을 용공조작해 간첩으로 모는 데 이르기까지 박철웅의 개인왕국으로 전락한 조선대학교에서 벌어진 비리의 목록은 끝이 없다. 박철웅 왕국 조선대학교의 역사에서, 아니 크고 작은 개인왕국 천지인 한국의 사립학교 역사에서 최대의 희극이라 하기에는 너무 서글프고, 그렇다고 최대의 비극이라 하기에는 참으로 기막힌 일은 교수들의 아침조회 및 집단구보사건이었다.

1986년 전국의 대학가가 교수들의 시국선언으로 들끓고 있을 때였다. 박철웅은 조선대 교수들의 시국선언을 방지하려고 매일 아침 7시에 전체 교수 및 교직원을 운동장으로 출근시켜 출석을 부르고 노교수, 여교수 할 것 없이 운동장을 두 바퀴씩 구보하게 한 다음 총장님께 올리는 충성서약을 하게 하고 30여분간 훈시를 했다. 일제강점기 도쿄도 학무국 관리였다는 박철웅의 훈화 한 구절. “시국이 혼란스러울수록 나서는 놈만 손해야. 일제 때 독립운동한다고 나대던 놈들 보라고. 이 박 총장처럼 잘된 놈 있어?” 운동장 한켠에는 지각한 교수들이 벌받듯 서 있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아부 교수의 한마디. “총장님, 한 바퀴 더 돕시다!”

학교쪽의 용공유인물 살포 - 상지대


사진/ 상지대 김문기 전 이사장.(한겨레)


조선대학교를 사유화한 박철웅은 그래도 학교 설립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상지대학교 김문기의 사례는 학교의 설립과 정말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인물이 우연한 기회에 학교 임시이사진에 포함되었다가 학교를 가로채어 개인왕국을 건설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상지대학교도 원래는 조선대학교와 마찬가지로 지역의 뜻있는 인사들이 고향에 인재를 양성할 고등교육기관이 없는 것을 안타까이 여겨 재산을 출연하여 건립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원주지역에서 원홍묵을 중심으로 한 지역인사들이 대학설립 기성회를 조직하여 1955년 6월10일 관서대의숙을 설립했다. 이들은 1962년 재단법인 청암학원을 설립하고 1963년에는 4년제 정규야간대학으로 원주대학을 세웠다. 그러나 청암학원의 자금난으로 원주대학의 경영이 어려워지자 문교부는 1972년 김문기 등을 관선이사로 파견하였다. 김문기는 1973년 12월 청암학원의 3대 이사장에 취임하고 이듬해 1월 이사회의 결정을 통해 학교법인의 명칭을 청암학원에서 상지학원으로 변경했다. 김문기가 청암학원 이사장으로 선출된 이후 취한 첫 번째 조치는 청암학원이 유지·경영하던 원주대학을 폐교하고 교직원을 대부분 해고한 뒤 상지대학을 설립한 것이다. 1970년대 이후 폐교된 4년제 대학은 오직 원주대학뿐이라는 점에서 이 조치의 예외적인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김문기는 1981년에는 상지학원의 정관을 변경하여 자신을 설립자로 기록했다.

1980년 교육여건 개선을 요구하는 학생들을 지지한 전조영 교수를 사상범으로 몰아 법정에 서게 던 김문기는 1986년, 강사채용에 1천만원을 요구한 사건으로 학생들의 시위가 이어지자 이번에는 학생들을 용공으로 조작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해 10월14일 밤 상지대 본관 앞에는 “김일성 수령님”, “가자, 북의 낙원으로!” 등등의 내용을 담은 매우 불온한 유인물이 살포되었다. 그런데 이 유인물은 학생들이 뿌린 것이 아니라 김문기의 사위인 기획실장의 주도 아래 교무처 직원들이 살포한 것이다. 학교비리의 진상규명에 대한 학생들의 요구가 거세지자 재단쪽이 공권력을 끌어들여 학생들을 탄압하기 위해 사건을 조작한 것이다. 김문기 일가의 족벌경영 과정으로 인해 상지대학교는 도민대학으로 출발한 원래의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김문기는 이후 민자당 소속 국회의원으로 권력과 밀착되었으나, 1993년 김영삼 정권 출범 이후 단행된 사정개혁 당시 사학비리와 반사회적 범죄로 구속되었다. 그러나 1994년 8월 광복절 특사로 풀려난 김문기는 학원으로의 복귀를 꾀하고 있다.

쇠사슬에 묶인 학원- 덕성여대


사진/ 덕성여대 박원국 이사장.(한겨레)


조선대와 상지대에 이어 ‘사학비리의 종합선물세트’라는 불명예를 계승한 대학은 덕성여대이다. 원래 덕성여대는 독립운동가이고 여성운동가인 차미리사 여사가 건립하였으나, 차미리사 여사가 세상을 떠날 때 학교를 후배인 송금선에게 위임했다. 그런데 송금선은 덕성학원을 사유물로 취급하여 자신의 아들인 박원국에게 물려주었다. 박원국 지배하에 덕성여대는 가장 악질적으로 교수재임용제도를 악용하여 재단에 비판적인 교수들을 해직시켜왔다. 1991년 성낙돈 교수 재임용 탈락에 이어 1997년 한상권 교수의 재임용 탈락, 2001년 남동신 교수 등 5명의 재임용 탈락 등이 꼬리를 물고 발생한 것이다. 특히 박원국은 한상권 교수의 재임용 탈락 이후 전개된 학내 분규와 관련하여 교육부의 감사에 의해 그동안의 비리 146건이 적발돼 이사장 승인이 취소되었으나 2001년 초 승인취소 과정에서의 절차상의 하자를 이유로 대법원의 승인취소처분 취소 판결을 받아 내 이사장으로 복귀했다. 박원국의 복귀로 덕성여대 민주화운동은 큰 타격을 입었고, 재단에 밉보인 비판적 교수 5명이 해직되는 사태로 이어진 것이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남동신 교수가 덕성여대의 원설립자인 차미리사 여사의 초상화 봉정식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총장의 경고를 받았고, 이 문제가 해임의 중요한 사유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사립학교를 탈취한 자들이 학교 내의 역사 바로세우기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박원국에 의해 해직당한 한상권 교수나 남동신 교수는 각각 한국학계에서 권위있는 월봉저작상과 한국사상사학회의 ‘올해의 논문상’을 수상한 빼어난 학자들이다. 학교를 발전시키려면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초빙해와야 할 우수한 학자들을 거리로 내모는 것이 오늘의 비리사학의 현실이다. 박원국의 덕성여대는 학내 분규가 계속되고 학생들이 농성 과정에서 책걸상을 모아 바리케이드를 만들자 아예 책걸상을 움직이지 못하게 용접을 하고 쇠사슬로 묶어버리기까지 했다.

규명되어야 할 학교인수 과정


사진/ 사학의 이사회 구조 변화와 권한의 분산없이 교육개혁은 공염불이 될 것이다.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1인 시위하는 덕성여대 남동신 교수.(강창광 기자)


현재 학내 분규를 앓고 있는 학교들의 경우 현재의 학교 경영진이 학교를 인수하게 된 과정이 의혹에 싸여 있는 곳이 이 밖에도 많이 있다. 1954년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설립된 계명대는 문제가 특히 심각하다. 1996년 이후에만도 신일희 현 총장은 본인이 고발한 것과 고소당한 것을 합해 모두 23건의 재판을 치렀다. 현 총장의 아버지로 설립자가 아니면서도 총장직을 아들에게 물려준 괴력을 발휘한 신태식 전 계명대 학장 역시 학원사유화 과정에서 계명대학의 설립자인 경북노회를 상대로 여러 차례의 재판을 치렀다. 현 총장을 비판하는 교수들은 신씨 일가가 미국 장로교 선교부와 경북노회가 설립한 계명대, 계성고, 신명여고 등 8개 학교를 설립자로부터 다 빼앗아 37년 이상을 한 집안이 독점운영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신일희는 2000년 1월 대법원으로부터 학원을 자기 일가의 사유물화하고 있다는 판결을 받았으며, 2001년 3월에는 횡령 등으로 유죄가 인정돼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학교를 사유물화하려는 신일희에 대해 1996년부터 학내에서 총장퇴진운동이 일어났고, 이 과정에서 총장과 재단은 한철순 교수 등 10여명의 교수들을 해직하였다.

경희대의 경우 심각한 학내 분규를 겪지는 않았으나 조영식 일가의 학교인수 과정과 관련하여 끊임없이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경희대의 전신은 독립운동의 요람이었던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6형제 중 유일하게 살아 돌아온 성재 이시영 선생(초대 부통령)이 세운 신흥대학으로, 학원의 이름도 성재학원이었다. 그러나 한국전쟁의 혼란과 이승만 독재권력의 이시영 선생에 대한 견제 과정에서 신흥대학은 불투명한 과정을 거쳐 조영식에게 넘어갔다. 조영식은 단지 학교의 연혁을 숨기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항일독립운동의 정신을 계승한 신흥이라는 이름이 “너무 속되고 대중적이어서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상호로나 쓰이는 이름이기 때문에, 천한 느낌마저 들어 심오한 학리를 연구하는 최고학부의 이름으로서는 부적당하다”라면서 경희대학교로 개명했다.

인하대학교는 원래 대한제국 시기 인천항을 출발하여 하와이로 이민을 간 재미동포들이 돈을 모아 1950년대에 인천에 건립한 학교이다. 이 학교 설립자는 하와이에 깊은 연고를 갖고 있던 이승만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박정희는 이 학교를 자신의 베트남 파병정책에 적극 협조한 한진그룹의 조중훈에게 불하했다. 이후 인하대 총장에는 한진그룹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교통부 고위관료 출신들이 많이 임명되었다. 현재 노건일 총장도 교통부 차관 출신으로 인하대 총장이 되었는데, 2000년 교수협의회의 중간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았다. 그 이후 인하대는 교수협의회 의장인 김영규 교수를 이사장과 총장의 명예를 훼손하고 노동운동에 개입하여 교수로서의 품위를 손상했다는 이유로 해직했다.

이 밖에 포항 시민의 대학으로 출발했으나 신동아그룹의 후원을 받는 기독교인들의 대학이 되어 지역사회와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는 한동대도 원래의 건학이념이 변질된 경우로 법정분쟁중이다. 사립고등학교 비리의 대명사인 상문고등학교도 원래 황희 정승에 버금가는 명재상으로 이름이 높은 명종 때 영의정 상진(尙震)의 후손인 목천 상씨 문중이 세운 학교였으나, 상춘식 일가가 학교를 사유물화하여 법정분쟁을 겪었고 상춘식 일가는 문중에서 영구제명되었다.

이처럼 한국의 대표적인 분규사학들은 현 경영진의 ‘소유권’ 획득 과정에서부터 심각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흥미있는 것은 이런 식으로 학교를 자기 것으로 만든 사람들일수록 자신들의 업적을 과장하고 학교의 ‘소유권’에 더 집착한다는 것이다. 박철웅이 건재하던 시절 조선대학교에서 발행한 보고서의 한 구절을 보자. “설립자님의 부인이신 정애리시 전 이사장님께서는 의과대학에서 해부학의 교재인 인골을 구하기가 극히 어려울 때에 서울시립 행려병사자 장의사로부터 연락을 받고 서울시 망우리 공동묘지에 직접 가셔서 6·25 때 묻힌 주인없는 묘를 서울특별시 불도저로 밀어서 길을 낼 때에, 그 불도저 앞에서 뼈를 우선 치마에 주워 담아서 푸대에 옮겨 가지고 오신 후 교실에서 표본을 만들게 하셨으며….” 가히 ‘엽기적인 그녀’보다 더 엽기적으로 학교발전을 위해 노력해왔다는 것이다.

이사 두세명이 나쁜 마음을 먹으면 학교의 설립자를 바꿔치고, 재단의 ‘소유권’마저 가로채는 판에 횡령이나 공금유용쯤은 식은죽 먹기다. 감옥갈 각오하고 서류를 빼앗아보지 않는 한 들여다볼 길이 없는 것이 사학재단의 운영이다. <한겨레신문>이 만들어질 때보다 훨씬 어려운 시기에 더 많은 사람들이 돈을 내어 설립한 조선대학교가 너무 손쉽게 박씨 일가의 개인왕국으로 전락한 사실을 상기해보자. 기업이야 주주총회가 최후의 보루일 수 있으나 사학재단에는 그런 것도 없다. 족벌사학의 부패와 비리는 고스란히 우리 아이들의 피해로 돌아온다. 한창 배움에 힘써야 할 학생들, 연구에 매진해야 할 교수들이 땡볕에서 비리재단에 맞서 농성해야 하는 현실. 이사회 구조의 변화와 권한의 분산없이 교육개혁은 공염불이 될 것이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한국현대사

 

 

8.2(수) -한국수력원자력노조의 탈원전 반대 투쟁 어떻게 봐야하나 

8.3(목) -한국수력원자력노조의 탈원전 반대 투쟁 어떻게 봐야하나

8.4(금) -안철수의 국민의당 대표 출마 선언에 대한 경영학적 해석

안철수 행보 흥미로와

정치인 행보 해석 어려워

안철수 정당은 자신이 현물 출자한 제2기업

오만한 기업인들 자기가 엄청 잘난 줄아는 중견기업 창업자 딱 요정도 해석하면 안틀려

자뻑에 빠진 사람들은 자기에 대한 작은 모독을 참지를 못해

강철수,MB아바타

노회한 정치인은 맞을 때 잘맞아야

자기 자신에 대한 과신이 강한 중소기업 창업자 마인드 벗어나지 못해

창당기자회견

"원내 제3정당이 무너지는 것은 당원만의 아픔이 아닙니다. 국민의당이 무너지면 거대 양당의 기득권 정치는 빠르게 부활할 것입니다. 국민은 그저 포퓰리즘의 대상이 되고 정쟁의 동원될 겁니다.

원내 제3당, 4당이 있어서 우리 정치에서도 협상하고 타협이 이뤄지는 모습을 지난 몇 달간 지켜보셨을 겁니다. 정치를 정치답게 만드는 것이 제3당의 몫이고 가치입니다.

그 소중한 다당제의 축은 우리 국민의당이 살아야 유지되는 것입니다. 국민의 민생을 위해 우리 국민의당은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안보를 위해 우리 국민의당은 단단히 바로 서야합니다. 국민이 대접받는 정치를 위해 우리 국민의당과 같은 튼튼한 제3정당이 있어야만 합니다."

다당제에 대한 엄청난 소신과 열망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어

2014년 새정치추진위원회 신당 만들 것처럼 하다 3지대 민주당과 합당

2017년 문재인 대표와 사사건건 갈등 탈당

다당제의 허구스런 말

안철수의 행보는 다당제건 양당제건 이게 중요한 게 아니었어

대통령이 되는데 어느게 유리한가가 중요했던 사람

경영학에서는 경영자들이 자주 저지르는 오류중에

텍사스 명사수의 오류가 있어

최고경영자 과정에 항상 나오는 소재입니다

텍사스명사수의 오류라는게 뭐냐면

텍사스에 사는 한 카우보이가 총을 벽에다 쏴

그런데 백발백중인 겁니다

벽에 보면 과녁이 동그랗게 그려져 있는데 

이 카우보이가 쏜 총알은 항상 동그라미 과녁 언제나 중앙에 박혀있어요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저 카우보이가 세계에서 제일 총을 잘 쏘는 사람인 줄 압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이유가 밝혀집니다

이 카우보이는 사실 총을 더럽게 못쏘는 카우보이입니다

어떻게 하냐면 벽에 총을 탕탕 쏩니다

총알이 아무데나 박혔겠죠

그 다음에 벽으로 쪼르르 뛰어가요

총알이 박힌 데다가 과녁을 그려넣는 겁니다

과녁을 그리고 총을 쏘는게 아니고 

총을 쏜 다음에 총알이 박힌데 위에 과녁을 그리는 거에요

이러니까 백발백중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이걸 왜 경영자들이 자주 저지르는 오류라고 경영학자들이 이야기를 하냐면

많은 경영자들이 어떤 경영상에 변화를 줄 때

무슨 엄청난 계획과 철학이 있어서 변화를 주는 게 아닙니다

대부분은 우연히 혹은 어쩔 수가 없어서

경영상에 변화를 주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면 어떤 회장님이 공장에 새 기계를 들여왔습니다

그런데 보니까 놓을 자리가 없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기존의 기계들을 다 재배치를 했습니다

사내 재배치를 한거죠

이 기계를 배치한게 엄청난 철학이나 의미가 있어서 한게 아니잖아요

기계를 놓을 자리가 없어서 어쩔수 없어서 공간을 재배치를 한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했더니 갑자기 일의 효율성이 엄청나게 높아진 겁니다

기계를 재배치한 건 우연이었겠지만

결과는 기적적으로 좋아진 거죠

이런 일이 벌어지면 이 기업 사장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면

기계를 재배치한 건 우연히 벌어진 일이니까

효율성이 높아져서 다행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그쳐야 하는데

대부분 경영자들은 이걸 사람들한테 자랑을 하고 다녀요

잘 봐 내가 원래 공장의 모습을 보니 기계 배치가 너무 비효율적이었던 거지

그래서 내가 요즘 공간공학을 공부하고 있거든 

공간의 배치가 경영에 미치는 효율성을 내가 3년간 연구를 한거야

그래서 내 학문적 지식과 내 뛰어난 경영직관을 겹쳐서

공장을 극적으로 재배치했더니 경영효율성이 내 예상대로 좋아졌어

이러고 자랑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자랑에서 그치면 좋은데 이 다음에는 자기최면의 단계로 들어섭니다

이  CEO 는 갑자기 이 공장만 말고 다른 공장도 다 바꿔

우리 사무실도 전부 배치 바꿔

책상은 저기 놓고 컴퓨터는 이리로 옮기고..

이러면서 다 바꿔버립니다

멀쩡한 사무실을 다 뒤집어 놓죠

직원들이 일할 시간에 책상 옮기고 다니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결과가 안나오잖하요

또 바꾸는 거에요

공간배치가 제일 큰 문제였어

프린터를 컴퓨터 위에 올려놔 난장을 피웁니다

이게 텍사스명사수의 오류라는 겁니다

총을 의도적으로 과녁에 잘쏴서 맞춘게 아니에요

총알은 그냥 날아갔고요

과녁을 나중에 그린겁니다

그런데 많은 경영자들이 우연히; 성공을 거두면

나중에 다 이유를 갖다 붙여요

원래 계획한거야

저 과녁은 원래 그려져 있었는데 내가 맞춘거야

이렇게 자기 최면을 걸고

자기의 위세성을 과장하고 조작하게 됩니다

전부 다 사실은 사후에 우연히 다 작은 인연을

자기가 한 걸로 다 과장하고 사후에 이유를 갖다 붙여요

총알은 우연히 날라가는데

과녁을 그리면서 갖은 이유를 갖다붙여요

대부분의 경영인들이 특히 자수성가한 경영인들이

이런 오류에서 못벗어나요

우연히 벌어진 성공인데 나중에 이유를 막 갖다붙여서

그게 자기 공이라고 떠벌이고 다닙니다.

안철수씨가 당대표 출마하면서 내세운 명분이

양당제 기득권론, 다당제 만세론이 다 이런겁니다

안철수씨 행보를 보면 양당제, 다당제가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자기가 대통령이 되는게 중요한 사람이죠

그런데 권력투쟁 새정치민주연합내에서 권력투쟁에서 밀리니까

대통령후보가 될 길을 찾아서 탈당을 한겁니다

그런데 이게 우연히 먹혔습니다

작년 총선에서 성공을 거둡니다

우연한 성공이었죠

민주당이 당시 호남으로부터 여러 이유로 고전을 했죠

새누리당은 새누리당대로 개판을 치고 있었는데

딱 그 타이밍에 등장한 국민의당이 국민들로부터

일정한 지지를 받습니다

이건 한국정치사에서 매우 드문 예외적인 우연이 벌어진 겁니다

그런데 이 우연의 일에 안철수씨는 과녁을 새로 그려넣어요

그,리고 자기만의 의미부여를 시작합니다

봐라 국민들은 양당제를 싫어한다

다당제만이 살길이다

우연한 성공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거둔 단 한번의 총선 성공의 의미를 지나치게 과장하는 거죠

그 과장에서 헤어나오지를 못해요

제가 만약에 양당제 기득권론, 다당제 만세론 주장을

심상정 전 정의당 대표나 김선종 민중연합당 대표나 이런 분들이

주정했다면 저는 그 진정성을 믿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이분들 주장에 동의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이분들은 정치인생 대부분을 끊임없이 양당제의 틀에서

진보정치의 틀을 확장하려고 노력했던 분들입니다

그리고 늘 실패에 가까운 결과를 얻으면서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사람들이죠

이런 사람들이 양당제 기득권론 다당제가 옳다 이렇게 주장을 하면

그건 철학이고 소신인거에요

이건 높게 평가를 해야됩니다

그런데 안철수씨는 대통령후보가 되는 지름길 찾느라

민주당과 합당했던 사람인데

양당제 구도를 기꺼이 받아들였던 사람인데

그러다가 당시 문재인 당대표하고 경쟁에서 패배하니까

당을 갈라놓고 탈당을 한 뒤에 

총선에서 거둔 우연에 가가운 작은 성공을

지금까지도 신화로 포장을 합니다

자기가 정치를 하는 명분으로 삼죠

그렇게 뒤늦게 자기가 그린 과녁

자기가 과대포장한 다당제의 의미 부여가

사실 지금 국민의당이 저지른 대선후보 의혹조작을 어떻게 덮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사람은 그런 착각에서 살아요

한가지;만 더 이야기를 드리겠습니다

심리학과 행동경제학에 보면

인간이 저지르는 여러 착각중에 제3자효과라는 착각이 있습니다

내용을 보면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2010년 우리나라 행정안전부가 운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어요

조사 결과를 보면 

운전중에  DMB 시청을 하는 사람을 처벌해야 될까요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1000명중에 응답자가 87.3%가 당연히 처벌해야한다고 답을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운전자들은 운전중에  DMB 시청하는 거에 대해서

압도적으로 처벌을 원한다는 여론조사가 나온 거죠

그런데 다음 질문이 뭐냐

그러면 당신은 운전중에  DMB를 시청한 경험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이었어요

이 대답에도 응답자의 89%가 예 저도 시청한 적이 있어요라고 답을 합니다

이게 뭘 뜻하겠어요

우리나라 운전자들 대부분은 운전중에  DMB를 시청합니다

그런데 처벌할까요 물어보면 당연하죠 처벌해야됩니다 이렇게 답을 하는거에요

이 말은 사람들은 남에게는 굉장히 객관적이고 엄격한 잣대를 들이댑니다

남이 DMB시청하는 건 범죄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자기한테는 굉장히 관대한 잣대를 들이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운전중에 DMB를 시청하면 처벌해야되지만

나는 태연히 운전중에 DMB를 시청을 합니다

이래서 이걸 제3자효과라고 부릅니다

안철수씨는 새정치를 이야기하고 양당제를 비판하고 그걸 자기의 정치 명분으로 삼는데요

보면 딱 이 오류에 빠져있어요

남에게는 진짜 엄격합니다

남이 하는 정치는 다 구정치에요

남이 DMB시청하는 건 처벌해야된다 주장하는 겁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한테는 너무 관대해요

대선후보 의혹조작이라는 황당하고 엽기적인 사건에

자기가 총책임자인데 나는 새정치해야하니까

나는 양당제 타파해야되니까

나는 정치를 해야되겠어

나는 대표를 해야되겠어

남만 처벌해라는 오류에 빠져있는 거죠

이렇게 자기에 대해서 의미부여가 과한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보면

이상한 영웅주의가 풍겨납니다

나만이 세상을 구할 거 같은 황당한 단어들이 나열이 됩니다

어제 기자회;견 맨 마지막을 보면 안철수 후보가 이런 말을 하죠

"조국을 구하지 못하면 살아서 돌아오지 않겠다는 각오로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넌 안중근의사의 심정으로

저 안철수 당을 살리고 대한민국을 살리는 길로 전진하겠습니다."

이렇게 발언을 하는데 본인은 비장한데

저는 피식 웃음이 나오더라고요

양당제가 일제 강점기가 아니잖아요

그걸 타파하는데 왜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는

안중근 의사 심정이 등장을 합니까

제가 이걸 듣고 이런 사람들

자수성가한  CEO들 대부분이 이렇거든요

자기가 영웅이라는 과대한 착각

자기의 성공에 뒤늦게 갖은 정당성을 부여하는

텍사스 명사수의 오류

그리고 나는 옳고 남은 틀렸다는 내로남불

대체 3자효과의 착각

참 여러가지 착각과 영웅주의에 사로잡힌 사람이구나라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

영웅주의와 과대망상에 빠진 중소기업 CEO 들을 많이 봤어요

이런 사람들이 오너니까 직원들을 부릴 수는 있어도

직원들의 마음을 얻는 거는 한번도 보지를 못했습니다

나만이 세상을 구할 수 있어 라는 오만과 착각에 바진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어요

저는 안철수의 선택이 딱 자기착각에 빠진 중소기업 CEO그것을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

너무 절절히 느껴졌던 어제 기자회견이었습니다

그게 제 총괄적인 평가소감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위인전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자기기망과 착각에 빠진 사람은 남의 말이 안들오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