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위법

2007. 6. 9. 12:41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원각경

728x90

불법을 들으면 지혜를 알게된다. 수행엔 부처님 가피를 입어야 한다. 부처 보살의 힘을 빌린다. 기도는 내적관찰이 안된다. 성취의 힘이 약하다. 자기 안의 번뇌는 제거하지 못한다. 마음의 고요함은 계에서 온다. 느낌 감각은 순수하지 못하다. 과거 경험 아뢰야식 등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번뇌의 불길이 꺼지면 재만 남는다. 이 것이 열반이다.

 

꿈에 물에 빠지는 사람은 업장이 두터운 사람이다. 수행하면 꿈이라는 걸 안다. 업장이 두터운 자일수록 많이 괴롭다. 정제업장. 관-념-상-지

 

원각은 주관과 객관이 없다는 소리다. 주객이 왜 생기냐 하면 상이 생기기 때문이다. 아상이 사라지면 객관도 사라진다. 모든 사물의 인연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걸 모르는 것이 무명이다. 말과 생각은 주인이 아니라 도구다. 자기 목숨을 스스로 못끊듯이 번뇌망상 끊기가 어렵다. 애증에는 아가 있어 도를 구하기 어렵다. 도와 세속적 욕망의 동시충족은 서로 반한다. 망상이 없으면 만법이 사라진다. 깨달았다는 생각도 아상이다. 지경사상 - 아상 인상 중생상 수명상 모두 자아를 바탕으로 하며 금강경에서 말하는 사상과 다르다.

 

모든 번뇌는 주관과 객관이 상대해서 일어난다. 주관인 심이 객관을 보기 때문에 번뇌가 인다. 관찰하는 마음도 관찰의 대상이 된다<이중관찰>. 다 사라지고 없다는 마음이 대상이 된다. 주객을 벗어나는 하나의 길이 된다. 조금이라도 깨달았다는 마음이 남아 있다면 인상이다. 미혹의 잠에서 깬 것이 깨달음이다.

 

일체 업을 아는 지혜가 깨달음이다. 깨달음은 무각이다. 뜨거운 물로 얼음을 녹이 듯이.

시각합본각 연즉각이각 각비각비각 여공무원익 – 조금이라도 미세한 망념이 남아 있으면 일체 유위다. 우리는 꽃을 보며 나팔꽃이라 이름 짓는다. 이 것이 유위다. 그러나 나팔꽃은 자신의 이름이 나팔꽃인지 모른다. 무엇이든지 사물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면 유위법이 된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감정을 덧붙이는 순간 대상이 부서지면서 마음의 동요가 일어 고통이 일어난다. 하물며 사물도 이런데 마음이랴….

 

미세한 생각은 과거나 미래로 끌려간다. 살아가는 자체가 과거 자기 경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아뢰야식에 저장돼 있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살아간다. 상대가 칭찬하든 비난하든 아상이 없으면 동요가 없다. 10년전 20년전 사물을 보면 기억이 떠오른다. 아뢰야식은 장식<창고>이다.

 

우리는 주관 객관이 상대하는 세계에 머물고 있다. 단지 증오와 사랑이 없으면 명백하다. 변계소집 6.7식 – 8식 의타기성 – 원성실성 진여. 정지견을 가진 사람을 구하라. 선악을 구분하지 못하는 자 선악을 구분하여 선만 따르는 자. 선악에 물들지 마라. 항상 상이 아닌 관을 통한 작을 하라. 관은 무분별이다. 관은 느낌도 생각도 아니다. 작<수행을 짓는다>. 임<법승을 맡긴다> 지<번뇌망상이 상한다>. 멸<번뇌망상이 멸한다>.

– 관<무분별> - 공<이분별> 

 

이상 원각경 강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