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를 발견하면 사물의 특성이 드러난다

2007. 6. 9. 12:04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원각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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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타.지란 정관으로 생각의 흐름이 그치는 것을 말한다. 저 환을 관한다는 것은 똑 같은 환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관찰하는 것은 업이다<동> 그러나 관의 내용은 무분별로 업이 아니다<부동> 정관 – 숙정경안 환관 – 대비경안 – 환지 환의 방편

마음이 고요해지려면 대상이 고요해져야 한다. 지=번뇌를 끊는다 부순다는 뜻이 있음.

 

환관 – 무상<고 공 무아> - 몸 <정관.공 환관.환 숙관.중도>

주관이 없어지니 객관도 없어진다. 숙관 – 정상<고요한 모습> 환화<변하는 모습 – 무지각명 공적영지> 정관 하나로도 깨달을 수 있고 환관 하나로도 깨달을 수 있다.

마음은 비어 있으나 맑다. 호흡을 잘 관하면 움직임이 있다. 이 게 무상이다. 몸도 마음도 인연화합에 의해 존재한다. 따라서 죽음에 임해서도 공포에 동요하지 않는다.  

 

호흡 또는 몸을 관찰하다 보면 어느 순간 없어지는 부분이 보인다. 관찰 부분이 떨리다 생크림처럼 녹아 없어지거나 배에 구멍이 뚫린다. 무상을 보라. 1단계 몸과 호흡 2단계 느낌 3단계 마음 4단계 법을 관찰하라.

 

중론사제품 중인연생법 아설즉시공 역위시가명 역시중도의 - 모든 존재는 연기적으로 존재한다.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서. 모든 존재가 스스로 존재하지 못하므로 모든 존재는 공하다. 속이 텅 비고 자성Atman이 없다. 연기는 실체가 없어 공이라 부른다. 사물은 임시로 이름 붙여진 가명일 뿐. 결정적 성질 없이 가치 중립적이다. 이 것이 중도의 의미다.

살아가는 자체가 유무가 아닌 중도다. 사람은 집착이 강할수록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 건망증도 무섭지만 되풀이하는 것도 무섭다. 고통도 실체가 없음을 본다. 정념으로써만 환을 관할 수 있다. 관은 통찰력이다. 내장도 본다.

중생 구제도 관으로 한다. 육근에 의지하여 분별하지 마라. 이 것이 범부와 성인의 차이 다.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는 것도 원각의 작용이다. 무상을 통해 무아를 발견하면 사물의 특성이 나타난다. 중생을 물에 뜬 달같이 보라. 무상이란 변화를 말한다. 과거는 흘러가서 공이고 미래는 오지 않아 공이다. 현재도 순간순간 변하니까 환이고 공이다. 그러므로 환을 멸하라.

성상상주 – 성상은 공과 환 내재된 본성은 상주 무변 변하지 않는다. 성을 보매 상을 안다.

 

사마타<고요함 선정> – 정관의 대상 – 공<불변>고요함을 취하여 수행

사마발제<바른생각 지혜관찰> – 환관의 대상 – 환<수연>환의 마음 육근육식의 환 제거 

선나<수식관 정혜> – 숙관의 대상 – 중도<진여 원각>고요함과 환인 것을 아는 앎에서 탈출 

불변과 수연의 모습을 다 같이 본다. 이를 통해 숙멸이 나타난다. 환이 멸하면 나타나는 게 원각이다. 세상의 분리되지 않은 모습이 드러난다.

 

부처님 손을 솜에 비유한다. 몸을 단련해서 그런 게 아니라 무아를 체험해서 그렇다. 마음에 걸림이 없다. 불법을 들으면 지혜를 알게 된다. 수행엔 부처님 가피를 입어야 한다. 기도는 내적 관찰이 안 된다. 수행 성취의 힘이 약하다. 기도로는 자기 안의 번뇌를 제거하지 못한다. 감각 느낌은 순수하지 못하다. 과거 경험 아뢰야식 등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번뇌의 불길이 꺼지면 재만 남는다. 이 게 열반이다.    

 

이상 원각경 위덕보살장 변음혜보살장 강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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