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6. 9. 12:56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모든 것은 삶의 인과 연으로 존재한다.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염주는 실로 인해 염주를 함께 꿰어 놓은 것이다. 이와 같이 색수상행식 과거현재미래 기억 판단 감각적 인식 등이 집착이라는 끈으로 묶여 있다. 자아나 나라는 생각이 강하면 끈을 벗기가 어렵다.
비나 햇빛은 책보다 훌륭하다. 실망은 인간적 감정이다. 실망하면 어떻게 생겨났는지 본다. 그러나 무에 집착하거나 허무는 다르다. 나는 누구도 필요치 않아. 아무 것도 하기 싫어.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싫어. 그러나 이 말 속엔 여전히 고통을 싫어하는 내가 있다. 나라는 생각이 허무를 만든다.
더 이상 고통이 자신만의 고통이 아님을 알면 세상 보는 시야가 넓어진다. 대자대비great love great sadness 고통이 슬픔으로 큰 슬픔이 큰 사랑으로 바뀐다. 개인적인 고통에 집착하면 세상을 도울 수 없다. 큰 사랑은 오근이 이 순간을 정확히 깨닫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을 성취하라. 탕!
무상관 부정관 무아관을 모르면 사람 노릇하기 어렵다. 부처님 겨자씨 얘기는 무상<시간>은 돌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형상과 생각이 오가는 것을 관<부동>할 때 모든 형상은 만들어지고 재생<윤회>된다. 무상을 관하면 집착이 끊어진다. 그러나 욕망에 집착하면 무상이 고통이 된다. 무상은 우리를 쫒는 사냥꾼이다.
자신을 이 몸과 동일시 하지 마라. 즐겁다 불쾌하다 좋다 싫다하는 분별은 마음이 만든다. 이런 감정들은 부정관을 가지게 한다. 우리가 맛 있게 먹는 김치를 서양 사람이 먹으면 운다. 외국에 나가서도 맛 없다고 우리 입맛에 따라 고추장 넣는다. 이 것 역시 상황에 따라 조건화된 것이다.
무아란 독립적인 실체가 있어 현상 상황을 만든다는 것이 아니다.
시계는 영혼이 없다. 개체 부분이 합해진 것이다. 시계 처럼 우리 몸도 색수상행식 오온이 합쳐진 존재다. 본래의 나 자아가 없다. 시계를 분해한다고 시계가 하지 말라 하겠나? 서양 사람들은 내가 없어진다면 겁을 먹는다. 하지만 자아가 없어지면 기분이 좋아진다. 직접적인 감정과 관계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불성은 있는 것인가? 개도 불성이 있다는 데. 불성은 영원하다는 말은 수단이다. 불성 불성하니 너무 불성에 집착하는 자들이 많아졌다. 잘라야 한다. 불성은 원래 소리가 끊어진 자리다. 나무 보고 불성을 물으면 그저 바람에 흔들릴 뿐이다. 아이에게 불성을 물으면 이해하지 못하고 쳐다볼 뿐이다. 생각하지 않으면 어떻게 불성이 마음에 만들어지나. 아무 것에도 불성이 없다면 마음이 실망할 거다.
그래서 방편이다. 처음 사람을 가르칠 때 의식을 가지고 가르치려니 생긴 말이다.
나는 아무 것도 원하지 않아. 이 말은 강하게 원한다는 소리다. 자유로운 마음이 아니라 원하는 마음이다. 정말 자유롭다면 앞에 우유를 두고 마시든 안 마시든 그 건 당신 마음이다. 집착이 끊어지면 가장 끔찍한 업이 일어나도 집착하지 않는다. 집착하지 않으면 무엇이 나타나든 상관하지 않는다.
8만4천 법문은 8만4천 가지 고통에 대한 치료법을 말한다. 고통은 무명 때문에 일어난다. 무명은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함을 말한다. 옳다 그르다 높다 낮다 더럽다 깨끗하다 같은 생각 때문에 좋다 싫다 하는 자신의 차별심으로 본다. 차별이 없으면 무명도 없다. 무명은 이분법적 사고다.
수행은 하나 됨을 의미한다. 아담과 이브 신화는 오랜 얘기가 아니다. 신화 속엔 정신적 수행을 암시하고 있다. 본래 우리에겐 아무 업도 운명도 없다고 육조스님은 말하셨다. 처음 습관이 우리의 정체였다. 습관의 집착에서 벗어나면 마음으로 돌아간다. 수행하지 않으면 자신의 생각을 실제라고 생각한다.
말이나 언어에 집착 말라. 이용하되 집착 말라. 이름은 우리가 형태에 부여한 의미다. 시계 보고 누구냐고 물으면 대답이 없다. 시계를 해부해서 하나 씩 버리면 시계는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 업도 이와 같다. 언어가 얼마나 취약하며 무상한지 알라. 말을 쓰되 통제하라. 말이 짓는 업을 알아차려라.
묵언은 치유력이 강한 수행이다. 얼마 동안 말을 하지 않으면 머리 속에 얼마나 하고싶은 말이 많은지 알게 된다. 말을 쓰되 통제하라. 말 한 마디에 한 사람의 생이 무너진다. 성인은 필요할 때 말하고 필요치 않을 때는 말을 안한다. 말이나 언어는 상대적이다. 정말 원하는 것만 말하라.
이상 청안스님 선불교 이야기 강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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