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불교

2007. 6. 9. 22:40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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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C 1730년경 인도에 침입한 Aryan백인들의 종교인 인도의 힌두교는 여타 다른 고대민족과 같이 애니미즘적인 자연숭배적 원시신앙이 지배하고 있었고, <베다 Veda>와 <우파니샤드 Upanisad>에 근거를 둔 브라마니즘(Brahmanism)이라는 제사종교가 지배하는 계급차별사회였다. 우주의 근원적 근원으로는 브라만(Brahman, 梵神)을 상정하고, 개인 속에 내재하는 원리로는 아트만(Atman, 俄, 靈我)을 설정하여, 이 두 원리는 동일한 것(梵我一如)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또 인간의 행위는 전생(前生)의 업(業, Karma)에 지배된다고 하는 결정론인 숙명론적 운명론적 신의론적(神意論的)인 사고를 지니고 있었고, 현재의 행위는 미래의 고락(苦樂)을 결정한다는 윤회(輪廻)사상이 지배하고 있었다. 이 윤회로부터의 해탈이 당시 갖가지 사상으로 나타났다. 불교 역시 이 업과 윤회, 해탈의 상을 종합정리 체계화시킨 종합사상이다. 다만 브라만이나[常見] 사문[斷見]들과는 전혀 다른 정법(正法, 緣起法則)을 기준으로 전개된 것이다. 샤캬무니 부처는 29세에 야쇼다라(Yasodhara)공주와 아들 라후라(Rahula)를 떠나 태자의 자리를 버리고 출가하였는데, 수행방법은 처음에는 당시 유행하는 선정(禪定)과 고행(苦行)이었다. 육사외도(六師外道)로부터 수행을 배웠으나 만족하지 못하고 당시 최고의 사상가인 알라라 칼라마(Alara Kalama)와 우다카라마푸타(Uddakaramaputta)에게서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과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을 연마하였으나 그 이상은 배울 수가 없어 당시의 6년 고행을 포기하고 나이란자 강에서 목욕하였다. 이 목욕은 당시 풍습 으로는 파계에 해당한다. 부다가야(Buddhagaya)는 보리수(菩提樹) 나무 아래에서 7일 낮밤을 사유명상하여 깨달음을 얻었다. 부처가 깨달은 진리를 법이라 하며, 그는 이 법을 펴기 위해 베나레스(Benares)의 녹야원(鹿野園)으로 가서 그곳에 있던 다섯 수행자에게 최초의 설법인 초전법륜(初轉法輪)을 하고 그들을 제자로 삼았다. 이로써 불교는 교조(佛) · 교리(法) · 교단(僧)을 갖춘 삼보(三寶, Three fold refuges)의 종교로서 삼위일체(三位一體)를 이루고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이때부터 부파불교 이전까지를 원시근본불교시대라 부른다.


(1) 원시근본불교시대
원시근본불교시대의 중심교리는 연기의 이법(理法)에서 출발한 중도(中道)사상이다. 여기에는 제일차적인 세계관, 우주관, 존재관은 12처(12處=界) · 4대(四大) · 오온(五蘊) · 오취온(五取蘊)등이며, 4법인(四法印)은 이들에 대한 명쾌한 해탈법이며,이어서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의 현실이상의 실천적인 제시가 사성제(四聖諦, fournovel)의 가르침으로서 이 실천덕목은 올바른 8가지 길인 ‘팔정도(八正道)’이다. 8정도(Eight fold path)는 ① 바른견해(正見, Samma-ditthi), ② 바른생각(正思惟, Samma-samkappa), ③ 바른말(正語, Samma-vaca), ④ 바른행위(正業, Samma-Kammanta), ⑤ 바른생활(正命, Samma-ajiva), ⑥ 바른노력(正精進, Samma-vayama), ⑦ 바른결심(正念, Samma-sati), ⑧ 바른집중(正定, Samma-samadhi) 등이다.

인간의 존재를 설명한 네 가지 진리는 사성제로서 첫째는 고(苦)를, 둘째는 고의 근원[苦集]을, 셋째는 고에서 해탈함[苦滅]을, 넷째는 고에서 해탈하는 방법[苦滅道]을 제시한 것이다. 인간의 적나라한 현상을 파악한 이상을 향한 제시이다.

또한 원시근본불교의 실천요목을 계(戒) · 정(定) · 혜(慧) 삼학(三學)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계는 지켜야 할 정법(正法)을 잘 지키는 것과 버려야 할 사법(邪法)을 버릴 줄 아는 자율성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며 이것이 잘 진행되면 나타나는 것이 정이다. 정은 보이고 들리고 알게되는 단계로써 이는 흔히 삼매(三昧, Samadhi)라고 일컫는 지관(止觀)인 비빠싸나(Vippasana)이다. 혜(慧)는 계 · 정의 단계에서 증득(證得)되는 단계이다. 이것은 지혜이며 완성이며 인생으로서의 완성의 단계이다. 이를 반야지(般若智)라고 하며 보통의 지혜를 뛰어넘는 지혜를 말한다. 이 반야지를 해탈(解脫, vimutti)이라고 하며 깨달음(覺, bodhi)과 오(悟)의 동의어로도 사용한다. 사실 이러한 모든 실천수행과 깨달음은 연기의 법칙을 깨달은 데서 기인한다. 이 연기의 법칙(Paticca samuppada)은 인연기과(因緣起果)의 법칙(法則)이라고도 한다. ‘paticca’란 ‘on account of’ ‘Because of’ ‘concering’의 ‘까닭’, ‘연유’‘원인’ 등의 조건(條件)의 의미이고,‘Samuppada’란 ‘comming into existence’ ‘appearance’ ‘rising’인 ‘발생(發生)’ ‘생기(生起)’ ‘출현(出現)’의 뜻이다. 즉 모든 존재는 법(法=水+去, 來)으로서 이 법이 조건[緣]에 의한 인연(因緣)관계 속에 있음을 파악하는 직관(直觀)이나 관찰(觀察)의 이야기이다.

이러한 근본불교교리를 중심으로 석가는 45년 동안 교화활동을 하며 승단을 이끌다가 80세가 되는 서기전 544년 열반[入寂]에 들었고, 승단은 마하가섭 등이 중심이 되어 석가가 제정한 율(律)과 교법(敎法)을 유지하게 되었다.

제자 우파리가 율(律)을, 아난다가 법(法)을 말하여 차례로 정리해나간 경전의 결집(結集)이 제1회 경전 편찬이며 2회, 3회, 4회까지 연속되었다.

인도의 불교는 마가다국을 근거지로 여러 도시의 왕후와 일반서민의 귀의를 받으면서 각지로 전파되어갔다. 특히 서기전 317년경 찬드라굽타(chandra-gupta)에 의하여 인도 최대의 통일국가인 마우리아왕조가 성립되고, 이 왕조 3대왕 아쇼카(Asoka)가 즉위한 뒤 불교는 비약적인 팽창을 하여 카슈미르와 간다라지방을 비롯한 인도의 각 지역과 박트리아의 그리스인 식민지역, 스리랑카와 미얀마 등 국외에까지 전파되었다. 그러나 불교의 급속한 팽창과 유통은 일면 교단자체의 질서 면에서 많은 문제를 제기하였고, 그것은 드디어 교파분열을 초래하였다. 석가의 열반후 100년경, 계율의 해석차이로 인하여 전통적 보수파와 진보적 자유파가 대립되어 두개의 부파를 낳았다. 전자를 상좌부(上座部)라하고, 후자를 대중부(大衆部)라 한다. 부파발생의 원인은 부처의 교법을 받아들이는 자세와 교단질서 확립에 대한 의견 차이에서 유래되었다. 부파는 분열하여 18개 내지는 20개의 부파로 전개되었으나 부러진 20개의 금지팡이와 같이 분열되었으나-그 근본불교의 부처님 법 즉 금인 것만은 변함없는 것임을 유의하여야 한다. 대표적 부파로는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독자부(犢子部), 설산부(雪山部), 화지부(化地部), 음광부(飮光部), 경량부(經量部)등이다. 이와같은 불교의 부파적 전개는 외적 확대와는 달리 부처님 당시의 근본불교의 순수성이나 참신성을 잃고, 율(律)과 경(經=法)에 대한 훈고학적인 주석학을 중심으로 하는 아비달마(阿毘達摩,論藏)불교의 발달을 보게 되었다. 또한 불교는 승원(僧院)중심, 출가(出家)중심의 학문불교로 변화하여 대중성을 잃어갔고, 일부에서는 저급한 미신적 신앙과 결부되어 석가당시의 탄력성을 잃고 말았다.

이러한 경향에 대하여 불교 본래의 모습으로 복귀하려는 운동이 진보적 입장을 대표하던 대중부 및 재가(在家)의 불교도가 주동이 되어 일어났다. 이것을 대승불교운동이라고 한다. 대승불교가 흥기한 것은 서기전 1세기 경이나 태동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고있다. 그러나 이는 원시근본불교로 되돌아가기 위한 회복운동이다. 부파불교의 아비달마적 불교를 대승불교에서 소승불교로 부르고 있으나, 그것은 부파가 가지고 있는 시대적 편협한 관점이었을 뿐 소승불교가 따로 존재한 것은 아님을 유의하여야 한다. 그리고 북방불교를 대승불교라 하고 남방불교를 소승불교라고 부르고 있으나, 이것은 그 영향의 과다를 나타내는 말일뿐 소 · 대승으로 나누는 것은 별의미가 없다. 다만 부처님사상을 소아적으로 해석하고 소승적 출가 위주로 보는 것이냐, 아니면 대아적으로 보아 대승적 대중적으로 보느냐에 달린 것일 뿐이다. 불탑신앙과 공관(空觀)으로 일컬어지는 대승의 특색도 사실은 원시근본불교의 보시(布施) · 지계(持戒)를 중심으로 한 공덕(功德)사상이 승화된 것이 불탑(佛塔)신앙이고, 사법인(四法印) 중의 무아사상(無我思想)이 공(空, Sunya), 공성(空性, sunyata)이라고 하는 반야지혜(般若智慧)의 사상으로 회복되었을 뿐이다. 대승의 경전으로는 반야경, 법화경, 유마경, 아미타경, 십지경 등이 있고, 소승 부파경전으로는 북전으로 전승된 4아함(四阿含,Agama)이 있는데 남전의 5니까야(Nikaya)보다 더 값진 부처님의 직설에 가까운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대승의 공사상을 확립한 대표적 인물은 남인도 출신의 용수(龍樹)로서 그의 중론송(中論頌)은 부파불교가 지닌 오류를 결정적으로 논박하였다. 용수이후에 여래장사상을 천명한 승만경, 해심밀경, 능가경 등이 있으며, 특히 해심밀경의 유식설(唯識說)은 270∼480년 사이에 미륵, 세친, 무착등에 의해 체계적으로 정리된 사상으로 용수의 공사상과 함께 불교사상의 2대조류를 형성하는 학설이 되었다. 용수는 불교의 기본교리인 연기를 보다 심오한 체계로 전개하여 경험에 나타난 모든 대립을 부정하는 절대적 일원론을 주장하였다. 그는 대립의 도식(圖式)을 생과 멸(生滅),오는 것과 가는 것[去來], 중단과 계속[斷想], 같은 것과 다른 것[同異] 등으로 분류하였고, 중생과 부처 윤회와 열반은 본질적 일원적 입장에서 동일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이 본질적 동일성을 아는 지혜가 반야라고 하였다. 또한 용수의 학설과 항상 대립되는 입장을 지닌 무착과 세친의 유식사상은 용수의 절대적인 일원론의 입장을 시인하면서도 인간존재의 구성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려고 상당히 복잡한 관념론을 내세웠다. 그들은 이 세상이 사유적 구성(思惟的構成)으로 되었다고 주장하고, 사유를 떠나서 외계(外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결국 외계라고 생각하는 것도 주관적 사유의 투영에 지나지 않으며,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의식의 흐름, 즉 아라야식(a-laya識)뿐이라는 것이다. 즉 아라야식 행업(行業)을 쌓음으로써 일정한 경향을 형성하고, 이 형성에 의하여 사람의 성격도 결정된다고 보았다. 공(空)사상과 유식(唯識)사상은 세친 이후 2대학파를 형성하였고, 7세기에 이르기까지 이 두 학파는 인도 대승불교의 양대산맥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7세기 중엽에서 말엽에 이르는 시기에는 새로운 불교의 대두를 보게된다. 곧 밀교(密敎)의 발흥이다. 밀교사상은 석가당시부터 주법(呪法)으로 전해오던 주구(呪句)나 진언(眞言, mantra), 다라니(陀羅尼, dha-rani)를 송지(誦持)하면서 그것으로 마음을 통일하고 궁극의 경지에 도달하여 불(佛)이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불교의 일파이다. 7세기 중엽에 이르러 이러한 사상이 종합되어 대일경(大日經), 금강정경(金剛頂經)과 같은 문헌으로 나타남으로써 밀교의 기초가 확립되었다. 이것은 불교의 힌두교화이며, 힌두교의 불교화이다. 티벳밀교는 라마교로 정착되었다. 인도의 불교는 이렇듯 동화되기 시작하였고, 오히려 중국, 한국, 일본에서 흥왕되기 시작하였다. 이와 더불어 회교국의 인도 침입으로 1203년 불교의 외형적인 형태는 절멸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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