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모든 것은 그대로 진리이다

2007. 6. 15. 22:47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화엄경·보현행원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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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의 입장에서는 두두물물(頭頭物物) 사사물물(事事物物),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생물과 무생물에 이르기까지 이 세상에 존재

하는 그 모든 것은 그대로 진리라고 봅니다.

 "어느 것은 진리이고, 어느 것은 진리가 아니다."

 이렇게 취사선택(取捨選擇)을 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그대로 전부 존엄성과 그 가치를 가지고 있다.


또 존엄성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부가 다 불생불멸의 영원한 존재

이다. 깨달음의 세계에 있고 진리 법계에 있다고 하는 입장으로 이해하라는 것입니다.이렇게 우리가 이해했을 때 어떤 것은 배척하고 어떤 것은 받아들여서 좋다 나쁘다 그렇게 분별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진실로 그러한 경지에 이르렀다면 이제는 우리에게 더 이상의 고통과 괴로움이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중생들의 문제는 전부 취사선택에서 비롯됩니다.

사랑하고 미워하는데 있습니다.

3조 승찬(僧璨) 대사는『신심명(信心銘)』의 제일 중요한 대목인 첫 구절에서 이렇게 읊습니다.


 " 지도무난(至道無難) 유염간택(唯嫌揀擇)

 지극한 도(道)는 어려울 게 없다. 오직 간택하는 것을 싫어할 뿐이다."


 진리라고 하는 것은 우리들이 가려내어 선택하고 가지는 것을 싫어합니다.

간택하는 그 마음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선별하는 마음을 왜 버려야 한는가 하면 본래로 진리라는 것은 간택하도록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간택이라는 것은 내 기준으로 볼 때 생기는 것입니다.

나의 잣대로 볼 때 선하고 악하고, 좋고 나쁘고,

가깝고 멀고 하는 상대가 생기는 것이지,

진리 그 자체에서 볼 때는 결코 이분법으로 나룰 게 없습니다.


 쌀 속에 뉘가 섞여 있다면 쌀은 쌀대로 가치가있고,

뉘는 뉘대로 또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런데 쌀의 경우를 두고 볼때 뉘는 좋지 않은 것이 됩니다.


아마도 나락을 찧기 전에 이미 쌀이 그 안에 섞여 있다면 쌀을 골라 내어야 할 것이고, 반대로 쌀로 찧고난 뒤에도 나락이 몇 톨 남아 있다면 그 때는 또 나락을 골라 내어야 할 것입니다.


나락과 쌀의 기준에서 서로를 분별하여 바라보니 간택의 문제가 대두되지만

하나하나의 기준에서 볼 때에는 엄연한 존엄성이 있는 것입니다.

둘 다 독립된 존재로 가려서 버리고 할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잣대를 가지고 편을 가르는 업이 치성하여 자꾸만 분별하고 재고 있습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이 우주 삼라만상이 그대로 청정법신 비로자나 부처이고, 그 속에서 들려오는 모든 소리는 그대로 또 부처님의 설법 소리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쌀은 쌀대로 부처이고, 뉘는 뉘대로 부처라는 말입니다.

또 돌은 돌대로 부처고, 풀은 풀대로 부처입니다.


 이러한 견해가「 화엄경 약찬게」에 너무너무 잘 나와 있습니다.

땅을 맡은 신이라고 해서 주지신(主地神), 수풀에 깃들려 있다고 해서 주림신(主林神),물을 다스리는 주수신(主水神), 불을 조절하는 주화신(主火神),

바람은 바람을 맡은 신이라고 해서 주풍신(主風神), 농사를 맡은 신은 주가신(主稼神), 허공은 허공대로 신[主空神]이고, 밤도 신이고[主夜神], 낮도 신[主晝神]입니다.


 어디 신 아닌 게 없습니다.

전부 신입니다. 전부가 다 하느님이에요.

사람은 사람대로 하느님이요, 소는 소대로 하느님이요, 꽃은 꽃대로 하느님이요, 비는 비대로 하느님인 것입니다.


또 인간 가운데서 가장 높은 천자(天子)들입니다.

해도 천자요[日天子], 달도 천자[月天子]입니다.

있는 것은 있는 것대로, 없는 것은 없는 것대로 전부 신격화(神格化)한 것이고, 보살격화(菩薩格化)한 것이고, 불격화(佛格化)한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 신이라고도 하고 보살이라고도 하며 부처님이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무엇이라고 불러도 상관없습니다.

신이니 보살이니 부처니 하는 것은 최고의 가치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 이상 더 높은 가치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고 가장 값나가고 가장 가치있는 존재가 신이고

보살이고 부처입니다. 그것을 어떤 특정인에게만 붙이는 게 아닙니다.


사사물물 다 부처입니다. 어디 붙이지 않은 데가 없습니다.

심지어 양보하는 마음은 양보하는 부처요, 화내는 마음은 화내는 부처라,

신경질 부리는 사람은 신경질 부리는 신이요, 보살이라 하여 이렇게 나가는 것입니다.


 이게 도의 본모습인데 우리들은 그냥 우리들의 잣대로 분별을 해댑니다.

선심(善心)은 선심의 보살이고, 또 악심(惡心)은 악심대로의 보살입니다.

이랬을 때만 선심이고 저랬을 때는 악심이다 한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정말『화엄경』에서는 낱낱에다 신의 이름을 붙이고 일체처가 문수사리라고 그럽니다. 그리하여 모든 곳이 금색 세계일 따름입니다.


모든 곳곳이 찬란하게 금색으로 빛나는 세계인데 어디로 버려야 할 세계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간택하는 마음만 버리면 저 빛나는 우주 법계 전부가 다 나의 세계로 들어옵니다.

 

 "있는 그대로가 진리이다." 라고 하는 입장을 우리 생활에 이끌어다가 생각을 하면 좋은 교훈이 됩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공연히 나의 잣대로 잘라서 좋은 사람이니 나쁜 사람이니 저 사람의 성격이 어떻느니 하지 말고 가만히 두고 보세요.

그대로 두고 그대로 봐버리는 것입니다.


 성내는 것은 성내는 부처입니다.

성내는 하느님이고 성내는 보살입니다.

양보하고 베푸는 마음만이 부처가 압니다.

빼앗는 것도 빼앗는 그대로의 부처고 보살인 것입니다.


적어도『화엄경』에서는 그렇습니다.

아무런 조건이 없습니다. 이런 요원한 것을 인간 관계에 끌어다가 해결하면 그렇게못견딜  정도의 심한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사사(事事)가 다 부처고 진리라는데 하물며 사람은 더 말할 것이 없습니다.

백 번도 더 부처지요.

괜히 내 상식을 가지고서 옳으니 그르니 하지 말고 그대로 봐 주면 문제가 훨씬 가볍습니다. 부처로까지는 못봐주더라도 그 나름의 존귀한 인격체를 인정하게 됩니다.

 

출처 : 염화실

출처 : 작은풀잎하나맘
글쓴이 : 아침햇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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