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6. 27. 10:28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화엄경·보현행원품
[믿고, 상대하지 말고, 나를 태워나가라!-고난을 이기는 방법]
고난을 이기는 방법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믿음'입니다. 현재 어려움이 내 눈에 어떻게 보이고 어떻게 느껴지더라도, 나는 반드시 이 어려움을 이겨나갈 수 있다는 것을 의심치 않는 것입니다. 나의 무한한 능력, 나의 정성, 그리고 이 세상의 은혜로 나는 반드시 이 고비를 넘길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나는 반드시 이 어려움을 이길 수 있다! 세상은 절대 자비, 절대 우리 편이다! 나를 그냥 놔 둘 리가 없다! 내가 절망하고 여기서 좌절하면 모르지만, 내가 노력하는 한 반드시 세상은 변하고 내 뜻과 같이 된다! 이렇게 믿는 것입니다.
둘째, 나에게 다가오는 그 어떤 어려움도' 상대하지 않는 것'입니다.
상대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려움이 올 때 어려움을 그냥 내 버려 두라는 것이며 그것을 보지 않는 것입니다.
어둠에서 어둠을 보지 말고, 절망에서 절망을 보지 말고, 아픔에서 아픔을 보지 말고, 고통에서 고통을 보지 않는 것입니다. 마음이 흔들리고 아픔이 물밀 듯 밀려올 때에도, 아픔을 보지 말고 어둠을 보지 않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는 희망, 절대 긍정, 그것만 보고 그것만 상대하는 것입니다. 어둠이 밀려오면 밀려올수록 어둠을 보지 말고, 어둠과 상대하지 말고, 더 밝은 미래, 더 밝은 내일만 보는 것입니다.
셋째, '나를 태우는 것'입니다.
나를 태운다는 것-그것은 열심히 사는 것일 수도 있고, 종교를 가지고 있으면 더 열심히 종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고통이 심하면 심할수록, 온 세상이 잿빛으로 변하면 변할수록 우리는 나의 삶과 나의 정성으로 더욱 더 스스로를 태워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 세상아, 온통 잿빛으로 변해라! 나는 그럴수록 더 나를 태우겠다! 내 스스로 타 올라 나를 덮어오는 이 어둠, 나를 통곡케 하는 이 절망을 온 몸으로 헤쳐나겠다! 나를 태우고 또 태워 나의 빛으로 모두 환히 밝히겠다! 너는 그렇게 오고, 나는 그렇게 간다! 얼마든지 오너라! 나를 태움으로 너를 맞으리라!
이렇게 마음먹고 더 열심히 밥 먹고 더 열심히 잠자고 더 열심히 일터로 나가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 종교적 가르침은 큰 힘이 됩니다.
가령 불자라면 더 많은 절을 하고 더 많은 경을 읽고 더 많은 서원을 바치면 될 것입니다. 또한 불자 아닌 분들은 당신의 종교에서 가르치시는 대로 더 많은 기도, 더 많은 정성을 알지 못할 분에게 바치면 되겠습니다. 일상은 일상대로 열심히 살며, 종교적 가르침을 더 깊은 믿음으로 지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고, 그렇게 희망만 보며 그렇게 나를 태워나가면 이 세상은 반드시 보답이 옵니다. 우선 숨막힐 듯 죄어오던 일들이 어느 순간 여유롭게 변하며, 높이 모를 거친 모습으로 달려오던 물결들이 모두 부드럽게 우리를 어루만지기 시작합니다.
삼킬 듯 달려들던 매서운 눈보라 역시 어느덧 따스한 훈풍으로 바뀌며, 그와 함께 웅크리고 잠자던 우리 생명이 새롭게 돋아납니다. 그리하여 무너져만 가던 내 가슴이 희망으로 차오르기 시작하며, 날은 어느새 점점 밝아만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틀림없이 이루어지는 사실입니다.
내가 나약하고 내가 더 크게 용기를 내지 못해 그렇지, 그렇게 믿고 그렇게 보며 그렇게 살아가면 반드시 이루어지고 마침내 나타나는 엄연한 현실인 것입니다.
따라서 정녕 그렇게 믿고 그렇게 보며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아무리 내 가슴에 회의가 오고 불안이 오며 걱정이 태산같더라도, 우리는 그렇게 믿고 그렇게 보고 그렇게 삶을 지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이 칠흑같은 어둠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普賢合掌
*덧글
이러한 방법은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해서도 좋은 방법입니다. 혹시 내 주위에 가까운 분들이 좌절과 절망, 우울, 집착 속에 빠져 있으면 이렇게 해 보십시오.
먼저 저 분은 반드시 좋아진다! 이 어려움을 저이는 극복할 수 있다!-이런 메시지를 내 스스로와 상대에게 강하게 전달합니다.
그리고 그 분이 어떻게 생활하고 어떤 어두운 모습을 보이더라도 그 모습에 속지 않고 어두운 모습을 내 마음 속에 결코 그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분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지어나갑니다.
다만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세속의 일이 아니라 세속 밖의 일입니다. 세속 일은 한계가 있고 결코 마음의 밝음을 어두운 분에게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현실적인 도움을 주는 것 외에, 세상 밖의 도움을 우리가 대신 청해야 합니다. 그것은 '기도'입니다. 기도만이 참으로 어둠을 거두어 줍니다.
자신이 직접 하지 않아도 가까운 분들이 대신 해 주는 기도가 당사자의 어둠을 몰아낼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이 '울림(緣起)'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근본 자리가 '울림'이기에, 우리가 세상에 바치는 정성은 세상의 근본 자리를 '울리게' 합니다. 공명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기도가 다른 이의 아픔을 가져가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우울증, 집착증(의처증, 의부증, 알콜중독, 도박 등) 등이 있는 분들의 부모나 배우자, 또는 자녀들이 능히 한번 시도해 볼 일입니다.
아픈 당사자 보고 자꾸 뭘 원하지 마시고, 그 아픈 이들의 아픔만 보시지 말고, 그래서 함께 괴로워만 하시지 말고, 그 아픈 이들을 위해 당신 자신이 한번 기도해 보십시오. 그렇게 믿고 그렇게 보며 그렇게 기도해 나가 보십시오! 반드시 당사자가 변합니다...*^*^*_()_
*덧글 하나 더.
광덕큰스님이 걸어 가신 길도 그러합니다.
큰스님은 60년대 그 어두운 한국 불교계의 풍토에,
우리 생명이 부처님 무량 공덕 생명임을 믿어 의심치 않으셨고,
이웃의 어둠을 결코 보시지 않으시며 당신 스스로를 태워 나가셨던 것입니다.
그 결과 큰스님의 몸에서는 중생의 탁한 빛이 아니라 부처님의 밝고 찬란한 빛(佛光)이 솟아 났으며,
그리고 그러한 울림은 이웃에 퍼져 마침내 잠자던 한국 불교계가 잠을 깨게 된 것입니다.
오늘 날 우리 불교계가 이만큼이라도 된 것은,
내 생명 부처님 생명임을 믿으시고 이웃과 시비하지 않으시며 암흑 속에 오직 당신을 태워 나가신 큰스님의 밝은 가르침 덕분도 있는 것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한 순간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위해,
나는 슬픔의 장막을 걷어내고,
웃음과 사랑을 열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고 싶어요.
나는 슬픔에 빠진 죄수들을 자유롭게 해주고 싶어요.
그래서 그들이 거리에서 노래할 수 있고,
절대로 슬픔에 젖어 그들이 뒤돌아 보지 않고
오직 사랑에 빠져 있을 수 있도록 말이예요.
사랑의 빛이여!
생명의 빛이여!
우리를 낙원으로 알려진 어느 항구로 안전하게
인도하도록 운명지워진 어떤 별같은,
그것은 한낱 아름다운 꿈에 불과하네.
아름다운 꿈...
나는 상심한 사람들을 끌어안아줄거에요.
그들이 느꼈던 고통을 맡아
웃음과 사랑으로 포효하는 강물에다
그 고통들을 모두 녹여버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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