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대사의 행적

2008. 7. 8. 18:15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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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다라(般若多羅)와 보리달마(菩提達摩)


반야다라는 동인도 사람이다. 법을 받은 후 남인도에 이르러 가니 나라 왕 향지(香至)가 불법을 독신하여 존중하고 공양하였다. 이 왕에게 세 아들이 있었는데 그 지혜를 시험코자 구슬을 가지고가 물었다.

"이 구슬이 둥글고 밝은데 여기 미칠 것이 있겠습니까?"

첫째왕자 목정다라(目淨多羅)와 둘째왕자 공덕다라(功德多羅)가 똑같이 대답 하였다.

"이 구슬은 7보 가운데서도 가장 존귀하여 이를 지닐 이가 없습니다. 존자의 도력이 아니면 어떻게 있겠습니까?

그러나 셋째왕자 보리달마(菩提達摩)는 달랐다.

"이것은 세상의 보배라 귀히 여길 것이 못되고 보배 가운데서는 법보(法寶)가 으뜸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물건 가운데 어떤 물건이 형상이 없는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 형상이 없습니다.

"어떤 물건이 세상에 가장 높은가?

'나와 남을 집착하는 것이 가장 높습니다.

'어떤 물건이 가장 큰가?

'법성(法性)이 가장 큽니다.

존자가 이 애가 법기(法器)인 것을 알았으나 아직 그 때가 오지 않은 것을 알고 말없이 보고만 있었다.


향지국왕이 입멸하자 모든 사람들이 슬피 우는데 오직 보리달마는 선정에 들어 7일 만에 깨어나 출가를 희망하였다.

이에 구족계를 주고 법을 전하니 전법게는 다음과 같다.


심지생제종(心地生諸種) 마음 땅에서 종자가 나니

인사부생리(因事復生理) 일을 인해서 다시 이치가 난다

과만보리원(果滿菩提圓) 과가 차면 깨달음이 원만해지고

화개세계기(華開世界起) 꽃이 피면 세계가 일어난다

존자는 전법 후 그 자리에서 일어나 좌우 손을 펴서 각각 광명을 놓으니 온 세상에 오색광명이 선명하였다.

몸을 허공으로 던져 7다라수(多羅樹)를 솟구쳤다가 삼매의 불로 몸을 태우니 때는 송 효무제 대명 원년 정유였다.

보리달마는 남천축국 향지왕(香至王)의 셋째 아들이다. 성은 찰제리요, 본래의 이름은 보리다라(菩提多羅)였는데 제27조 반야다라를 만나 마음자리를 깨닫고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이름을 고쳤다.

"그대는 모든 법을 깨달았다. 대저 달마(법)라 함은 통달하고 크다는 뜻이니, 달마라 하라.

이어서 반야다라존자는 보리달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대가 비록 법을 깨달았으나 멀리 떠나지는 말라. 우선 남천축에 머물렀다가 내가 열반에 든 지 67년 뒤에 진단(震旦 :中國)으로 가서 큰 법약(法藥)을 마련해 놓고 상근기(上根機) 들을 직접 대하라. 행여 너무 빨리 떠나서 햇볕에 시드는 일이 없도록 하라.

"그 나라에 법의 그릇이 될 만한 사람이 있겠습니까?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입멸 후 60년 뒤에는 나라에 재난이 있을 것이니 수중문포(水中文布)를 잘 항복시키라.

가되 남쪽에는 머물지 말라. 그곳에는 유위의 공덕만 좋아하여 불법의 참 이치를 보지 못하리라.“

하고 다음과 같은 게송을 말씀하였다.


노행과수부봉양(路行跨水復逢羊) 물을 건너 가다가 다시 양을 만나게 되므로

독자처처암도강(獨自悽悽暗度江) 홀로 쓸쓸히 강을 건너게 될 것이다

일하가련쌍상마(日下可憐雙象馬) 대낮의 가련한 두 코끼리의 말이여

이주눈계구창창(二株嫩桂久昌昌) 두그루 계수나무가 오랜만에 창창할 것이다


위에서 말하는 수중문포란 보리유지(菩提流支)의 모함을 가리키고 게송 가운데의 물을 건너 가다가 양을 만난다는 것은 낙양에서 소연(簫衍)을 만나게 된다는 말이다.

양(羊)은 양(陽)으로 통하니 낙양을 예언한 것이고 노행(路行)의 행(行)에 과수(跨水)의 수(水)를 더하면 연(衍)자가 된다.

쓸쓸히 강을 건넌다 한 것은 양무제와 헤어져서 양자강을 건너감을 뜻하는 것이고, 코끼리와 말은 양나라*위나라의 두 무제와 보리유지 및 광통(光統)스님을 가르킨다. 두 그루의 계수나무는 소림(小林)을 지칭한 것이며 오랜만 이란 뜻을 지닌 구(久)자는 아홉구(九)와 통하니 9년만에 비로소 법이 번성할 것을 반야다라존자께서 게송으로 예언한 것이다.

보리달마는 스승 반야다라존자를 40년 동안 시봉하다가 존자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본국 사람들을 위해서 교화를 폈다. 당시 인도에는 불태선(佛太先)과 불대승다(佛大勝多)가 있었는데 보리달마는 이들과 함께 불타발타(佛陀跋陀)의 소승선(小乘禪)을 배웠다.

특히 이 가운데 불태선은 반야다라를 만나 소승선을 버리고 대승선을 배워 스승과 함께 교화를 펴니 당시의 사람들이 두 감로문(甘露門) 이라 칭찬 하였다.

그러나 이들에 의하여 인도에는 여섯 개의 종파가 생겼으니 1.유상종(有相宗) 2. 무상종(無相宗) 3. 정혜종(定慧宗) 4. 계행종(戒行宗) 5. 무득종(無得宗) 6.적정종(寂靜宗)이 그것이다

이들은 무리를 나누어 교화함으로써 서로 경쟁하여 크게 번성하기는 하였으나 자기 종파의 견해를 고집하고 집착하므로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과는 어긋나는 점이 많았다. 그래서 달마대사는 삿된 소견에 빠져있는 이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나섰다.

먼저 유상종의 종주 살바라(薩婆羅)를 만났다.

'어떤 것을 실상(實相)이라 하는가?

"모든 형상 가운데서 따로 형상을 취하지 않는 것이 실상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실상을 따로 결정할 수 있겠는가?

'결정할 것이 없으므로 진실이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대는 결정지을 수 없는 것을 얻었다 하는가?

"내 말은 형상을 말한 것도 아니오, 비형상을 말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대만이 결정됨을 결정할 수 없으므로 실상이라고 할 수 없다.

"결정됨을 결정할 수 없으므로 실상이라 할 수는 없지만 나는 내 잘못을 아는 까닭에 결정치도 않고 결정하지 아니하지도 않습니다.

"그대가 지금 변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실상이 아니다. 이미 변한 것과 변해 간 것이 그 뜻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변치 않는 것도 마땅히 있고 있는 것은 있지 않는(不在) 것이기 때문에 실상은 변해서 그 이치를 결정합니다.

"실상은 변치 않고 변하는 것은 실상이 아니라 하면 있음과 없음 가운데서 어떤 것이 실상인가?

살바라가 허공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는 세간의 유위의 형상이지만 공합니다. 나의 이 몸도 이와 같습니다.

"만일 실상을 알면 형상 아님을 보게 되고 형상 아님을 알면 물질 또한 그렇게 될 것이다. 물질 가운데서 본체만 잃지 않으면 있고 없는데 걸리지 아니할 것이다. 만일 이와 같이 이해하면 이것이 실상이다.

유상종의 무리들이 이 말을 듣고 크게 깨달아 경쾌한 마음으로 믿고 예배하였다.


달마대사는 다시 무상종의 바라제(波羅提)를 만났다.

"그대가 말하는 무상을 그대는 어떻게 증득하는가?

"내가 무상을 밝히는 것은 마음을 나타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밝히는가?

"취하지도 버리지도 않으면 상대의 연을 짓지 않습니다.

"취하지도 버리지도 않고 상대를 짓지 않는다는 것은 이는 마음이 비어 없다는 증거이다

"부처님께서 삼매에 들어서도 얻은 것이 없다고 하였는데 하물며 형상 없는 것이야 더 말할 것 있겠습니까?

"형상이 없다면 이미 유무(有無)가 없고 얻을 것이 없다면 무슨 삼매가 있겠는가.

"제가 증득하지 않는다 한 것은 증득할 것이 없는 것을 증득한 것이며 삼매가 아니기 때문에 삼매라 한 것입니다.

"삼매가 아니라면 어떻게 이름하여 증득하지 않는다면 증득하지 않는 것을 어떻게 증득하겠는가?

바라제가 언하에 곧 마음을 깨닫고 참회하자 달마대사는 그에게 수기를 주었다.

"그대는 오래지 않아 과위(果位)를 얻어 이 나라에 있는 마(魔)를 항복 받으리라.“


그 다음 달마는 정혜종의 바란타(婆蘭陀)와 대화를 나누었다.

"정혜가 하나인가. 둘인가?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닙니다.

"하나도, 둘도 아니라면 어찌하여 정혜라 하는가?

"정(定)에서 보면 혜(慧)가 아니요, 혜에서 보면 곧 정이 아니므로 하나도 둘도 아니 되는 것입니다.

"하나라야 하는데 하나가 아니고 둘이라야 하는데 둘이 아니라면 무엇을 일러 정혜라 하는가?

"하나도 둘도 아니지만 정혜를 알 수 있고 정혜 아닌 것도 그렇게 해서 알 수 있습니다.

"정이 혜가 아니고 혜가 정이 아니라면 어찌 알 수 있으며 하나도 둘도 아니라면 정과 혜를 닦는 자는 누구인가?

바란타가 듣고 의심이 곧 눈 녹듯 하였다.


 달마는 다시 넷째 계행종의 한 현자에게 가서 물었다.

"무엇이 계며 무엇이 행인가. 그리고 계와 행은 둘인가 하나인가?

"하나와 둘이 모두 그에게 나오며 교(敎)에 의하여 물듦이 없으며 이를 계행이라 합니다.

"그대는 말고 같이 교법에 의한다 한 것이 물듦이다. 하나와 둘이 모두 부정 되었으면 어찌 교법에 의한다 하겠는가. 이 두 가지가 서로 어기면 행이 될 수 없으니 안과 밖이 분명치 않으므로 계라 할 것도 없다.

"나에게 내외가 있는 것은 제가 이미 압니다.

이미 통달한 뒤에는 그것이 계행이니, 만일 서로 어긴다고 말하면 모두가 옳고 모두가 그르며 말이 청결함에 미치면 그것이 계요 행입니다.

"모두가 옳고 모두가 그르다면 어찌 청정이라 하겠는가. 이미 통달했다면 어찌 또 안팎이 있겠느냐?

이 말에 계율종의 현자는 항복하고 말았다. 다음에는 무득종의 보정(寶靜)에게 가서 물었다.

"그대가 무득이라 하나 무엇이 문득인가. 이미 얻을 것이 없다면 얻었다(得)할 것도 없을 것이다.

"내가 얻을 것이 없다고 말한 것은 얻을 것을 얻은 것도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얻을 것을 얻는다고 말한 때에 얻을 것 없는 것이 곧 얻는 것입니다.

"얻은 것이 이미 얻는 것이 아니라면 얻은 것도 얻은 것이 아니리라. 이미 얻은 것을 얻었다 하니 얻을 것을 얻었다 함은 무엇을 얻었단 말인가?

"얻음을 보면 얻는 것이 아니요. 얻음이 아니라야 얻나니, 만일 얻지 않음을 보면 얻을 것을 얻었다 합니다.


"얻는 것은 얻는 것이 아니요, 얻을 것을 얻는 것도 얻는 것이 없다 하니 이미 얻은 바가 없다면 무엇으로써 얻을 것을 얻겠는가.“

보정이 듣고 의심이 넝쿨 풀어지듯 하였다. 달마는 다시 여섯째 적정종에 나아가 물었다.

"무엇을 걱정이라 하고 이 법 가운데 고요한 자는 누구이고 적멸한 자는 누구인가?

"마음이 요동하지 않는 것을 적멸이라 하고, 법에 물들지 않는 것을 고요하다 합니다.

"본 마음이 적멸치 않는다면 반드시 적정을 빌어야 하겠지만 본래 적멸한 것인데 무엇 때문에 적정을 이용하리요. '모든 법이 본래 공하니 공이 공하기 때문이요, 그 공이 공하므로 적정하다 합니다.

"모든 법이 이미 공하여 형상이 없다면 무엇이 다시 고요하고 적멸하겠는가?

적정종의 존자는 달마의 가르침을 받고 활연히 깨달았다. 이리하여 외도가 모두 불법에 귀의함으로써 5인도 전체가 달마대사의 교화권에 들어왔다.


이렇게 6년을 교화하는 가운데서도 이견왕(異見王)이 삼보를 비방하고 업신여겼다. 그리하여 선왕의 존경을 받던 이들까지 모두 쫓겨나갔다.

달마대사는 이를 알고 여섯 종파의 무리들과 협력하여 이견왕의 박덕을 구제하고자 했다. 그들 가운데 종승(宗勝)이 대사의 만류도 뿌리치고 왕궁으로 가서 이견왕과 토론하다가 말이 막힌 것을 바라제에게 위신력으로 구름을 왕 앞에 이르게 하여 구원하도록 하였다.

왕은 바라제가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문답하던 것도 까맣게 잊고 이렇게 말했다.

"하늘을 타고 온 자가 바른가 삿된가?

"저는 사(邪)와 정(正)이 아니지만 왔다면 정과 사가 있습니다. 만약 대왕의 마음이 바르면 저에게도 사와 정은 없습니다.

왕은 놀랐으나 교만한 생각이 치솟아 종승을 쫓아내니, 바라제가 말했다.

'대왕은 이미 도를 행하면서 어찌 사문을 물리치십니까. 제가 비록 아는 것은 없으나 대왕께서 물어주시길 바랍니다.

왕이 성을 내면서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인가?  - "성품을 본 이가 부처입니다.

"대사는 성품을 보았는가? - "나는 이미 성품을 보았습니다.

"성품이 어디에 있는가?  - "성품은 작용하는 곳에 있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작용하기에 나에게는 보이지 않는가?

"지금 작용하고 있는 데도 왕 스스로 보지 못할 뿐입니다.

"나에게 있는가, 없는가?

"대왕께서 만약 작용한다면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대왕께서 작용하지 않으면(不用) 본체를 스스로 보기 어렵습니다.

"만약 작용한다면 그 때 몇 곳에 나타나는가?

"나타날 때엔 여덟 가지 길이 있습니다.

"그 여덟 가지 길을 나에게 말해주십시오.


바라제가 게송으로 대답했다.


재태위신(在胎爲身) 태 속에선 몸이요

처세명인(處世名人) 세상에 나와서는 사람이오

재안왈견(在眼曰見) 눈으로 본다 하고

재이왈문(在耳曰聞) 귀로는 듣는다 하고

재비변향(在鼻辨香) 코로는 냄새를 맡고

재구담론(在口談論) 입으로는 말을 하고

재수집착(在手執捉) 손으로는 움켜잡고

재족운분(在足運奔) 발로는 몸을 옮기네

편현구해사계(遍現俱該沙界) 두루 나타나서는 무수한 세계를 덮고

수섭재일미진(收攝在一微塵) 거두어들이면 한 티끌 속에 드네

식자지시불성(識者知是佛性) 아는 이는 그것을 불성이라 하지만

불식환작정혼(不識喚作精魂) 알지 못하는 이는 정혼이라 하네


왕이 이 게송을 듣고 마음이 열리어 앞의 허물을 뉘우치고 불법에 깊이 귀의 하였다.

이견왕이 다시 바라제에게 물었다.


"그대는 지혜롭고 변재가 있는데 누구의 제자시오?

"저는 사라사(娑羅寺)에서 중이 되어 오사바삼장(烏娑婆三藏)에게 수학하였으나 출세(出世)의 스승은 대왕의 숙부이신 보리달마대사입니다.

왕은 대사의 이름을 듣자 깜짝 놀라 삿된 길에 들어선 것을 뉘우치고 사신을 시켜 달마대사를 청해 오게 하였다.

대사가 왕궁으로 와서 왕을 훈계하자 왕은 울면서 참회하고 또 종승을 본국으로 돌려보내라고 명령하였다. 대사는 이렇게 왕을 교화하고 인연이 익어서 중국에 법을 펼 때가 되었으므로 왕과 동학(同學)을 작별하였다.

왕은 큰 배를 마련하여 많은 보배를 싣고 몸소 신하들을 인솔하여 바닷가에 나와 달마대사를 전송하였다. 대사는 바다에 떠서 3년을 지나 남해에 다다르니 이는 양(梁)의 보통(普通) 8년 정미 9월21일 이었다.

광주자사(廣州刺史) 소앙(簫昻)예를 갖추어 영접하고 무제(武帝)에게 보고를 올렸다. 무제는 보고를 받고 사자에게 조서(詔書)를 주어 맞아들이니 10월1일에 금릉(金陵)에 이르렀다.

무제가 대사에게 물었다.

"짐이 왕위에 오른 이래 절을 짓고 경을 쓰고 중을 기른 것이 셀 수 없는데 어떤 공덕이 있소.

"아무 공덕도 없습니다.

"어찌하여 공덕이 없소.

"이는 인간과 하늘의 작은 결과를 받는 유루의 원인일 뿐이니 마치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는 것과 같아서 있는 듯하나 실체가 아닙니다.

"어떠한 것이 진실한 공덕이오.

"청정한 지혜는 묘하고 원만하여 본체가 원래 비고 고요하니 이러한 공덕은 세상법 으로 구하지 못합니다.

"어떤 것이 성제(聖諦)의 제일가는 이치요.

"전혀 거룩함이 없습니다.

"짐을 대하고 있는 이는 누구요?

"모릅니다.

무제가 알아듣지 못하니 대사는 근기가 맞지 않음을 알았다. 대사는 가만히 강북(江北)을 돌아서 낙양에 이르렀다. 그는 숭산(嵩山) 소림사(小林寺)에 머물러 벽을 향해 하루 종일 잠자코 앉았느니 사람들은 그를 일러 벽을 바라보는 바라문(壁觀婆羅門)이라 하였다.

이때에 신광(神光)이라는 승려가 있었는데 활달한 사람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낙양에 살면서 여러 서적을 많이 읽고 묘한 이치를 잘 이야기 하였다. 그는 달마대사의 소문을 듣고 소림사로 가서 조석으로 섬기고 물었으나 아무런 가르침도 듣지 못했다.

마침내 그는 굳은 결심을 하고 그 해 12월 9일 밤에 대사의 방 밖에 꼼짝도 않고 섰는데 큰 눈이 내려 새벽에는 눈이 무릎이 지나도록 쌓였다. 대사가 민망히 생각하여 물었다.

"네가 눈 속에 오래 섰으니 무엇을 구하는가?

신광이 슬피 울면서 사뢰었다.

"바라옵건대 화상께서 감로의 문을 여시어 여러 중생들을 널리 제도해 주소서.“

"부처님들의 위없는 묘한 도는 여러 겁을 부지런히 정진하여 행하기 어려운 일을 행하고 참기 어려운 일을 참아야 하거늘 작은 공덕과 지혜 경솔하고 교만한 마음으로 참법을 바라는가. 헛수고일 뿐이다.“

신광이 이 말을 듣고 슬며시 칼을 뽑아 왼쪽 팔을 끊어서 대사 앞에 놓으니 대사는 그가 법기임을 알고 그의 이름을 혜가(慧可)라 고쳐 주니, 신광이 말했다.

"부처님들의 법인(法印)을 들려주십시오.

"법인은 남에게 얻는 것이 아니니라.

"제 마음이 편안치 못하니 스님께서 편안케 해주소서.

"마음을 가지고 오너라. 편안케 해주리라.

'마음을 찾아도 얻을 수 없습니다.

"내가 이미 네 마음을 편안케 했다.


뒤에 효명제(孝明帝)가 대사의 특이한 행적을 듣고 사자와 조서를 보내어 부르기를 세 차례나 하여도 그는 소림사를 떠나지 않았고, 황제가 마납(摩衲)가사, 금발우, 비단 등을 보냈으나 세 번이나 사양하다가 황제의 뜻이 강경함으로 마지못해 받았다.

그로부터 승속이 배나 더 믿고 귀의하였는데 9년이 차자 인도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고 문인(門人)들에게 얻은 바를 말하도록 했다. 먼저 문인인 도부(道副)가 대답했다.

"제가 보기에는 문자를 집착하지 않고 문자를 여의지도 않음으로써 도를 삼는 것입니다.

"너는 나의 가죽을 얻었다.

총지(總持)비구니가 말했다.

"제가 알기에는 아난이 아촉불국을 보았을 때에 한번보고는 다시 보지 않은것 같습니다.

"너는 나의 살을 얻었다.

도육(道育)이 말했다.

"사대(四大)가 본래 공하고 오온(五蘊)이 있지 않으니, 제가 보기에는 한 법도 얻을 것이 없습니다.

"너는 나의 뼈를 얻었다.

마지막으로 혜가가 절을 하고, 제자리에 서니 대사가 말했다.

"너는 나의 골수를 얻었다.

그리고는 다시 혜가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여래께서 정법안장을 가섭에게 전한 이후 나에게까지 이르렀다. 내가 이제 그대에게 전하노니, 그대는 잘 지키라. 그리고 가사를 겸해 주어 법의 선포를 삼노니, 제각기 표시하는 바가 있음을 알라.

혜가가 더 자세히 설명해주기를 청하자 대사가 말했다.

"안으로 법을 전해서 마음을 깨쳤음을 증명하고, 겉으로 가사를 전해서 종지(宗旨)를 확정한다. 후세 사람들이 의심하여 환란이 생기거든 이 옷과 나의 게송을 내놓아 증명을 삼으면 교화하는데 지장이 없을 것이다.

내가 열반에든지 이백 년 뒤에 옷은 그치고 전하지 않아도 법이 세상에 널리 두루 할 것이다. 나의 게송을 들으라.


오본래자토(吾本來玆土) 내가 본래 이 땅에 온 것은

전법구미정(傳法救迷情) 법을 전해 어리석은 이를 제도하려는 것인데

일화개오엽(一華開五葉) 꽃 한송이에서 다섯 꽃잎이 피게 될 것이니

결과자연성(結果自然成) 열매는 자연히 맺어지리라


대사는 다시 <능가경> 네 권을 혜가에게 주면서 법을 전해준 뒤 무리들을 이끌고 우문(禹問)의 천성사(千聖寺)로 가서 사흘을 묵었다. 고을 태수 양현지(揚衒之)가 와서 전부터 불법을 사모했다면서 대사에게 물었다.

"서역 천축에서는 스승의 법을 전해 받고 조사라 한다는데 그 도가 어떠합니까?

"부처님께서 마음자리를 밝히고 행과 지혜가 서로 응하는 것을 조사라 하오.

"제자가 삼봉에 귀의한지도 몇 해가 되건만 지혜가 혼몽하여 아직도 진리를 미혹하고 있는데 스님께서 자비로써 종자를 보여주소서.

대사는 그의 정성이 간절함을 알고 게송으로 말했다.


역불도악이생혐(亦不覩惡而生嫌) 악을 보고도 혐의치 않고

역불관선이근조(亦不觀善而勤措) 선을 보고도 부지런하지 않고

역불사지이근우(亦不捨智而近愚) 지혜를 버리고 어리석음에 가지도 않고

역불포미이취오(亦不抛迷而就悟) 어리석음을 떠나 깨달음에 가지도 않는다

달대도분과량(達大道盆過量) 큰 도를 통달하니 한량이 지나고

통불심분출도(通佛心盆出度) 불심을 통하니 법도에 지나고

불여범성동전(不與凡聖同躔) 범부와 성인 어느 곳에도 똑같이 얽매이지 않고

초연명지왈조(超然名之曰祖) 초연히 뛰어난 것을 조사라 한다


양현지가 게송을 듣고 슬픔과 기쁨이 뒤섞여 말했다.

"바라옵건대 대사께서 세간에 오래 머무시어 많은 유정들을 교화해 주소서.

"나는 가야 한다. 오래 머물 수 없다. 근기와 성품이 만 가지 차이가 있으므로 많은 환란을 만날 것이다.

"누구이옵니까? 제자가 스님을 위해서 제거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부처님의 비밀을 전해서 어리석은 무리를 이롭게 할 뿐인데 남을 해치고 내가 편안하고자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만일 스님께서 말씀하지 않으면 어찌 스님의 신통변화와 관찰하는 힘을 표시하겠습니까?

대사는 부득이 하여 예언을 했다.


강차분옥랑(江槎分玉浪) 강의 돛대가 옥같은 물결을 가르고

관거개금쇄(管炬開金鎖) 통속에 햇불을 비쳐 쇠고리를 연다

오구상공행(五口相共行) 五자와 口자와 같이 행하는 이가

구십무피아(九十無彼我) 九자와 十자에 분별하는 생각없다


양현지가 이 말을 듣고, 그 까닭을 몰라 하면서도 잠자코 속에 기억한 채 물러갔다. 대사의 예언은 비록 당시에는 헤아리지 못하였으나 뒤에는 모두가 맞았다.

옥 같은 물결을 가른다 함은 보리류지(菩提流支)를 말하고

통속에 햇불을 비쳐 쇠고리를 연다는 것은 광통(光統)을 가르키는 말이다

五자와 口자는 나(吾)라는 뜻이고, 九자와 十자는 끝끝내 라는 뜻이다.

그 때에 위씨(魏氏, 魏王族)가 불법을 만들어 고명한 스님네가 숲 같았는데 광통율사(光統律師)와 보리류지 삼장(菩提流支 三藏)은 승단 가운데 봉이며 난새였다. 그러나 그들은 달마대사가 도를 연설할 때에 형상을 배척하고 바로 마음을 지적하는 것을 보고 매양 대사와 토론을 벌이어 시비를 일으켰다.

그들은 대사가 현묘한 덕화의 바람을 멀리 떨치는 것에 시기하는 마음으로 해치고자 자주 독약을 음식에 넣었다.

여섯 번째 이르러서는 교화할 인연도 다 하였고, 법 전할 사람도 만났으므로 스스로 독약으로부터 자신을 구하지 않고 대사는 단정히 앉아서 가니, 이는 곧 후위의 효명제 태화 19년 병진 10월 5일이었다.

그 해 12월 28일 웅이산(熊耳山)에 장사지내고 정림사(定林寺)에 탑을 세웠는데 그 뒤로 3년 만에 위나라 송운(宋雲)이 서역에 사신을 갔다가 오는 길에 총령(蔥嶺)에서 달마대사를 만났는데 손에 신 한 짝을 들고 혼자 가므로 송운이 물었다.

"스님 어디로 가십니까?

"나는 서역으로 돌아가오. 그리고 그대의 군주가 이미 세상을 뜨셨소.

송운이 대사를 작별하고 동쪽으로 전진하여 복명하려 하니, 과연 명제(明帝)는 이미 승하하고 효장제(孝莊帝)가 즉위하였다.

송운이 이러한 사실을 자세히 보고하므로 황제가 대사의 무덤을 열어 보게 하니 빈 관속에 신 한 짝만이 남아있었다.

온 조정이 깜짝 놀랐고 황제의 명에 따라 남은 신을 소림사에 공양하였다.

대종(代宗 : 唐 8대왕, 763~779)이 원각대사(圓覺大師)라는 시호(諡號)를 내리고 탑을 공관(空觀)이라 불렀다. 대사가 위의 병진에 입적한 이래로 송(宋)의 경덕 원년1004 갑진까지는 467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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