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잊고저 / 한용운

2008. 7. 8. 18:25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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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잊고저    /    한용운

 

 

 남들은 님을 생각한다지만

나는 님을 잊고저 하여요

 

잊고저 할수록 생각하기로 
행여 잊힐까하고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잊으려면 생각나고 
생각하면 잊히지 아니하니 
잊도 말고 생각도 말어 볼까요.

  
잊든지 생각든지 내버려 두어 볼까요. 
그러나 그리도 아니되고 
끊임없는 생각생각에

님뿐인데 어찌하여요. 


구태여 잊으려면 
잊을 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잠과 죽음 뿐이기로 
님 두고는 못하여요. 


아아, 잊히지 않는 생각보다 
잊고저 하는 그것이

더욱 괴롭습니다.

 

 

한용운 님의 시는 역설과 반어의 수사학으로 되어있다.

<님은 갔으나 나는 임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했을 때

우리는 대상의 부재를 통해 오히려 그의 존재를 확인하는

역설의 순간을 경험한다.

<말아볼까요,/ 내버려두어볼까요> 라고 시침이를 뗀다

해도 전혀 그럴 생각이 없음을 잘 안다.

그래서 시인은 '잠과 죽음'을 통해서만 잊을 수 있는 그

리움을 잊고자 한다는 반어로 노래하고 있다.

사랑의 발견 과정을 통해 존재와 부재의 변증법을 일관되

게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시인이 "님만 님이 아니라 긔룬

것은 다 님"(군말) 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그의 대승적 사

랑이 경이롭게 다가오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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