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엄경:제6권 2/7 문수보살의 관찰

2008. 7. 18. 12:43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능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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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 엄 경

    능엄경:제6권 2/7 문수보살의 관찰 그때 세존께서 문수사리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이 스물다섯 명의 배울 것이 없는 모든 보살들과 아라한을 관찰하여라. 각각 최초의 도를 이룬 방편을 말하되 모두 진실하고 원만하게 통한을 닦았다고 하였으니 그들의 수행은 진실로 우열도 앞뒤의 차별도 없는 것이겠으나 내가 지금 아난으로 하여금 깨닫게 하고자 하나니 스물다섯 가지 수행 중에서 어느 것이 그의 근기에 적당하겠으며, 그리고 내가 멸도한 뒤에 이 세계의 중생들이 보살승(菩薩乘)에 들어가서 최상의 도를 구하려면 어떤 방편의 문이라야 쉽게 성취할 수 있겠느냐?" 문수보살이 부처님의 뜻을 받들어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의 위엄스럽고 신통함을 받들어 게송을 읊어 부처님께 대답하였다. 깨달음의 바다 그 성품 맑고 둥글어 둥글고 맑은 깨달음이 원래 오묘하더이다 원래 밝음이 비치어 대상이 생기나니 그 대상이 생기면 밝은 성품 없어지리. 혼미하고 허망하여 허공이 있게 되고 허공을 의지하여 세계가 성립되네 생각이 엉켜서 국토가 이뤄지고 허망한 깨달음으로 중생이 되나이다. 허공이 대각(大覺) 중에서 생겨남이 마치 바다에서 물거품이 일어나는 듯하니 작은 티끌같이 많은 유루의 국토가 모두 허공에 의하여 생기는 것이라네. 물거품이 없어지면 허공도 본래 없을 것이거늘 더구나 다시 삼유(三有, 三界)가 있겠습니까? 본원(本元)으로 돌아가면 성품이 둘이 아니나 돌아가는 방편으론 여러 문이 있다네. 성인의 성품으로는 통하지 않음이 없어 순하고 거스름이 모두가 방편이지만 초심자로서 삼매에 들어갈 적엔 더디고 빠름이 같지 않다네. 색(色)은 생각이 맺히어 이루어진 티끌 정밀하고 또렷함으로도 통할 수가 없으니 이렇게 명철(明徹)하지 못한 것으로 어떻게 원만하게 통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음성이 섞여진 언어이므로 다만 이름과 구절과 의미뿐이니 한 마디 말이 일체를 포함할 수 없거늘 어떻게 원만하게 통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냄새는 코와 만나야만 느낄 수 있고 코를 떠나서는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니 항상 느끼는 것이 아니거늘 어떻게 원만하게 통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맛보는 성품은 본래 자연 그대로가 아니라서 맛볼 때에만 있는 것이니 그 느낌이 항상한 것이 아니거늘 어떻게 원만하게 통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감촉은 감촉하는 대상으로 인해 느끼고 그 감촉의 대상이 없으면 감촉을 느낄 수가 없나니 함하고 여읨에 성품이 일정치 않거늘 어떻게 원만하게 통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법은 내진(內塵)이라고 하는데 내진에 의한 것이면 반드시 처소가 있으리니 주체와 객체가 널리 통하지 못하거늘 어떻게 원만하게 통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보는 성품이 비록 밝다고 하여도 앞만 밝고 뒤는 밝지 못하여 사유(四維, 四方)에서 하나 반이 모자라거니 어떻게 원만하게 통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코로 숨쉬는 것은 들고남에 통하기는 하나 교차하는 순간에는 기운이 없어 연속하여 들어가지 못하나니 어떻게 원만하게 통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혀는 무단히 들어가지 않는지라 맛을 통해야만 느낌이 생기나니 그 맛이 없으면 느끼는 것이 없게 되거늘 어떻게 원만하게 통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몸은 감촉하는 대상과 같아서 각각 원만하게 깨닫고 보지 못하나니 몸과 감촉은 한계가 있어 서로 합하지 못하거늘 어떻게 원만하게 통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지근(知根)은 어지러운 생각이 섞이어 밝은 지혜를 보지 못하나니 허망한 생각을 벗어나지 못하거늘 어떻게 원만하게 통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보는 의식은 세 가지 조화가 섞인 것이라 근본을 따져 보면 실상이 아니니 자체가 애당초 결성됨이 없거늘 어떻게 원만하게 통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마음으로 들음이 시방세계에 통하는 것은 큰 인연의 힘에서 생긴 것이니 초심자로는 들어갈 수가 없거늘 어떻게 원만하게 통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코에 생각을 두라 함은 본래가 방편으로서 다만 마음을 붙들어서 머물게 하심이니 마음이 머무는 것이거늘 어떻게 원만하게 통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법을 설하여 말과 글로 희롱함은 깨달아 앎을 먼저 이룬 것이니 말과 글귀는 번뇌가 없어짐이 아니거늘 어떻게 원만하게 통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계율을 지킴은 몸만을 단속하는 것 몸이 아니면 단속할 대상이 없으니 원래가 일체에 두루하지 아니한 것이거늘 어떻게 원만하게 통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신통은 본래 숙세의 인연이니 법진을 분별함과 무슨 관계가 있으리까? 생각과 인연은 물질을 여읜 것이 아니거늘 어떻게 원만하게 통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만약 땅의 성품으로 관찰하건댄 굳게 막혀서 통달함이 아니며 작위(作爲)가 있으면 성인의 성품이 아니거늘 어떻게 원만하게 통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만약 물의 성품으로써 관찰하건댄 상념(想念)은 진실함이 아니고 여여(如如)는 느끼고 보는 대상이 아니거늘 어떻게 원만하게 통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만약 불의 성품으로 관찰하건댄 있음을 싫어함이 진정한 여읨이 아니며 초심자에게 맞는 방편이 아니거늘 어떻게 원만하게 통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만약 바람의 성품으로 관찰하건댄 움직이고 고요함이 상대가 없지 아니하니 상대가 있음은 최상의 깨달음이 아니거늘 어떻게 원만하게 통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만약 허공의 성품으로 관찰하건댄 혼둔(昏鈍)한 것이지 애당초 깨달음이 아니니 깨달음이 없는 것은 보리와 다르거늘 어떻게 원만하게 통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만약 의식의 성품으로 관찰하건댄 관찰할 의식이 항상 머물지 아니하며 마음을 붙들어 둔다는 것이 허망한 것이거늘 어떻게 원만하게 통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모든 행동은 항상함이 없는 것이며 생각하는 성품은 본래 나고 죽는 것이니 인과가 지금 다르게 느껴지거늘 어떻게 원만하게 통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지금 세존께 아뢰옵니다 부처님께서 사바세계에 오시니 이곳에서 진실한 가르침의 실체는 깨끗함이 소리를 듣는 데 있는 듯하옵니다. 삼마지를 닦아서 취하고자 하면 사실 듣는 것으로부터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을 얻게 하나니 훌륭하여라. 관세음이여. 항하의 모래같이 수없이 오랜 겁 가운데 작은 티끌처럼 많은 불국에 들어가서 크게 자재하는 신력을 얻어 두려움 없음을 중생에게 베푸옵니다. 오묘한 소리와 관세음과 범음(梵音)과 해조음(海潮音)으로 세상을 구제하여 다 편안케 하며 세상을 벗어나 항상 머무름을 얻게 하옵나이다. 제가 지금 부처님께 아뢰옵나니 관음께서 말씀한 것과 같아서 비유하면 사람들이 조용히 쉬고 있을 때 시방에서 한꺼번에 북을 치면 열 곳의 소리를 일시에 듣는 것과 같나니 이는 곧 원만한 진실인가 하나이다. 눈은 담장 밖의 것을 보지 못하며 입과 코도 역시 마찬가지일세 몸은 접촉하는 대상과 합해야 느낌이 생기며 마음과 생각은 분잡하여 두서가 없네. 담장이 가렸어도 음향을 듣는 데 있어서는 멀거나 가깝거나 다 들을 수 있으니 다섯 개의 감각기관이 모두가 능하지 못하되 이것만이 원만하게 통하는 진실인가 하나이다. 소리의 성품은 움직이고 고요해서 듣는 중에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니 소리가 없으면 들음이 없다고 할지언정 진실로 듣는 성품이 없는 것은 아니네. 소리가 없더라도 없어진 것이 아니요 소리가 있어도 생긴 것이 아니라네 생과 멸을 다 여의었으니 이는 곧 항상하고 진실한가 하나이다. 비록 꿈 속에 있을지라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니 깨닫고 보는 것이 생각에서 벗어나서 몸이나 마음으론 미칠 수가 없습니다. 지금 이 사바세계는 말로써 논란해야만 밝힐 수 있나이다 중생들이 본래의 듣는 성품 혼미하여 소리만을 따라가므로 흘러 전전합니다. 아난이 비록 억지로 기억한다 하더라도 간사한 생각에 떨어짐을 면치 못함이 어찌 빠짐을 따르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아난아, 너는 자세히 들어라 내가 지금 부처님의 위력을 받들어 금강왕인 허깨비같이 헤아릴 수 없는 부처님의 모체인 진실한 삼매를 말하고자 하노라. 네가 비록 모든 부처님의 일체 비밀스런 법문을 들었다고 하나 욕에 때문에 번뇌를 제거하지 못하였으므로 많이 들은 것만 쌓여 과오가 되었구나. 많이 들음을 가지고 부처님의 법을 지키면서 어찌하여 스스로 듣는 주체를 듣지 못하느냐? 듣는 주체가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라 소리로 인하여 그 이름이 생기게 되었네. 듣는 것을 돌이켜 소리에서 벗어나면 해탈한 것을 무엇이라 이름하랴 하나의 감각기관이 본원으로 돌아가면 여섯 개의 감각기관이 해탈을 이루게 되리라. 보고 들음이 허깨비에 가려진 것 같으며 삼계가 허공의 헛꽃과 같나니 들음이 회복되면 가려진 감각기관이 없어지고 허망한 티끌이 없어지면 깨달음이 깨끗하리라. 맑음이 지극하면 광명이 통달해서 고요하게 비침이 허공을 삼키니 돌아와 세간을 보건댄 마치 꿈 속의 일과 같다네. 마등가도 꿈 속에 있거니 누가 너의 형체를 머물게 하랴 마치 세상의 교묘한 요술쟁이가 요술로 만들어 놓은 남자와 여자 같구나. 비록 모든 감각기관을 움직일 수 있을지라도 요점은 한 고동을 트는 데에 달렸으니 그 고동을 멈추어 움직이지 않게 하면 모든 요술로 된 것은 성품이 없으리. 여섯 개의 감각기관도 이와 같아서 원래는 하나의 정밀하고도 밝은 것에 의지하여 이것이 나뉘어 여섯 개와 화합하나니 한 곳이 회복함을 이루면 여섯 작용이 다 이루어질 수 없어서 티끌과 때가 생각을 따라 없어지나니 원만하게 밝아지고 깨끗하고 오묘하게 되리라 남은 티끌은 아직도 배워야 하지만 밝음이 지극하면 곧 부처이니라. 대중이여, 아난이여, 너의 거꾸로 듣는 기관을 돌이켜라 듣는 주체를 돌이켜 자성을 들으면 그 성품이 최상의 도를 이룰 것이니 원만하게 통함이 사실 그러하니라. 이것이 티끌같이 많은 부처님께서 열반에 들어가신 유일한 길이라네 과거의 모든 부처께서도 이 문으로 이미 성취하셨고 현재의 모든 보살도 지금 각각 원만하게 밝은 데로 들어가며 미래의 수행하는 사람들도 마땅히 이 법문에 의지할 것이라네. 나도 그것을 따라 증득했으니 관세음보살뿐만이 아니니라 진실로 불세존께서 나에게 온갖 방편을 물으시어 모든 말법세상에 세간에서 벗어나기를 구하는 사람을 구제한 것과 같네 열반의 마음을 성취하려면 관세음보살이 최고이고 그 나머지 모든 방편은 모두가 부처님의 위엄있고 신비함으로 일에 나아가 진로(塵勞)를 버리게 할지언정 이것은 영원히 닦을 것이 못되며 얕고 깊은 근기에게 함께 말할 법은 아니라네. 여래장으로서 번뇌가 없어진 생각으로는 헤아릴 수 없음에 절하옵니다 미래의 중생에게 가피를 내리시어 이 문에 의혹이 없게 하소서. 방편을 쉽게 성취하여 감히 아난과 말겁에게 헤매는 중생을 가르치겠사오니 다만 이 감각기관으로 닦으면 원만하게 통함이 다른 것보다 뛰어나리니 진실한 마음이 이와 같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