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산(碧山 )대종사의 행화(行化)

2008. 7. 18. 23:24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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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산(碧山 )대종사의 행화(行化)


벽산
碧山대종사의 행화行化


* 이 글은 법능法能스님의 벽산碧山약기略記에서 발췌취 정리한 것입니다.
  
1. 벽산碧山의 가풍家風
운문雲門도량道場의 벽산碧山가풍家風은 삼신三身으로 실상實相하여 적이조寂而照하고 사지四智로 일상一相이면 신해행증信解行證이 사만四滿하여 조이적照而寂의 묘법妙法에 공덕총림功德叢林의 행도行道이니 탐착만법貪着萬法으로 생애生愛면 사지四智의 원명圓明으로 만경萬境이 공적空寂한 보현普賢의 경계에서 무념無念이니 평상심平常心로 일행一行이라.

2. 탄생誕生
스승의 휘諱(높은 이의 이름)는 금자金字 타자陀字에 호로 벽산碧山이요 속세의 휘는 녕자寧字 대자大字에 자字(본 이름 외에 부르는 이름)는 성자性字 일자日字로 본성本姓은 김이니 본향本鄕은 김해金海요 16세 할아버지가 평양에 있을 적에 장사長沙로 유배가서 정배定配(죄인을 지방이나 섬으로 보내 정해진 기간 동안 그 지역 내에서 감시받으며 생활하는 형벌)된 수로왕首露王27대손에 무장현인茂長縣人이라.
아버지 병자炳字용자龍字에 자는 인자仁字 화자化字로 기골氣骨이 장대하였으니 무골武骨이라. 1896년에 일본장기長崎로부터 30세에 일시 귀국하여  인천에 은밀히 체류하면서 도미渡美의 기회를 노리든 중 벽산碧山의 작은 할아버지가 이 말을 듣고 인천으로 찾아가 아버지를 모시고 와서 다음해 1897년 당시 만석萬石의 고창高敞박의관朴議官 딸을 가취嫁娶하여 다음해 1898년 벽산께서 태어나니 태어난 해는 1898년(戊戌年)달이 든 3월 29에 돌아가신 날은 1948년(戊子年) 1월 24이며 어머니는 밀양박씨密陽朴氏니라.
 1898년 윤달이든 3월 29일 태어나니 영민英敏함을 보고는 세상사람이 말하되 “비범非凡”이라

2. 어린시절
  14세에 보통학교(당시에는 4년)를 졸업하고 어머니와 함께 외가에 가서 외할아버지를 뵙고 인사드리니 알지 못함이 없는 신동神童의 외손자가 학교까지 졸업하였으니 기특하기 이를 데 없고, 당시에는 학교를 졸업하면 모르는 것이 없다는 생각에 외할아버지께서 말씀하되 “요사이 관에서 전답토지를 자세히 측량하여 등기하라 하니 너는 곧바로 측량토록 하라” 하드라. 이에 평생 모른다는 말을 하여보지 못한 벽산碧山, 그리 하겠다고 답변은 하고 물러 나왔으나 생각하니 황당 무개 하더라.
 평생 측량이라는 술어도 오늘 처음 들었는데 어찌 측량을 할 수 있겠는가. 물러 나와서 동갑의 외삼촌에게 혹시나 하면서 측량에 대한 상식을 알 수 있을까 하고 물으니 외삼촌 말하되 “고창高敞에 일본인이 경영하는 화원농장이 있는데 그곳에서 측량기계를 구입하였다는 말을 들었다 하면서 우리 집에서 빌려 달라면 빌려 줄 것이니 사람을 보내보자” 하여 사람을 보내니 측량기계를 빌려가지고 왔었다.
 함께 설명서도 딸려 있었으니 그날 밤으로 설명서를 3분의 2 가량 숙독하니 나머지는 탐독치 않아도 다 알 수 있을 것 같아 다음날 아침 처음으로 측량을 시작하여 2-3일에 걸쳐 만석萬石의 전답을 측량하였다.
 
3. 발심출가發心出家
 22세에 1909년(己未年) 만세사건萬歲事件(삼일운동三一運動)때에 무장茂長고창高敞에서 만세주창萬歲主唱에 실패하고 일본관헌官憲의 눈을 피하기 위하여 피신한 곳이 당시 고모가 크게 시주施主한 바가 있어 대공덕주大功德主로 추앙하고 있는 고창高敞문수사文殊寺에 피신하고 있던 중 우연하게도 큰방에서 금강경金剛經을 보고 하루 낮과 하루밤에 걸처 수십번을 읽고 보리심菩提心을 일으켜 출가出家를 결심하고 그 날로 주지住持스님과 사람의 눈을 피하여 산길을 택하여 장성 백양사白羊寺 찾아가 만암曼庵대종사에 수계受戒하였다.
 
4. 정진精進
 벽산碧山은 그 후 18년간 무자無子화두話頭로 참선하면서 정진하였으나 별 공부에 진전이 없으므로 마침내 깨닫지 못함을  개탄慨歎하고 결제結制 산사山寺의 산신각을 빌려 21일간 발사홍서원發四弘誓願의 기도 성취를 발원하였던바 그 기도를 마치고 39세 1936년(丙子年)에 백양사 운문암에서 결제라. 동안거결제를 앞두고 벽산碧山 마음속으로 “이번 동안거 결제는 부처님의 경전經典에 따라서 법에 의지하여 정진하여 결제하리라.
 18년간의 화두선話頭禪을 버리고 원각경圓覺經과 금강경金鋼經 두 권만을 가지고 독방에서 용맹정진으로 금강경金剛經에 의하여 반야바라밀심般若波羅蜜心으로 관심觀心하고 반야바라밀행般若波羅蜜行으로 관행觀行하며 심행일치心行一致면 성상일여性相一如의 수도修道일지니 원각경圓覺經 뜻의 삼정관三淨觀  25정륜定輪으로 정진하리라 작심한  관심觀心 삼일에 선정 중  보리방편문菩提方便門을 얻고得見 보리방편문菩提方便門에 의지하여 정진 일 개월인 1936년 10월27일 인시寅時(오전3-5시)에 식심견성識心見性하고 도를 깨달으니 선수후오先修後悟요 견성즉시見性卽時 선정禪定 가운데서 육조六祖 혜능대사蕙能大師가 이심전심以心傳心에 법을 부촉하고 의발衣鉢을 전수傳授하니 육조전법六祖傳法에 심인인가心印忍可로 장주득광藏珠得光이니 가히 말하기를 육조종지六祖宗旨의 법을 얻은 분이다.
  그 후 벽산한인碧山閒人이 말씀하시되 “전의발시傳衣鉢時 전수傳受한 장삼長衫은 송광사松廣寺 보존保存의 보조국사普照國師 장삼과 흡사하고 모양은 일본인의 하오리와도 비슷하며 장삼長杉아래는 여자 줄 치마에 비유하시었던 것이 기이할 따름이었다. 그와 비슷한 장삼이 당시로는 생각조차도 할 수 없던 일이 우연하게도 1962년 정화淨化 불사佛事로 세상에 나타났으니 1945년 해방을 기점으로 환산하면 해방 전 10년에 해방 후 17년으로 정화불사淨化佛事 1962년으로 부터 27년 전 일로서 벽산한인碧山閒人에게 육조대사六祖大師가  선정 가운데 전수의발傳受衣鉢하신지 27년 후의 일이다 벽산한인碧山閒人입적入寂하신지 15년 후가 되니라. 1936년 동안거 중 선정 중 연히 홍안백발紅顔白髮에 장백수丈白鬚의 장육노인丈六老人이 전금색傳金色 두루마리 보았다. 금색金色바탕의 중간에  타자 한 글자로 두루마리의 바탕이 금색金色이니 금자金字로 하고 두루마리 가운데 타자 한 글자가 있는 고로 타자陀字를 택하여 수계受戒법명法名 상자尙字 눌자訥字를 금자金字 타자陀字로 개명改名하고 건당建堂 법호法號는 벽산碧山인고로 벽산당碧山堂 금타金陀대선사大禪師요. 줄여서 대화상大和尙이라 하였으며 재가시在家時에는 여일余一거사居士요, 출가기出家期는 벽산碧山스님이며 범행기梵行期는 벽산碧山대화상大和尙에 벽산碧山대선사大禪師이며 1944년(甲申年) 인행성만因行成滿 벽산한인碧山閒人이라.

*『우주宇宙의 본질本質과 형량形量』을 1940년에 조선총독부 학무국장에 출간신청 하니 ”내가 알 수 없으니 전국 각 대학의 연구 자료로 허가한다 하면서 프린트 판 50부을 일어 한정판으로 허가를 얻어서 일본 각 대학에 약 40부 발송하고 국내는 경성제대를 비롯하여 7-8부가 유통 되었던 희귀본이 현재에는 벽산문하 제자 법능法能과 석청화澤淸華사주師主가 각 1부씩 보관하고 있다. 법능法能보관의 “우주宇宙의 본질本質과 형량形量”은 당시 김관호씨金觀鎬氏가 보관하게 된 것인데 법능法能의 손에 들어 온 것이며…
  
어느 날 운문도량雲門道場 앞밭에서 파종 중 운문도량雲門道場에 어떤 사람이 들어서면서 즉사卽死라. 밭에서 일하던 대중大衆이 화급火急히 쫓아가 살펴보니 입술은 검게 타고 입에서는 개 거품을 흘리면서 죽은 시체인지라. 짚신을 삼는 신방으로 시체를 옮기고 벽산한인碧山閒人에게 말하니 죽은 사람을 보고 신장소행神將所行이라 하시며 신장단神將壇이르러 신장神將에게 말하되 “미혹迷惑한 중생衆生의 소행所行을 허물치 말라” 하시니 즉시 소생蘇生이라. 이유를 물으니 본인은 약초을 캐러 다니는 사람으로 오늘 개고기를 무의식적으로 먹고 이곳에 당도하자 누가 머리를 때리는 것 같이 정신이 아찔한 뒤 그 다음은 모르겠다 하면서 소생시킨 생명의 은인이라 하여 벽산한인碧山閒人 열반시涅槃時까지 한 달에 한번 꼴로 벽산한인碧山閒人배알拜謁이라.

 1944년(甲申年)에는 수능엄삼매首楞嚴三昧을 성취하시고 수능엄삼매도首楞嚴三昧圖와 도결圖訣을 작성作成하시고 이어 수릉엄삼매도결首楞嚴三昧圖訣을 대중소大中小로 재편성再編成하여 일인전一人傳에 일인도一人度라 이름하고 인연因緣따라 발송發送하였다.

5. 열반涅槃
 1948년(戊子年) 해제解制와 동시 운문대중雲門大衆을 삼조三組로 나누어 일개월간 기한부期限附 탁발托鉢을 나가도록 하시었으니 7년 만에 스승으로써 처음 있던 일이다. 법능法能은 1월18일 탁발托鉢하명下命에 따라 당일 탁발행각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 벽산한인碧山閒人께서 말씀하시되 “법능法能은 탁발托鉢을 중지하고 나머지 대중 만 출발하라”하시며 18일부터 23일까지 벽산한인碧山閒人 구술口述로 수능엄삼매도결首楞嚴三昧圖訣 하편下編을 서필書筆하였으나 그후 이 도결하편圖訣下編이 행방불명 되었다.
 1948년 정월正月 24일 정오正午 30분 벽산한인碧山閒人 입적入寂하신 열반상涅槃相은 몸이 금분金紛이며 열반일涅槃日은 비와 눈이 섞어저서 내렸고 깊은 밤에 시신屍身을 안치安置한 방안의 천정 벽은 원래에는 7-8 촌의 “그을음”이 있었으나, 시신을 안치 후에는 조금도 있지 아니하니 고찰古刹 부엌 천정이었으나 시신屍身 주변만은 한 점의 그을림이 없었고 화장火葬에는 연기한 점 없이 방광放光한 곳에 현로顯露운문도량雲門道場이라. 운문산천雲門山川은 산이 울고 샘이 울기를 3일 낮과 3일 밤이 끊어지지 않았으며…
 그 후의 운문도량雲門道場의 실정은 6ㆍ25 동란動亂까지는 새롭게 찾아온 수행자修行者의 수행도량修行道場이었고 육*이오六*二五로 운문도량雲門道場에서 떠난 대중大衆의 현황은 상수제자上首弟子 법련당法蓮堂은 30세 미만에 6ㆍ25 당시當時 입적入寂하고 법능은 홀로 절세고수絶世孤修에 우거수도寓居修道요. 청화선사淸華禪師는 전남全南 태안사泰安寺 조실祖室로 주석住錫하고 있으며 보하寶河 지죽화상知竹和尙은 백양사白羊寺 춘추다례春秋茶禮에 벽산한인碧山閒人 시봉侍奉이라 기타 대중大衆은 행방부지行方不知하니…

본문本文은 벽산한인碧山閒人 약기시말略記始末로 을해乙亥(1995년) 만춘일晩春日에 벽산문하碧山門下에서 제자弟子 법능法能이 찬한다.

* 금타金陀 대화상大和尙의 오도송悟道頌

하단릉첨시진실
荷團稜尖是眞實

풍취우타비환경
風吹雨打非幻境
 
서접비처생연화
絮蝶飛處生蓮花

추단경면방금광
錐端鏡面放金光

연잎 둥글고 뾰족한 모서리가 바로 진실이며
바람 불고 비가 뿌리는 일이 허망한 경계 아니로다
버들 꽃 날리는 곳에 연꽃이 피고
송곳 끝과 거울 바닥에서 금빛이 빛나도다.

1937년11월17일(39세시)
청화淸華스님의
원통圓通불법佛法의 요체要諦에서

금타金陀 스님의 행화行化는?

그 다음에는 금타 화상의 행적이라던가, 공부 경계라던가, 또는 열반상이나 그런 것은 어떤 것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저도 금타 스님에 대해서 자세히는 모릅니다. 그러나 대략 말씀드리면 스님께서는 20세 이전에 장성 백양사白羊寺의 송만암宋曼庵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습니다. 송만암 스님은 종정을 지내셨고 또 불교전문학교 교장도 지내신 분입니다. 그래서 근래에 종정을 지낸 서옹西翁 스님의 사형師兄이 됩니다. 출가한 뒤 강원講院도 졸업하고 그 당시의 불교 전문대학을 졸업한 뒤 26세경 과학이나 수학 등 신학문新學問을 공부하여 현대사회를 제도한다는 포부를 가지고 잠시 동안 환속하였다고 합니다. 30세 때 재입산하여 50세에 입적入寂하였습니다. 39세에 내장사 벽련암碧蓮庵에서 깨달음을 얻고 읊은 오도송悟道頌도 남아 있습니다.
그뒤 내장사 벽련암에서 백양사 운문암雲門庵으로 옳겼는데 금타 스님은 개성個性도 출중한 분이고 소신所信이 확실한 분이기 때문에 은사 송만암 스님과는 법에 대한 견해 차이로 약간 불편한 관계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운문암 생활은 순수하게 참선參禪을 위주하여 일체 불공도 사절하고 식생활은 아침 죽 공양, 점심 때 공양하고 철저한 오후불식午後不食이었습니다. 그리고 일체 경비는 대중 전원 탁발托鉢로 충당하였습니다.
금타 스님의 열반涅槃은 대중들이 탁발 나간 부재중不在中에 시봉 몇 사람만 남아있을 때 열반에 들게 되었습니다. 금타 스님 사리舍利에 관해서는 진신사리眞身舍利를 채취하기 위해서는 물 항아리를 묻고 장치를 해야 하는데 전혀 그럴 만한 계제가 되지 못하여 유감스럽게도 사리는 수습하지 못하였으며, 백양사 큰절 스님들 말로 화장터에서 사흘 동안이나 베폭 너비의 서기瑞氣가 하늘로 뻗쳐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는 금타 스님께서 부처님 정법正法을 여법如法하게 수행修行하고 여실如實하게 증득證得하여 부처님 법의 정수를 시기상응時機相應하게 기록으로 정리하였다는 사실에 우리 후학들은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금타 스님의 유저遺著인 금강심론(金剛心論:스님의 유고를 모아 편집함)에는 근본불교의 핵심으로서 견성성불見性成佛에 필수적인 근본선정根本禪定인 구차제정九次第定의 역설과 각 경론經論의 모든 수행법과 수행의 위차位次를 종합 회통會通하여 해탈16지解脫十六地로서 수행차서修行次序를 정립하였으며 동서東西 문자를 종합하여 자행화타自行化他에 요긴한 조도助道가 되는 관음문자觀音文字를 창제하였고 그리고 현대의 역사적 위기인 유물풍조와 기술 만능시대에 절대적으로 요청되는 물심일여物心一如의 유심적唯心的 불교 우주관의 확립 등의 독창적인 희유한 교설들은 비단 우리 후학들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수도법문이 될 뿐만 아니라 앞으로 두고두고 인류사회의 지도 원리로서 찬연히 빛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