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님들이 스님들에게 물으면 안 되는 질문 세 가지가 실은 개인적으로는 가장 알고 싶은 질문이라는 점에서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세 가지란, 첫째 왜 출가했느냐? 둘째 나이가 몇 살이냐? 셋째 어느 절에 거주하고 있는가? 라는 것인데, 이 가운데서도 첫번째 물음이 제일 관심을 가지는 부분이라고들 합니다.
어떤 노보살님은 너무나 측은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통에 오히려 이쪽이 민망할 때도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자신의 잣대로 남들의 생활까지 재려고 드는지, 왜 자신의 시각을 표준으로 삼아 남을 보려고 하는지 참으로 난감한 일입니다.
바로 이러한 재가불자님들의 궁금증을 풀어 주고 있는 경전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장로게경》과 《장로니게경》입니다. 이 경전은 비구, 비구니스님들의 수행담과 함께 출가동기까지 솔직하고 아름답게 게송(시구)으로 읊어놓은 시집(詩集)과도 같은 경전입니다.
먼저 《장로게경》은 중앙아시아에서 발굴된 사본에는 북방 유부(有部)계통으로 보이는 산스크리트본의 일부가 남아 있고, 《장로니게경》은 팔리어 원전인 테리가타(therigatha)만이 완본(完本)으로 남아 있을 뿐 한역본은 없습니다. 그래서 성립연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러나 부처님 재세시(在世時)의 '장로'와 '장로니' 즉 학덕과 수행을 겸비한 비구, 비구니스님들이 부처님에 대한 찬탄과 수행과정 그리고 출가 이전의 과거를 회상하는 내용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볼 때 적어도 기원전 3세기 이전에 성립되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장로게경》은 1,979편의 게송으로 이루졌고,《장로니게경》은 522편의 게송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또 게송의 수에 따라 한 게송만을 남긴 장로니들의 게송을 모아 1집이라 하고, 게송 두개는 2집, 세개는 3집, 이런 형식으로 70여 개의 게송을 한 묶음으로 하여 대집(大集)으로 편찬하였습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예외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원전에서는 두 시집의 작자를 장로(Thera), 장로니(Then)에게로 돌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호법(護法)의 주석서에서는 264명의 장로와 73명의 장로니의 이름을 밝히고 더불어 작자의 경력과 읊게된 동기를 사실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장로게경》과 《장로니게경》사이에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뉘앙스 차이를 엿볼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전자는 외적 경험을 풍부하게 표현하고 있고 따라서 자연의 묘사가 다양한 반면, 후자는 여성답게 잔잔한 내적 체험에 관하여 주로 읊고 있고 또한 자연의 묘사보다는 인생에 대한 묘사를 섬세하고 자상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장로게경》에는 청정한 생활의 타락을 조장하는 부인, 즉 유혹자에 대하여 공경하는 말들이 많이 나오기도 하고 수많은 여성이 유혹한다 할지라도나를 유혹할 수는 없다고 자신을 찬미하는가 하면, 모든 고통의 원인은 여자이므로 여자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몸을 지키는 자만이 용기있는 사람이라고 단언하고도 있습니다.
또 한 장로가 단지 꽃 한송이를 바치기 위해 80억년을 천상에서 표류한 뒤에야 마침내 열반에 들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것은 후대에 발전한 부처님 숭배사상이 예상되는 내용이라 하겠습니다.
또 《장로게경》에는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비유만이 아니라 아름다운 표현도 있는데 즉 어머니로 인해 정도(正道)에 들어가게 된 장로가 아름다운 언어로 어머니에게 감사를 표하는 대목은 참으로 감동스럽습니다. 이와 같이 《장로게경》에서 노래한 게송은 대체로 외적 체험에 대한 것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장로니게경》에는 모두 73명의 비구니스님들의 이름이 보이는데 경전에 의하면 왕족 출신이 23명, 바라문 출신이 18명, 부호 출신이 13명, 여타의 계급 출신이 4명, 화류계 출신이 4명, 그리고 신분이 밝혀지지 않은 사람이 11명 등니다. 이러한 장로니 출신의 다양함은 불교의 평등사상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현재까지도 인도의 근대화를 막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저해요소로 계급제도를 들고 있는데 2천년 전 신분제도가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던 당시를 감안해보면, 부처님의 가르침이 얼마만큼 인간의 평등과 존엄성에 바탕을 두고 이루어진 것인가를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 사회도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과 제도적 불평등을 아직 깨뜨리지 못했는데, 부처님께서는 2천5백년 전에 그것도 철저한 계급사회에서 이미 여성들의 사회적 입지와 아울러 그들의 에너지를 이처럼 진취적으로 이해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장로니게경》에는 출가한 여러 부류의 여성들의 고백이 담겨져 있는데 한결같이 기구한 운명의 주인공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외아들을 잃고 미쳐서 돌아다니다가 출가한 이야기, 어떤 과부는 자살을 하려다가 부처님을 만나 출가하였다는 이야기, 또는 남편에 얽매였던 비참한 생활을 탐진치에 비유한 대목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모두 깨달음의 세계를 찾아서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가고 있음을 경에서는 설하고 있습니다. 마치 같은 소금을 뿌려도 살아나는 해초가 있는가 하면 시들어버리는 배추도 있고, 똑같은 바람에도 침몰하는 배가 있는가 하면 오히려 쾌속으로 항진해 나가는 배도 있듯이 말입니다.
이와 같이 아름답고 수려한 시적 언어로 씌여진 《장로게경》과 《장로니게경》은 고양된 종교적 이상과 윤리적 교설을 최고의 규범으로 삼는 정신이 일관되게 흐르고 있습니다.
더구나 마지막 구절에서는 한결같이 "부처님의 말씀은 진실로 틀림이 없다"라는 말로 끝마치고 있는 걸로 보면 부처님이 걸어오신 길을 자신들도 걸어가고 있다는 높은 자긍심과 아울러 앞으로도 변함없이 걸어가겠다는 비장한 결의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 경에서는 다른 경전에서 보이는 신비한 영험담이나 심오한 이론은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비구, 비구니스님들이 담담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지나온 삶과 현재의 수행, 그리고 깨달음을 향한 의지를 잔잔하게 노래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에서 오히려 그 어떠한 설법보다도 그 어떠한 교리보다도 더한 종교적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 계환스님의 경전산책에서 옮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