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7. 20. 13:32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6.위빠사나 명상법
지금까지 인류가 찾아낸 수행법의 주제는 빛, 소리, 호흡, 마음 네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이 네가지를 집중하는 방법은 사마타(Samatha)와 위빠싸나(Vipassana, 觀)로 나눌 수 있다. 사마타 수행에는 위빠싸나의 혜(慧)가 없지만 위빠싸나 수행에는 사마타의 집중(止,定)이 포함되어 있다. 우선 사마타와 위빠싸나에 대한 개념적인 차이를 살펴보고 위빠싸나 수행에 대해서 구체적인 방법을 붓다의 대념처경(Maha Sati-patthama sutta, 大念處經)을 중심으로 보겠다.
1). 사마타와 위빠싸나의 뜻
(1) 사마타 (Samatha, 止, 定, Tranquility)
하나의 명상주제에 일념으로 집중하여 이루어지는 고요함(Calmness)과 평온(Tranquility)의 상태로 삼매(三昧, 止, 定)로 일컬어진다. 사마타의 특징은 흩어짐(산만함) 없이 한 곳에 집중하여 방황하지 않는 기능을 가진다. 반면 사마타의 집중력은 아무리 평온하고 환희를 느껴도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 다른 종교의 수행자들은 사마타로 해답을 얻는다고 생각했었다. 붓다가 보리수 아래에 가기 전에 사마타 8선정을 완성했지만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그후 위빠싸나로 12연기를 관찰하고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을 이루었다.
(2)위빠싸나(Vipassana, 觀, 慧, insight)
문자 그대로는 "꿰뚫어 봄"을 뜻한다. 영어로는 통찰력(insight)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유사한 의미를 나타낸다. 팔리어로는 vipassana(觀)와 panna(智慧), sati(주시, attention)가 서로 대체 용어로 사용된다. 이것을 종합하면 "즉각적인 알아차림", "여러 현상(無常, 苦, 無我)을 봄", "현상 이전까지 꿰뚫어 봄"의 세가지 특성을 갖고 있다. 사마타가 인식(想)이나 의식(意識)의 수준에서 못 벗어나는 반면 위빠싸나는 의식 이전까지 꿰뚫어 볼 수 있으므로 깨달음이 가능하다. 마치 빛이 어둠을 몰아내고 실상을 밝혀내는 이치와 같다.
(3) 사마타와 위빠싸나의 차이
2). 몸에 대한 관찰 (k yanupassana)
①호흡에 대한 마음집중
"그런데 비구들이여, 비구가 어떠한 몸에서는 몸을 관찰하면서 주(住)하는가? 비구들이여, 비구가 숲속에서나 나무 아래서나, 빈방에서 결가부좌를 하고 몸을 똑바로 세우고 마음을 챙겨서 앉는다. 그는 마음 집중하여 숨을 들이쉬고 마음 집중하여 숨을 내쉰다. 혹은 길게 들이쉬면서 '나는 길게 숨을 들이쉰다'고 알아차리고, 혹은 길게 숨을 내쉬면서는 '나는 길게 숨을 내쉰다'라고 알아차린다. 혹은 짧게 숨을 들이쉬면서 '나는 짧게 숨을 들이쉰다'라고 알아차린다. 혹은 짧게 숨을 내쉬면서는 '나는 짧게 숨을 내쉰다'라고 알아차린다."
'온몸에 대해 느끼면서 나는 숨을 들이쉰다'고 수련하고 '온몸에 대해 느끼면서 나는 숨을 내쉰다.'라고 수련한다. '신체적 반응(身行)을 고요하게 가라앉히면서 나는 숨을 들이쉰다'라고 수련하고 '신체적 반응을 고요하게 가라앉히면서 나는 숨을 내쉰다'라고 수련한다.
이렇게 자신을 수련한다.
비구들이 마치 숙련된 도공이나 그 제자가 물레를 오래 돌리면서 '나는 오래 돌린다'라고 알아차리고 짧게 돌리면서는 '나는 짧게 돌린다'라고 알아차리듯이 이와 같이 비구는 길게 숨을 들이쉬면서는 '나는 길게 숨을 들이쉰다'라고 알아차리고 길게 숨을 내쉬면서는 '나는 길게 숨을 내쉰다'라고 알아차리며 또는 짧게 숨을 들이쉬면서 '나는 짧게 숨을 들이쉰다'라고 알아차리고 짧게 숨을 내쉬면서는 '나는 짧게 숨을 내쉰다'라고 알아차린다. '온 몸에 대해 느끼면서 숨을 들이쉰다' '온몸에 대해서 느끼면서 숨을 내쉰다' '신체적 반응을 가라앉히면서 숨을 들이쉰다.' '신체적 반응을 가라앉히면서 숨을 내쉰다' 이렇게 알아차리면서 수련한다.
이와같이 혹은 안으로 몸에서는 몸을 관찰하면서 주하고 혹은 밖으로 몸에서는 몸을 관찰하면서 주하여 안팎으로 함께 몸에서는 몸을 관찰하면서 주한다. 혹은 몸에서 생겨나는 현상(法)을 관찰하면서 주하고 또는 몸에서 멸해가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주하며 또 몸에서 생했다가 멸해가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주한다. 그래서 관찰의 정도와 이해의 정도에 따라 '이것이 몸이다'라고 그 자각(念)이 확립된다. 그는 초연하게 주하고 세상의 어느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면서 주한다.
지금 현재 대부분의 동남아 위빠싸나 선원에서는 호흡수련(Anapana sati, mindfulness of breathing) 으로 지도하고 있다. 전통적인 방법을 코끝이나 입술 주변 등에 숨결이 강하게 와 닿는 부분에 집중하여 감각의 변화, 의식의 변화 등을 관찰한다. 오직 미얀마의 마하시 수도원에서만 배의 움직임에 마음을 집중하여 배가 일어날 때는 "일어남", 꺼질 때는 "사라짐"하면서 관찰한다. 한마디로 들숨, 날숨을 통하여 선정을 계발하고 몸과 마음의 삼법인 ( 無常, 苦, 無我)을 관찰하여 몸과 마음의 본성을 철견(徹見)하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면, 상기 원문에서는 "알아차린다"로 번역했는데, 이는 팔리어로는 반야(panna)의 동사형인 pajanati를 쓴다. panna의 동사형인 pajanati를 이해하면 위빠싸나 수행은 쉽게 할 수 있게 된다. 이 단어 한 마디에 수행의 핵심 원리가 내포되어 있다. 붓다가 사마타 8선정을 다 성취하고서도 깨달음을 얻지 못했었다. 보리수 아래에서 위빠싸나로 12연기를 관찰하고 무상 정등 정각(無上 正等 正覺)을 이루신 후에 "나는 법에 대한 5가지를 얻었노라"고 선포했다. 그 5가지가 "눈(眼, cakkhu), 지(智, nana), 혜(慧, panna), 밝음(明, vijja), 빛(光, aloka)"이다.
여기서 한가지 주목할 사실은 깨달음을 얻었을 때의 반야 지혜(panna)를 수행에 임하는 초보자에게 바로 사용하게 한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대상이 있는 의식인 오온(五蘊)과 대상을 꿰뚫어 보는 반야로 이루어져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위빠싸나 수행은 대상이 있는 의식, 즉 생 . 멸(生 . 滅)하는 오온을 무생멸심(無生滅心)인 반야지헤로 관찰하게 한다. 여우는 여우 새끼를 낳고 사자는 사자 새끼를 낳는다. 사마타 수행은 처음부터 생멸심에 의지하는 반면 위빠싸나 수행은 무생멸심인 반야에 의지한다. 그러므로 무생멸의 질정인 적멸(寂滅)의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반야의 알아차림으로 숨이 길면 길다고 알아 차리고 짧다고 알아 차린다. 호흡은 자연스럽게 한다. 요가나 선도에서처럼 숨을 의도적으로 길게 하거나 멈추는 것이 없다. 의도적인 것은 아(我)가 포함된 욕망의 다른 형태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마음집중하면 전심전력으로 계속해서 관찰하면서 분명한 앎으로 위와같이 알아차려 나갈 때 몸에서 생(生)했다가 멸(滅)해 가는 현상과 그 원인을 자각(自覺)한다. 이때 생(生)함은 팔리어로 사뮤다야(samudaya)이다. 사뮤다야는 홀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대상과 함께 일어나는 연기적인 조건의 생태이다. 그러므로 무아(無我)를 관찰할 수 있다.
호흡의 원인은 무명, 욕망, 업, 공기, 음식이다. 기타 몸에 대한 현상원인도 마찬가지이다. 이 때 "안팎으로 함께"에서의 안팎은 나와 남의 몸과 마음상태도 이렇게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들숨, 날숨이나 배의 움직임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면 우선 호흡의 길이를 관찰하고, 그 다음 배의 형태나 모양을 관찰한다. 관찰이 깊어지면 몸 전체 혹은 배의 움직임과 더불어 다른 느낌들이 관찰된다. 이 느낌의 처음, 중간, 끝을 관찰하면 정(定)의 상태도 깊어지게 되어 무상, 고, 무아를 철견하게 되어 잘못된 가아(假我)에서 벗어나 탐, 진, 치를 제거하고 자신의 참성품을 발견하게 된다.
②행동 태도(몸의 움직임): 行, 住, 坐, 臥
"다음으로 또 비구들이여, 비구는 가면서는 '나는 가고 있다'고 알아차리고 서서는 '나는 서 있다'라고 알아차리고, 앉아 있으면서는 '나는 앉아 있다'라고 알아차리고, 누워 있으면서는 '나는 누워있다'라고 알아차린다. 이와 같이 어떠한 상태로든 몸이 놓여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이와 같이 혹은 안으로 몸에서는 몸을 관찰하면서 주하고, 혹은 밖으로 몸에서는 몸을 관찰하면서 주하며, 혹은 안팎으로 몸에서는 몸을 관찰하면서 주한다. 혹은 몸에서 생겨나는 현상(法)을 관찰하면서 주하고 또는 몸에서 멸해가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주하며, 또 몸에서 생(生)했다가 멸해가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주한다. 그래서 관찰의 정도와 이해의 정도에 따라 '이것이 몸이다'라는 자각이 확립된다. 그는 초연하게 주하고 세상의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는 몸을 관찰하면서 주한다."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 행(行), 주(住), 좌(坐), 와(臥)에서 몸의 움직임에 대해 빈틈없이 미세한 현상도 놓치지 않고 알아차려 나가는 수행이다.
우연히 일어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관찰없이 지나가는 것은 하나도 없도록 수행한다. 단지 알아차릴 뿐 이렇게 밀밀면면(密密綿綿)하게 관찰해 가면 행동하기 이전의 의도(aim)가 관찰돠어 몸의 올바른 행위(身業)가 이루어진다. 즉 급한 행동, 신경질적인 행위 등이 다스려지고 부수적으로 여행을 할 때도 피로감이 덜하다. 그치고 몸의 무상, 고, 무아를 발견하여 몸의 집착에서 자유로워진다.
※주된 동작
몸의 움직임에 대해서 삶에 대한 주의력으로 관찰한다. 몸의 동작, 여기에 수반되는 거친 감각에서부터 미세한 감각, 신체 각 기관에서 끊임 없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수관(隨觀)해 나간다. 호흡에서 "몸 전체를 알아차리면서 나는 숨을 쉰다(마쉰다)"와 비슷하지만, 여기에서는 호흡이 아닌 동작 위주이다.
<경행 Walking Meditation>
경행은 호흡과 더불어 주된 수행법중의 하나이다. 집중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똑바로 일정하게 걷는 연습부터 한다. 빨리 걷거나 천천히 걷거나 자신의 리듬에 맞추어 한다. 스텝은 1단계에서 6단계까지 나누어서 가르치는 곳도 있다. 보통 발바닥이나 발목 밑에 집중하여 "들어올림", "앞으로 나감", "내려 놓음"의 3단계로 수련한다. 이때 발바닥, 땅과의 접촉에서 감각, 무릎, 다리의 근육, 당기는 힘, 의도 등을 관찰한다. 경행의 한쪽 끝에 다다르면 "서 있음", "서있음", 둘째는"듣고자 함", "듦 듦", 앞으로 가고자 할 때는 "가고자 함", "감 감" 이렇게 명칭을 붙여 주면서 수행하면 효과적이다. 돌아서기 전에 잠시 멈추어서서 마음 상태를 관찰해 보기도 한다.
손은 배위에 포개어 놓고 시선은 2-3미터 앞에 고정시킨다. 기타 일을 하거나 일상 생활에서는 의자에 닿아 있는 엉덩이나 등 부분의 감촉, 일할 때의 손발에 손발에 닿는 감촉을 관찰해도 좋다.
<모든 행동에 대한 올바른(분명한) 알아차림>
"다음으로 또 비구들이여, 비구는 앞으로 갈 때나 뒤돌아서 갈 때나 이를 명확하게 알아차리고, 앞을 볼 때나 뒤를 볼 때나 이를 명확하게 알아차리며, 구부릴 때나 펼 때나 이를 명확하게 알아차린다. 옷(가사)을 입거나 발우를 들 때도 이를 명확하게 알아차리고, 먹고 마시고 씹으면서 맛볼 때도 이를 명확하게 알아차리며 대소변을 볼 때도 이를 명확하게 알아차린다. 가면서나 서서나 앉아서나 잠잘 때나 깨어 있을 때나 말할 때나 잠잠히 있을 때나 모든 상황에서 이를 명확하게 알아차린다. 이와 같이 혹은 안으로 몸에서는 몸을 관찰하면서 주하고, 혹은 밖으로 몸에서는 몸을 관찰하면서 주하며, 안팎으로 함께 몸에서는 멸해가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주한다. 혹은 몸에서 생겨나는 현상(法)을 관찰하면서 주하고 또는 몸에서 멸해가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주하며, 또 몸에서 생했다가 멸해가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주한다. 그래서 관찰의 정도와 이해의 정도에 따라 '이것이 몸이다'라는 자각이 확립된다. 그는 초연하게 주하고 세상의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같이 비구는 몸에 대하여 몸을 관찰하면서 주한다."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일체의 행동 하나하나를 빠짐없이 관찰하는 경우이다. 이 때 행동하기 전의 "의도""생각"도 관찰해야 한다. 여기에는 네가지 분명한 이해가 있다.
① 삽따가 삼빠쟌나 (Satthaka-Sampajanna) : 언행(言行)이 유용한지 아니한지 관찰한다.
② 삼빠야 삼빠쟌나 (Sappaya-Sampajanna) : 언행이 유용하더라도 적절한지 아니한지를 관찰한다.
③ 고짜라 삼빠쟌나 (Gocara-Sampajanna) : 계속해서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들을 빈틈없이 쉬지않고 알아차려 나가는 것을 말한다.
④ 아하모아 삼빠쟌나 (Assammoha-Sampajanna) : 계속해서 몸과 마음의 현상을 관찰해 나갈 때 무상, 고, 무아 등 자각하는 것을 말한다.
몸과 마음의 현상을 구분할 수 있고, 경행이나 일체의 행동에서 "의도""원인과 결과" 등을 관찰하고, 무상(無常)을 이해하게 된다. 일반인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을 "나"라고 착각하는데 관찰이 깊어지면 이러한 것들은 일시적으로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조건적인 현상" 즉 상대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외의 신(身), 수(受), 심(心), 법(法)에 대한 관찰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부족하나마 여기서 맺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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