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불](((염불수행(念佛修行)의 다양한 수행방법)))

2008. 7. 20. 17:28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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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염불수행(念佛修行) | 전체목록보기 |
| 염불수행의 의미 | 정토신앙과 염불수행 | 염불의 갈래와 방법 | 염불수행의 공덕 |
3. 염불의 갈래와 방법

1) 계율을 바탕으로
2) 지명염불방법
3) 십념의 방법
4) 관상염불
5) 일상생활에서

1)계율을 바탕으로

법장비구의 제18원에 따른 칭명염불이 극락 왕생을 위한 주된 수행법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칭명염불 외에도 관무량수경에서는 부처님의 상호와 공덕을 생각하는 관상염불이 설해져 있고 실천행으로써 십선업과 발보리심 등을 권하였다. 중국이나 한국, 일본에서는 선정쌍수에 의해 실상염불, 또는 염불선이 강조되기도 했다. 이러한 다양한 염불수행법을 계율울 바탕으로 하나로 체계화시킨 것이 보조국사의 <염불요문>에 나오는 열가지 염불법이다. 십선업이란 계율수행에서 보았듯이 대승계율로써 신구의 삼업을 맑히는 것이다. 따라서 보조스님은 계율을 바탕으로 삼업을 청정히 한 후 염불수행이 가능하다는 열단계 염불법을 제시하였다.

아미타불의 큰 깨달음을 증득하려면 마땅히 열 가지 염불을 수행해야 합니다. 열 가지 염불이란 어떤 것입니까. 몸가짐의 염불인 계신(戒身)염불, 말가짐의 염불인 계구(戒口)염불, 마음가짐의 염불인 계의(戒意)염불, 움직이면서 하는 동억(動憶)염불, 움직이지 않고 하는 정억(靜憶)염불, 말하면서 하는 어지(語持)염불, 말하지 않고 하는 묵지(默持)염불, 부처님 모습을 그리면서 하는 관상(觀想)염불, 무심하게 하는 무심(無心)염불, 부처님이 부처님을 염하는 진여(眞如)염불이 그것들입니다. 이 열 가지 염불은 모두 한결같은 참 깨달음의 자리에서 피어나 부처님과 하나를 이루게 하는, 더할 수 없이 지극한 수행법입니다.

①계신염불
죽이고, 훔치고, 음행하는 것들을 말끔히 없애어 몸을 청정하게 해서 계율의 거울이 밝고 뚜렷해지게 합니다. 그런뒤로 몸을 단정히 하고 바르게 앉아서 합장하고 서쪽을 향해 마음 다해 공경히 나무아미타불을 염하되, 그 수가 끝이 없도록 합니다. 그리하여 생각생각에 끊어짐이 없어 마침내 앉아 있음마저 없어져서, 앉아 있지 않을 때도 염하는 일이 한결같이 밝고 분명합니다. 이를 계신염불이라고 합니다.

②계구염불
실없는 말, 속이는 말, 두 말, 험한 말짓들을 말끔히 없애고 입을 지켜 마음을 거둡니다. 몸을 맑히고 입을 깨끗이 한 뒤에 마음 다해 공경히 나무아미타불을 염하되 그 수가 끝이 없도록 합니다. 그리하여 생각생각에 끊어짐이 없어 마침내 입마저 없어져 입으로 부르지 않을 때에도 스스로 염하는 일이 밝고 분명합니다. 이를 계구염불이라고 합니다.

③계의염불
욕심부리고, 화내고, 어리석은 마음을 말끔히 없애고 뜻을 거두고 마음을 맑힙니다. 마음 거울에 번뇌의 때가 사라진 뒤에 마음 다해 깊게 나무아미타불을 염하되 그 수가 끝이 없도록 합니다. 그리하여 생각생각에 끊어짐이 없어 마침내 마음마져 없어져 마음을 내지 않을 때에도 스스로 염하는 일이 밝고 분명합니다. 이를 계의염불이라 합니다.

④동억염불
열 가지 모질고 나쁜 짓거리를 말끔히 없애고 열 가지 계를 올바로 지닙니다. 움직이고 오고 감의 한 틈에도 염불하고 찰라에도 염불하여 마음 다해 늘 아미타불을 염하되 그 수가 끝이 없도록 합니다. 그리하여 생각생각에 끊어짐이 없어 마침내 움직임이 다해서 움직임이 없을 때에도 스스로 염하는 일이 밝고 분명합니다. 이를 동억염불이라 합니다.

⑤정억염불
저 열 가지 계율이 이미 깨끗해져서, 고요할 때나 일 없을 때나 깊은 밤 홀로 있을 때나 염불하는 마음이 한결같아 마음 다해 나무아미타불을 염하되 그 수가 끝이 없도록 합니다. 그리하여 생각생각에 끊어짐이 없어 마침내 고요함이 다해서 움직일 때도 스스로 염하는 일이 밝고 분명합니다. 이를 정억염불이라 합니다.

⑥어지염불
사람을 맞이해 말을 나누고, 아이를 부르며, 함께 일하고, 일을 시킴에 밖으로는 그런 일들을 따르되 안으로는 염불하는 마음이 흔들림이 없습니다. 한 마음으로 아미타불을 고요히 염하되 그 수가 끝이 없도록 합니다. 그리하여 생각 생각에 끊어짐이 없어 마침내 말이 없어져서 말을 하지 않을 때도 스스로 염하는 일이 밝고 분명합니다. 이를 어지염불이라 합니다.

⑦묵지염불
입으로 부르면서 하는 염이 다하고 다해 생각의 때가 없는 염이 됩니다. 자나깨나 어둡지 않으며 움직일 때나 고요할 때나 늘 잊어버리지 않고 마음 다해 나무아미타불을 말없이 염하되 그 수가 끝이 없도록 합니다. 그리하여 생각생각에 끊어짐이 없어 끝내 말없음마저 없어져 염하지 않을 때에도 스스로 염하는 일이 밝고 분명합니다. 이를 묵지염불이라 합니다.

⑧관상염불
저 부처님의 몸이 법계에 가득하며 묘한 광명 눈부신 금빛이 모든 중생들 앞에 두루 나타남을 관합니다. 또 부처님의 맑고 밝은 자비의 광명이 나의 몸과 마음을 비추고 계심을 깨닫습니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보이는 것 들리는 것들이 모두 부처님의 빛임을 밝게 깨달아서,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무아미타불을 끝까지 염하되 그 수가 끝이 없도록 합니다. 그리하여 생각생각에 끊어짐이 없어 하루 내내 다니고 머물고 앉고 누움에 늘 삼가고 늘 깨어서 찰나도 어둡지가 않습니다. 이를 관상염불이라 합니다.

⑨무심염불
염불하는 마음이 오래 되어 공을 이루면 차차로 무심삼매를 얻게 됩니다. 생각의 때가 없는 진실한 염이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들리고 알음알이의 티끌이 없는 참 지혜가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뚜렷해집니다. 받음이 없이 받아들이고 함이 없이 다 이룹니다. 이를 무심염불이라 합니다.

⑩진여염불
염불하는 마음이 이미 끝머리에 이르러 깨달음이 없이 깨닫습니다. 스스로 心, 意, 識이 본디 텅 빈 것임을 알아서, 한 가지 밝은 성품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모자람 없는 깨달음의 큰 지혜가 밝고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이를 진여염불이라 합니다.

염불하는 이치가 이와 같으니, 만약 먼저 열 가지 악과 저 여덟 가지 행복한 삶의 길인 팔정도에 맞서는 여덟 가지 그릇됨을 끊어 버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저 열 가지 계율의 맑고 깨끗함을 따를 수 있겠습니까. 또 몸이 맑고 깨끗하고 계율의 거울이 환히 밝지 않으면 어떻게 저 열 가지 염불법과 한 몸이 되겠습니까. 그러니 몸을 맑고 깨끗하게 한 뒤에야 진리의 온갖 보배들을 쌓고 모을 수 있으며, 계율의 거울을 환히 밝게 한 뒤에야 부처님께서 자비의 빛을 드리워 주실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장 뛰어난 맛을 지닌 제호를 얻더라도 보배 그릇이 아니면 그것을 담아 두기 어렵다" 그러니 염불하는 수행자가 몸이 청정하고 계율의 거울이 밝고 뚜렷하면 어떻게 진리의 기막힌 맛을 부처님만이 담아 지닐 수 있다고 하겠습니까.
요즈음 욕심투성이인 옳지 않은 무리들이 열 가지 악과 여덟 가지 그릇됨을 끊지 않고, 또 다섯 가지 계율과 열 가지 착함을 닦지 않고도 그릇된 앎과 혼자만의 생각으로 헛되이 염불수행법을 찾아 그릇된 바람들을 드러내 놓고 극락 세계에 태어나고자 합니다. 이것은 모난 나무로 둥근 구멍을 막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스스로는 염불수행을 한다고 생각할 지 몰라도 부처님의 뜻이야 어찌 그런 삿된 생각과 함께 하시겠습니까. 쉼없이 파계하는 몸으로 순간 순간 부처님을 비방하면서도 되려 실없이 참되고 깨끗한 세계를 구하는 죄는 참으로 풀어 줄 수 없고 무겁기 그지없는 죄인 것입니다. 죽어 지옥에 떨어져 스스로 몸과 마음을 해치는 것이 그 누구의 허물이겠습니까.
여러분은 계율로 벗을 삼고 이제까지 밝힌 이치를 거울삼고 비춰보고, 먼저 열 가지 악과 여덟 가지 그릇됨을 끊고 이어서 다섯 가지 계율과 열 가지 착함을 굳게 지녀서 앞서 저지른 잘못들을 참회하고 깨달음의 열매 얻기를 굳게 다짐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다짐과 더불어 힘쓰고 애쓰며, 나고 죽음을 벗어나겠다는 뜻을 야무지게 다져야 합니다. 해마다 선악의 업이 드러난다는 정월, 오월, 구월에 하는 수행을 닦듯이 염불수행을 놓지 않아야 합니다. 또 날씨가 엇바뀌는 여덟 절기마다 염불수행을 새롭고 새롭게 힘써 닦아야 합니다. 그리고 달마다 여섯 재일의 가르침을 본받아 저 열 가지 염불로 참 살림살이를 삼아야 합니다.
오래 공들이고, 있는 힘을 다 모아 저 진여염불과 하나를 이루면 날마다 시간마다 가고 오고 앉고 누움에 아미타불의 참 모습이 그윽히 앞에 나타나셔서 그대 머리 위에 향기로운 손을 얹으시고 길이 길이 피어나는 큰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또 목숨을 마칠 때에 이르러서는 아미타 부처님께서 몸소 극락세계의 아홉 층 연꽃세계로 맞아들이사 반드시 가장 뛰어난 저 아홉번째 연꽃 세계에서 여러분을 맞으시고 길이길이 그 곳에 머물게 하실 것이니, 아, 부디 애쓰고 애쓰십시요.



2)지명염불방법

여러 가지 염불법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방법이 지명염불이다. 이것은 법장비구의 48대원 가운데 열 여덟 번째 원에 의거한 것으로, 후대 정토교가들은 이것을 '염불왕생원'이라하여 칭명염불을 극락왕생의 수행법으로 가장 중시하였다. 어떻게 이름만 불러서 정토왕생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해 청화스님은 "부처님 말씀을 안 믿을 수가 없는 동시에, 생각해 본다 하더라도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어찌 그런고 하면, 원래 부처님인지라 또는 부처님의 이름은 사람 이름과 달라서 부처의 공덕을 거기에 간직해 있는 것입니다. 사람 이름도, 그 사람 이름을 자꾸만 부르게 되면 그 사람 영상이 떠오르는데, 하물며 부처님 이름은 우리가 본래 부처인 동시에 부처님의 공덕을 거기에 다 간직한 이름인 것인데 말입니다. 그러기에 명호부사의(名號不思議)라. 이름 자체가 부사의란 말입니다. 우리 같은 김아무개, 누구 아무개 이것은 부사의한 것이 아닙니다. 중생이 아무렇게나 지은 이름이지마는, 부처님 이름은 부처님께서 친히 무량공덕을 거기에 갊아있게(藏) 담게시리 만든 진리 이름이기 때문에 이름만 불러도 우리의 업장이 녹아져 옵니다. 또 우리가 본래 부처고 말입니다. 따라서 자꾸만 외우면 외울수록 우리 마음에 부처의 종자가 더 심어지고, 업장 종자는 차근차근 감소가 됩니다. 그렇게 되어서 부처를 생각하는 마음은 더욱 한결 강해지고 드디어는 우리 마음에 부처님을 생각하는 마음만 남으면 그때는 성불하게 되겠지요. 원래 부처니까 말입니다. 따라서 염불만 해도 성불한다는 말씀이 조금도 틀림없는 말씀입니다."하였다.(『전통선의 향훈』)
지명염불의 공덕은 의심할 바가 없으나 앞서 보조스님이 말씀하신대로 자신의 업을 청정히 하지 않고 입으로만 염불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에 대해 휴정스님도 "마음은 바로 부처님의 경계를 생각하여 끊임이 없고, 입은 부처님의 명호를 분명히 불러 흐트러지지 않게 한다. 이렇듯 마음과 입이 서로 응하면 그 한 생각 한 소리에 능히 80억겁 동안 생사에 헤매는 죄업을 소멸함과 동시에 80억 겁의 수승한 공덕을 성취한다."(청허 휴정스님 청어당집)고 하였다.
지명염불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구체적인 방법을 알아보자. 염불할 때의 환경이나 심경, 혹은 염불하는 사람의 근기에 따라서 그 적절한 염불하는 방법이 갖가지로 다를 수 밖에 없다. 방법마다 모두 나름대로의 작용과 특징이 있으니, 행인이 염불할 때 아래에 열거한 적합한 방법을 스스로 잘 선택하여 실행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만약 어떤 방법으로 염불할 때 이것으로는 그 당시의 심경을 진정시킬 수 없다고 생각되면 다른 방법으로 바꾸어도 해로울 것은 없다. 다만 그 상황에서 능히 마음을 안정시키고 망념을 제거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 것이다. 비유하면 병을 치료하는 데는 병을 치료하기에 좋은 것이 곧 양약인 것과 같은 것이니, 중생의 망념이 병이요, 부처님의 명호가 약이요, 염불하는 것이 바로 묘약을 먹는 것이다. 이하 『정법개술』에서 인용한다. 매우 구체적이고 다양한 염불방법들이 제시되고 있으니 초보자들도 쉽게 따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①고성념(高聲念)
염불할 때 큰 소리로 전신의 힘을 다하여 '나무아무타불'하고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는 것이다. 이 방법은 기운을 소모하고 목을 쉬게 하므로 오래 지속할 수는 없다. 다만 혼침과 게으름을 대치하여 계속 일어나는 잡념을 제거하기에 좋은 방법이다. 행자가 염불할 때 혼혼하여 잠이 오려 하거나 생각이 흐리멍텅하면 용맹스럽게 정신을 차려 큰 소리로 또렷또렷하게 염하면 금방 머리가 개운하고 정념이 회복되어 전과 같이 무궁한 활력과 강력한 작용이 솟아나는 것을 느낄 것이며, 아울러 곁에서 이 소리를 듣는 자로 하여금 염불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할 것이다.
옛날 영명 선사가 항주 남병산에서 염불할 때, 산 아래 길 가는 사람이 그 소리가 천락(天樂)이 허공에서 울리 듯 분명하고 크게 들려오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하니, 바로 이 염불 방법을 쓴 것이다.

②묵념(默念)
염불할 때 겉으로 보기에는 입술만 움직일 뿐, 소리는 내지 않으나 '나무아무타불'하고 염하는 것은 행자의 심식 중에서 분명하고 또렷또렷하므로 마음이 다른 곳으로 달아나지 않고 정념이 한 덩이를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그 효과는 소리를 내는 것에 비하여 부족함이 없다. 이 방법은 누워 있을 때나 목욕할 때나 병이 들었을 때나 변소 갈 때 등에 적합하며, 그 외 소리를 내기에 불편한 상황이나 공공 장소에서 적합하다 하겠다.

③금강념(金剛念)
염불할 때 음성이 크지도 작지도 않고 중간으로 하되, 한편 염하면서 한편 그 소리를 자신의 귀로 듣는다. 넉 자(아미타불)나 여섯 자(나무아미타불)를 막론하고 한 자 한 자를 분명히 염하고 들으면, 생각이 다른 곳으로 달아나지 않고 자연히 마음이 안정된다. 이 염법은 효력이 매우 크므로 금강에 비유한 것이다. 금은 긴밀함을 비유하였으니, 긴밀하면 외경에 빠져들지 않을 것이요, 강은 견고함을 비유하였으니, 견고하면 잡념이 능히 파괴하지 못하는 것이다. 각종 염불방법 중에서 이것이 가장 널리 쓰이고 있다.

④각조념(覺照念)
염불할 때 한편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면서 한편으로는 자성을 회광반조(回光返照)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나의 마음과 불심, 나의 몸과 불신이 한 덩이가 되어 환하고 또렷또렷히 시방에 꽉차며, 모든 산하대지의 방사나 기구가 일시에 소재(所在)를 잃어버리며, 내지 자기의 사대색신도 어느 곳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이와 같이 되면 보신이 죽기 전에 이미 적광을 증득하며 불호를 처음 부를 때 곧 삼매에 들어가서 범부의 몸으로 부처님의 경계에 참예할 수 있으니, 이보다 빠른 법은 없을 것이다. 애석한 것은 상상근인이 아니면 능히 깨닫고 실행할 수 없으므로 제도할 수 있는 근기가 비교적 좁은 것이 흠이라 할 것이다.

⑤관상념(觀想念)
염불할 때 한편으로는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면서 한편으로 부처님의 존엄한 신상이 분명히 나의 앞에 서 계시면서, 손으로 나의 머리를 어루만지시기도 하고 혹은 옷으로 나의 몸을 덮어주시는 것을 관상하는 방법이다. 또한 관음세지가 부처님 곁에 서 계시며 현성(賢聖)이 나를 위요(圍繞)함을 관상하며, 혹은 극락국의 금지(金池)와 보지(寶池), 화개(花開), 조명(鳥鳴), 보수(寶樹), 라망(羅網) 등이 빛나고 화려한 것을 관상한다. 만약 관상이 깊어지면 몸이 그대로 극락국토에 노닐 것이요, 설사 깊지 못하더라도 염불의 조연(助緣)이 되어 정업(淨業)을 성취하기에 손쉬울 것이다. 만약 오래오래 관하고 성숙하게 하여 평소에도 심목(心目) 중에 또렷이 있어서 하루 아침에 보체(報體)가 죽더라도 차방 진연(塵緣)에 끌리지 아니하면, 극락국의 승경(勝境)이 일제히 앞에 나타날 것이다.

⑥추정념(追頂念)
염불할 때 위의 금강념과 같은 방법을 쓰되, 다만 글자와 글자 사이와 글구와 글구 사이를 연속하여 지극히 긴밀하게 하여, 한 글자가 한 글자를 뒤쫓으며 한 글구가 한 글구를 이어서 중간에 조그마한 틈도 없이 함으로 추정념이라 말한다. 이렇게 앞을 뒤쫓아 서로 긴밀하게 하여 조그마한 틈도 두지 않기 때문에 잡념이 들어올 틈이 없는 것이다. 이 법으로 염불할 때는 정신이 긴장하고 마음과 입이 항진(亢進)하여 정념으로 하여금 잠깐 사이에 고요한 경지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이 염법은 효력이 지대하므로 정업행인이 흔히 이 방법을 채용한다.

⑦예배념(禮拜念)
염불할 때 한편으로 염불하면서 한편으로 절을 하는 방법이다. 다만 일구를 염하고 한 번 절하거나, 자구는 상관하지 않고 염하면서 절하고, 절하면서 염하여 염과 절을 병행하여 몸과 입을 합하게 하며, 게다가 마음 속에 부처님을 생각하면 삼업이 집중하고 육근이 모두 섭수하게 된다. 이 방법은 우리 몸에서 능히 작용을 발생하는 기관을 모두 염불하는데 쏟아넣어 염불 이 외의 일이나 염불 이 외의 생각은 조금도 용납치 않는 방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방법은 특별한 정진이므로 효력도 특별히 크다. 다만 절을 오래하면 몸도 피로하고 숨도 차므로 다른 방법과 겸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요, 이 방법만을 전용하는 것은 무리일 듯하다.

⑧기십념(記十念)
염불할 때 염주로써 수를 헤아리되, 열 번 불호를 염하고 한 알의 염주를 넘기는 방법이다. 이와 같이 마음속으로 염불을 하면서 수를 기억해야 하므로 전념하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전념해 지는 것이요, 만약 전념하지 않을 때는 수목(數目)이 착란해 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방법은 억지로 전념하게 하는 방편이므로 잡념을 퇴치하는 데에 지극한 공효(功效)가 있다.

⑨십구기념(十口氣念)
염불할 때 다만 추정법을 써서 염하되, 한 번 숨을 들이마셔서 내뿜을 때까지 계속 염불을 하는 것을 일구념이라 하고, 이와 같이 열 번 하는 것을 십구기라 한다. 이 방법은 염불할 여가가 없이 매우 바쁜 사람을 위하여 특별히 시설한 방편법으로, 십구기를 마칠 때까지는 대략 5분 남짓 소요된다. 이렇게 매일 한 번씩만 십구기를 하여도 능히 극락국에 왕생할 수 있으니, 비록 매우 바쁜 사람일지라도 능히 이렇게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미타 제18원에 '시방 중생이 나의 나라에 태어나고자 하면서 십념만 하고서도 만약 왕생치 못하면 정각을 이루지 않겠나이다' 한 원문(願文)을 근거하여 시설한 것이다. 고인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소위 십념이란 곧 십구기를 두고 말하는 것이라 하였다. 이를 보면 부처님의 원력이 매우 광대하며 정토법이 또한 매우 진실한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니, 그러므로 비록 십념만 하더라도 임종에 부처님이 와서 반드시 영접하는 것이다.

⑩정과념(定課念)
염불하는 데 있어서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처음은 부지런히 시작했다가 나중에 가서는 나태하여 항심(恒心)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고금의 행인이 염불할 때에 하루에 일정한 양을 정해놓고 어김없이 실행함으로 해서 도심이 물러가지 않게 하는 방법이다. 불호의 양에는 구애됨이 없이 고인들은 매일 십만념 혹은 칠만, 오만 등을 정해놓고 항상 이를 실천하였으니, 그 정진력을 알 수 있겠다. 다시 말하면 이 방법은 환경과 자신의 역량을 참작하여 일정한 양을 정하되, 한 번 정한 후에는 어떤 바쁜일을 막론하고 기필코 정한 수를 채워야 할 것이요, 부득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다음날 반드시 부족한 양을 채워서 염불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만약 처음 시작할 때는 용기 백배하여 너무 많은 양을 정했다가 뒤에 가서는 감당치 못하면 이것도 좋지 않으며, 처음부터 너무 적게 정하면 나태하기 쉬우므로 이것도 옳지 않다. 그러므로 양을 결정할 때는 자세히 요량해야 할 것이다.

⑪사위의중개념(四威儀中皆念)
행자가 정종(淨種)이 순숙해지면 염불이 저절로 정진이 되어 양을 정하는 것으로 만족치 않고, 양을 정한 외에 낮이나 밤이나 상관없이 잠들기 전에는 거의 염하지 않을 때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사위의중개념으로서, 이렇게 오래하여 습관이 되면 일구의 미타가 영원히 입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예는 고인의 왕생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어떤 대장장이는 쇠를 두들기면서 염불을 끊이지 않았으며, 어떤 두부장수는 콩을 갈면서 염불을 잃지 않더니, 최후 염불소리가 끊어지면서 그대로 서서 죽었던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모두 우리의 본보기가 될 것이다. 과연 이런 정도에까지 이를 수 있다면 양을 정하든 정하지 않든 그런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⑫염불념개념(念佛念皆念)
위에서 말한 사위의중개념은 구념을 가리킨 것이나, 여기서 말하는 염불념개념의 개념의 염자는 심념(心念)을 지적한 것이다. 곧 입으로 염하거나 입으로 염하지 않거나 관계없이 심중에서 늘 염불하고 있으며, 입으로 염불하지 않을 때에도 심중에서 염불하는 것이니, 곧 지명 외에 관상이나 관조할 때에도 바로 지명 중에 있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단지 구념할 때만 관상하는 것과는 같지 않다. 행자가 만약 이러한 경지에 이를 수 있으면, 어느 때 어느 경우와, 입으로 염하든 입으로 염하지 않든 관계없이 심중에서 늘 부처님을 생각하여, 정념이 견고하기가 철벽과 같아서 바람이 불어도 들어올 틈이 없고, 차 넘어뜨리려 하여도 파괴되지 않아서 조그만한 세념(細念)이나 잡념도 없을 것이다. 이때는 염불삼매가 이루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져서 저 국토에 태어나는 것은 마치 보증서를 받아 둔 듯하리라.
고인이 말하기를 '염하되 염하지 않으며, 염하지 않으면서 염한다' 한 것이 바로 이러한 경계이다.
만약 염불한 지가 오래되고 공행이 순숙하지 않으면 절대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없을 것이니, 그러므로 초학자가 능히 행할 수 있는 법은 아니다.



3)십념의 방법

이상은 『정법개술』을 인용한 것으로 더 이상 설명을 붙이지 않아도 충분히 다양한 염불법이 제시되었다고 생각된다. 다만 지명염불의 근간이 되는 10념에 대해서만 설명을 더 하고자 한다.

하품하생하는 이란 매양 악업을 짓는 중생으로서, 오역죄와 십악 등 가지가지의 악을 지어 그 무거운 죄업의 과보로, 응당 지옥 아귀 축생 등 삼악도에 떨어져 오랜 겁 동안 한량없는 괴로움을 받을 사람을 말하느니라. 그러나 이와 같은 어리석은 사람도 목숨이 다하려 할 때 선지식을 만나게 되어 선지식이 그를 위하여 여러가지로 안위하여 주고 미묘한 법문을 들려주어 지성으로 부처님을 생각하도록 가르쳐주느니라. 그러나 그는 괴로움이 극심하여 부처님을 생각할 경황이 없느니라. 그래서 선지식은 다시 그에게 '그대가 만약 부처님을 생각할 수가 없다면 다만 아미타불을 부르도록 하여라'고 타이르니라. 그래서 이 사람이 지성으로 소리를 끊이지 않고 아미타불을 열 번만 온전히 부르면, 그는 부처님의 명호를 부른 공덕으로 염불하는 동안에 80억겁 동안 생사에 헤매는 무거운 죄업을 없애느니라. 그리고 목숨을 마칠 때는 마치 태양과 같은 찬란한 황금의 연꽃이 그 사람 앞에 나타나, 그는 순식간에 바로 극락 세계의 보배 연못 연꽃 속에 태어나느니라. <관무량수경>

이 경에서 하배의 십념을 말하였는데, 그 말 속에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으니, 이른바 현료의(顯了義)와 은밀의(隱密義)이다. 은밀의란 제3대(對)의 순정토(純淨土)의 과에 의해 십념의 공덕을 말한 것이니, 이것은 <彌勒發問經>에 말한 것과 같다. 즉 "그때 미륵보살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부처님께서 아미타불의 공덕 이익을 말씀하시면서, 만일 십념을 끊어지지 않게 계속해 그 부처님을 생각하면 곧 왕생할 수 있다고 하시는데, 그러면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범부의 생각이 아니요 나쁜 생각이 아니며 잡된 번뇌의 생각이 아니니, 만일 그런 생각을 두루 갖추면 곧 안양국토에 왕생하게 될 것이다. 무릇 십념이 있으니 그 십념이란 이른바, 첫째는 모든 중생에 대해 항상 인자한 마음을 내고 모든 중생에 대해 그 행을 비방하지 않는 것이니 만일 그 행을 비방하면 끝내 왕생하지 못할 것이다. 둘째는 모든 중생에 대해 슬퍼하는 마음을 일으켜 해칠 생각을 버리는 것이며, 셋째는 법을 보호할 마음을 일으켜 신명을 아끼지 않고 일체의 법을 비방하지 않는 것이요, 넷째는 인욕하는 가운데서 결정하는 마음을 내는 것이며 다섯째는 신심이 청정하여 이양(利養)에 물들지 않는 것이다. 여섯째는 일체종지(一切種智)의 마음을 내어서 날마다 늘 생각하면서 잊지 않는 것이며, 일곱째는 모든 중생에 대해 존중하는 마음을 내어 아만을 버리고 겸손한 말을 쓰는 것이며, 여덟째는 세속 이야기에 맛을 붙이지 않는 것이며, 아홉째는 각의(覺意)을 가까이 하여 갖가지 선근의 인연을 깊이 일으키고 시끄럽고 산란한 마음을 멀리 떠나는 것이며, 열째는 바른 생각으로 부처님을 관하면서 모든 감관을 제거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해석하기를 "이런 십념을 가지면 이미 범부가 아니다. 그러므로 초지(初地) 이상 보살이라야 십념을 두루 갖출 수 있는 것이며 순정한 국토에 대한 하배의 인이 되는 것이니, 이것을 은밀의의 십념이라 한다." 현료의의 십념의 모양을 나타낸다는 것은 제4대(對)의 정토를 잡아 말하는 것이니, 이 <관경>에 "하품하생이란 어떤 중생이 오역 십악 등 갖가지 악업을 갖춰 짓다가 임종 때에 이루러 선지식을 만나면...이와같이 지극한 마음으로 그 소리를 끊어지지 않게 하며, 십념을 갖추어 나무불이라고 일컫는데.....". 어떤 마음을 지극한 마음이라 하며 어떤 것을 십념의 계속이라 하는가.
구마라집이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 광야에서 나쁜 도적이 창을 휘두르거나 칼을 빼어 들고 곧 쫓아와 죽이려 하자 그는 부지런히 달아나다가 한 강에 이르렀는데, 만일 그 강을 건너지 못하면 목숨을 보존하기 어려웠다. 그때 그는 다만 그 강을 건널 방편만을 생각한다. 즉 '나는 지금 강가에 이르렀다. 옷을 입고 건너야 할까? 옷을 벗고 건너야 할까? 옷을 입고는 건널 수 없고 옷을 벗으려 해도 그럴 겨를이 없다.' 오직 이 생각만 있고 다른 생각이 없어, 강을 건너려는 생각은 곧 그 일념 뿐이니 이런 십념에는 다른 생각이 섞이지 않는다.
수행하는 사람도 또한 그와 같아서 부처님 명호를 생각하거나 부처님 상호를 생각하거나 끊임없이 부처님을 생각하여 십념에 이르러야 하나니, 이런 지극한 마음을 십념이라 하며 이것이 곧 현료의 십념의 모양이다"라고 하였다. <무량수경종요>

평상시 악업만 짓던 사람이 임종시에 십념만으로 왕생한다고 하니 어떻게 십념을 해야 그런 일이 가능한가. 이에 대해 원효스님은 현료의와 은밀의로 설명하고 있다. 먼저 은밀으로서 열가지 마음을 내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렵기 때문에 현료의로서 지극하기만 하면 십념을 갖춘 것이라고 하였다. 하기야 죽음을 눈앞에 두었으니 마음이 얼마나 급하겠는가. 그때 간절한 그 십념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러나 임종시에는 정신이 혼미하여 이런 바른 생각을 내기 어렵다. 또한 정신차릴 경황도 없이 갑자기 죽을 수도 있고 질병의 고통과 싸우느라고 마음을 모을 수 없고, 죽음에 대한 공포와 거부감에 몸부림치다가 죽을 수도 있다. 따라서 임종시에 일념으로 염불할 수 있으려면 평상시에 극락왕생의 원을 세우고 늘상 입에서나 마음에서 염불을 놓치지 말아야 가능한 일이다. 또한 죽음이 늙은이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안이하게 세월을 보내며 염불은 나이가 더 들면 하겠다고 생각한다면 생사의 본질을 모르는 무지의 소치이다. 죽음이 언제 찾아올 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 노소를 불문하고 때어나면 곧 죽음과 가까이 있음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4)관상염불

관상염불은 부처님의 상호를 관하거나 공덕을 생각하는 염불방법으로 <관무량수경>에는 극락왕생을 위한 16관법이 제시되어 있으나 여기서는 대표적인 몇가지 관법만 소개하고자 한다.

①해를 생각하는 관(日想觀)
부처님께서 위제히 부인에게 말씀하셨다.
"부인과 중생들은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을 한곳에 집중시켜 서쪽을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모든 중생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소경이 아니니 눈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해가 지는 것을 볼 것이므로 서쪽을 향해 단정히 않아서 해를 똑똑히 보도록 하시오. 그리고 나서 마음을 굳게 간직하여 생각을 움직이지 말고, 곧 지려는 해를 보고 난 후에도 눈을 감으나 뜨나 그 영상이 한결같이 분명히 보이도록 하시오. 이것을 해를 관하는 일상관이라 하고 최초의 관이라 합니다."

②형상 생각하는 관(像想觀)
부처님께서 아난과 위제히 부인에게 말씀하셨다.
"이미 연화대를 관했으면 다음에는 부처님을 생각하여라.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은 우주에 충만해 있는 진리이고 그 장용인 법계신(法界身)이기 때문에 일체 중생의 마음 속에도 들어계시느니라. 그러므로 그대들의 마음에 부처님을 생각하면 그 마음이 바로 부처님의 32상의 뛰어난 모습이 되고 80가지 특징을 가지게 되느니라. 그래서 이 마음으로 부처를 이루고 또한 이 마음이 바로 부처니라.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바른 지혜는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니, 마땅히 일심으로 생각을 골똘히하여 아미타불과 그 지혜공덕인 여래, 응공, 정변지를 깊이 관해야 하느니라.
아미타불을 관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부처님의 형상을 생각해야 하느니라. 눈을 뜨거나 감거나 마음을 한결같이 하여 염부단금의 자마금색과 같이 찬란한 하나의 부처님 형상이 저 연꽃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을 관조해야 하느니라.
그리고 이와 같은 부처님의 형상을 보고 나면 마음의 눈이 열려서 저 극락세계의 칠보로 장엄된 보배 땅과 보배 연못과 줄지어 서 있는 보배 나무와 그리고 그 위를 덮고 있는 천상의 보배 휘장과 또한 온갖 보배로 아롱진 보배 그물이 허공에 가득함을 분명히 보게 될 것이니라. 그리고 이러한 영상을 마치 자기 손바닥을 보듯이 더욱 뚜렷하게 관조해야 하느니라.
그리고 이와 같이 보고 난 다음에는 다시 한 송이의 커다란 연꽃이 부처님 상(像)의 왼편에 있는 것을 생각하여라. 그것은 부처님 상의 연꽃과 같아서 조금도 다르지 않느니라. 또한 그와 똑같은 연꽃이 또 한 송이 부처님 상의 오른편에 있는 것을 생각하여라. 그리고 한 관세음보살의 상이 왼쪽 연꽃 위에 앉아 있고, 한 대세지보살의 상이 오른쪽 연꽃 위에 앉아 있는데, 그 금색 광명은 한결같이 부처님의 상과 같음을 생각하여라.
그리하여 이러한 생각이 이루어지면 부처님의 상과 두 보살의 상은 모두 광명을 발하느니라. 그래서 그 찬란한 금색 광명은 모든 보배 나무를 비추느니라. 그리고 그 낱낱 보배 나무 밑에는 또한, 세 송이의 큰 연꽃이 있고 연꽃 위에는 각각 한 부처님의 상과 두 보살의 상이 있는데, 이렇듯 아미타불의 상과 두 보살의 상이 저 극락세계에 두루 가득하느니라.
그리하여 이와 같은 생각이 성취되었을 때, 관(觀)하는 수행자는 극락세계의 흐르는 물과 광명과 모든 보배 나무와 기러기와 원앙새 등이 모두 미묘한 법문을 아뢰고 있음을 알아듣게 되느니라.
그래서 선정에 들 때나 선정에서 나올 때나 항상 미묘한 법문을 들을 것이니, 수행자는 선정에 들었을 때 들은 바를 잘 기억하였다가, 선정에서 나온 뒤에 경전의 가르침과 맞춰보도록 해야 하느니라. 그것이 만약 경전과 맞지 않으면 이를 망상이라 하고 경전과 합당하면 이를 거친 생각으로 극락세계를 보는 것이라 하느니라.
그런데 이와 같이 부처님과 보살의 형상을 생각하고 관조함을 상상관(像想觀)이라 하고 또한 여덟째 관이라 하느니라. 그리고 이러한 관조를 하는 사람은 무량 억겁 동안 생사에 헤매는 악업을 없애고 현재의 이 몸으로 염불삼매를 얻게 되느니라.

③부처님 몸 생각하는 관(眞身觀)
부처님께서 다시 아난과 위제희 부인에게 말씀하셨다.
"이러한 생각이 이루어지면 다음에는 아미타불의 몸과 그 광명을 관조하여라. 아난아, 잘 알아 두어라. 아미타불의 몸은 백천만억 야마천의 자마금색과 같이 빛나고, 부처님의 키는 60만억 나유타 항하사 유순이니라. 그리고 미간의 백호는 오른쪽으로 우아하게 돌고 있는데 마치 다섯 수미산을 합한 것과 같고, 부처님의 눈은 사대해(四大海)의 바닷물처럼 그윽하여 푸르고 흰 동자가 분명하느니라.
몸의 모든 모공에서는 수미산과 같은 큰 광명이 흘러나오고 부처님의 원광은 백억 삼천대천세계와 같으니라. 그리고 그 원광 속에는 백만억 나유타 항하사의 화신불이 계시고 그 화신불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화신보살들이 모시고 있느니라.
그리고 아미타불에게는 8만 4천 가지의 상(相)이 있고, 그 하나하나의 상에는 각각 8만 4천의 수형호가 있으며, 그 낱낱 수형호마다 또한 8만 4천의 광명이 있느니라. 그리고 그 광명은 두루 시방세계를 비추어 부처님을 생각하고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는 염불 중생들을 받아들여 그 한 사람도 버리지 않느니라. 그런데 이러한 모든 광명과 상호와 화신불을 이루 다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니, 다만 깊이깊이 생각하여 마음의 눈으로 보도록 하여라.
이와 같이 볼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시방의 일체 모든 부처님을 볼 수 있으며, 모든 부처님을 볼 수 있으므로 염불삼매라 하느니라. 그래서 이와 같이 관조함을 '모든 부처님의 몸을 관한다'고 말하느니라. 그런데 부처님의 몸을 볼 수 있으면 또한 부처님의 마음도 볼 수 있는 것이니, 부처님의 마음 곧 불심(佛心)이란 바로 대자대비이며 모든 부처님들은 이러한 무연자비(無緣慈悲)로써 모든 중생을 섭수하시느니라. 이와 같이 관조할 수 있는 사람은 내생에는 여러 부처님의 회상에 태어나, 생사를 깨닫는 무생법인을 얻게 되느니라.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을 오로지 하여 착실히 아미타불을 관조해야 하느니라. 그리고 아미타불을 관조할 때는 한 가지 상호로부터 보아들어가야 하는데, 오직 미간 백호만을 관조하여 그 영상이 분명하도록 관하기도 하느니라. 그래서 미간 백호를 볼 수 있으면 부처님의 8만 4천 상호가 저절로 앞에 나타나는데 이렇듯 아미타불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시방세계의 헤아릴 수 없는 모든 부처님을 볼 수 있느니라. 또한 무수한 부처님을 볼 수 있으므로 부처님으로부터 미래에 성불한다는 수기(授記)를 받게 되느니라. 이러한 것을 일체 부처님의 몸을 관조하는 진신관(眞身觀)이라 하고 또한 아홉째 관이라 하느니라. 그리고 이와 같이 관조함을 바른 정관(正觀)이라 하고 달리 관함을 그릇된 사관(邪觀)이라 하느니라."

④관세음보살 생각하는 관(觀音觀)
부처님께서 다시 아난과 위제희 부인에게 말씀하셨다.
"아미타불을 분명하게 뵈온 다음에는 관세음보살을 관조하여라. 이 보살은 키가 80만억 나유타 유순이며, 몸은 자마금색으로 빛나고, 정수리에는 상투같이 솟은 육계가 있으며, 목에는 원광이 있는데, 그 지름이 백천 유순이나 되느니라. 그 원광 속에는 5백의 화신불이 계시는데 모두 나(석가모니불)와 같으니라. 그리고 한 분의 화신불마다 각기 5백의 화신보살과 헤아릴 수 없는 천인들이 모시고 있느니라.
그리고 관세음보살의 온 몸에서 발하는 광명 속에는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천상 등 오도 중생의 일체 모든 현상이 나타나 있느니라. 관세음보살의 머리 위에는 마니보주로 된 천관(天冠)이 있고 그 천관 속에는 화신불 한 분이 서 계시는데, 높이가 25 유순이니라.
관세음보살의 얼굴은 자마금색으로 빛나고 미간의 백호는 칠보의 빛깔을 지녔는데, 8만 4천의 광명이 흘러나오느니라. 그리고 그 낱낱 광명 속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화신불이 계시는데, 그 화신불들은 또한 각기 수없이 많은 화신보살들이 모시고 있느니라. 이와같이 자재로 변화하여 시방세계에 가득함이 마치 찬란한 붉은 연꽃이 수없이 피어 있는 것과 같으니라.
또한 관세음보살은 80억 광명으로 된 영락 목걸이를 걸고 있는데, 그 영락 구슬 속에는 모든 장엄한 일들이 모조리 나타나 있느니라. 그 손바닥은 5백억 가지 연꽃 빛을 띠고 그 손가락 끝마다 8만 4천의 그림 무늬가 있는데, 마치 도장의 인주과 같으니라. 그 그림 무늬마다 8만 4천의 빛깔이 있고 빛깔마다 또한 8만 4천의 광명이 있느니라. 그런데 그 광명은 부드럽고 상냥하여 두루 모든 것을 비추는데, 관세음보살은 이러한 보배 손으로 중생들을 인도하느니라.
또한 관세음보살이 발을 들 적에는 발바닥에 있는 천복륜(千輻輪)의 발금이 저절로 오백억의 광명대로 변화하고 발을 디디면 그것이 금광마니 보(寶)의 꽃으로 변하여 온 땅 위에 흩어져 그득하게 되느니라. 그런데 관세음보살의 모든 상호는 부처님과 똑같이 갖추어져서 조금도 다름이 없으나, 다만 정수리에 솟은 육계와 육계 속에 아무도 볼 수 없는 정점(頂點)인 무견정상(無見頂上)만이 부처님에게 미치지 못하느니라. 이와같이 관함을 관세음보살의 몸을 관하는 관음진신관이라 하고 또한 열째 관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다시 이르시기를,
"만약 관세음보살을 보고자 한다면 마땅히 내가 말한 것과 같이 관조해야하느니라. 이러한 관을 하는 사람은 모든 재앙을 만나지 않고 업장을 말끔히 소멸하여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겁동안 생사에 헤매는 죄업을 없애느니라. 그래서 관세음보살은 다만 그 이름만을 들어도 무량한 복을 얻을 수 있는데 하물며 그 모습을 분명히 관조하는 큰 공덕에 있어서랴.
그런데 만약 관세음보살을 관조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정수리의 육계를 관하고 다음에는 천관(天冠)을 관하고 그 나머지 여러 상호를 차례차례로 관조하되 뚜렷하기가 마치 손바닥을 보는 것과 같이 분명히 해야 하느니라. 이와같이 관조함을 바른 정관이라 하고 달리 관함을 그릇된 사관이라 하느니라.

⑤대세지보살 생각하는 관(勢至觀)
다음에는 대세지보살을 관조하여라. 이 보살의 크기는 관세음보살과 같으며 그 원광의 지름은 125유순이며 250유순을 비추느니라. 온 몸에서 발하는 광명은 자마금색으로서 시방세계의 모든 나라를 비추는데 인연이 있는 중생들은 다 볼 수 있느니라. 그리고 이 보살의 한 모공에서 나오는 광명만 보아도 시방세계의 무량한 모든 부처님의 청정하고 미묘한 광명을 볼 수 있느니라. 그러므로 이 보살의 이름을 끝없는 광명인 무변광(無邊光)이라 말하며 또한 지혜의 광명으로써 두루 일체 중생을 비추어 지옥 아귀 축생 등 삼악도의 고난을 여의게 하는 위없는 힘을 지니고 있으므로, 이 보살을 큰 힘을 얻은 이, 곧 대세지라 하느니라.
그리고 이 보살의 보배관은 오백 가지의 보배 꽃으로 장식되어 있고, 그 하나하나의 보배 꽃마다 또한 5백의 보배 꽃받침이 있는데, 그 낱낱의 꽃받침에는 시방세계의 모든 청정 미묘한 불국토의 광대한 모양이 나타나 있느니라. 또한 정수리의 육계는 찬란한 홍련화와 같으며, 그 위에 하나의 보배 병이 있는데, 온갖 광명이 가득하여 두루 부처님 일을 나투고 있느니라. 그리고 이 밖에 여러 가지 몸의 형상은 관세음보살과 다름이 없느니라.
그리고 이 보살이 다닐 적에는 시방세계의 일체 모든 것이 진동하며, 진동하는 곳마다 바로 5백억의 보배 꽃이 피고, 꽃마다 크고 장엄함이 극락세계와 같으니라. 또한 이 보살이 앉을 때에는 칠보로 된 국토가 일시에 흔들리는데 그것은 아래쪽의 금광불 국토에서 위에 있는 광명불 국토까지 이르느니라. 그리고 그 중간에는 무량 무수한 아미타불의 분신과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의 분신들이 구름같이 극락세계에 모여 허공 가득히 연화대에 앉아서 미묘한 불법을 연설하여 고해 중생을 제도하시느니라.
이와 같이 관조함을 정관이라 하고 달리 관함을 그릇된 사관이라 하느니라. 또한 이러한 것이 대세지보살의 색신을 생각하는 관이며 열 한번째의 관이니라. 그리고 이 대세지보살을 관조하는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이 오랜 아승지겁 동안 생사에 헤매는 죄업을 없애며, 또한 다시는 태중(胎中)에 들지 않고, 언제나 모든 부처님의 청정 미묘한 국토에 노닐게 되는 것이니, 이와 같은 관이 성취되면 온전히,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보았다고 할 수 있느니라."



5)일상생활에서

염불행자는 일상생활에서 마음을 고요하고 안정되게 해야 할 것이다. 편안한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욕심을 놓아야 한다. 욕심을 떠난 사람은 저절로 편안함을 얻는다. 이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염불을 해야 오로지 염불에만 집중할 수 있으며 일심을 얻을 수 있다. 또한 급할 때만 불보살님을 찾다가 곧 잊어버리기를 반복하지 말고 언제 어디서나 한결같이 해야 할 것이다.

혜원스님은 사람들에게 사바세계를 버리고 정토를 구하기를 권하였다. 그의 가르침을 보면 "금과 은은 마음을 더럽히는 더러운 물건이요, 벼슬은 몸을 얽어매는 고구(苦具)와 같은 것입니다. 여색은 목숨을 뺏는 도끼와 같은 것이며, 화려한 옷과 맛있는 음식, 전원과 옥택 따위는 모두 삼계에 떨어지게 하는 함정입니다. 오직 인간 세상을 벗어나 연화회상에 태어나기를 기원합시다. 더 무엇을 흠모하고 부러워하겠습니까?" 하였다......
내가 전에 <在家眞實修行文>이라는 글을 써서 세상 사람들에게 권한 적이 있거니와 그 내용은 대략 이런 것이었다.
진실로 수행하려는 자는 굳이 무리를 짓거나 모임을 만들 것은 아니다. 집안에 조용한 방이 있을 것이니, 그 곳에서 문을 닫고 염불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굳이 스님들에게만 공양할 것은 아니다. 집안에 부모가 계실 것이니 효순한 마음으로 봉양하면서 염불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또 꼭 밖으로 나돌며 강의를 들으려 할 것은 아니다. 집에 경전이 있을 것이니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하면서 염불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오직 절에만 시주할 것은 아니다. 가난한 친척과 이웃에게도 두루 베풀면서 염불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죽창수필 2집>

염불행자는 우선 생활이 검소 검약할 것이며, 결코 세속적 욕망를 쫓아가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일상생활 속에서 염불을 할뿐이지 굳이 밖으로 찾아 유난스럽게 하지 않는다. 가족이나 친척이나 이웃이나 직장동료들에게 그들의 뜻에 효순하고 친절과 보시를 베풀어 화합하여 내가 있는 곳에서 기쁨과 평화를 만드는 일을 하는 속에서 염불수행도 익어갈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수행따로 생활 따로 인 사람을 종종 접하게 된다. 이런 사람은 염불을 해도 마음에 전혀 변화가 없다. 오히려, 나는 염불한다는 상을 가지고 염불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고 일상생활은 하찮은 것이라 여겨 아만만 쌓고 주변사람들에게 무관심하다. 무관심해지고 무덤덤해지는 것을 수행이 잘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간관계에서는 이기적인 반응을 하기 쉽다. 즉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이 걸림없이 사는 모습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수행을 열심히 하고 신비한 체험들을 많이 했다고 하더라도 다시 현실로 돌아오지 않으면 안되고 현실에 뿌리 내리지 않은 열반은 단지 환상일 뿐이다.
특히 염불은 부처를 생각하고 정토를 생각하여 내 모습이 부처를 닮아 가고 내가 서있는 곳에서 정토를 일구는 수행이 되어야 한다.



대한불교조계종 구천산 삼봉사 [우627-902,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우곡리 245-6, Tel:055-356-0124]

http://www.sambongsa.or.kr/study/book_03/05_0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