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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불)"수행 자료-(정토선의 문답정리)-12
"(아미타불)"염불 수행을 하고자 발원하시는 분들을 위한 "(아미타불)"
관련 경전과 큰스님 분들의 관련 자료및 염불수행에 관한 자료입니다)
<극락세계유람경>이 세상에 나온 뒤로부터 불교계의 반응은 긍정과
부정이 각각 절반씩 나오고 있는데, 이것은 아주 정상적인 현상입니다.
의문을 갖는다는 것은 절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의문이 있어야 비로소 해답이 나오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학문이나 진리도 모두 이런 식으로 탄생하는 것이며 진리란 변론을
하면 할수록 더욱 명백해지는 법입니다.
독자들의 갖가지 의문을 종합하면 크게 두 가지로 귀결되는데, 하나는
"극락세계를 유람하고 돌아온 일이 정말 진실인가?"와 다른 하나는
"이 법(정토선)을 과연 수행해도 되는가?"하는 문제입니다.
첫 번째 의문에 관한 답변은 다음과 같습니다. 종교는 과학이 아니기
때문에 명확하고 분명하게 실존하는 물건처럼 눈앞에 끄집어 내놓고
이것이 <진짜>인가 <가짜>인가 하고 실험하고 증명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어떠한 종교의 역사도 모두 그렇습니다.)
종교에서 중시하는 것은 <믿음>이라는 글자입니다. 그래서 화엄경에서도
<믿음은 도(道)의 근원이자 공덕의 어머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제 자신이 인증하는 경계가 진짜인가, 가짜인가? 하는 문제는
도를 증득하신 분들이라면 누구나 자연히 마음으로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도인은 선정 중에 극락세계의 각종 경계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얼토당토않게 자신을 위해 이렇게 큰 농담, 즉 대망어를 하여
무간지옥에 떨어질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러한 이치는 ㈀립?
모두 알 수 있으리라 여깁니다.
저는 아미타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의 뜻을 받들어, 비로소 극락세계에서
보고 들었던 각종 경계를 감히 공개하게 된 것입니다. 그
러므로 첫 번째 의문에 대한 답변은 "믿고, 믿지 않고는 각자 자유입니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의문은 법을 구하는 정신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아주 건설적인
내용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만 있고 <실천행위>가 없다면
출발하지 않은 것과 같아서 영원히 목적지(피안: 彼岸)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정토선> 법문은 불보살님으로부터 직접 전수 받은 것이며 또 극락세계의
중생들이 실제로 수행하는 방법으로서, 이 법문은 만나기는 어려운 반면
수행을 성취하기는 쉬운 것입니다.
여기서 최근 몇 년 동안 독자들이 제기한 <정토선>에 관한 여러 가지
의문들에 대하여 하나 하나 답변을 해 드리겠습니다.
문: <정토선>을 수행할 때 어느 정도 시간을 수행하여야 하며 또 수행을
하면 어떠한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까?
답: 다음에 간단하게 밝힌 도표를 우선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다음 도표는 여러분들에게 하나의 과정에 따른 순서를 밝혀 드린 것이며,
이러한 순서에 의해 점차적으로 수행하여 시작도 없는 아득한 과거전생부터
심령에 물든 업장(業障)들을 점차 제거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서 마음자리를
무념의 경계(본래면목)에 이르도록 회복시키면 바로 참되고 영원한
마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아래의 내용은 각자의 근기와 노력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음.
(선용스님 경험)
-아래-
1개월(매일 2회 20-30분):몸과 마음이 가볍고 편안함.
근기가 뛰어나면 3일만에 몸안에서 염불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며
늦어도 1∼3개월이면 들림
3개월(매일 3회 30분):몸과 마음이 안락하고 유쾌함.
몸 안의 귀나 가슴, 단전,등에서 염불소리가 들리기 시작함.
6개월(매일 3회 30-40분):일심불란하고 뜻과 마음이 활짝 열려 매우
자유자재로와짐.<나무아미타불> 염불소리가 아주 뚜렷이 들리며 참선할
때 몸 안의 염불소리를 주의 깊게 들으면 온갖 생각이 하나로 모아짐.
8개월(매일 2회 1시간):마음이 맑고 시원하여 어떤 망상도 없음.
부처님 명호인 <나무아미타불>염불마저 점점 사라져 감.
1년부터 7년 까지(매일 3-4회,최소 1-2시간):마음이 공적(空寂)하여
법신이 자유자재함.
<나무아미타불> 염불마저 사라지고 마음이 허공처럼 고요하여 온
허공법계에 가득차며 극락세계의 상품상생 연못에 연꽃이 피어 아미타불을
친견하게 됨.
불교는 선종이나 정토종, 밀교종 등 어느 종파든지 따질 것 없이
수행방법으로서 채식이나 독경, 예배, 염불, 주력, 관법, 결인
(結印: 손가락으로 수인을 맺는 법), 수식(數息: 호흡을 헤아리는 법),
분정(焚頂: 머리를 향불로 태움), 소지(燒指: 손가락을 태움, 연비라고도 함),
자혈사경(刺血寫經: 피를 내어경전을 씀) 등 어떤 것이든지,
모두가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있는 번뇌망상을 제거하고 중생들의
모든 전도몽상(顚倒夢想: 꿈을 현실로 착각하는 것처럼 거꾸로 보는
잘못된 생각)과 업장을 깨끗이 씻어 내기 위한 방편이 아님이 없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모든 법문은 다 한결같이 여러분들에게 어떻게
<마음을 다스릴 것인가>를 가르쳐 주는 방편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심령이 청정해지고 난 뒤에는 다시 법에 대한 집착(法執)
마저 제거해야 됩니다.
이러한 법칙(나도 없고(我空) 법도 없는(法空) 도리)을 깨달으면 참마음이
자연히 열려서 깨달음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수행자는 장차 자신의 희망이 극락왕생하여 아미타부처님을 뵙고
무생법인을 얻는 것이든, 마음을 밝히고 성품을 보아 성불하려는 것이든,
아니면 그 자리에서 단박에 성불하려는 것이든, 모두 이러한 '성불하고
조사가 되려는' 목적을 달성하려면, 우선 먼저 반드시 갖추어야 될
기초가 바로 <무념>인데, 그 이유는 오직 <무념>의 상태에서만 비로소
각종 성불의 길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마음속의 온갖 번뇌망상을 다스려 일념에 들어가지 못하거나, 다시
또 일념을 공적(空寂)하게 해서 무념으로 만들지 못했다면, 이것은
마음을 다스리는 기본원리를 등진 까닭에 성불(成佛), 성도(成道)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한평생 수행했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한바탕 수고만
더하게 되며 보람없이 패배자로 불리게 되고 맙니다.
정토선의 염불법은 먼저 자기 몸 안의 자성(自性)을 불러 일깨워 염불하게
한 다음 걷고, 서고, 앉고, 눕고, 하는 동안에 몸 안에서 들려 오는 염불소리
<나무아미타불>을 주의 깊게 들음으로써 온갖 번뇌망상을 일념으로 모으는
것이며, 일념을 오랫동안 지속하여 선정에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나무아미타불>마저 잊어버리면 무념을 이루어 참다운
마음자리인 본래면목이 나타나게 되고, 저절로 연꽃이 피어나면서
아미타부처님을 친견하게 됩니다.
정토선의 좌선법은 평상시에는 걷고, 서고, 앉고, 눕고, 할 때 항상
몸 안에서 들려 오는 염불소리 <나무아미타불>을 들을 수 있어야 하며,
매일 일정한 시간을 규칙적으로 정해 놓고 2번에서 4번 정도 좌선을 하되,
1시간에서 2시간씩 하면 됩니다.
(큰스님께서 좌선은 2단계 수행이며 반드시 몸 안에서 저절로 염불소리가
들려 오는 경계인 자성염불 즉, 1단계를 거친 후에 2단계를 닦아야 진보가
빠르다고 하셨으며 이 가르침에 의지하여 필자와 더불어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아주 빠른 경우는 1주일 안에 그리고 보통의 경우는 3개월에서
1년정도에 걸쳐 자성염불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음; 옮긴이)
좌선시의 가장 표준적인 자세는 머리를 바르게 세우고, 어깨는 수평으로
하며, 눈은 실처럼 가늘게 뜨고, 입은 다물되 혀끝을 입천장에 대고,
허리는 곧게 세우며, 두 손은 미타인(彌陀印: 일반적인 선정인(禪定印)은
오른손 위에 왼손을 얹어 엄지손가락을 서로 맞대는데, 관정큰스님께서
이것은 처음 입정하여 산란심이 있을 때 하는 수인(手印)이며 마음이
고요해지고 일념에 들어가기 시작하면 반대로 왼손바닥 위에 오른손을
얹고, 엄지손가락을 서로 맞대는 수인을 취하는 것이 '미타인'이라고
하셨으며 또 삼계 28천에 들어가는 사선정에서는 왼손의 엄지를 오른손으로
감싸안고 나머지 왼손바닥으로 다시 오른손을 감싸 앉는 수인을 취한다고
하셨음; 옮긴이)을 취하며, 두 발은 결가부좌나 반가부좌, 또는 자연스러운
자세로 앉아도 괜찮습니다.
문: 무엇 때문에 정토법문을 수행하는데 좌선을 결합시켜야 합니까?
답: 정토수행이란 곧 염불을 의미하는데, 염불을 하는 목적은 모든 법을
하나의 법으로 귀결시키는 것이므로, 곧 모든 번뇌망상을 일념으로 모으고
더 나아가 심령을 무념의 경계, 즉 선정합일(禪淨合一)의 경지에까지
도달하게 하여, 다시 아미타부처님의 영접과 인도를 받아 극락세계에
왕생하여 거기서 더 깊이 수행하게 하는데 있습니다.
만약 수행자가 자신의 힘으로 해탈하고자 한다면 일념경지에서 다시 무념,
즉 법공(法空)에 이르도록 닦아야 하는데, 이것은 선정(禪定: 참선을 통한
삼매)에 들어가지 않고선 불가능합니다. 이 속에 담겨 있는 참다운 도리를
체득해야만 정토와 선정이 하나가 되고 정(淨)과 선(禪)의 법문이 둘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문: 큰스님의 말씀에 의하면, 정토 염불법은 모든 번뇌망상을 일념으로
돌아가게 하여 마음을 다스린다 하시는데, 선(禪)은 세속을 벗어나는
법문인 무위법(無爲法)으로 알고 있습니다. 청컨대 선의 도리를 좀
알려 주십시오.
답: 저는 학식도 없고 또한 공안(公案: 화두)을 말하거나 시구(詩句)를
말할 줄 아는 권위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저는 다만 참선이란 마음을
무념상태로 만들어야 되며 우리들이 성불하려면 마음을 밝혀 성품을
보아야 하고 좌선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참선수행이란 내면으로 마음을 거둬들이는 <유입법(流入法)>으로
우리들이 갖고 있는 정신상의 각종 질병을 치료해 줍니다. 우리 인간들의
정신은 시작도 없는 과거전생부터 육근(六根: 눈, 귀, 코, 혀, 몸(피부),
의식의 6가지 감각기관)을 통하여 밖(대상: 경계)으로만 치달아서 형상(色),
소리(聲), 냄새(香), 맛(味), 느낌(觸: 촉감), 법(法: 생각)의 6가지 대상에
깊이 오염되었습니다.
그러나 <생사해탈(生死解脫)>이란 바깥 대상, 즉 경계로 치닫던 우리의
정신을 내면의 세계로 향하도록 마음을 거둬들여 무분별(無分別), 즉
분별시비가 끊어진 상태로 전환시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단계에
있어서 정신적으로 한동안 적응하지 못하면 <환각(幻覺)>과 <착각(錯覺)>
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문: 환각과 착각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답: 수행자가 공부하여 일단 마음이 고요하게 안정되면 오랜 과거전생의
무량한 세월 동안 잠재의식 속에 쌓여 간직된 업식(業識)의 종자가 바로
튀어 올라와 심령에서 활동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어느 때는 신(神)이나 부처님이 허공에 가득한 것을 보기도 하고,
혹은 신선의 음악이 귀에 들리기도 하며, 때로는 기이한 향기가 방안에
가득 풍기는 것을 맡기도 하며, 또는 신선이나 들짐승, 귀신, 도깨비 등이
눈앞에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러한 것들을 가리켜서 <환각>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착각>이란 바위를 호랑이로 잘못 보았거나, 나무둥치를 말(馬)로
보았다거나, 서 있는 나무를 귀신으로 본다던 지, 밧줄을 뱀으로 잘못
보는 경우를 말합니다.
참선수행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다소간의 <환각>과 <착각>을
경험하고 이러한 것들을 제게 와서 묻기도 합니다. 하지만 만약 이러한
경계들을 보게 되더라도 전혀 모른 체 하면 됩니다.
<환각>과 <착각>은 사람들이 자칫하면 진짜로 믿기가 쉽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가끔씩 실제로 그런 일들이 벌어져 수행자의 마음과 뜻에
따라 거기에 상응하는 각양각색의 장면이나 현상들이 조금도 틀리지 않게
그대로 나타나기도 하기 때문에 그러므로 조금만 조심하지 않으면 바로
마구니의 꾀임에 빠져들기 쉽습니다. 그래서 금강경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
시인행사도(是人行邪道)
불능견여래(不能見如來)"
"만약 형상으로서 나를 보려고 하거나
소리로써 나를 찾으려 한다면,
이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하기 때문에
결코 여래를 볼 수가 없느니라."
라고 하셨으며, 또 다른 게송에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
"모든 현상계의 생멸하는 유위법은
마치 꿈이나 허깨비 같고
물거품이나 그림자와 같으며,
아침이슬처럼 허망하고
번개불처럼 순간적인 것이니
마땅히 이와 같이 보아야 하느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단단히 명심하여 기억해 두면
절대로 마구니의 꾀임에 빠져들지 않을 것입니다.
문: 어떤 사람이 좌선 도중에 갑자기 몸이 저절로 요동을 치며, 앞으로
기울여졌다 뒤로 넘어갔다 하면서 좌우로 돌기도 하고, 손발을 내저으며
아예 춤을 추기까지도 하던데, 혹시 마귀가 달라붙은 것이 아닙니까?
답: 마귀가 붙은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것을 가리켜 <영혼의 원래 능력이
활동한다>라고 말하는데, 간단히 줄여서 <영혼의 활동(靈動)>이라고 말합니다.
이때는 절대로 놀라거나 당황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두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현상은 몸 안의 모든 질병을 치료하여 건강을 회복시키는
효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중생들은 시작도 없는 아득한 과거전생부터 참마음자리인 정신이
밖으로 흘러나와서 이리저리 치닫고 있는데, 육근(六根)을 통하여 바깥
대상과 경계에 깊이 빠져 있기 때문에 육도(六道)의 생사윤회에 떨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좌선을 통하여 고요히 마음을 거두는 것은 자신의 육체 안으로
정신을 돌이켜 오게 하는 것이므로 정신을 180도 급회전 시켜 너무 빨리
돌아오게 하다 보면, 어느 때는 몸 안의 심령이 일시적으로 잘 적응하지
못하여, 갖가지 환각과 착각이 생기기도 하고, 혹은 밤에 악몽을 꾸기도
하며 때로는 두통, 심장압박, 근육통 등 몸이 잘 적응하지 못해 벌어지는
여러 가지 현상들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이러한 증상들이 발생하면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을 필요 없이 다
놓아 버리고 휴식을 취하면 됩니다. 그러면 저절로 좋아지게 될 터이니
정상을 회복한 다음 다시 천천히 배우면 됩니다.
문: 과거 대승선림(大乘禪林)에서는 모두 화두를 참구하여 왔는데,
큰스님께서는 그 선법을 무시해 버리고 따로 새로운 문중을 세우시는
것이 아닙니까?
답: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중생들의 근기에 맞추어 법을 설하는 것입니다.
맨 처음 선종의 조사께서는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법을 전하셨는데,
나중에는 화두를 던지거나 기봉(機鋒 :수행을 통해 얻은 심기와 예리한
마음 작용)을 자극하는 것으로 점점 발전하였던 것입니다.
가령 "달마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인가?(什 是祖師西來意)"
"염불하는 나는 누구인가?(念佛者是誰)" "개는 불성이 없다.(狗者無佛性)"
"부모로부터 태어나기전 본래면목은?(父母未生前本來面目)" "죽은 시체를
끌고다니는 놈이 누구인가?(拖死尸的是誰)"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면 하나는
또 어디로 돌아가는가?(萬法歸一一歸何處)"가 전통적으로 곧 잘 사용되던
화두입니다.
요컨대, 당시에는 중생들의 근기에 맞추어 법을 설했기 때문에 각 문중마다
모두 깨달음을 이룬 분들이 계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말법시대에는 참다운
가르침에서 멀어진지는 오래되었고 난관이 겹겹이 가로막혀 중생들의 근기가
더욱 하열해져서 더 이상 화두를 통해 깨달음을 이루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선종도 점점 쇠퇴해진 것입니다.
마치 능엄경에서 부처님께서
"어떤 사람이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다른 사람은 마땅히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달을 쳐다보아야 할 터인데, 만약 손가락을 달이라고 여긴다면
이 사람은 어찌 달을 알지 못하는 잘못만 범하는 것이 되겠는가? 손가락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어리석음까지 범하게 되는 것이니라."
라고 비유를 드신 것처럼...
그러므로 화두를 통해 깨닫는 것이 더딥니다. 오늘날과 같은 말법시대의
중생들에게는 오직 먼저 심령을 다스려서 참마음을 정상적으로 회복시키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그리하여 해탈법문이 일단 열리기만 하면 조사가 되고 성불하는 것도
기약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정토와 선종의 법문을 뜯어고치는 것이 아니라, 이 법문은
불보살님께서 직접 전해 주신 법문이며, 이 두 법문을 하나로 합쳐서
진정으로 심령을 치료하여 무념의 효과를 가져오고 빠른 시일 안에
불성을 깨닫는데 까지 도달하려는 것이므로 이것을 <정토선>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정토선은 마음을 정토로 만들어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게 하여 무생법인에
이르도록 만들고자 하는데 바로 선(禪)의 지극한 뜻이 담겨 있습니다. 참선
수행방법만으로는 모든 사람들을 제도하기가 어렵습니다.
부처님의 경전을 모두 섭렵하고 바다와 같은 지혜를 갖춘 분들은 "미쳐
날뛰는 마음을 단박에 쉬어 버리면, 쉬어 버리는 순간 깨달음을 이룬다.
"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령이 무념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해탈을 이루게 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수행자들이 오랜 세월 동안 고행과 난행을
참아 내며 애써 수행하지만, 깨닫지도 못하고 아무런 효과도 거두지
못하여 자신의 업장이 너무 두텁고 무겁다고 원망하고 한탄하면서,
거기서 스스로 헤어 나오지 못할 뿐 아니라 마침내는 아무 것도
얻지못하고 맙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될까요?
그것은 수행인들이 자신의 신체 내부에서 불성(佛性)을 찾을 줄 모르고
우리 신체를 한낱 냄새나는 가죽자루에 불과하다고 여기면서, 이 신체가
바로 값으로 헤아릴 수 없이 귀중한 보배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귀중한 보배를 달리 <신각(身覺)>이라고 부릅니다.
(출처-선용스님 "정토선"카페에서 편집)
"아미타불 염불회"
甫剛合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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