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9. 6. 23:15ㆍ일반/금융·경제·사회
얼마전에 일본의 찌질이 우익들 (일본식 표현으로 넷토 우요쿠)이 우글거리는 2채널에서 별생각 없이 독도 관련 문제로 한국측 입장을 설명하는 글을 썼다가 거의 채팅에 가까울 정도로 글이 올라와서 토론 같지도 않은 토론을 하게 되었다. 나는 공평한 시각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고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도 밝히지 않고 "정중하게" 이야기 하고 있는데 나를 재일교포라고 차별하는 발언은 물론 물어본 것에 대답하지도 않고 똑같은 주장만 반복하는데 상대를 비웃고 조롱하는 사람들을 상대하는데 점점 짜증이 나던 차에 댓글 1000개 제한을 넘기고 그만 두었다. 뭐 한국 게시판에도 마찬가지 사람들이 있으니 일본만 뭐라고 할 것은 아니지만.
독도 문제 해결은 일본측이 양보할 의사가 보이지 않으므로 당분간 해결될 기색이 없다.
솔직히 예전에 개인적으로 독도 문제를 자세히 알아보기 전에 민족 감정을 떠나 일본측 주장도 완전 억지는 아닐 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일본해의 국제 표기를 동해로 바꾸자는 주장은 지금도 찬성하지 않는다. 일본 니이가타현에 거주했던 시절에 서쪽으로 차를 몰고 가서 "동해"에서 해수욕을 하고 일출이 아닌 일몰을 보았다. 자기 나라를 기준으로 동해, 서해로 나누는 것이 국제적으로 통하기 어렵다는 것을 일본에서 살면서 몸으로 체험한 것이다. 국제적으로 "일본해"가 되면 독도 문제에 불이익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도양"은 인도 바다가 아니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인도양을 "동해"로 바꾸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동해와 일본해 문제도 비슷한 맥락인데 한국인 정서상 "일본해"가 신경에 거슬리는 것이 문제의 본질인 것이다. 만약에 "황해"처럼 동해가 국제적으로 "청해"로 불리고 있고 "청해"가 설사 일본에서 유래했다고 해도 "일본해"처럼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독도 문제도 막연히 한국측의 고지도를 보면 울릉도 바로 옆에 우산도가 붙어 있고 울릉도 동쪽 해상 2킬로 지점에 "죽서도"가 있으므로 어쩌면 일본 측 주장에 일리가 있을 지 모른다고 생각한 적도 있으나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독도에 관해서는 일본측 주장이 억지이고 한국측 주장이 옳다는 것을 알게 된다.
참고로 일본 국내에 간혹 한국에 독도를 양보하자는 의견도 있으나 일본 역시 독도 문제는 민족주의적 색채를 띄고 있으므로 이런 주장을 �불리 했다가는 우익적인 여론에게 뭇매를 맞기 쉽상이다. 독도를 한국이 불법 점유하고 있다는 일본 정부의 공식 견해와 다른 일부 일본 지식인들의 의견중 몇개를 보면 아사히신문에 독도를 한국에 양보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칼럼이 실린 적이 있고 동도, 서도를 하나씩 나눠 가지자는 의견, 독도의 영유권은 한국에 양보하되 독도 주변 수역은 일본 어선들도 조업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의견도 있다. 물론 민족주의 경향이 강해진 요즘 일본에서 이런 의견이 통할 리가 없고 한국인 입장에서도 독도를 나누자는 것도 말이 안되고 “한국에 양보한다”라는 표현조차도 거슬린다.
일본 국내에서 한국의 주장을 포함한 독도 문제를 심층 취재한 TV방송을 본 적이 없다. 간혹 우익 계통 평론가가 나와서 한국의 “불법 점령”을 비난하는 것이 여과 없이 방송되는 경우도 있는데 한국측에 유리한 주장을 제대로 소개한 방송이나 신문은 본 적이 없다. 일본의 우익 평론가로 유명한 가츠야 마사히코는 2005년에 관광객을 가장하여 울릉도에서 독도를 방문하는 투어에 참가했다. 독도를 찾은 한국인 방문객들의 심상치않은 분위기와 “일본땅”인 다케시마를 한국인들이 멋대로 개발한 것에 대한 원색적인 비판을 서슴치 않았고 독도 관련 토론 프로그램에서 울릉도에 있는 독도 박물관에 전시된 지도가 원본은 우산도가 서쪽에 있고 울릉도가 동쪽에 있는데 한국측이 날조해서 위치를 바꿔서 전시했다고 비난했다. 실제로 독도 박물관에서 이런 날조를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과거 독도와 울릉도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던 지도들 중에는 울릉도와 독도의 위치가 거꾸로 되어 있는 경우가 있어서 일본측의 공격 재료가 된다.
우익 평론가 가쓰야 마사히코의 독도 잠입. 옆에 있던 한국인들이 이사람의 정체를 알았다면 맞아 죽었을 지도..--;
아무튼 일본에서는 방송에서 독도 문제를 소개할때 “이승만 라인”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에 한국측이 일본이 미군정하에 있을 때 이승만 대통령이 무력으로 독도를 처음 편입 시켰다고 어렴풋이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이 실상이다. 이는 철저한 정보 통제가 있고 일본 언론 사이에 “터부”가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일본은 언론의 자유가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일본 언론은 천황가 비판같은 금기사항이 여러개 존재한다. 실제로 이런 터부를 깼다가 우익단체, 야쿠자로부터 습격을 받아 기자가 사망한 사례도 있고 일본 우익들 조차도 일본의 컬트 종교인 소카각카이(창가학화) 비판, 재일교포 비판 등 우익들 입장에서 본 터부도 있다고 비판하는 실정이다.
간혹 일본 인터넷에서 객관적으로 독도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발견할 수 있는데 개중에는 독도 문제에 관한 일본측의 주장에 비판적인 경우도 적지 않다.
내가 정리해본 독도 문제의 쟁점 크게 아래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1905년 이전의 역사적 논쟁
2. 1905년 일본 시마네현 편입에 대한 정당성 논쟁
3. 1950년대 샌프란시스코 평화 조약과 그에 대한 해석에 관한 논쟁
1번에 대한 일본의 주장은 독도가 "일본의 고유 영토"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고 2번의 일본 시마네현 편입은 무주지, 즉 "임자 없는 땅"을 일본이 접수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것, 그리고 3번은 2차대전 후 새로 확립된 국제 질서와 국제법상의 해석에 관한 것이다.
우선 말이 안 되는 것이 1번을 증명했다면 2번은 증명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1번을 증명했으면 원래부터 일본 땅이었다는 말인데 그러면 "임자 없는 땅"으로 편입할 필요도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역사적 기록들
1번을 증명하려면 한국, 일본 양측에 남아있는 기록들 중 일본측에 불리한 기록들은 무시하거나 "증거가 없다" "불확실 하다" "날조되었다"라고 부정하고 일본측에 유리한 기록만 활용할 필요가 있는데 자료가 적지 않으므로 일본측에 거의 승산은 없다고 본다.
한국측 기록에는 우산도, 울릉(무릉)도의 2섬에 관한 기록이 많고 일본측의 기록도 울릉도에 대한 기록이 중심이며 독도만 따로 기재한 기록은 보기 어렵다. 울릉도가 훨씬 큰 섬이니 만큼 당연히 울릉도에 대한 기술이 중심인데 한국측에도 울릉도와 독도 2개 섬의 기록이 있고 일본측에서도 마츠시마, 다케시마 2섬에 관한 기록이다. 참고로 일본에서는 지금 독도를 다케시마(죽도)라고 부르지만 옛날에는 다케시마는 울릉도를 가리키는 말이었고 마츠시마 (송도)가 독도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죽도와 송도, 이름만 보아도 두 섬을 한 세트로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양에서는 "송죽매"가 있지 않은가? 일본에서는 지금도 초밥 같은 것을 주문할때 "송"이 제일 고급이고 "죽"이 두번째이다. 역사적인 기록은 대부분 울릉도에 관한 것이고 독도는 덤으로 들어가 있는데 당연히 울릉도가 한국땅이면 독도도 한국땅이어야 한다. 둘을 나눈 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독도 문제를 자세히 다룬 www.dokdo-takeshima.com에서 인용. 동해를 한국과 일본이 공평하게 나누면 당연히 독도는 한국 땅으로 들어간다. 이 사이트에서는 독도 뿐 아니라 주변 국가 전부와 영토문제를 벌이고 1800년대 말에 일본이 편입한 태평양의 섬들 때문에 일본 국토 몇배에 달하는 EEZ를 일본이 확보하고 이 면적은 한국의 5배에 달한다는 것도 지적.
세종실록에 나온 울릉도에서 독도가 보인다는 것도 일본 측에서는 보일 리가 없다고 생떼를 썼다.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울릉도의 해안가에서는 보이지 않으나 200미터 정도 올라가면 날씨가 청명한 날에는 육안으로 볼 수 있다. 일본측의 독도 문제 관련 학자들 중에는 당시 울릉도에 있던 조선 사람들은 어민들이 중심이라서 산으로 올라갈 일이 없으므로 독도를 볼 기회가 없었을 것이라고 생떼를 쓴 적도 있다. 물론 울릉도에서 독도가 항상 잘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에서도 치바현의 노코기리야마에 올라가면 멀리 떨어진 이즈 제도를 볼 수 있는 것과 틀릴 것이 없다. 노코기리야마에 올라가도 날씨가 아주 좋은 날이 아니면 보이지 않고 도쿄에서 후지산을 보려고 해도 안보이는 날이 많다. 이걸 두고 안보인다고 우긴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눈으로 보인다는 것은 망원경이 없던 시절 조난당하지 않고 배타고 건너갈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울릉도와 독도 중간 지점에서는 독도와 울릉도 양쪽이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에 항상 울릉도를 보면서 독도까지 갈 수 있다. 한반도에서 배를 타고 울릉도까지 간 사람들이 90킬로 떨어진 육안으로 보이는 독도의 존재를 몰랐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일본은 1905년 이전에 이미 수차례에 걸쳐 독도는 일본땅이 아니라고 포기했다. 첫번째는 1696년 에도 막부가 울릉도에 건너가는 것을 금지했을 때의 기록이다. 에도 막부의 쇼군의 신하가 언제부터 울릉도가 인바주와 사에키주에 속했냐고 질문한 것에 대하여 현재의 돗토리현을 지배하던 돗토리번이 죽도와 송도는 양쪽 모두 속하지 않는다고 대답했고 이에 따라 에도 막부는 울릉도에 일본인들이 건너가는 것을 금지했다. 일본 정부는 이 기록은 어디까지나 울릉도에 대한 기록일 뿐 돗토리번은 인바주와 사에키주에 독도가 속하지 않는다고 말했을 뿐 일본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은 없다고 우기고 있다. 그리고 금지한 것은 울릉도에 건너가는 것일 뿐 독도에 건너가는 것은 언급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전형적인 일본식 말꼬리 잡기 수법이다.
송도 (독도)와 죽도(울릉도). 대나무섬과 소나무섬은 서로 한쌍이 된다. 울릉도 옆에 쓰인 글자는 "고려에서 울릉도를 보는 것은 운슈 (현재의 시마네 현)에서 온슈 (현재의 오키 섬)을 보는 것과 같다"라는 뜻이다. 즉 시마네현에서 오키 섬을 볼 수 있는 것 처럼 한국 본토에서도 울릉도를 보는 것이 가능하다는 뜻.
또 한번은 1877년 일본 내무성이 당시 일본의 태정관에 문의했을 때 죽도(울릉도)와 그밖의 섬 하나는 일본의 관할 범위가 아니라고 판단을 내렸다. 여기에 관해서도 그밖의 섬 하나(외1도)는 독도가 아니라고 잡아떼기 수법을 쓰고 있다. 동해는 물이 깊은 탓에 울릉도, 독도, 오키노시마 이외에 섬이 거의 없다. 울릉도와 그밖의 섬 하나라고 했을 때 독도 이외에 지칭할 마땅한 섬이 없다. 일본측은 우산도와 울릉도가 바로 옆에 붙은 고지도를 비판할때 울릉도 바로 동쪽 2킬로 지점에 있는 작은 섬 죽서도가 우산도일 것이라고 변명했지만 태정관 문서에서 말한 "외1도"가 죽서도라는 주장은 자기들도 억지라고 생각하는지 "외1도는 어느 섬을 가리키는지 명확하지 않다"라는 식으로 발뺌하고 있다. 심지어 외1도를 멋대로 독도로 단정하는 한국측을 비판하기도 하니 할말이 없다.
태정관 문서. 죽도 외 1도는 본국과 관계 없다고 나와 있음.
울릉도와 독도를 한국 땅으로 만든 데 결정적으로 공헌한 안용복에 관해서도 안용복은 조선 조정이 보낸 관리도 아니고 조선측에서 보아도 허가 없이 일본으로 건너간 죄인이며 안용복이 말한 "자산도(우산도의 于자를 잘못 쓴 것으로 보임)는 일본인들이 말하는 송도와 같다"라는 발언도 무용담과 허풍을 좋아하는 안용복이 잘 알지도 못하고 헛소리를 한 것이라는 식으로 매도한다. 우산도가 일본인들이 말하는 송도라는 것을 증명하면 한국이 독도를 지배했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는데 그밖에 1770년의 동국문헌비고에서도 "우산도는 왜인들이 말하는 송도이다"라고 되어 있다. 이 내용도 확실한 근거가 없지만 숙종실록에 나온 안용복에 관한 기록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므로 믿을 수 없다고 일본측은 주장한다.
신라시대때 정복한 우산국은 울릉도를 말했고 우산도라는 이름이 울릉도를 가리킬 때도 있고 옛 지도상으로 위치가 실제 독도의 위치와는 차이가 있는 경우가 적지 않으므로 일본측은 "우산도는 독도가 아니다"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필사적이다. 그러므로 우산도는 정체불명의 섬이다, 우산도는 울릉도를 말한다, 우산도는 울릉도 바로 옆에 붙어있는 죽서도를 말한다는 식으로 절대로 독도는 아니라는 식의 억지 주장을 할 수 밖에 없다. 현재와 같은 항해술이 발달하지 않은 시절에 동해상 한가운데에 떠 있는 울릉도와 독도의 거리, 위치, 크기 등을 정확하게 조사해서 기록한 것이 아니라 전해 듣고 기록했기 때문에 실제와 차이가 있는 경우가 있는 것은 이해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기록들의 허점만 찾아내서 우산도는 독도가 아니라고 끝까지 우기는 것은 종합적으로 보았을 때 설득력이 약한 주장인 것은 제3자가 보아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905년의 시마네현 편입
시마네현 편입에 관해서는 독도가 무인도이며 타국에 점령 당했다는 흔적이 없으므로 영토편입을 한다고 나와 있는데 이 문서를 보면 일본측이 주장하는 "독도 고유 영토설"이 이미 논리가 파탄된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임자 없는 땅을 먼저 편입했다"라는 주장을 하지 않는 것으로 일본측의 전략이 바뀐 것 같다. 이번에는 "타국에 점령되지 않았기 때문에 영토편입을 했다"라는 것은 "군사적 점령"이라는 식으로 발뺌을 하고 있다. 당연히 독도는 무인도였으므로 군대가 상주하고 있을 리 없다. 즉 "임자 없는 땅이라서 편입한 것이 아니라 원래 일본땅이었고 외국 군대에게 점령당하지 않았으므로 영토 편입했다"라는 해괴한 논리를 사용하는 것이다. 죽자 살자 "일본의 고유 영토"라는 논리로 싸울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리고 임자 없는 땅이라는 논리는 이미 논파된지 오래이다.
1900년대 초의 일본에서는 리앙크루트 암초라는 독도의 서양 이름에서 유래한 "양코도"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1903년에 일본에서 간행된 "한국 통어 지침"이라는 책에서 독도를 "한국 강원도에 속한 양코도는 맑은 날 울릉도 산위에서 바라볼 수 있다"라고 명확하게 씌여 있다.
1904년에는 러일전쟁때 일본 군함 니이타카의 항해일지에 독도에 관한 기록이 있는데 "양코도를 한국인은 독도라고 부른다"라고 명확하게 쓰여 있다. 이 항해 일자는 그밖에 한국과 일본의 어부들이 울릉도를 기점으로 삼아서 독도에 고기를 잡으러 갔다는 것도 기록되어 있다.
일본 군함 니이타카의 항해 일지. 한국인은 양코섬을 독도라고 한다라고 명확히 1904년에 기록함.
그밖에 독도를 편입하고자 한 의도가 러일전쟁때 러시아의 발틱 함대를 맞이하여 동해에서 일대결전을 벌일 때 군사적 목적으로 독도에 망루를 설치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그랬다는 것은 역사적 자료가 얼마든지 남아 있다.
"타국에 군사적으로 점령되지 않았기 때문에 편입했다"라는 것은 군대 주둔만 하지 않으면 남의 땅을 맘대로 빼앗아도 되는 것이 아닌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임자 없는 땅"이라는 것도 이미 일본측과 한국측 기록을 보면 한국 땅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이 명확히 밝혀졌다.
그리고 1900년에 대한제국 정부가 고종황제 칙령 41호에서 울릉도와 죽도, 석도를 울도군에서 관할한다고 적힌 것이 일본측에서는 가장 불리한 기록 중 하나이다. 일단 힘은 없어도 근대 국가로 다시 태어난 (게다가 일본이 대한 제국 탄생에 많이 관여했으므로) 대한 제국에서 공식 문서로 독도를 울릉도와 함께 관할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죽도는 현재의 죽서도이고 석도가 독도라고 해석하는데 왜냐하면 독도를 독섬이라고 부를 때도 있는데 "독"은 전라도 사투리로 "돌"을 말하는 것이므로 뜻으로 한자를 붙이면 석도가 되고 "독"의 소리로 한자를 붙이면 "독도"가 된다. 석도가 독도를 말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으로 보이는데도 "발음이 비슷한 건에 근거한 추측일 뿐 증거가 없다"고 우긴다. 그럼 석도는 어디냐라고 따지게 되는데 일본측 주장을 대표하는 시모죠 교수는 "석도는 울릉도 바로 앞의 바위섬인 관음도를 말한다"라고 발언했다가 석도와 독도는 발음이라도 관련성이 있지만 석도와 관음도는 무슨 관련성이 있는지 아무런 증거도 대지 못했으므로 "석도는 정체 불명의 섬이다"라고 발뺌을 한다. 다른 일본 학자들 중에서는 "석도가 독도를 말하는 것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대한제국 칙령 41호
인터넷상에서도 석도 문제로 많이 싸우는데 석도가 독도라면 "독"은 고유어고 "도"는 한자어인데 "한국어에서는 한자어와 고유어가 붙은 말이 문법적으로 성립될 수 없다"고 한국어도 모르는 사람이 말을 해서 일본 우익들은 그대로 믿고 인터넷에 떠벌리고 다니기도 한다. 한국에 "죽섬"이라는 섬이 있는데 "죽"은 한자어고 "섬"은 고유어이며 "한국말"도 "한국"은 한자어이고 "말"은 고유어이다. 일본인과 토론하다 보면 한국말도 모르는 사람들이 한국 출신인 나보다 한국에 대해서 더 잘 아는 것처럼 논리를 펼쳐서 황당함을 경험할 때가 많다. 아니 한국에 관한 것 뿐 아니라 영어 네이티브가 쓴 영어를 교정하려는 일본인 (시청 같은데 국제교류원으로 근무하는 외국인이 쓴 영어 뉴스레터 같은 것을 일본인 상사가 교정) 그리고 영어 문법에 관해서 의견이 다르면 "네이티브가 오히려 문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우기는 일본인도 본 적이 있다. 정말로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독산, 독골, 독배기, 독다리등 "독"이 들어간 지명중에 한자로 "석"으로 표기되는 경우는 얼마든지 예를 들 수 있다. 그리고 "독섬"이라는 표현은 해방후에 한국측이 미국에 보낸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서한에도 "Dock Sum"이라고 표기된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독도를 시마네현에 편입한 것이 1905년인데 을사조약이 체결되기 수개월 전이므로 한국은 충분히 항의할 수 있었는데 항의하지 않았다는 것도 뻔뻔스럽기 그지 없다. 이미 러일전쟁때 중립을 지키려 했던 한국에 한일의정서를 강제로 체결하게 했고 인천에 일본군이 상륙했으며 한국에는 이미 일본측이 지정한 외국인 외교 고문이 부임중이었다. 1906년에 울릉도 군수 심흥택이 일본측이 독도가 일본에 편입했음을 전해온 것을 보고 한 내용에 "본 군 소속 독도가 외양 백여리에 있다"라고 적은 것을 보면 독도가 어디를 말하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의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역사적 논쟁과 1905년의 시마네현 편입에 관해서는 일본측의 승산이 별로 없어 보인다. 일본측의 최대의 무기는 샌프란시스코 평화 조약의 해석과 일본인의 최강, 최종 무기인 1951년의 미국 국무성의 "러스크 편지"를 죽자 살자 써먹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명확하게 표시 되지 않은 독도의 관할 범위를 국무성의 딘 러스크의 편지로 보완되었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측도 딘 러스크의 편지는 그냥 문서일 뿐 국가간에 합의된 조약이 아니라는 것은 명확히 하고 있고 미국측도 러스크 편지에 대한 지지는 1950년대에 이미 철회했다. 러스크 편지의 문제점은 한국측이 당시 독도 영유권 뿐 아니라 실존하지 않는 파랑도, 심지어 대마도까지 영유권을 주장한 것에 대한 회답으로 독도 영유권 정당성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도 제시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온 것이다. 러스크 자신은 일본측이 미국에 제출한 자료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고 샌프란시스코 조약 초안 단계에서 독도가 한국땅으로 되었다는 사실도 몰랐을 가능성이 많다.
게다가 이때는 한국 전쟁 중으로 한국이 공산화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독도를 공산국가에 빼앗기는 것은 미국에게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다.
내가 한국의 대마도 영유권 주장을 하는 일부 한국인들의 주장에 반대하는 것이 바로 이 까닭이다. 1950년 당시 대마도까지 한국 땅으로 만들려는 주장과 실존하지 않는 파랑도에 관한 주장 같은 것을 하지 말고 독도에 관해서만 철저하게 자료를 제기했다면 러스크 편지는 나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고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일본이 독도를 포기한다고 명확히 기재되었을 가능성도 크다. 실제로 일본은 울릉도까지 자기 땅으로 만들려고 주장했으나 울릉도는 실제 한국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고 역사적 근거가 희박하기 때문에 일본 주장은 애초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러스크 편지에 관해서는 1954년의 미국 국무부 보고서가 최근에 발견되었는데 여기에는 러스크 편지가 법적 근거가 될 지 의문시 된다는 것, 딘 러스크가 충분히 역사를 이해하고 이 편지를 썼는지에 대한 의문, 샌프란시스코 조약 내용에서 독도 언급이 빠졌다고 반환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에 대한 의문, 1905년 이전에 독도를 한국이 소유했다면 한국땅이 된다는 것을 법적으로 확립될 수 있다는 것에 관해 기록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카이로 선언과 포츠담 선언을 계승하고 있고 카이로 선언에는 일본이 야욕과 폭력으로 획득한 영토를 박탈할 것이라고 명기되어 있으므로 1904년 시점에 독도 편입이 이에 해당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획득한 영토도 당연히 모두 박탈됨)
일본인들과 독도 문제에 관해 얘기하다가 꼭 나오는 얘기는 일본이 국제사법재판소에서 해결하자고 하는데 한국이 도망간다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그런데 여기도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일본이 국제사법재판소에서 해결하자고 제안한 것은 독도문제가 처음 불거진 1954년과 한일 국교 정상화를 논의할 당시의 1960년대의 두차례에 불과하다. 솔직히 지금 반대로 한국측에서 일본정부에게 "국제 사법 재판소로 가서 결판을 내자"라고 제의하면 오히려 일본 정부측에서 당황할 것이 눈에 뻔히 보인다. 일본측 정치가들이 국제 사법 재판소 얘기를 꺼내는 것은 한국 측에서 결코 재판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한국측에 잽을 날리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1960년대 당시와 비교해 지금은 독도 관련 자료가 충분히 수집 되었고 일본과 국제 사법 재판소에서 붙어도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100% 이긴다고 보장할 수 없으니 1%라도 질 확률이 있으면 반대하는 국민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로 일본과 전쟁을 할 수 없는 이상 국제사법 재판소에서 일본이 패소하고 한국의 독도 지배가 국제적으로 인정된다면 일본과의 전쟁에서 승리한것 만큼의 쾌거일 것이다. 올림픽에서 일본 야구를 꺾은 것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한국인들의 일본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일순간에 날려 버릴 만큼 통쾌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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