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하기 이전에는 거기에 있지 않았다

2008. 10. 13. 10:35일반/생물·과학과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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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찰하기 이전에는 거기에 있지 않았다
  

 옛날 한나라 시대에 强弓으로 소문난 <이광>이라는 장군이 어느 날 어스름한 산마루턱에 호랑이 한마리가 웅크리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힘차게 활을 당겨 명중시켰다. 그런데 가까이 가보니 호랑이는 간데없고 커다란 바위에 그가 쏜 화살이 깊이 박힌 것이다.
그 엄천난 힘에 놀란 병사들이 환호를 하자, 고무된 장군은 힘을 뽐내기 위해 원래 자리로 되돌아가 다시 바위를 향해 힘껏 활을 당겼다. 하지만 이번에는 화살이 모두 튕겨나왔다. 
     
  어렸을 때 누구나 한 번쯤 들었을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미 20세기 초반, 이 이야기는 더 이상 신기할 것이 없게 되어 버렸다. 세계의 최고 물리학자들이 그러한 현상은 너무도 당연한 것임을 증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20세기 초반, 많은 물리학자가 빛의 성질에 대한 여러 시헙을 시도한 끝에, 기존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결론에 도달했다. 그것은 우리가 선택한 실험방법에 따라 빛이 전혀 다른 두 성질, 즉 입자적 성질과 파동적 성질 모두를 띤다는 것이다. 
 
가령 干涉현상을 일으키는 '쌍 슬릿 실험'을 통하면 빛의 파동적 성질이 증명되고, 光電效果를 통하면 빛의 입자적 성질이 입증되는 것이다. 이 실험 결과로부터 1922년 노벨상을 수상한 <닐스 보어>는 파동-입자의 이중성을 설명하기 위해 상보성원리라는 이론을 발표하였다.
즉 파동의 성질과 '입자'의 성질은 빛의 상호 배타적이면서 동시에 상호 보완적인 측면들로, 비록 그 어느 한 쪽이 언제나 다른 한 쪽을 배척하지만, 둘은 모두 빛을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두 성질이 서로 배척하는 이유는 빛 또는 그 밖의 어떤 것도 동시에 파동이면서 입자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배타적인 두 성질이 어떻게 한가지 빛의 공동 성질일 수 있을까? 여기서 당대의 물리학자들은 전혀 해로운 사고의 전환점을 맞는다. 바로 그들이 빛의 성질이 아니라 빛과 인간의 상호작용 성질이라는 것이다. 즉 실험 방법을 선택하는 순간, 다시 말해 우리의 의도가 정해지는 빛은 우리가 의도한 바로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둘 중 어느 하나가 진정한 빛의 성질이냐고 묻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다시 정리해 본다면, 빛은 스스로의 독립된 성질을 갖고 있지 않으며,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어떤 대상에게 고유의 성질이 없다는 것은 그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또한 물리학자들이 밝힌 빛의 성질이 우리와 상호작용하는 데서 비롯하는 것이라면, 상호작용의 한 쪽인 인간이 없으면 빛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빛'이 없거나 또는 거기서 유추하여 상호작용하는
  '다른 것'이 없으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보성 원리
 
  고전 물리학에서는 이미 거기에 있는 어떤 대상을 관찰함으로써 그 존재를 알게 되었지만, 현대물리학에서는 우리가 관찰하기 이전에는 그것은 거기에 있지 않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관찰대상이 각기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재가 아니라 단지 상호관계에 의해서만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즉 그것이 거기에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은 오직 관찰자가 지어내는 개념작용을 따르는 것일 뿐이다. 관찰자가 '있다'하면 있고 '없다'하면 없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2,500년 전 붓다가 설파한 만법유식(萬法有識)이 20세기 들어 최첨단 현대물리학에 의해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이다. 붓다는 이미 다음과 같이 일렀다.    
   
  우리의 현실세계는 본질적으로 가상적이다. 산이나 물, 나무, 돌맹이, 사  람 등과 같이 '실재'인 것처럼 보이는 모든 형체는 사실은 모두가 우리의 제한된 의식구조에서 빚어지는 순간적 환상이다.  - 붓다 - 
 
  이제 <이광> 장군이 그것을 바위로 본 이상 화살은 결코 그 바위를 뚫을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의 '꽃' 중에서
 
 
 
대우거사 -마음 놓고 쉬는 도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