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0. 25. 08:49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오매일여
성주사라는 절에서 서너달 머물 때입니다. 처음 가서 보니 법당 위에 큰 간판이 붙었는데 「법당 중창시주 윤○○」라고 굉장히 크게 씌여 있었습니다.
누구냐고 물으니 마산에 사는 사람인데 신심이 있어 법당을 모두 중수했다는 겁니다.
'그 사람이 언제 여기 오느냐?'고 물으니 '스님께서 오신 줄 알면 내일이라도 올 겁니다.' 하였습니다.
그 이튿날 과연 그 분이 인사하러 왔다하여
'소문을 들으니 당신이 퍽 신심이 깊다고 모두 다 칭찬하던데, 나도 처음 오자마자 법당 위를 보니 그 표시가 얹혀 있어서 당신이 신심 있는 것이 증명되었지'
하고 말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칭찬을 많이 하니 퍽 좋아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런데 간판 붙이는 위치가 잘못 된 것 같아, 간판이란 남들이 많이 보기 위한 것인데 이 산중에 붙여 두면 몇 사람이나 와서 보겠어?
그러니 저걸 떼어서 마산역 광장에 갖다 세우자, 내일이라도 당장 옮겨 보자.' 하니
'아이구 스님 부끄럽습니다.'
'부끄러운 줄 알겠어? 당신이 참으로 신심내어 돈을 낸 것인가? 저 간판 얻으려고 돈 낸 것인가?'
'잘못 되었습니다. 제가 몰라서 그랬습니다.'
'몰라서 그런 것이야 허물이 있나? 고치면 되지, 그러면 이왕 잘못된 것을 어찌하려는가?'
그랬더니 자기 손으로 그 간판을 떼어 내려서 탕탕 부수어 부엌 아궁이에 넣어버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 성철스님의 법문중에서 -
應無所住 而生其心
응당 머무는바 없이 마음을 낸다
금강경 한 구절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뽐내고 싶고 사람들에게 자신을 들어내놓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우습게도 자신의 허물이나 그릇됨이 아닌 단지 '뽐'내기 위함이 많지 않은가 싶습니다.
위에 유명한 일화처럼 정말 내 마음이 뽐내고 싶은 것이라면 제대로 뽐내야겠죠?^^
지금 우리들의 마음이 어떠한가, 비온뒤 맑아진 아침 하늘을 보며 한번 돌이켜 볼 일화인듯해서 옮겨봅니다.
인도에 다녀오신분들은 아시겠지만 인도에서 거지라면 정말 넌더리가 쳐집니다.
인도 거지의 끈질김과 고단수(?)는 여행자를 여간 곤혹스럽게 하는게 아니기 때문이죠.
Gaya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다 왠 거지여인이 다가오더군요..
순간 '앗, 거지다!' 하고 내심 조심조심 거지눈치(?)를 보고 있었죠.
그런데 제게 오지는 않고 제 바로 옆에 저렇게 쪼그리고 앉아서 넝마같은 자루등짐에서
찌그러진 그릇을 하나 꺼내고 더러운 천조각을 꺼내 그 그릇을 닦더니 다시 주머니안에서 주섬주섬 황갈색의
밀가루 반죽같은 것을 그릇에 덜어내더니 그것을 조금씩 먹더군요.
다 먹고 나더니 다시 천으로 찌그러진 그릇을 닦고 주섬주섬 챙겨넣고 쪼그리고 가만히 앉아 있더군요.
전 그때 '품위'라는 말이 떠오르더군요. 거지의 품위..
호화스런 부자나 권력가보다도 저 거지여인의 행동 하나하나가 어찌나 품위있고 무게있게 보였는지 모릅니다.
하도 그 행동들이 멋있어 혹시 인도에 그 수많은 방랑 도인이 아닐까 했는데 그건 아닌것 같더군요.
누군가 보여주기 위해 하는 행동보다도 스스로 절제하고 가다듬는 모습이
휘황찬란한 금빛 간판에 이름을 새기는 것보다도 누군가에게는 깊은 인상으로 평생을 가는것이겠죠.
겉으로만 들어내기 보다 속으로 내 몸가짐이 어떠한가 돌아봐야할 계절인듯 합니다.
주말 맑게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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