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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기사회생과 관음기도
일제시대 평양에 살았던 유제규(劉濟奎)거사는 평양교당
(平壤敎堂)에 다니다가 젊은 법사인 정지월(鄭指月)스님
으로부터 관세음보살 보문품에 관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문득 신심이 샘솟는 것을 느낀 유제규는 보문품을 베껴
부부가 날마다 보문품을 독송하였습니다.
그렇게 매일 보문품을 외우기를 몇 달, 1928년 12월 18일
밤의 일이었습니다. 유난히 추웠던 그날, 가족끼리 저녁
식사를 마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9시쯤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유제규 거사는 매일의 일과대로 보문품을 세번 독송하고,
'관세음보살' 3천념(三千念)을 한 다음 잠자리에 들었
습니다.
약 30분정도 숙면을 취하였을까? 비몽사몽간에 흰옷 입은
노부인(老夫人)이 나타나서 소리치는 것이었습니다.
"정신을 차려라. 지금이 어느 때인데 잠만 자고 있느냐!"
그는 정신을 차리려 하였으나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
하여 몸을 일으켜 세울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노부인의 손을 잡고 일어나서 정신을 차려 보니,
흰옷 입은 부인은 간 곳이 없고 옆에 누워 자고 있던 아내
가 사경을 헤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눈이 까뒤집힌 채 말 한마디 못하고 일그러진 표정
만 짓고 있었습니다. 그는 버럭 소리를 쳐서 집안 식구들
로 하여금 의사를 부르도록 하였고, 자신은 아내의 몸을
주무르고 코밑을 비벼 주고 인공호홉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목이 터져라 아내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아내의 숨소리는 점점 더 가늘어졌고 마침내 숨을
거두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뒤늦게 온 의사도 진찰을 해보더니, 이미 숨을 거두어 어
쩔 수 없다면서 포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유제규 거사는 의사에게 주사라도 한번 놓아줄 것을 간청
하였지만, 심장마비라고 하면서 돌아보려고도 하지 않았
습니다.
유제규 거사는 억장이 무너지는 듯하여 비통하게 울다가,
문득 보문품의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衆生被因厄 중생들이 곤란과 액난을 당해
無量苦逼身 한량없는 고통이 다다를지라도
觀音妙智力 관세음보살의 묘한 지혜와 힘은
能救世間苦 능히 세간의 모든 고통을 구해 주시도다
具足神通力 신통력 모두 갖추시고
廣修智方便 지혜와 방편 널리 닦으사
十方諸國土 시방의 모든 국토에
無刹不現身 몸을 나투지 않은 곳 없으시도다.
그는 관세음보살을 외우면서 지극한 마음으로 아내의
기사회생(起死回生)을 기원했습니다. 모든 것을 잊고
관세음보살께 매달렸습니다. 이렇게 약 30분의 시간이
흘렀을까?
한참 죽어 있었던 아내가 가늘게 호흡을 시작하더니, 정신
이 드는듯 눈을 뜨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일어나 앉았습니다.
절망과 근심에 빠져 있다가 환호하는 가족들에게 유제규
거사의 부인은 말했습니다.
"사경을 헤매다가 숨이 끊어지자 혼이 공중으로 둥실 떠오
르더구나. 너희들은 모두 슬피 울고 있고, 네 아버지는
나를 살려 달라며 열심히 관세음보살을 부르더구나.
나도 엉겁결에 관세음보살을 따라 불렀는데,
갑자기 흰옷을 입은 부인이 나에게 약물을 한 종지 주셨
단다.
그 약물을 받아 마시자 내 혼이 다시 몸 속으로 들어가면서
숨이 통하지 않겠느냐."
유제규 처사 부부는 이토록 신기하고 불가사의한 체험을
한 다음 불교를 더욱 열심히 믿었으며, 이런 사실이 평양
바닥에만 알려지는 것이 애석하여 1929년 2월의 <불교>
잡지 제 56호에 투고하였던 것입니다.
정말 믿기지 않는 불보살의 가피력! 그러나 지극히 기도
하는 사람들에게 지금도 불보살의 가피가 끊임없이 미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지극하게만 해보십시오.
'나'도 충분히 가피를 입을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법계(法界)에는 불보살의 자비와 묘지력
(妙智力)이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 일타 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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