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문관 일지/우학스님

2008. 12. 27. 01:08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오매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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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영상

    1.수행의 바탕

    1)수행이란

      진리란 부처가 만든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있는 것으로 다만 그것을 깨달은 자가 부처이니, 누구나 진리를 깨달으면 부처다. 따라서 수행이란 불법승 삼보를 믿고 나도 그와 같이 부처가 되겠다고 원을 세워서 실천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부처님과 같은 지극히 편안하고 안락하며 자유로운 해탈·열반에 도달하고자 한다. 또한 자비와 지혜를 갖추어 인천의 스승이 되고 자기도 이롭고 남도 이로운 삶을 살고자 한다. 그러나 맛있는 음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는 배고픔을 채울 수 없고, 먹어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아무리 설명해도 그 맛은 전할 수 없다. 이와 같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아무리 많이 알고 있어도 실천하여 스스로 체득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고, 그 경지는 다른 사람에게 말로 전할 수 없다. 따라서 수행을 통해 직접 체득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불교이다.  
      수행이란 깨달음을 얻기 위해 닦아 가는 것을 말한다. 닦는다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닦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자기 마음 속의 온갖 번뇌로부터 벗어나서 자유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수행의 목적이다. 나에게 아무런 번뇌도 없고 고통도 없으며 세상이 지극히 안락하여 아무런 모순도 갈등도 없이 모두가 행복하다면 수행같은 것은 하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현실은 수많은 번뇌와 갈등으로 혼탁하기 때문에 누구나 수행하지 않을 수 없다. 수행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부처님의 말씀 한마디라도 기억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수행이다. 불교에 귀의한 뒤에도 그 전의 삶이나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신심있는 불자라 하기 어렵다. 변화는 직접 실천할 때만 경험할 수 있다. 불교 교리를 아무리 많이 알고 있어도 의심이 많고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수행이라하면 스님들만의 일이고 재가자는 복을 쌓는 정도로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불교가 종교인 이유는 삶의 구체적인 현실에서 힘을 주고 실천의 길을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苦)‘로부터 해탈하고자 하며, 상구보리하화중생하는 대승보살도를 실천하는데 출가와 재가가 다를 수 없다. 따라서 수행은 출재가를 막론하고 반드시 해야 할 불자의 본분인 것이다.
      불교 공부를 조금이라도 한 사람은 이 말의 뜻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불자들이 수행에 관심을 갖고 수행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낸다. 그러나 실제로 수행생활을 하고 있는 재가불자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수행을 위한 여러 가지 필수적인 조건들이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행이 바르게 되고 나아가서 불도를 이루기 위해서는 첫째 수행을 왜 하려고 하는지 목적의식이 분명해야 한다. 크고 바른 서원을 세우지 않으면 결코 성불이라는 목적지에 이를 수 없다. 둘째, 수행의 길은 반드시 자타가 함께 안락하며 무량한 공덕이 있음을 깊게 믿어야 한다. 셋째, 자기의 근기에 맞게 적절한 수행방법을 제시하며 수행 과정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현상들에 대해 점검해 주고 바르게 이끌어 줄 수 있는 선지식이 있어야 한다. 이와같은 조건들 중에서 하나라도 갖추어지지 않으면 위없는 진리는 얻기 힘들다. 이제 이러한 조건들을 어떻게 갖추어 갈 것인지 알아보자.


     

     

     

    연꽃 만나러가는 바람같이/서정주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하는 이별이게,
    蓮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 
     

    <1966년> 
     

     


    바람이 선선하다.
    이마에 이 바람이 와 닿는 날들이 되면
    별은 초롱히 가깝고 눈빛은 젖는다.
    더불어 모든 사물들의 그림자가 길어진다.
    일 년을 살아낸 보람은 무엇이었나,
    이렇게 묻는 것만 같은 서늘함이다.
    무엇을 거쳐 온 바람이기에 우리를
    자꾸만 사색의 국면으로 이끄는 것일까.

    가을이면 이별의 모습이 유난하다.
    여름 철새들도 돌아가고 봉숭아도 분꽃도
    또 청춘과도 이별해야 한다.
    무성하던 숲도 들판도 해변도 다 휑하니 빈다.
    사랑하는 늙으신 부모님은 한차례 더 늙는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이별을,
    인생이 겪는 가장 큰 아픔을 암시한다.
    하여 가을엔 그 소슬한 바람 속으로
    입산(入山)하는 사람도 많다 한다.

    만남과 이별은 이승에서의 가장 큰 주제다.
    그 중 이별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
    모든 사랑하는 것들과의 이별을 어떻게
    마음에서 삭혀낼 것인가.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과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 사이에 우리네 전 인생이 들어 있다고
    이 시는 제시한다
    . '연꽃', 오 그것, 만나러 가는 바람의 설렘과
    기대와 꿈으로부터, 만나고 가는 바람의 섭섭함과
    괴로움과 아쉬움들, 그 중 우리에게
    더 소중한 것은 뒤의 그 슬픔 쪽의 것이라는
    제시는 영원을 생각하는 자세를 촉구한다.

    비유의 계단만으로 된 위의 시는
    그래서 무한천공 가을 하늘 같은 여백을,
    여운을 남긴다. 

     

     장석남·/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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