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만경 /5-12 하나의 길 [一乘章]

2009. 1. 12. 14:35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승만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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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 만 경


    12. 여래에의 귀의
              
  "세존이시여,
   여래는 한량없는 시간 동안 머뭅니다.
   여래. 응공. 등정각은 미래의 끝[後際]과 나란히 머무릅니다.
   여래는 한량없으며, 크게 자비로우심[大悲] 또한 한량없고, 
   세간을 편안케 하심도 한량없습니다. 
   세간을 편안케 하는 데 이러한 설을 짓는 것은 잘 설하는 
   것이라 이름합니다. 
   여래가 만약 다시 '다함없는 법. 상주하는 법은 
   모든 세간의 귀의를 받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면 
   역시 잘 설하는 것이라 이름합니다.
   그러므로 여래는 아직 제도하지 못한 세간. 의지하지 
   못하는 세간에 있어서 미래의 끝과 같아져서 다함없는 귀의. 
   상주하는 귀의를 짓는다고 한다면, 이른바 여래. 응공. 
   등정각입니다.
   법은 하나의 길(一乘)이고 
   승(僧)은 세 가지 길(三乘)의 무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귀의는 궁극적인 귀의는 아니며 
   불완전한 귀의라고 이름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의 길을 설하는 것은 궁극적인 법신을 얻는 
   것이며, 이 위에 다시 하나의 길의 법신을 설함이 없는 
  것입니다. 
   세 가지 길의 무리들은 공포가 있어서 
   여래에게 귀의하여 벗어남을 구하며 수학하는 것이니, 
   위없이 올바른 깨달음을 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 가지 귀의는 궁극적인 귀의가 아니며 
   한계가 있는 귀의입니다.
   만약 어떤 중생이 여래에게 조복하여 귀의하면 
   법의 은혜를 얻게 되고 믿고 즐기는 마음을 내게 될 것입니다. 
   법과 승의 두 가지 귀의는 단순히 두 가지 귀의가 아니라 
   여래에게 귀의하는 것입니다. 
   제일의에 귀의하는 것은 여래에게 귀의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두 가지 귀의와 제일의는 궁극적으로 여래에게 
   귀의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두 가지 귀의는 여래와 다르지 않고, 
   여래는 두 가지 귀의와 다르지 않으므로, 
   여래는 곧 삼귀의이기 때문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하나의 길을 설하는 것은 
   여래가 네 가지 무외를 성취하여 사자후를 설하는 것입니다. 
   여래가 하고자 하는 바의 방편으로 설하는 것이 곧 대승입니다. 
   세 가지 길이 없으며, 
   세 가지 길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의 길이라는 것은 곧 제일의의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