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 9. 11:01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무상은 불교공부의 시작이다
시간(時間)처럼 빠르게 흘러가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엄밀히 말해서 우리는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팔십년을 산다해도 삼십년을 살았으면 삼십년만큼 죽은 것입니다.
이렇게 흔한 이야기 속에서 삶의 실상을 무심히 넘겨 버리고 말지만
참으로 시간처럼 빨리 흘러가는 것은 없습니다.
옛 성인은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며
"서자여사부(逝者如斯夫= 흘러가는 자 마치 이와 같구나)"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사람의 무상(無常)함이 마치 저 흘러가는 물과 같다는 것입니다.
물이 쉼없이 흘러가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한 순간도 쉼없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한 편의 시(詩)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지금 하십시오!
할 일이 생각나거든 지금 하십시오.
오늘 하루는 맑지만 내일은 구름이 보일런지 모릅니다.
어제는 이미 당신의 것이 아니니 지금 하십시오.
친절한 말 한 마디가 생각나거든 지금 하십시오.
내일은 당신의 것이 안 될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언제나 곁에 있지 않습니다.
사랑의 말이 있다면 지금 하십시오.
미소를 짓고 싶거든 지금 웃어주십시오.
당신의 친구가 떠나기 전에
장미가 피고 가슴이 설레일 때
지금 당신의 미소(微笑)를 주십시오.
불러야 할 노래가 있다면 지금 부르십시오.
당신의 해가 저물면 노래부르기엔 너무나 늦습니다.
당신의 노래를 지금 부르도록 하십시오,,, ! "
이 시(詩)에서는 무상(無常)을 다소 아름답게 표현 했습니다.
그러나 무상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서둘러야 할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바로 지금 하라는 내용(內容)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 어떤 부호가 가난한 선비를 매우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대단히 인색했습니다.
하루는 자정 무렵에 잠자는 하인을 깨워 선비집에 쌀 한가마니를 가져다 주라고 했습니다.
하인은 내일 아침에 갖다 주면 안 되겠느냐면서 대꾸를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그 부호는 내일 아침이면 자기의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 지금 당장 가라고
명령했습니다. 선심을 쓰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을 때 당장 실행(實行)에 옮기지 않으면
부호 스스로의 마음이 또 어떻게 금새 변할지 모르게 생각 되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와 같이 좋은 일을 하고 싶을 때는 얼른 실행해야 합니다.
그 일을 미루게 되면 마음은 결국 변(變)하게 마련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마음은 후회하게 되어 끝내 못하고 말게 되는 경우가 허다한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으로써 이 세상을 하직(下直)하게 됩니다.
죽음의 무상함을 마음 깊이 새김으로 해서 진실한 공부에 한걸음씩 접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무상(無常)의 이치(理致)는 아무리 장황하게 늘어놓아도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닙니다.
무상의 이치만 제대로 가슴 깊이 새겨진다면 공부는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입니다.
불교(佛敎)에는 깊은 교리(敎理)나 난해(難解)한 논리(論理)의 복잡한 가르침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무상(無常)을 통감(痛感)하는 일이 선행(先行)되어야 합니다.
참선(參禪)이나 염불을 하는 특별한 노력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마음의 중심에는 무상에 대한 이해가 깔려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모든 불교적(佛敎的)인 수행(修行)이 충만(充滿)되고 제대로 실천되는 것입니다.
옛날에 세 명의 도인(道人)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서로 모여서 무엇으로 말미암아 깨달음을 얻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어느 지방에서 주렁주렁 열린 포도송이를 보고 있었다.
저녁이 되니 사람들이 그 포도송이를 따갔다. 손상된 포도넝쿨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서 보기 좋았는데 사람들이 다 따가고 나니
매우 어지러웠다. 그 속에서 무상(無常)함을 느꼈다. 그로 말미암아 깨달음을 얻었다."
또 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물가에서 어떤 부인이 그릇을 씻고 있는 것을 보았다. 손을 부지런히 놀려가며 깨끗이 그릇을
씻고 있는데 팔고리가 서로 부딪쳐 명쾌한 소리를 내었다. 그 소리를 듣고 무상함을 느꼈다.
그로 말미암아 깨달음을 얻었다."
또 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연꽃이 피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저녁이 되니 수십 대의 마차가 그만 그 연밭에 들어와
말에게 물을 먹였다. 또 사람들이 목욕까지 하는 바람에 활짝 폈던 연꽃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져
버렸다. 마음이 홀려 있던 연밭에서 그만 실망하고 말았다. 그래서 온갖 사물의 무상함을 느끼고,
이로 말미암아 깨달음을 얻었다."
이처럼 모든 성자들은 무상(無常) 속에서 도(道)를 이룬 것입니다.
인생의 무상함 현상계의 무상함 생명의 무상함을 철저히 느끼므로 해서 값진 삶을 얻었던 것입니다.
앞에서 무상은 괴로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괴로움의 대표적인 것으로 여덟가지를 꼽습니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어 죽는,,, 생로병사의 네 가지 괴로움은 누구나 겪는 기본적인 괴로움입니다.
거기에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애별리고(愛別離苦) 욕구하는 바를 얻지 못하는 구부득고
(求不得苦), 미운 사람과 만나는 원증회고(怨憎會苦)와 슬픔이나 근심 번뇌가 사람을 괴롭히는
오온성고(五蘊盛苦)의 네 가지 괴로움을 합하여 '사고팔고(四苦八苦)'라고 말합니다.
괴로움도 따지고 보면 무상에서 오는 것입니다. 항상함에서 오는 것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무상한 것이고 괴로운 것입니다. 생로병사는 너무나 일상적인 것이라서
별로 공감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랑 미움 욕구의 괴로움은 하루에도 몇 번씩 겪는
괴로움입니다.
더울 때는 추웠으면 하고 추울 때는 따뜻했으면 하는 게 인간의 마음입니다.
결국 모든 것들이 하고자 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그것은 바로 괴로운 것입니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 정들고 가까이 지내던 사람과 이별하는 것은 큰 괴로움입니다.
그럴 때 흔히 미움을 동반하게 되고 사랑과 미움이 혼합된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고통은 살아가며
우리가 수없이 겪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삶의 전 모습이 무상이며 무상은 괴로움을 낳는 것입니다.
<죄업보응경(罪業報應經)>이란 경전에는 이런 시(詩)가 있습니다.
"물은 흘러 차 있지 않고
타오르다가 꺼지는 불꽃 보게나,
해는 뜨되 금방 지며
보름달은 어느덧 이지러짐을,
세도가 하늘을 뻗는 사람에게도
무상의 바람은 한결 같아라."
권력이 아무리 하늘을 뻗는다 하더라도 무상의 폭풍은 그 사람을 봐 주지 않는 것입니다.
가난하든, 부자든, 벼슬이 높든, 지위가 낮든 지극히 평등하게 무상은 찾아오는 것입니다.
우주 삼라만상이 다 같이 겪어야 하는 것이 바로 "무상(無常)의 이치(理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상의 이치를 제대로 터득하여 불교공부의 밑바탕으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무상은 불교공부를 제대로 실천하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동기가 됩니다. 또 무상은 우리의 삶을
보다 높은 차원으로 이끌어 주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불교공부를 제대로 실천하는 기본 마음
자세로서 무상에 대한 철저한 이해는 꼭 필요한 선행(先行) 조건(條件)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송명 > 촬영
(바보 - 유상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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