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음 열려 우주와 접하면 극락이 바로 여기/우학스님

2009. 2. 19. 10:1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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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입춘대길

 

2  日日是好日 

경기도 양평군 용문사에서... 

 

3 정월 대보름에 듣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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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모래가 정월 대보름이라

오늘은 대보름에 얽힌 이야기를 하나하고 싶네요.


정월 대보름 하면 경주의 서출지가 생각나고

아울러 사금갑의 설화가  떠오르죠.


물론 다들 아는 이야기긴 하지만 막상 그 설화의 현장에서

느끼는 감회는 또한 남다를 수밖에.....


서출지(書出池)는

경주의 남산 동쪽에 있으며 신라 21대 왕인 소지왕(炤知王)시대에

삼국유사 권일 사금갑(射琴匣)의 전설과 관계있는 못이다.


소지왕이 즉위 10년(488) 정월 15일에 천천정(天泉亭)에 행차하였는데

쥐와 까마귀가 나타나서 울어대더니 쥐가 사람의 말로

「이 까마귀가 날아가는 곳을 찾아가 보시오」라고 지껄였다.


왕은 기사(騎士)로 하여금 까마귀를 따라가 보도록 하였는데, 남쪽으로

피촌(避村, 壤避寺村)에 이르자 두 마리의 멧돼지가 한창 싸움질을 벌이고 있었다.

기사는 돼지들의 싸움에 정신이 팔려 한창 구경하다 그만 까마귀의 행방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낙심한 기사가 근처를 서성거리고 있노라니 문득 길옆의 연못 속에서 한 노인이 나와

글을 올렸는데 그 글의 겉봉에는

「이 글을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을 것이요 열어 보지 않으면 한사람이 죽을 것이다.」

라고 쓰여 있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은 왕은 희생을 줄이겠다는 의도로 편지를 열어보지 않겠다고 했으나

일관(日官)이 「두 사람이란 일반인(庶民)이오 한사람이란 왕을 말한 것입니다.」고 하니

왕은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하며 글를 열어 보았는데 그 내용은 「금갑(琴匣)을 쏘아라(射琴匣)」

라고 쓰여 있었다. 왕은 즉시 궁으로 돌아와서 금갑을 향해 활을 쏘았다.


그 안에는 내전(內殿)에서 분향수도(焚香修道)를 하고 있던 승과 궁주(宮主)가 은밀히

간통하고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마침내 죽임을 당하였다.


이때부터 우리나라 풍속에는 매년 정월의 상해(上亥), 상자(上子), 상오(上午,

즉 그 해의 첫 亥日, 子日, 午日)일에는 모든 일을 조심하고 함부로 행동하지 않으며

정월 보름날은 오기일(烏忌日)이라 하여 찰밥을 준비하여 까마귀에게 제사지내 주는 등의

풍속이 생겨 지금까지 행해지고 있다.


해일, 자일, 오일이란 전술한 설화에 등장하여 소지왕을 이롭게 해준 멧돼지, 쥐,

까마귀 같은 짐승에서 연유된 것으로 생각된다.

연못 속에서 한 노인이 나타나 봉서(奉書)를 왕에게 전했다하여 서출지(書出池)로

불리워지는 이 못은 장축 86m, 단축이 50m에 이르는 타원형이다.


이 연못 속에는 연꽃이 심어져 있고 섬이 없으며 연못 둑에 수백 년 된 배롱나무가

30여주, 소나무 20여주, 향나무, 은행나무 등이 함께 숲을 이루고 있다.

1664년 임적이 서출지 연못가에 석축을 쌓고 이요당(二樂堂)을 건립하였다.


이요당(20평)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2칸인 팔작집의 ㄱ자형 정자 건물로서 주위는

막돌담(높이 2m)을 쌓아 아늑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이요당에 앉아 서출지를 바라보면 신라의 설화가 피어나는 듯하다. 


이번 정월 대보름에도 이곳 서출지 앞에서

대보름 놀이가 성대하게 벌어질 것이다.

 

 

4 눈내리는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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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38대왕인 원성왕릉으로 전해지는 괘릉.

 

삼년 전 경주에 눈 내린다는 정보(?)를 접하고

불이 나게 튀어 나갔지만 어느새 눈은 거의 녹아버리고

아쉬운 잔설만 적막한 묘역을 지키고 있더군요.

 

학자들은 신라의 능묘 중 가장 멋지고 완성된 모습을 보여주는 능이라고

평을 하는 호석에 새겨진 십이지신상이 참 아름다운 왕릉이랍니다.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는 A급 답사처인데

일반인들에겐 별로 호응을 얻지 못하는 곳이기도 하고요.

 

 현재 주차장과 묘역주변을 단장하는 공사를 하였답니다.

 

5 감은사지의 설경



몇년전에 이 사진을 찍기위해 남편과 함께 눈길을 헤치며

무룡산을 넘던 날이 기억납니다.

 

681년 통일대업을 완수한 문무왕이 이절을 완성하지 못하고 죽자

그 아들 신문왕이 682년 절을 완성하고 아버지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에서

감은사라 이름하였답니다.

 

왜구로 부터 나라를 지키겠다고 죽어 동해의 용이 된 아버지가

들어와 편히 쉬도록 금당 밑에 바다로 통하는 수로를 만들어 놓은

신라건축의 백미 감은사의 설경을 감상하시길...^^*

 

멀리 문무왕의 수중능으로 불리는

대왕암이 있는 봉길리 앞바다가 왼쪽에 살짝 보이네요.

 현재 사진에서 보이는 서탑은 해체복원 중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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