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거던 /향봉스님

2009. 2. 18. 10:43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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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거던

                      - 이향봉 스님

 

이웃들에게 친구들에게 알리지 말길

관이니 상여니  만들지 말길

그저 입은 옷 둘둘 말아서

타오르는 불더미 속에 던져 버릴 것

한 줌 재도 챙기지 말고 버려 버릴 것

 

나 죽거던

49제다 100일제다 제발 없기를

쓰잘데 없는 일로 힘겨워 말길

제삿날이니 생일이니 잊어버릴 것

죽은 자를 위한 그 무엇도 챙기지 말것

죽은 자의 사진 한 장도 걸어두지 말 것

 

내 죽어

따스한 봄바람으로 돌아오리니

피고지는 들꽃 무리 속에 돌아오리니

아침에는 햇살처럼 저녁에는 달빛처럼

더러는 눈송이 되어

더러는 빗방울 되어

   

 

 

* 바른 불교, 바른 신앙을 모토로 익산지역의 불교 중흥을 위하여

정진하시는 향봉스님께서 티벳 순례시 고산병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시면서 지은 시라고 합니다. -사자암 게시판에서 

                           

 

성철스님과의 대화 '산은 산 물은 물/이향봉 저 ' 옮겨 봅니다.

 

부처님이나 역대 조사스님들이 말씀하지 않으신 경전이나 어록 밖의 한 말씀이

듣고 싶습니다. 부모미생전의 일구를 들려주십시오.

"차나 한 잔 들게...."

 

저희처럼 젊은 시절에 본능적인 욕구를 극기하시며 방황하시던 손떨림같은

추억은 없으신지요?

"별 어려움이 없었다. 오로지 생사대사를 초탈할 일념 뿐 이었다."

 

큰 스님께서 머언 훗날에 열반에 드실 때 그 크신 주장자를 어느 곳에 꽂고

가시겠읍니까 ?

" 이미 일체 중생들에게 골고루 전해놨다"

 

요즘의 큰 스님 건강은 어떠세요. 마음이 평화로우면  몸이 병들 날이 없으실

텐데요?

"감기가 가볍게 와서 머물고 있다. 마음이 화평하지 못한 모양이다."

 

큰 스님께서 몸져 누워 계실 때에 저희들처럼 외로움을 느끼시지는 않으시는

지요?

저는 때때로 누군가에게 엄살을 부려보고 싶고 눈깔 사탕 사 줄 딸아이 하나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아요.

"니 중 노릇 하기가 어렵게 됐네 . 중생이 병들어 괴로워하면 보살이 앓

는다는 유마힐의  정신으로 살아야지.괴롭고 외로울 때마다 부처님을

생각하라."

 

만일의 경우인데요. 큰 스님께서 열반에 드신후 다시 환생하신다면 어떠한

일을 하고 싶으신지요?

"빈천한 가정에 태어나 큰 도인이 되고 싶겠다. 진공묘유를 보이고 싶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신문사 기자들을 자주 만나게 되는데 큰 스님께서 종정으로 추대되

신 후 <산은 산 물은 물> 의 법문으로 종교계의 커다란 화제가 되고 있읍니다.

언젠가는 국회부의장으로 있던 분이 소개장을 가지고 큰 스님을 찾아뵈오려

왔을 때, 소위 국회부의장이 어린아이 처럼 소개장이나 써가지고 다니니

라 꼴이 한심하지 않을 수 없다며 호통치신 일화를 스님들한테서 들었읍니다.

큰 스님을 뵈오러오는 자는 직위 고하를 막론하고 법당에서  3천 배의 큰 절을

부처님전에 올린 후에야 큰 스님 친견이 허락되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신

지요 ?

"나도 새벽마다 108배를 하고 있다. 일체 중생들을 위해여 절을 해야 하고

 참회하고 기도드리는 자세로 절을 해야 한다. 자신을 위해 기도드리는 게

 아니라 이웃을 위해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절을 해야 된다.

그렇게 되면 마음이 그지없이 맑아오고 태평해진다."

 

 

퇴옹 이성철 대종사의 크신 법음이 중중무진수로 이어져 내려 육도윤회설을

은근히 부정하던 내 자신이 철저히 긍정하게 됐을 만큼 스님의 법음은 회오리

 바람이었고 번갯불이었으며 화살이었고 한줄기 빛이자 광명이었음을 밝혀

둔다. 왜냐하면 시원찮은 기억력 탓도 있겠지만, 큰스님께서 법문을 들려주시면

서도 일체 녹음이나 메모를 허용치 않으시어 땀을 뻘뻘 흘리며 나의 무딘 두뇌

타자기에 기록해 둔 것을 원고지에 허락도 없이 옮겨놓이니 두려운 마음이 산더미 같다.

큰 스님의 크신 법의 실타래에서 반오라기쯤이나 옮겨놓은데 불과함을 이쯤에

서 밝혀놓으며 끝으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의 짤막한 법문만을 전한

채 끝내 종정 추대식에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은 큰 스님의 법문을 여기에 옮겨

 놓는다. 조계종 승려들이 입고 있는 장삼과 가사의 법복도 율장에 근거를 두고

 큰스님께서 창안하신 것음을 부언삼아 밝혀 놓는다.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살아 생전에 퇴옹 이성철 큰스님을 뵙지 못하면 그 후회

스러움이 저승길의 발거음마저 더디게 할지도 모를 일이다.

다음은 81년 1월15일 대한 불교 조계종 제 7대 종정에 취임하는 식전에서 남기

신 법어이다.

 

"원각이 보조하니 적멸과 둘이 아니라. 보이는 만물은 관음이요.

들리는 소리는 묘음이라. 보고 듣는 이 밖에 진리가 따로 없으니

시회대중은 알겠느냐?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