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여공의 즐거움과 괴로움

2009. 2. 26. 00:04일반/생활일반·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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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여공의 즐거움과 괴로움

 

 

 

 


                        
경북 안동 / 묘연화 블로그에서 퍼옴

 

 

 1

 

사람들이 아는 것은 오줌 싸는 줄거움 뿐

변기 닦는 즐거움은 모르고 있네

 

언젠가 종무소에서 위의 글을 몇 장 인쇄해 코팅까지 한 뒤 해우소

변기 위에 붙여 놓았습니다.

더운 물을 받아 소변기에 눌러붙은 때를 닦고 난 뒤의 일입니다.

해우소가 지하실에 있어서 한 번 냄새가 일면 좀체 환기되지 않는고로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싶어서  그랬습니다.

그랬는데 저내용을 보고 딱 한사람 빙그레 웃는 분이 있었습니다.

종무소 일을 도와주는 전직 교사출신 불자였는데 시를 꽤나 좋아하는 분이었습니다.

내가 그랬지요.

"어? 보살님, 아시는 거지요?" 

그랬더니 대답대신 그저 합장만 하셨습니다.

위에 적은 내용은 다산 정약용 선생의 글을 변형한 것이었습니다.

본래 내용은 이렇습니다.

 

사람들이 아는 것은 가마 타는 즐거움 뿐

가마 메는 괴로움은 모르고 있네.

 

 

 

 2

 

글을 쓰다보니 다산이 생각납니다.

다산선생이 남긴 시가 600여 수 정도 되는데 그 중에

탐진농가(耽津農歌)라는 10수짜리 시가 있습니다.

그 중 한 수 입니다.

모내기철 되어서 뙤약볕 아래 땀 뻘뻘 흘리며 일하는 농사꾼을 보고 쓴 글입니다.

 

붉은 다리에 거머리 붙어 선혈이 낭자한데

저 피로 그림 그려 조정에 바쳐볼까

 

실학자 그러면 무슨 학문하는 사람으로만 인식하는데

요즘으로 말하자면 다산은 아주 진보적이고 저항적인 시민운동 지도자쯤

되는 사람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랬으니 천주학쟁이 집안 내력이 아니더라도 저런 저항성 하나만 가지고도

조선국의 조정에서 곱게 볼리는 만무했겠지요.

학자들이 이 부분은 관련자료가 충분하지 못한지 잘 조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참 아쉬운 부분입니다.

위에 언급한 저 시로만 본다면 다산은 당연히 아주 진보적이고

실천적인 저항운동가 였음에 틀림 없습니다.

농사꾼 다리에 흐르는 핏물로 그림그려 조정에 바친다!

                         

이 얼마나 섬뜩한 말입니까?

그만큼 가난한 민초들의 아픔에 동조하고 있었다는 말인데

귀족집안의 선비치고는 대단히 혁명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의 시대에 저런 사고를 가진 귀족이 있는지

식민지적 농업정책으로 피폐한 농사꾼들에게

정부에서 선심 쓰듯 보조해 준다는 농업 직불금을

몇 몇 정보력 밝은(?) 국가 공무원들과 가진 자들이 가로챈 사건은

두고두고 역사에 기록될 일입니다.

그 수가 20여 만 명 이라나요? 후아~

그런데 그 명단을 밝히지 않겠다고 뻐팅기는 사람들이 있으니

정책 책임자들이나 총리나 대통령이나

뻔뻔하기는 뺑덕어미 뺨치게 생겼습니다. 

 

어제는 강기갑의원이 그 명단 중 일부를 폭로해 버렸는데요.

세상에나! 아시다시피 지자체장도 있고 아주 아주 모두 훌륭하신 분들이었습니다.

욕이 안나올 수 없습니다. 도둑놈들.

가로챈 놈들이나 가로채라고 가르쳐준 놈들이나

공무원 사기 운운 하며 명단을 꼭꼭 숨겨주는 놈들이나 다 한통속 입니다.

도둑놈들.

그래서 또 씁니다.

 

                        

구글에서 퍼옴

사람들이 아는 것은 도둑질 하는 즐거움 뿐

도둑 잡는 즐거움은 모르고 있네

메기 입에 직불금 붙어 웃음이 낭자한데

저 노래 가로채서 쟁깃날에 갈아볼까

 

예나 지금이나 역사는 조금치도 발전하지 않았습니다.

불을 발견한 역사나 문자 발명의 역사나 우리들 의식의 역사나

매 한 가지의 역사입니다.

오히려 원시의 인류가 훨씬 불성 깊은 존재들이었습니다.

오바마가 당선되었다고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의 흑인들이, 그 조상들이 겪었던 아픔을 모르는 바 아니나

기독교도가 아니면 성공할 수 없는 미국 정계의 특성상 그도 당연히 성경

위에 손을 얹고 미국 대통령으로서의 선서를 하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희망의 메신저가 되겠다고 나선 그도 자국 내 석유재벌이나 무기재벌이나

농축산업재벌이나 콜라재벌이나 햄버거재벌들의 입김을 무시하고

정말 인류의 화해평등을 위하는 정책을 쓸 것인지

이라크 문제나 소말리아 문제나 북한문제를 다룰 때

정말로 소외되지 않고 배타적이지 않으며 끌어 안고 보듬는 전 인류애적

시각으로 할 수 있을 것인지 지켜보라는 말입니다.

 

고명하신 우리의 대통령께서는 오바마와 전화통화 했다고 언론이 대신 

떠들어 주었는데 희망도 다 같은 희망이겠습니까?

위정자의 희망과 덕장의 정치는 분명 다른 것인데 두고 보자는 말입니다.

티벳을 빼앗고 몽골마저 반으로 나눠 패권주의를 건설하려는 저 무모한     

중국의 시각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더 두고보자는 말입니다.

오바마가 우리나라의 쌀 직불금 문제나 도덕적으로 추하디 추한 강만수나

어청수나 공정택이나 하는 못난 인간들이 대한민국의 정부지도자라고 듣는다면

흰 이를 드러내놓고 한참 웃다가 바람 빠지게 웃다가 밥 먹다가 웃다가

집에 가다 웃다가 하지 않을까 부끄러워서 하늘 보기가 어렵습니다.

                         

에이~   고만 쓸랍니다.

 

 

 

 

 


 

 
동백 아가씨 / 장사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