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이 아닌 열반에 머무는 이유

2009. 3. 11. 10:55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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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열반-부처님은 왜 영원히 머물지 않으시고 마침내 열반에 드시는가?]

 

 

부처님이 열반하실 때 대중들은 말할 수 없는 비통함에 빠지십니다.
'아! 어찌 부처님의 열반이  이리도 빠른가!'

 

 

대중들은 이렇게 외치며 슬픔을 못 이겨 몸을 땅에 굴리기도 하고 머리를 쥐어짜기도 하며 온 몸으로 비통함을 토로합니다.  일부 대중들은 슬픔에 겨운 나머지 부처님께 '부처님은 영원하시다며 어찌 백 년도 살지를 못하십니까. 거짓말(?)을 하신 게 아닙니까?' 라며 항의(?)하기도 합니다.

 

 

이에 부처님은 '신통을 얻은 비구, 비구니도 오래 살라면 얼마든지 오래 살 수 있는데 하물며 여래께서랴. 단지 여래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열반을 일부러 보이는 것이다.'라며 슬픔에 잠긴 제자들을 위로하십니다.

 

 

여래는 본시 열반이 없지만 중생의 보리심을 일으키기 위해 일부러 열반에 드시니, 부처님이 언제나 계시면 나태해져서 보리심을 내기가 어려워지기에, 부처님은 당신의 인연을 굳이 거두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월은 무상하다,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는 말씀을 남기시고 마침내 열반에 드십니다.

 


어린 시절, 부처님의 열반은 제게 무척 못마땅한 사건이었습니다. 그 당시 대중들의 바람대로 천년 만년 저희 곁에 머무신다면 저희들 같은 고해 중생들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그 작은(?) 소망을 안 들어 주시고 끝내 열반에 드시다니...그래서 부처님 없는 시대에 살게 해 이렇게 저희들을 힘들게 하시다(?)니... 이런 생각이 어린 마음을 떠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이나마 철이 든 후에 다시 본 부처님의 열반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부처님의 열반이야말로 정말 위대한 가르침이요, 또한 저희들을 위한 부처님의 자비 가득한 대 결단이었던 것입니다.

 


먼저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지 않았다면 그건 부처님을 위해서 할 일이 못 됩니다. 찰나에도 못 미칠 무상한 세월을 살아가는 저희들이야 좋겠지만, 동(同) 시대의 중생들이 모두 사라진 세월을 하염없이 머무르셔야 할 부처님 입장에서는 정말 할 일이 못 되는 것입니다.

 


제 철 음식이 우리에게 가장 도움이 되듯, 부처님 가르침도 그 때 그 때 인연에 의해 새롭게 탄생하고 재조명 되어야지 언제까지나 부처님 한 분께 그런 일을 맡기는 것 역시 우리가 할 일이 못 됩니다. 그러니 부처님은 당연히 열반에 드셔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지 않으시면 더 나은 제자들이 나오기가 힘듭니다. 세상 모든 이치가 다 그렇습니다.  자식이 있을 자리에 부모가 물러나지 않고 있고, 제자가 있을 자리에 스승이 버티고 있으면 부모보다 나은 자녀도, 스승보다 나은 제자도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부처님은 당연히 열반에 드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더 나은 제자, 더 나은 새로운 후손들이 부처님 법을 더 새롭게 창조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끝으로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지 않고 영원히 계신다면, 우리는 더 큰 공부를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 부처님께 의존하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부처님이 그 곳에 계시고 아쉬울 때마다 부처님을 찾을 수 있다면, 우리는 게으름에 빠지기 쉽고 가르침 소중한 줄 모르는, 따라서 감사할 줄 모르고 은혜를 모르는 그런 철없는 중생이 되기 쉬울 것입니다. 마치 성인이 된 후에도 부모님께 매달리기만 하는, 그런 응석꾸러기, 몸만 어른인  어린 아이가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우리들이 언제까지나 그런 어린 아이가 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또 어린 아이로 머무르기를 바라지도 않으십니다. 부처님 당신은 사라지시더라도, 일체 중생이 당신처럼 그렇게 밝고 건강한 '또 다른 부처님'이 되기를 애타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보다 더 건강하고 더 밝은 부처님이 되어, 부처님 없는 곳에 가서 부처님 가르침을 당신을 대신하여 많은 분들께 전하시기를 그렇게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처님이 열반하실 때 먼저 게으름 없는 정진을 강조하시고, 그렇게 정진한 후에는 반드시 이웃들에게 널리 가르침을 알릴 것을 부탁하신 것이겠지요...

 


그러므로 부처님은 당연히 열반에 드셔야 합니다.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이 고해를 떠나고 다시는 고생 많은 이 세상에 아니 오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 고해 중생을 위해 떠나시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끝으로, 화엄경 여래출현품에 나오는 말씀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불자여, 부처님 여래는 중생들로 하여금 즐김을 내게 하려고 세상에 출현하시며,
중생으로 하여금 사모함을 내게 하려고 열반함을 보이시지만,
여래는 참으로 세상에 출현하심도 없고 열반하심도 없다.

 

여래는 청정한 법계에 항상 계시면서
중생의 마음을 따라서 열반함을 나타내신다.

 
비유하면 해가 떠서 세간에 두루 비치되
무릇 청정한 물이 있는 그림자가 나타나서

여러 곳에 두루하지마는 오거나 가는 일이 없으며,
그릇이 깨지면 그림자가 나타나지 아니 하는 것과 같다. "

 

 

아프리카의 나미비아(Namibia)
면적 : 82만 km²       인구 : 2백만명
수도 : 빈트후크       인구 : 17만명
GNP : 2500 $
 
남회귀선이 지나는 아프리카 남서부 해안에 위치한 국가로서 북쪽으로 앙골라와 잠비아, 동쪽으로 보츠와나, 동남쪽과 남쪽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 서쪽으로 대서양과 접해 있는 나미비아 공화국은  1915년 이후 74년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식민통치를 받아오다가 국제연합(UN)의 후원으로 1990년 3월 아프리카에서는 53번째로 독립국가를 수립함으로써 아프리카 대륙에서의 식민지 역사는 종식을 맞게 되었다
 
 
  나미비아의 수도 빈트훅(Windhoek)
1650미터의고원에위치 인귀17만명
 
 
 
 빈트훅 (Windhoek)
 
 
 
 빈트훅 (Windhoek)
 
 
 
 
 
 
 
 
 빈트훅(Windhoek)
 
 
 
 
 
뤼데리츠 (Luderitz) 
 
마치 독일의 작은 도시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근처의 다이야몬드광산으로 인하여 발전되었다
 
 
 
 
 
 뤼데리츠 (Luderitz)
 
 
 
 
 뤼데리츠 (Luderitz)로가는 도로
 
 
 
 
 
 Sossusvlei (붉은 사막)
 
 
 
 
 
  Sossusvlei (붉은 사막)
 
 
 
 
 
 
 
 
 
 
 
 
 
 
 
 
 
 
에토샤 국립공원 (Etosha National Park)
 
 
 
 
 
 
 
 
 
 
 
 
 
 
 
 
  
 
 
  피쉬강 협곡 (Fish River Canyon)
 
 
 
 
 
  
 
 
 
 
 
 Himba 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