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거리(業)

2009. 3. 24. 09:48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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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거리


 

어느 수행자가 조주선사에게 

'개에게도 불성이 있느냐'고 물으니 조주선사는 '없다(無)'고 했다.

화상은 다른 날 똑같은 질문을 받고서는 '있다(有)'고 답했다.

'일체중생이 모두 부처(一切衆生皆有佛性)'라고 했는데 왜 없다고 했을까?

화상은 명쾌하게 답하고 있다.

개는 그 '업식(業識)'이 남아서

그가 알고도 짐짓 범하여 스스로 <개가죽>을 뒤집어 쓴다고 . .


'불성이란 중생의 마음 쓰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업식의 지배를 받아 도리에 어긋나는 짓을 하면 불성이 없다는 것이다.

모두가 불성을 지녔지만 부처짓을 하면 부처요 도둑질을 하면 도둑이다.

내가 그릇이라면 내가 하고 있는 '짓거리'(작용)에 따라서

이름과 형상과 업식이 달라지는 것이다.

젖을 먹이면 어머니요, 내조를 하면 아내이고,

사기를 치면 사기꾼이며, 자비를 베풀면 보살이 되는 것이다.

 

'짓거리(행위,업보業報)는 있으나 작자(作者)는 없다'는 말이 있다. 

많은 사람을 살인한 <강호순>이도 '하는 짓'이 살인마이지

'강호순'이라는 사람(작자)을 미워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여기서 존재存在와 법法에 대하여 알아보자.

존재는 우리와 상관없이 외부에 있는 것을 말하므로

우리가 죽어도 지구는 돌고 모든 것은 그대로 존재한다.

그러나 법은 인식을 통하여 알게 되는 모든 것이므로

우리가 보고 듣고 맛보고 하는 모든 것이 법 아닌 것이 없다.

우리가 인식한 모든 것이 법이므로

내가 없으면 우주의 모든 존재도 없으며

내가 있어야 우주도 존재하는 것이다.

부처님이 깨달은 연기법도 <괴로움의 씨앗>이 따로 존재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조작해서(인식해서) 스스로 괴로워하고 있는 法이다.


우리가 평소에 욕망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업이 쌓이면 안광(眼光)이 땅에 떨어질 때에

지은 업(짓거리)대로 윤회할 소지가 많다는 무서운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안에 모시는 부처님이 안녕하신지,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행위가 부처다운지,

아니면 탐진치에 불타고 있는지,

항시 점검하고 문안하는 것이 진정한 수행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