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뭣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참구하라

2009. 4. 11. 11:01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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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뭣고?’

-시십마(是什摩)-

저 숭산의 수행자는 그길로 돌아가
공부를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지금까지의 생각 공부, 이론 공부, 말 공부,
지식 공부로서는 나의 진면목을 깨달을 수 없다는
진실을 자각하고, 생각 · 이론 · 말 · 지식,
이 모든 불완전한 방법들을 팽개치고
직접 부딪쳤습니다.

‘이 뭣고?’

이 한 생각만 거듭하면서 자기 존재의 실체에
온 몸 온 생명으로 부딪쳤습니다.

‘이 뭣고? 도대체 「나」란 것이 뭔가?’

자나 깨나 이 한 의문에 전 생명을 쏟아 부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참선입니다.
말 · 생각 · 문자를 떠나서 문제의 실체에
바로 부딪쳐 뚫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말 ·생각 ·문자는 필요한 것이긴 하지만,
이것들이 결코 진실 그 자체
진리 그 자체는 될 수 없습니다.
「김 길동」이란 이름이 나의 실체가 될 수 없듯이
세상의 모든 진리는 이름을 떠나 있습니다.
말씀을 초월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이름 · 말씀 · 문자에 매달려
그 실체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이냐. 하나님이냐.’하고 헛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부처냐? 신이냐.’하고 그림자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모든 이름 · 말씀 · 문자를 조용히 놓아버릴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바라 보지 말고,
저기 달 그 자체를 직시할 것입니다.

‘이 뭣고?’

오로지 이 한 생각으로 자나깨나 어묵동정에서

직시해 들어갈 것입니다.

 

 

 

◈ 무시선(無時禪) 무처선(無處禪)

* 참선이란 글을 배우면서도 할 수 있는 것이요
농사를 하면서도 할 수 있는 것이요、
그 밖의 모든 업(業)을 하면서도 할 수 있는 것이다.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러한 때일수록 참선이 필요한 것이다.

-韓龍雲全集2. p. 317. 「禪과 人生」-

참선이란 끊임없이 마음을 텅 비우는 것입니다.
그 빈자리에, 빈 공간만큼 새 생명의 물결이 넘쳐흐릅니다.
이 생명력으로 일을 하면 무슨 일이든지 놀라운
성공을 거두게 될 것은 지극히 당연한 도리입니다.
그래서 운동선수들이 참선을 하고, 
예술가들이   참선을 하고,
기능공들이 참선을 하고, 학생들이 참선을 합니다.
특히 질병 치유에는 이 참선법이 놀라운 효과를 갖고 옵니다.
현대인의 모든 질병은 마음의 번뇌, 마음의 오염에서 옵니다.
이 참선으로 이 번뇌를 깨끗이 하면,
우리 육신은 본래 건강한 것이니까
질병은 흔적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무시선(無時禪) 무처선(無處禪)

어느 때나 참선하고

어느 곳에서나 참선하라.」

그렇습니다.
참선은 우리 생활의 자연스런 한 부분입니다.
나는 아 침에 일어나 10분 참선을 합니다.
가족들과 함께 예불을 하고 10분 참선을 합니다.
버스를 타고서도 하고 직장에서도 합니다.
마음이 괴로울 때도 하고 어려운 문제가 생겼을 때도
고요히 앉아서 참선합니다.
습관이 되면 언제 어떤 환경 속에서도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오늘 하루는
항상 청량하고 신선합니다.
힘이 넘치고 건강합니다.

이 속에 지혜 나무는 한 뼘 한 뼘 자라고 있습니다.

 

 

 

 



 

꿈같이 오실 봄 / 오광수 *

 

 

그대!

꿈으로 오시렵니까?

백마가 끄는 노란 마차 타고

파란 하늘 저편에서

나풀 나풀 날아오듯 오시렵니까?

 

아지랑이 춤사위에

모두가 한껏 흥이 나면

이산 저 산 진달래꽃

발그스레한 볼 쓰다듬으며

그렇게 오시렵니까?

 

아!

지금 어렴풋이 들리는 저 분주함은

그대가 오실 저 길이

땅이 열리고

바람의 색깔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어서 오세요.

하얀 계절의 순백함을 배워

지금 내 손에 쥐고 있는

메마름을 버리고

촉촉이 젖은 가슴으로

그대를 맞이합니다.

 

그대!

오늘밤 꿈같이 오시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