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골짜기(深谷) /나옹혜근
2009. 6. 22. 21:48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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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골짜기(深谷)
깊고 먼 이 곳에 그 누가 이르리.
조각구름 한가로이 골의 입구에 걸렸는데
이 가운데 뛰어난 경치를 아는 이 없어
명월과 청풍이 푸른 하늘을 희롱하고 있다.
極遠誰能倒那邊 片雲橫掛洞門前
극원수능도나변 편운횡괘동문전
其中勝境無人識 明月淸風弄碧天
기중승경무인식 명월청풍롱벽천
- 나옹혜근(懶翁惠勤)
나옹(懶翁, 1320~1376) 스님의 ‘깊은 골짜기(深谷)’라는 시다. 말씀은 깊은 골짜기를 이야기 하고 있으나 내용인즉 자신만이 도달한 높고 깊은 선경(仙境)을 의미한다. 선사들의 선시는 언제나 그렇다. 사물과 풍경을 이야기하고 있으나 그 말 속에는 언제나 자신이 터득한 깨달음의 경지와 독보적 정신세계를 은근히 드러내고 있다. 만약 그것이 없으면 선사의 선시라 할 게 없다.
나옹 스님은 우리 불교사에 자랑할 만한 매우 훌륭하신 도승이다. 특별한 행적도 많다. 문장과 지견이 남다르다. 그래서 좋은 시가 많이 전하며 스님의 토굴가(土窟歌)는 아직도 선불교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깊고 먼 이곳이 그냥 깊기만 한 것이 아니고 흰 구름 한 조각이 동구에 가로걸려 있어서 풍경이 얼마나 깊은지를 가늠할 길이 없다. 그 뛰어난 경치를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 나옹 스님의 그 훌륭한 선의(禪意)와 선기(禪機)를 누가 감히 짐작하겠는가. 그야말로 불불(佛佛)이 불상견(不相見)이나 도인만이 도인을 알아본다. 그래서 명월과 청풍만이 푸른 하늘을 희롱하고 있다고 하였다. 한 평생 자신의 생애를 다 바쳐서 이르러 온 지극한 도의 경지를 이렇게 아름다운 시어를 통해서 그리고 있다. 곱씹고 음미할수록 참으로 숨이 멎는 절창이다.
출처 : 무비 스님이 가려뽑은 명구 100선 ③ [무쇠소는 사자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 모리 슈워츠 교수의 마지막 메세지 ♣
그러면 죽는 법을 알게 됩니다. 죽는 법을 배우십시오. 그러면 살아가는 법을 알게 됩니다. 훌륭하게 살아가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언제라도 죽을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몸은 우리의 일부일 뿐,
우리가 이렇게 위대한 이유는 몸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감정과 통찰력,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감정과 통찰력과 직관이 남아있다면, 우리는 아직 우리의 자아를 잃어버린 것이 아닙니다.
항상 좋은 사람인 척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좋은 사람인 때가 더 많은 사람이면 충분합니다. 극도로 화가 났을 때는 그 감정을 밖으로 표현하십시오. 좌절하거나 화가 났을 때, 감정을 표출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자신을 동정할 줄 아는 사람 자신에게 친절한 사람이 되십시오. 자신을 가장 가까운 친구로 삼으십시오. 자신을 진실로 아는 자는 진실로 자신을 귀하게 여기며 자신에 대한 귀한 존경심을 통하여 타인들을 자기처럼 귀하게 여기는 방법을 배웁니다.
우리가 사랑하고,
기꺼이 우리를 도와주도록 해야 합니다. 다만, 그들이 들어 줄 수 없는 요구를 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행복은 소중한 것입니다. 가능한 한 즐거움을 많이 느낄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 놓으십시오. 전혀 예상치 못한 때에,
행복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슬픔을 드러내는 것은 삶의 소중한 휴식이 되며, 우리에게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 줍니다. 슬픔을 드러내는 것은 카타르시스와 위안을 안겨 주며 침착함을 유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슬픔의 끝이 슬픔일 수는 없습니다. 잃어버린 것을 슬퍼하며 울고 난 후에는 아직 남아 있는 것에 감사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런 생각의 끝에는 우울증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쓸모있는 존재가 될 수 있는 자기 나름의 방법을 찾으십시오.
용서하는 힘을 기르십시오. 용서는 우리의 삶을 이전의 삶과는 아주 다른 새로운 삶으로 이끌어 줍니다. 용서는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억울한 생각을 없애주며,
바다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바다의 일부였던 그 물결은 결코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인류의 삶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파도가 아니라 바다의 일부입니다.
브랜다이스 대학에서 35년 동안 사회학 교수로 재직했으며, 1994년 77세 나이에 루게릭병에 걸려 1995년 11월 4일 세상을 떠났다. 그는 자신의 병을 받아 들이고
목숨이 끝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배움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않았으며, 스승으로서의 직분 또한 버리지 않았다. 자신의 죽음을 드러내어
모든 사람들을 위한 대화의 소재로 기꺼이 내 놓았으며, 말을 더듬고 손발은 움직이지 못하는 처지이면서도 자신의 마지막 모습까지
경쟁만이 최고의 가치로 인정되는 이 시대에
그는 삶을 사랑하였고,
Souvenirs D'enfance (어린시절의 추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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