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입과 뜻'(身口意)을 굴리는 주재자(主宰者)가
없으며, 따라서 <짓는 자>도 없고, <받는 자>도 없다
한 생각이나마 <조작 없는 성품>(無作之性),에 맡
길 수만 있으면 '부처 지혜'는 곧 앞에 나타나서
<얻음도 없고 증득함도 없는>(無得無證), 이것이
바로 부처이니라.
'만화(萬化)의 근원'을 궁구하여 <하나의 참된주처>
(一眞住處)를 얻었도다. '본체'가 공하면서도
분명하여 <감관을 거치지 않고 비추어 다하되(照盡)>,
면면하여 '티끌 경계'라는 생각을 완전히 벗어났도다.
곧장 '광명'과 '경계'를 모두 ?고
'마음'도 '법'도 모두 잊으니, 우둑하게 홀로 존귀
하고 활작 트여서 원만하고 담연하도다.
생명과 거래에 있어서 '변천하는 주체'가 없으니,
문득 인연을 따르되 <걸림이 없고>(無得),고요히
비추되 <공용이 없도다>(無功用).
ㅡ 천 동(天童) ㅡ
18
그대 보지 못했는가,
배우기를 쉰 한가한 도인을…
망상을 없앨 건 무엇이고,
진리는 구해서 무엇 하리오.
미혹한 마음이 곧 불성이요
허깨비 같은 이 몸이 곧 불법이라.
정법을 깨달으면 한 물건도 없나니
지금 그대로가 곧 부처의 모습이다.
'몸과 입과 뜻'(身口意)을 굴리는 주재자(主宰者)가
없으며, 따라서 <짓는 자>도 없고, <받는 자>도 없다
한 생각이나마 <조작 없는 성품>(無作之性),에
맡길 수만 있으면 '부처 지혜'는 곧 앞에 나타나서
<얻음도 없고 증득함도 없는>(無得無證),
이것이 바로 부처이니라.
'만화(萬化)의 근원'을 궁구하여 <하나의 참된 주처>
(一眞住處)를 얻었도다. '본체'가 공하면서도
분명하여 <감관을 거치지 않고 비추어 다하되(照盡)>,
면면하여 '티끌 경계'라는 생각을 완전히 벗어났도다.
곧장 '광명'과 '경계'를 모두 끊고
'마음'도 '법'도 모두 잊으니, 우둑하게 홀로 존귀
하고 활작 트여서 원만하고 담연하도다.
생멸과 거래에 있어서 '변천하는 주체'가 없으니,
문득 인연을 따르되 <걸림이 없고>(無得),
고요히 비추되 <공용이 없도다>(無功用).
ㅡ 천 동(天童)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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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지기 이 온갖 '비춤의 작용'(照用)으로
'보고 들음'(見聞)에 맡겨 자재하라.
<웃고 울고 말하는 것>이
모두 '부처 지혜'를 이룰 뿐이다.
이렇게만 이해한다면
한 시도 성불하지 않은 때가 없고,
한 사람도 득도하지 않은 이가 없으리라.
원래가 천진(天眞)이요. 자연(自然)이거늘
조작(造作)에 무엇하러 상관하랴.
ㅡ 백 장(百丈)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