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문관(無門觀)수행법

2009. 7. 14. 23:52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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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문관은 말 그대로 문이 없다는 말이다.

60년대 중반경인가 서울 천축사에서 정영스님께서

6년 무문관 수행처를 만들어 2기까지 시봉을 하셨다.

 

 

6년을 완전히 마친분은 몇 분 되지 않으신 걸로 안다.

 

그만큼 어렵고 위험한 수행인 것이다.

 

(남장사 극락전~백일기도한 곳)

 

 

93년도 남장사에서 백일 기도를 마치고 평산 스님과 함께

계룡산 대자암으로 가서 걸망을 풀어 산철정진을 기약했다.

 

이 곳은 정영스님께서 원력을 세우셔서 5개월짜리 무문관 수행처를 만들어 

그 당시 첫번째 입방하신 스님들이 정진 중이시다.

 


처음에 대자암에 갈때에는 무문관을 입방할려고 하는 맘으로 간 것은 아닌데,

하루하루 지내면서 무문관에서 한번 정진해 봐야겠다는 마음이 생겨서

정영스님께 말씀드리니 허락을 하셨다.

 

음력으로 8월 15일 추석에 1기 스님들이

5개월 정진을 마치고 문을 열고 나오셨다.

 

얼마나 뿌듯하고, 성취감이 있을까~~부러운 맘이다.

 

 

 

우리는 음력으로 9월 15일에 입방을 하였다.

 

다음해 음력으로 2월 15일이 문을 열고 나오는 날이다.

 

비구 스님 9명, 비구니 스님 1명, 거사님 1명~~

총 11명이 5개월의 정진을 기약하면서 입방을 하였다.

 

2층에 방이 5개, 3층에 방이 6개.

 

각 방에는 화장실, 샤워기,조그만 냉장고,전자렌지, 안락의자,이불 한채

그리고 좌복 하나가 전부이고 문은 바깥에서 열쇠로 잠근다.

 

오전 11시경에 공양을 한때 주는데 각 방에는 공양이 들어 갈 정도의

조그마한 구멍이 있다.

 

이 곳은 스스로 선택해서 들어 가는 곳이라 더 힘들다.

 

 

** 무문관에 들어가 홀로 수행하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어지간한 근기(根器.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나 소질)의 소유자가 아니면

몸과 정신이 황폐화된다.

 

둘러봐도 벽뿐이고, 오로지 자기 자신과의 대화와

나태해지려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만 있을 뿐이다.

 

1978년 천축사 무문관에서 6년 정진을 회향한 무불스님은

‘햇살에 잠시 눈을 뜨지 못하고’

“부처님도 6년간 고행하지 않았습니까. 자고 나면 ‘오늘이 시작이구나’

여기며 세월을 생각하지 않고, 밥 먹고 잠자는 시간 이외에는 면벽참선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가지런한 신발, 공양을 넣어주는 급식구(給食口),

밖에서 채운 자물쇠가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그것을 보는 순간 무문관은 정말 냉정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수행인은 냉정하지 않으면 영원한 자유를 성취할 수 없고,

정진에 대한 열정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냉정과 열정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존재가 수행자다.

 

 

 

“공부인은 세상에서 아무 쓸 곳도 없는 대(大)낙오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오직 영원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희생하고,

세상을 아주 등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에게나 버림받는 사람,

어느 곳에서나 멸시 당하는 사람,

살아나가는 길이란 공부하는 길밖에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불법(佛法) 가운데서도 버림받은 사람,

쓸데없는 사람이 되지 않고는 영원한 자유를 성취할 수 없다

 전 조계종 종정 성철스님이 자주 한 말로,

쓸모없는 인간이 도인된다는 이야기다.

 

참으로 가혹하고 철저한 말이다

 

 

처음 7일은 쉽게 시간이 흐르더니 그 이후 40일 정도까지는 무척이나 힘들었다.

공양 조절이 잘 되지 않고

( 공양은 한끼 들어 오지만 원하면 얼마든지 많이도 넣어 준다.)

 

좌복에 앉는게 왜 이렇게 힘든 것인지.............

 

 

 

 

40일이 지나고부터 해제 일주일전까지는 어떻게 시간이 흘렸는지

모를 정도로 시간이 흘러서 나름대로 정진에 묘미를 느낀것 같다.

 

마지막 7일을 남기고 왜 그렇게 시간이 안가는지,

하루가 여삼추라는 말이 실감이 나는것 같았다.

 

 

원래 모든 공부(참선, 기도,주력,등등)는 기간을 정해 놓고 해보면

처음과 마지막이 제일 힘들다.

 

처음의 적응기간을 견디지 못하면 목표한 기간을 채우지 못한다.

 

11명이 입방을 했지만 중간에 비구 스님 2분이 나가시고,

거사님은 15일만에 나가시면서 하는 말이

 

" 스님들이 어떻게 견디는지 모르겠다.

육체적인 힘으로는 도저히 견디지 못하겠다."

는 말을 하셨단다.

 

  (계룡산)

 

이 거사님은 예전 80년도 초에 소설`丹`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권필진 옹의

수제자라할 정도로 , 소위 소주천,대주천 정도를 투과한

丹의 달인이라는데 결국에는 마음을 다스리는 禪佛場에서는

견디지 못한 것이다.

 

거사님이 나오신 그 방에 다시 호흡을 하신 거사님이 들어 갔다가

견디지 못하고 15일 만에 나오셨단다.

 

요즈음은 여러곳에 무문관이 많이 생겨서 정진들을 잘 하시지만

그 당시에는 무문관 수행이 생소한 관계로 다들 힘들어 했다.

 

1기부터 5기까지 비구니 스님이 1명 입방 했는데

나올때는 정신적으로 이상이 생겨서 안타까웠다.

 

무문관에서 정진하다가 도저히 견디지 못하면 나가도 된다. 

 

그런데 억지로 버티다가 보면 건강에 큰 장애를 얻거나

정신적으로 힘든 경계를 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무문관을 나와서 보니 몸무게가 7kg이나 빠져 있어서

회복하는데 좀 고생을 한 것 같다.

 

그 이후에도 무문관에서 큰 병을 얻거나 심지어 몇년전에는

한 스님이 무문관안에서 입적을 하신 경우도 있다.

 

 

 

그해 겨울에 해인사 성철 스님께서 입적하셔서 49재까지 마쳤는데

우리는 전연 알지 못했고 해제를 하고 나서야

전국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킨 사건도 모르고 지낸 것이다.

 

일단 입방을 하면 해제때까지는 세상 돌아 가는 일체의 일을 알 수가 없다.

 

방안에는 오직 좌복과 경전 1권 정도밖에 없는 완전한 고립인 것이다.

 

100일쯤 지난 어느 시점에서는,

이 우주공간에 오직 나 혼자만 존재하는듯한 표현할 수 없는 고독감이 밀려왔다.

바로 옆방에 동료들이 정진중인데도................


아름다운 세상의 향기/이정하
일상에 찌들고 삶에 지친 우리가 
가끔 미소를 지을 때가 있습니다. 
캄캄한 것 같은 우리의 생이 
어느 날 갑자기 환하게 밝아질 때가 있습니다. 
생이 힘겹고 고달프지만 않은 것은 
우리를 따스하게 감싸는 
세상의 향기로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삭막하다는 것은 
우리가 그동안 눈을 닫고 
마음을 닫아왔기 때문이 아닐는지요. 
출근길, 집을 나서는 아빠에게 손 흔드는 
아가의 해맑은 얼굴을 본 적이 있습니까? 
귀가 길에 지는 석양을 제대로 본 적이나 있습니까? 
그 아름다운 세상의 향기가 
진정 우리의 삶의 버팀목임을 
새로운 눈길로, 
새로운 마음으로 확인해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