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불]일체 만물이 염불-공경, 찬탄, 공양, 그리워할 때 모든 것이 염불이 된다!
우리는 흔히 부처님 명호를 부르는 것만 염불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염불은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일체 만물, 모든 행위가 염불이 될 수 있습니다.
가령 절을 할 때 부처님 그리워하는 지극한 마음이 사무치면, 그래서 부처님 그리움, 부처님 찬탄, 부처님 공경의 마음을 절로써 공양올리면 절이 바로 염불이 됩니다. 부처님을 염(念)하고 부처님을 우리 가슴에 모시고 오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수행도 모두 그러합니다. 진언을 외우고 사경을 하고 경을 읽을 때에도 무슨 공덕을 구하거나 업장 참회에 매달리거나 하지 않고, 오직 부처님을 찬탄하고 부처님을 그리워하는 나의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그렇게 할 때, 그런 진언, 사경 독경 간경 모두 훌륭한 염불입니다.
화두를 들 때도 깨치겠다, 한 소식 하겠다, 이런 마음으로 하는 게 아니라 화두를 타파하여 부처님 전 공양올리겠다, 하는 마음으로, 부처님을 떠나지 않고 늘 부처님을 마음에 그리며 화두를 들면 그것이 바로 화두로 하는 염불인 것입니다.
이런 불교 수행뿐만 아닙니다. 우리가 일상 삶에서도 늘 부처님을 잊지 않고 부처님을 가슴에 모시며 모든 사람, 모든 생명을 그리운 부처님을 뵈옵듯 모실 때, 그 작은 행, 그 작은 말 한 마디가 모두 염불입니다.
이렇게 보면 부처님 명호를 사무치게 부르는 것만이 염불이 아님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일상의 모든 행, 모든 마음이 모두 염불인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현행원은 바로 '염불'입니다. 부처님을 사모하고 부처님을 잊지 않고, 행마다 원을 세우며 일체를 부처님의 품에서 지어가는 보현행원이야말로 가장 수승한 염불 중의 염불이라 할 것입니다.
위대한 화엄승이었던 원효대사께서 말년을 염불로 회향하신 것도 이런 이유에서라 할 것입니다.
지는 꽃은 욕심이 없다 / 도종환
저녁 바람이 라일락 나뭇잎을 일제히 뒤집는다. 일이 잘 안풀려 마음이 복잡해지고 삶이 버겁게 느껴질 때면 나는 창가로 간다. 그리고 창밖의 나무들을 오랫동안 쳐다 본다. 아름다운 꽃들은 지고 없다.
꽃 한송이를 피우기 위해 견뎌온 나날들을 생각하며 나무는 바람 속에서 얼마나 애가 탔을까. 그러나 결국 나무는 꽃을 바람에 되돌려 준다. 그토록 아름다운 꽃들을 겨우 몇날 지니다가 다시 풀숲이나 흙 바닥에 뒹굴게 하고 말았을 때 얼마나 가슴 아렸을까.
그러나 어떤 나무도 꽃송이를 일년내내 지니고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나무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욕심, 지나친 욕심일 것이다. 만약에 어떤 꽃이 일년내내 지지않고 피어 있다면 그건 조화일 것이다.
우리가 이룬 아름답고 영예로운 일들도 시간이 지나면 시간 속에 묻히게 되어 있다. 그걸 인정하지 않고 억지로 영광과 영화로운 시간을 끌고 가려는 것은 욕심이다.
일이 이루어 지는데는 반드시 그만큼의 시간이 있어야 한다. 너무 빨리 가려고 하면 멀리 못가는 것은 정한 이치이다. 지치고 힘들 때면 자신을 놓아 주어야 한다. 바람앞에 나무가 꽃을 놓아주듯이 더 달라고 하면 잎마저 놓아 주듯이 그렇게 자신을 놓아 주어야 한다.
- 도종환님의 저서 모과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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